감사한 최대의 이유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대상16:34)
녹취자: 김인철
역대상 16장은 이제 법궤를 예루살렘에 무사히 옮겨 놓은 후에 다윗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시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드리는 그 제사와 감사 찬양 속에 나오는데 이것이 시편 105편이나 96편, 106편에도 반복되는 시입니다. 이 시 전체에서 하나의 핵심구절을 뽑으라면 오늘 우리가 읽은 34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는데 그것은 당신이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행하신 어떤 일들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큰 기적을 일으키시기도 하시고 이스라엘을 큰 위기와 고난 가운데서 건져내기도 하심으로서 하나님을 잘 모르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 만들어 주시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경배를 받으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께 드리는 이 경배는 결국 하나님이 하신 많은 일들은 하나님 자신에게로 찬송의 대상을 옮겨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보이고 만져지시는 분이 아니시니까 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고 행하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볼 수 없지만 어떤 사람과 오래 지내다 보면 그 사람이 행하는 여러 가지 행동들을 보면서 어떤 행동들은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되기도 하고 또 관계가 없다 할지라도 그가 하는 행동을 보면서 그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어떠한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떤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떠한지를 오래 지내다 보면 마음에 들어가 볼 수 없어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우리가 만질 수 없는 분이시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을 다스릴 이스라엘을 주시고 교회를 통치하시고 우리의 개개인의 삶을 이끄시는 그 모든 것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우리에게 아주 확실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앎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이 다윗은 이렇게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셔 오기까지 긴 세월동안 하나님과 함께 하였고 신앙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워 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늘 그 하나님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찬송시로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성품 때문이었습니다. 두 가지 성품 때문인데 하나는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 때문이고 또 하나는 인자하신 성품 때문이었습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리로다’ 하는 이 찬송은 시편 136편 찬송에서도 수없이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이 지상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는 일들이 한 없이 많고 그리고 사도요한에 의하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은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삼아 써도 다 기록하여 둘 것이 없을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하나님과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셨지만 그 모든 일을 행하게 하신 하나님의 두 성품으로 더듬어 더듬어 올라 가 보면 마지막에 주님 안에서 발견되는 두 성품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과 그리고 인자하신 성품 바로 이 두 가지였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인자하신 하나님의 성품 이것이 바로 그렇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치하시고 다스려 오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하고 능력 있는 역사의 요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자신의 성품이 어떤지를 알고 그 성품이 감사의 제목이 되는 것을 가장 좋아하십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어떤 일을 했다고 칩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일을 가지고 잘 했다고 여러분을 높이고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할 때 행복한 이유는 그 일 때문에 사람들이 여러분 자신을 알아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선물을 사 가지고 왔는데 그 선물을 받아 든 자녀들이 선물에 눈이 팔려서 오랜만에 집에 들어 온 여러분을 안중에 없이 대한다면 아마 선물 준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고 우리에게 좋은 일을 행하셔서 우리들을 시련 가운데서 건지시고 고난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고 어려움에 처할 때 피할 길을 열어 주신 것은 결국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 분이고 인자하신 분이신지를 배워 가도록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선 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볼 때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실 때 좋은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해 주면 아이들은 그 시간은 행복하고 좋겠지만 그것이 그 아이가 일생을 사는데 도움이 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판단은 좋지 못한 것을 좋다고 아름답지 않을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의 통제가 필요하고 혹은 아이들이 싫어하는데도 그것을 강요하여야지만 결국은 그 아이가 행복에 이르게 되는 것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우리에 대하여 어린 것보다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는 훨씬 어리고 불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결국 신앙의 싸움은 내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꺾고 하나님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당신의 성품을 배워 가도록 그래서 우리가 선이라고 믿는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이 선하다는 것들을 받아들이도록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마지막에 하나님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받아들이며 살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신앙의 궁극적인 싸움이 내가 좋아 하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좋아 하는 것을 따르면 그 안에서 나도 행복하고 하나님도 영광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것을 그 씨름이 신앙의 싸움입니다. 때로는 아주 작은 그 차이를 극복하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기 위해서 가혹할 정도로 불같은 시련을 당하거나 고난을 받아야지만 겨우 알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시라고 찬송하며 감격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인가를 많이 받은 것이 아닙니다. 무엇인가를 많이 받고 많이 누린 사람들이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당신의 선하심이 나에게는 기쁨이 됩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선하신분이심으로 나는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일까요? 도대체 누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노래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배할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 사람은 바로 다름이 아닌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믿는 바를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나를 위하여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나를 위하여 세계가 있지 않고 하나님이 당신을 위하여 나를 지으셨고 이 세계를 사용해서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 펼칠 수 있도록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믿는 믿음 이것이 바로 선의 질서이고 악은 바로 이 선의 질서를 어긋나서 그릇된 것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악이고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여러모로 마음이 불균등하여지고 거기에서 온갖 오욕과 더러운 욕망들이 나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 보면 어떤 사람들은 뜨겁게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예배를 드리고 나면 환하게 밝아 오는데 어떤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는 중간에도 행복하지 않고 끝난 후에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얼굴에는 근심과 우수가 가득하고 염려와 걱정이 많고 마음은 딱딱 할대로 딱딱해져서 누가 무엇을 말하든지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마음속에서 커다란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이 제발 내가 원하시는 대로 움직여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그렇게 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말하자면 일종의 불만 그리고 원망 심지어는 토라짐 심지어는 하나님을 향한 무시, 경멸 같은 것들이 그를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싸움은 언제나 인간의 패배로 끝나지 하나님의 패배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당신 자신에게로 흘러 나와서 이 모든 세계를 감싸고 당신 자신에게로 돌아갑니다. 그 선을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것을 인생의 기쁨으로 아는 사람들은 순종할 것이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당신의 선하심을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에 제가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세상에 진리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짓말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진리는 없다고 말하면 자기 그 말도 진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진리가 없다고 하는 그 말도 안 맞는 말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진리가 없다고 하지만 자기가 진리가 없다는 그 말은 진리 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진리 인줄 어떻게 그렇게 확신합니까? 똑같이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무엇인가 악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악을 보고 그것을 사람들이 싫어하고 고통스러워하고 미워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 하면 선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 하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자, 한번 우리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다가 불순종하고 하나님 앞에 악한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돌이키시기 위해서 호세아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때리시기도 하시고 치시기도 하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악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것이 하나님이 선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훌륭한 증거입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악하게 되는 것을 차마 보실 수 없어서 때리셔서라도 당신 뜻으로 데려 오게 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거슬렀기 때문에 악을 당하는 것이지 결국은 그렇게 고통을 당하면서도 선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이 결국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이 선하심을 찬송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받아들인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인자하심은 바로 이 선을 따라 흐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 보다 높고 바다 보다 깊지만 하나님을 원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그 인자하심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흉악한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은 그의 인자하심을 마음껏 느낄 수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불순종하고 많이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은 것만큼 더 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느낄 것인데 이는 바로 그가 자신의 선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선악으로 돌아 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시인에게 최고의 감사의 제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중립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그 뜻을 살아야할 의무가 있고 그 뜻대로 살지 않을 때에는 어떠한 악과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얼마나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이신지를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담당하고 죽으시기까지 하면서 우리를 당신의 품으로 부르시는 그 큰 사랑을 보여 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깨닫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관점을 가지고 지난 한해를 돌아보십시오. 시련과 어려움이 왔다고 치면 그것은 아마 여러분이 악하고 하나님의 선을 거스르며 살았기 때문에 비늘을 거스르는 손이 생선의 비닐에 베이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거스르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시련을 만났더라면 주님의 뜻대로 살기 위한 박해였든지 여러분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커다란 축복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시고 보통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큰 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그를 그것을 받을 만한 사람으로 다듬으시고 만드신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특권이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우리의 인생에서 일어난 악하고 괴로운 일들을 통해서는 하나님이 비난 받으실 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에 그분의 선하심에 그분의 인자하심에 우리 자신을 다 맡기고 나면 결국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고 통치하고 이 세상을 지배하신다는 것이 한없는 기쁨으로 느껴지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 주권사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해가 저물어 가는 이 추수감사절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한해를 돌아보면서 우리 자신을 성찰합시다. 그래서 한 해 동안 일어난 나쁘고 어려운 모든 일은 나 때문에 일어 난 일이고 그리고 좋은 모든 일은 하나님 때문에 일어난 것이며 좋으신 주님이 나의 인생에 간섭할 때 그것이 괴롭게 느껴지는 것은 아직 내 마음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든 우리를 이끄시든지 가장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면서 주님 의지하고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