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받으시는 감사
“너희가 여호와께 감사제물을 드리려거든 너희가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드릴지며 그 제물은 그 날에 먹고 이튿날까지 두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22:29-30)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레위기 22장은 거룩한 제사에 관한 규정을 담고 있습니다. 전반부는 제물에 관해서, 후반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29절과 30절, 우리가 읽은 본문은 감사제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며 이것은 화목제 중 하나입니다.
II. 받으실 만한 감사
A. 희생이 있음
오늘 성경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감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크게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것은 ‘희생이 있는 제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너희가 여호와께 감사 제물을 드리려거든” 이라고 되어 있지만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는 “감사 제사로 희생을 드릴 때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즉, 제사는 희생을 필요로 하는 헌신이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구약으로 더듬어 올라가서 기원을 찾아보면 초막절입니다. 10월에 8일 동안 성회로 모이고 7일 동안 하나님 앞에 화제를 드렸습니다. 유월절, 칠칠절과 함께 이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3대 절기였습니다. 곡식을 거둬들이고 보관하는 절기라고 해서 수장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수장절을 지켜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에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정착한 다음부터는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수장절의 절기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위해 베푸신 구원의 역사를 회상하며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이루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이 절기를 지켰던 것입니다.
이 제사에는 반드시 희생이 따랐으니 짐승을 바치거나 혹은 곡식을 바쳐 하나님께 제사를 하였던 것입니다. 제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제물도 죽는 희생이 필요했지만 자기의 소유를 하나님께 드리는 헌제자의 희생도 따라야 했습니다. 그렇게 죽어가는 제물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을 위해 기꺼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회상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풀려나게 된 그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열 대 재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재앙으로도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할 수 없었을 때에 마지막으로 베푸신 것이 바로 어린 양의 죽음이었습니다. 그 죽음을 통하여 그 피를 문 인방에 바르고 죽음의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뛴 것이 바로 유월절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린양의 희생의 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난 것은 바로 우리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죄와 사단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될 것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 구속이 성취될 때까지 하나님은 실현식 교육법으로 제사제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구속의 사실을 생각나게 하시고, 미래에 이루어질 영적인 구원을 바라보게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제사는 언제나 희생이 뒤따랐고, 그리고 그 희생은 제물에게는 죽음이었지만 헌제자에게는 언제나 기쁨으로 드리는 헌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제까지 여러분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한때 그 분과 원수 되었던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누구 때문입니까?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처럼 가까이 계셔서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어주신 신이 있었습니까? 여러분들의 그 기도를 귀담아 들으시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모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화목을 위해 당신 자신을 드리는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희생으로 구원을 받은 여러분들은 이제 그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구속의 은혜를 기초로 이제껏 보살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영혼으로부터 육체에 이르기까지 지상과 천상의 자원으로 이제껏 살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해 보십시오. 불의한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죽음 때문에 의롭게 여기셔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받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난 한 해동안도 여러분들에게 시시때때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임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로 반응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을 버리고 죽이는 희생이 있음으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제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이니 주께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은즉 이제는 여러분 자신을 희생하여 주님께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B. 자신이 열납됨
두 번째는 자신이 열납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물을 드리려거든 너희가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드릴지며”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렐레촌캔(lirechonkem)’이라고 되어 있는 이 단어는 글자 그대로로 말하자면 ‘너희가 받아들여짐을 위하여’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오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물이 훌륭하면 헌제자가 어떠하든지 하나님이 기뻐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최고로 도덕적인 신이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제물을 하나님 앞에 드릴 때 그 제물의 크기나 제사의 화려한 형식에 의해 감동받으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제물과 헌제자가 일치하여 하나님 앞에 바쳐질 때 그 제사를 최고의 제사로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사람의 제물과 제사를 하나로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제물을 드리는 헌제자를 하나로 보셨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헌제자는 제물과 나누어질 수 없었으니 헌제자는 제물을 능가할 수 없었고, 제물을 능가하는 헌제자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헌제자가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자기를 드린 사람이면 최고의 제물을 드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제물과 헌제자가 분리되고 그것이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었다면 그것은 제물이 아니라 뇌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뇌물은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나니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뇌물은 사회를 불공평하게 하고 특권을 가진 사람들을 만들어 내니 뇌물은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공평한 사회를 원하신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어찌 자기의 백성들에게 제물이 아닌 뇌물을 구하셨겠습니까?
시인이 범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제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에게 무엇이 없었겠습니까? 천천의 우양과 그리고 짐승이 없었을까요? 왕이 원하는 때에 제사를 드려줄 제사장이 없었을까요? 있었습니다. 그래서 드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 제사를 안 받으셨습니다. 그런 반복된 실패를 통해서 시인은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가 죽임 당한 어린 양이나 각을 뜬 황소가 아니라 상한 심령이요, 통회하는 마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오랫동안 계속된 오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물이 워낙 값비싸고 훌륭하면 헌제자의 마음이 따라오지 않아도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중동에 있는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뇌물 사상이었습니다. 그들의 신들은 도덕적인 신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물을 좋은 것을 주면 그것으로서 인간의 도덕성에 대해서는 일체 묻지 않고 복을 주는 그런 신들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잘못된 사상에 전염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가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을 드린다면 너희가 하나님께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드려라”고 말입니다.
미가 선지자의 시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회는 불의로 충만하였습니다. 권력자의 횡포와 부요한 자들의 강포가 하늘을 찔렀고, 이에 비해 가난한 자들은 고통을 받고 약탈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회 현실을 무시한 채 종교심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을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1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내 몸의 열매 곧 내 자식을 제물로 하나님께 바칠까?’ 이때에 선지자는 그 모든 사상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찬양)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을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을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내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기름, 일 년된 기름진 송아지나 혹은 자기 자식을 이방신들에게 지내는 것처럼 불태워 제물로 드리는 것을 하나님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의 세계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을 닮은 성품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성품에서 흘러나온 삶의 양식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생활이었습니다.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람,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붙들고 있는 사람,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의로운 오른 손이 그의 어깨를 붙들고 계신 사람, 이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그 사람이 잘못할 때 그를 바르게 하기 위해 때로는 때리시고 징계하시기도 하십니다. 잘못이 없어도 그를 연단하여 더욱 성결하게 하시기 위해서 때로는 이런 저런 고난을 당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인데도 왜 그런지 그 가까이에 악인을 심으셔서 그 악인으로 고통을 당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종종 그를 때리고 치실지라도 누군가 그를 때리고 칠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연단하고 올바르게 하여 더더욱 그가 하나님 앞에 열납될 만한 사람이 되도록 담근질 하시고 단련해 나가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죄가 가득하고 불의와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그렇게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고, 또 제물 이전에 그 사람 자신이 하나님께 열납될 만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도록 망가져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죄인들을 그 분께 받아 들여질만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습니다. 당신 자신이 죽으심으로 우리를 많은 기도의 씨앗으로 열매 맺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 주님을 섬기며 살아온 날들이 얼마나 될까요? 주님을 믿었지만 주님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무지 속에 살아서 하나님을 섬기지 못했던 날들을 제외해 봅시다. 길을 알았지만 은혜가 떨어져서 도저히 그렇게 살 힘이 없어서 가책을 받으면서도 주님을 섬기지 못했던 날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 모든 날들을 다 제하고 나면 이제 기쁨으로 주님을 섬겼던 날들이 있을 텐데 그 날 중 그 많은 날들은 우리의 지혜 없음과 무능함 때문에 주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한 날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고 나면 우리에게 남은 날들이 얼마나 될까요? 정말 오늘 하루는 추호도 나를 섬기지 않고 우리 주님만을 기뻐하며 섬겼다라고 할 수 있는 날들이 얼마나 될까요? 주님은 바로 이런 우리들을 기꺼이 용납하시기 위해서 자기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 죽게 하심으로 우리가 이루지 못한 의를 이루어 그 의를 전가 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납될 수 없으나 그리스도 때문에 그 분께 열납되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모든 사람들이 이 언약의 성취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 때문에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만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몇 달 전에 강아지를 들여와서 키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제 많이 컸습니다. 벌써 한 일곱 달 정도 됐으니까 13년 밖에 못 사는 것을 계산을 한다면 그 아이가 벌써 우리 사람 나이로 일 곱, 여 덞 살이 된 것입니다. 벌써 유치가 빠지고 이제 성견의 치아가 나오기 시작하니까 참 성장이 빠릅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가족의 귀여움을 독차지 합니다.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아파트의 번호를 누르면 벌써 강아지 짓는 소리가 들립니다. 번호 여섯 개를 누르기도 전에 벌써 출입문을 발로 긁으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면 쏜살같이 달려와서 그냥 기어오릅니다. 그러면 안아줍니다. 그리고 볼을 부벼 줍니다.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오늘 하루는 생각을 했습니다. 얘가 왜 그렇게 사랑스러울까? 예뻐서? 애견 카페에 한번 개를 데리고 가보니까 우리 개는 인물을 내놓을 수도 없습니다. 진짜 그림 같은 강남에 있는 젊은 여자 같은 개들이 많더라구요. 그렇게 예쁜 개들이 없어요. 여우 같으면서도 어쩜 그렇게 같은 하얀 개인데 우리 개는 약간 빨래 색깔이 나는데 얘는 완전히 눈부신 옥색 빛입니다. 그리고 어쩜 그렇게 또 돈을 많이 들여서 미용을 했는지 정말 예쁜 개들 많더라구요. 그런데 그 개하고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이미 벌써 이 아이에게 정을 주었습니다. 생각합니다. 일곱 달이 되었는데 아직까지 ‘손 줘’ 그것도 못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예쁠까? 개에게 장점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 개를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이 훨씬 커서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귀여운 것입니다. 한번은 저희 아내가 들어가니까 애가 반가워서 마침 이 아이가 똥을 놓고 있었습니다. 용변 보는 장소에다 패드에다가 똥을 놓고 있는데 할머니가 딱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더니 얘가 할머니가 반가워서 막 달려 나오는데 똥은 계속 나오는데 너무 가고 싶은 거야. 똥을 계속 하나씩 떨어뜨리면서 달려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내 하는 말이 더럽지가 않고 너무 귀엽더랍니다. 한참을 웃었습니다. 얼마나 내가 보고 싶었으면 똥을 눠야 되는데 그 순간을 못 참으면서 똥을 계속 흘리면서 달려오는 것입니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참 많이 배웁니다.
우리가 어떤 장점과 좋은 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넘치는 박애적 사랑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들여 주시는 거구나. 그리스도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게 되었으니 더더욱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서 주님께 열납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 기쁘게 누림
마지막 세 번째 기쁘게 누리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제물은 그날에 먹고 이튿날 까지 두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게 무슨 뜻일까요? 감사의 제사, 화목 제사를 드린 후에 그 제물은 아끼지 말고 거기 제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나누며 그것을 소비해 버리라 그 뜻입니다. 어렸을 때 기억이 납니다. 엄마가 남의 집에 굿에 가면 엄마를 기다립니다. 그래서 옛날 속담에 뭔가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굿에 간 어미를 기다리듯이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남의 집 굿판에 잠깐 간 엄마를 기다릴까요? 올 때 멋을 것을 싸 가지고 오니까 그 엄마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넉넉하지 않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화목제를 드리는 날에는 넘치게 드린 그 제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그날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 소비하게 하였으니 그 축제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내일을 위하여 따로 떼어놓거나 혹은 모레를 위하여 절약하지 말고 오늘 그것을 모두 소비해 버려라, 계획성 없는 삶을 살라 이런 뜻이 아니라 이 날은 매우 특별한 날이니 이 날에 하나님의 은택을 입고 즐거워하는 것을 한번 느껴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감사하는 최선의 길 중 하나는 하나님 앞에 기쁨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도 많고 연약한 것들에 에워싸여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 때문에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시인은 시편 3편에서 큰 고난과 시련을 만난 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녁에 자고 아침에 눈을 뜨면 그것이 자기의 힘으로 하는 줄 알았다가 큰 시련과 고난 속에서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비로소 알았습니다. 저녁에 자고 아침에 깨는 것이 하나님이 자기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었다고 감격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으시고 그리고 지난 한 해 동안도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감사는 우리가 그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기뻐하며 그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일치 속에서 나만 기뻐할 뿐 아니라 또한 나와 함께하고 있는 모든 이웃들이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화목제의 제물을 함께 누리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기뻐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 사랑을 잊어버리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섭리 속에서 무엇인가 좋은 것들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더듬어 보며 그 좋은 것들이 과연 누구로부터 왔는지를 생각해 보고 그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모든 것을 누리고 기뻐하는 사람 안에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지난 한 해 동안에 시련과 고난도 많이 당하고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그러나 또한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주셔서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기뻐하고 그것을 좋아할 때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 속에서 우리가 한 해를 살아왔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신 모든 것들을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주님이 주신 것을 기쁨으로 누리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I. 적용과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장절을 맞이할 때마다 수확에 감사하고 또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회상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추수감사절에 여러분들에게 한 해 동안 주신 모든 수확과 그리고 여러분들의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어떻게 이 세상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는지를 생각하며 구속의 은혜를 찬송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껏 우리가 받기만 하면서 일생을 살았으니 이제는 주님께 감사의 희생을 드립시다. 모든 제물 중 가장 기뻐하시는 제물이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받을만한 사람으로 바쳐진 제물이니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주님이 주신 모든 것을 두려움 없이 주님 안에서 누리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누리는 모든 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