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라
(2008년 설교모음)
설교기간|2008년
편집내용|녹취원본
출 력 일|2013년 3월 23일
목 차
1. 근신하며 기도하라(벧전4:7-8) 2008.8.17 주일오후 1
2. 뜻을 정한 사람(단1:8) 2008.8.24 주일오후 6
3. 깨닫는 마음으로 기도하라(시119:147-148) 2008.9.7 주일오후 10
1.근신하여 기도하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 :7).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때를 생각나게 만들어 줍니다. 그때가 어떤때인가 하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때다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기도하라' 라고 하면 될텐데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만물이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마지막때를 긍정적으로만 우리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때가 되면 사람들이 허무한 일에 열심을 내고 참으로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하지 않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영원하지도 않고 속되게 잠깐 있다 사라지는 육체에 속한것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마음을 많이 기울이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애를 쓰지만 자기 영혼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땅의 나라를 위해서는 많은 것을 쌓아 두지만 하늘 나라를 위해서는 무엇인가 준비하지 않습니다. 삶을 위해서는 노고를 아끼지 않지만 죽음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때를 만났기 때문에 우리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이 세상의 실의와 풍조에 휩싸여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사정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정신 없게 하는 혼돈들은 기도생활에 절대적인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이라고 하는 자체는 마음과 모든 뜻들을 하나님 앞에 모음으로서 기도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마음이 퍼질러서 아무것에나 쫒아 다니는 혼돈 속에서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효과적인 기도생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은 여유가 없어 기도를 못한다고 말하지만 그 여유는 시간의 여유라기 보다는 마음의 여유입니다. 마음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하나님을 응시하고 있는 동안에 가장 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우리 주위에서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수시로 우리의 마음을 닦아내고 마음의 채비를 하지 않으면 우리들이 기도에 집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전기도, 특별기도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금식기도 이러한 특별한 기도들이 간증을 많이 낳는 이유는 그 기도 자체에 어떤 힘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렇게 우리들이 마음의 결심을 하거나 뜻을 세울 때 우리의 마음이 집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집중될 때 그때 우리의 기도는 훨씬 하나님앞에 잘 타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안되는 가장 큰 이유는 삶에서의 마음의 초점은 하나님이 아닌데 언젠가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에게 집중하려고 하니까 삶에서 마음의 초점이 아니던 사람이 기도 시간에 갑자기 초점을 이동하려고 하니까 그렇게 쉬운것이 아닙니다. 손과 발은 우리들이 명령하면 명령한 대로 움직이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도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든지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바쁘고 일이 많으면 많이 일을 해야 하고 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고통이 있게 마련인데 그것을 모두 피하면서 우리들이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을 감당하면서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는 그러한 생활이 계속될 때 우리가 많은 일에 합당한 기도생활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주일날은 이렇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그리고 돌아가서 잊어 버렸다가 다음주에 와서 은혜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받은 은혜의 말씀을 잘 곱씹고 또 가슴에 새기고 은혜받고 이렇게 하면서 그 말씀이 자기의 마음안에 깊이 뿌리를 내려 일치를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모으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기도의 시간을 정해놓고 규칙을 세우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의 마음이 잘 모아지고 준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고 새벽 기도에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다시 나와서 새벽기도의 단을 쌓고 저녁기도로 주님 앞에 드리던 사람들은 자기의 기도생활이 무너진 것을 다시 기도의 시간을 회복하고 이렇게 함으로서 경건의 비밀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도전이 우리에게 계속 살수 있는 것입니다. 환자가 의사에게 병이 난 이유와 원인을 다 알고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이런 병이 걸렸지만 이렇게 해서 놀랍게 완쾌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아주 좋아 졌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당장 자신의 병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 모든 좋았던 기분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해야 된다고 하면 전도 잘 하는 사람 불러다 간증 듣고 책 읽고 끝나는 경향이 있고, 기도 하면 좋은 책 읽고 끝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실천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근신하여 라는 말이 나오는데 근신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자기가 지금 살아 가고 있는 이 삶의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어느 정도는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죄를 지어서 커다란 벌을 받아야지만 조건부로 풀어놓아 주었을 때 집행유예 상태에서 스스로 조심 하듯이 혹은 자신에게 잘못은 없지만 지극히 지체가 높은 사람 앞에서 그 사람에게 섬기고 봉사하면서 자기의 옷깃을 여미게 되는 그런 떨림과 긴장이 있는 생활의 태도를 가르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푹 놓고 무엇인가 부족함이 없고 감사한 것 뿐이니 그러니 이대로 살면 되지 하는 마음을 가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수련회의 은혜가 참 크다고 하더라도 "아! 은혜 많이 받았다 오래간만에 말씀 한번 시원하게 잘 들었네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이 있겠어!" 그렇게 하고 끝나면 그것은 마귀가 박수를 칠 일입니다. 그렇게 도전이 되었으면 새벽기도 안 나오던 사람들은 새벽기도 나오고, 하나님 앞에 기도 안 하던 사람들은 기도하고, 말씀의 감각을 잃어 버린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몸부림쳐서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고 이런 실제적인 실천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도전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도전 앞에 무엇을 결단 했습니까? 경건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듣고 깊이 은혜를 받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제까지 경건에 힘쓰며 살지 않은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고 앞으로 되는대로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안하겠다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무엇을 얼마나 열심히 해 본다는 것입니까?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라는 것입니다. "집사가 되었어도 제가 새벽기도 한번 못 나왔습니다 나오겠습니다" 라든지... "아이들 학교 보내고 9시부터 10시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와 목회자와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번영을 위해서 기도 하겠습니다" 라든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런 도전이 도대체 몇일을 가냐는 것입니다. 15년 동안 여러분들을 보아온 나의 마음입니다. 구체적으로... 아! 좋았다 그것 말고... 그러므로 나는 이제 이렇게 살 수 없다. 자기에 대한 나태와 안일에 대한 미움의 마음이 생겨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씀을 깨달은 사람의 열매인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여러분 모두 경험 해 보시는 것이지만 제가 다다음주에 영국에 집회를 가는데 외국에 가면 제가 운전하는 법이 없는데 면허도 없지만 딸 수 있어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의 차 타고 다니면서 몇일 있다가 한 일주일 만에 돌아와서 운전대를 잡으면 한 20분 동안은 아주 어색합니다. 그때마다 깨닫는 것이 제가 90년도에 면허를 땄는데 그럼 벌써 18년을 운전을 하고 수십만 킬로미터를 운전했는데도 불과 4-5일 운전을 안 하고 운전대를 잡아도 서투른데 우리의 육체적인 감각은 예민해서 잘 알지만 우리의 영혼안에 있는 감각은 우리의 나태함 속에서 얼마나 많이 자주 무너지는 것일까? 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제법 얼굴이 알려진 일꾼들인데도 일주일에 단 30분도 하나님 앞에 머리를 묻고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이야기 하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없도다' 입니다. 교회에 나오고 식사시간에 기도하고 가끔 가정예배도 드리고 교회에 와서 봉사도 하고 기부금도 내고 그 모든 것이 모양입니다. 진짜 그 안에 경건의 능력 그래서 예배에 참석하면서 주님을 만나고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고 봉사하고 섬길 때 내 마음이 온전해 지고 순수해져서 게으르게 주님 섬기지 않을 때는 몰랐는데 섬기고 나니까 섬길수록 우리 주님이 사랑스럽고 귀하신 분인지를 알게 되었다 하는 간증들은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삶속에서 마음을 쏟아 붇는 기도생활 없이도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껍데기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매달리지도 않으면서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자꾸 찿는데 그런 길은 없습니다. 죄의 본성이 뼈속 깊이 베인 인간이 은혜에서 멀어지고 나면 갈 수 있는 길이 어디가 있을지 생각해 보십시요? 그래서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보고 정신을 차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잘 되어가고 있다면 정신을 차려라. 성공에 취해서 기도를 잃어 버릴까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속에 휩싸여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신 차려라 염려와 근심이 다 뺏어간다.
그런데 목회를 하면서도 좌절이라고 하면 우습지만 저만의 느낌이 아니라 모든 목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신앙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다른 것이 없고 예수를 알고 예수님이 엎드리셨던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주님처럼 그 말씀을 전하고 주님처럼 헌신하고 주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신앙의 본질인데 그 본질을 점점 안하면서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찿아보려고 하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참된 힘이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기도생활에서 멀어지고 죄에 훨씬 가까워지고 하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겹고 고통스럽게 느껴지지만 우리가 은혜 안에 있을때에는 사실 하나님과 만나는 모든 시간이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은혜 받고 나서 예배 시간을 기다리면서 살아가 본적이 한두번쯤은 있지 않습니까? 어떤 형제는 신문에 글을 썼는데 수요예배 드릴때만을 기다리면서 살아 간다고 합니다. 수요예배때 그렇게 은혜를 주시니까 수요예배만 기다리면서 살아간다고... 그렇게 주님을 향한 사랑이 우리안에 있을때에는 우리에게 그런 의무가 의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 때문에 사랑해야 하는 것은 놀라운 일치를 보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 때문에 사랑해야 하는 모든 것이 지겹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 때문에 사랑해야 하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군대도 때리는 것이 많이 없어 졌는데 미국에서는 오래전에 없어 졌다고 합니다. 미군 부대에 근무했던 어떤 형제가 저에게 이야기 하는데 제가 물어 보았습니다. 거기에도 답답한 인간들이 있을텐데 하도 답답하고 열받으면 상사가 어떻게 벌 주냐 라고 물었더니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자기가 미사일 부대에 근무를 했는데 쫄병 하나가 있는데 그렇게 고문관 노릇을 한다고 합니다. 고문관이 무엇인지 알죠? 하여튼 말 안듣고 말귀도 못 알아듣고 해서 상사를 그렇게 힘들게 해서 상사의 평생 소원이 내가 제대 하든지 저녀석이 전출 가든지 둘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때릴수는 없으니까 하도 화가 나면 시험지를 하나 가져다 준다고 합니다. 그 시험지에는 덧셈, 뺄셈, 나눗셈, 곱셈, 그들이 그런것을 잘 못합니다. 특히 흑인 병사들 같으면... 또 미국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계산기를 써서 잘 못합니다. 그래서 이 자식 말도 잘 안듣고 이것 풀어 하고 열 문제를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가져다 계산기도 없는데 해 보던 사람이 아니니까 그리고 머리도 나쁘고 하니까 썻다 지웠다 하면서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복수심을 느끼는 것입니다. 은혜 떨어진 사람들에게 벌 주는 제일 큰 벌은 "성경 읽어" 입니다. 그것이 벌입니다. 지겨우니까... 일간스포츠 16쪽은 순식간에 읽으면서 이것은 반쪽도 못 읽는 것입니다. 은혜 떨어지는 사람에게 벌 주는 것은 뭐냐면 "무릎 꿇고 기도해!" 입니다. 왜냐하면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이것이 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꿀송이 처럼 막 다가오는 것입니다. 설교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납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갑자기를 저를 교육을 보냈습니다. 교육을 보냈는데 아침부터, 새벽 6시부터 운동장을 뛰고 교육을 받는데 쉬는 시간이면 항상 풀밭에 앉아서 성경을 보았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달콤할 수 가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벌이 될 수가 없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도 정말 놀라운것이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은 할 마음이 없고 진리의 빛이 꼭 필요한 인간들은 그 빛을 향해 눈을 감습니다. 참 놀랍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있는 사람에게 더 주시고 없는 사람것을 뺏어서 있는 사람에게 보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 나는 것입니다. 수련회를 하건 사경회를 하건 머릿속에 은혜 떨어진 인간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 사람은 은혜 받아야 하는데... 약속한듯이 단체 결석입니다. 하여튼 기가 막힘니다. 그리고 이제 곤고해져서 혹은 하나님 앞에 한대 얻어 맞아가지고 찔찔 짜면서 손들고 올 날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경건한 사람의 마음에는 주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 마음이 기도의 통로를 통해서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기도하라고 하면서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듯한 인상을 주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기도하라고 했는데,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면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은혜가 계속 쏟아지는 사람의 마음에는 감사와 기쁨이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주신것도 감사하고 저런 사람 곁에 있는 것도 감사하고 그리고 이런 사람과 관계를 맺고 함께 섬기게 해 주신 것도 감사하고 저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알게 하심도 감사하고 하면서 계속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은혜가 있으니까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의 영을 잃어 버린 사람속에는 항상 어느 인간은 무엇 때문에 마음에 안들고, 또 어느 인간은 어때서 괴롭고, 어느 인간은 사라졌으면 좋겠고 하는 마음이 계속 일어나는데 그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세상에 어디를 가서 살든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있어도 우리를 충분히 만족하게 해 줄수 있는 그런 상황은 안됩니다. 만약에 그런 상황이 생겨나면 그것은 재앙입니다. 하나님을 떠났는데도 환경 때문에 충분히 만족 할 수 있다면 재앙입니다. 이 짧은 인생 사는 동안에 사연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어디에 가든지 모두 사연이 있고 그리고 우리 눈에 보기에는 더 없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야 할 기도의 제목은 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마음을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뭐냐면 사랑의 마음입니다.
(찬송) 뉘게 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생각하면서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의 문이 막혔을 때 사람들을 미워한 죄를 회개하면 제일 먼저 그 죄를 회개하면 기도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그래서 옛날 전도사때 아이들을 데리고 수련회를 가면 제일 먼저 첫시간에 하는것이 첫날 설교한 다음에 사람들 미워한 죄를 회개 시켰습니다. 그것 가지고 모자라서 집회가 다 끝난 후 자기가 미워한 사람에게 가서 용서해 달라고 빌고 오라고 했는데 내 앞에서 아이들이 줄을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내 앞에서 줄을 서느냐고 했더니 전도사님을 미워 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미워하냐고 하니까 설교도 큰 소리로 하고 어쩌구 저쩌구... 그래서 내가 "나는 그런것을 몰랐는데 네가 나를 미워했으니까 내 잘못도 있겠지 내가 예수 안에서 다 용서하니까 자유해라." 그때 보면 교회 안에서 인간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어떤 형제 앞에는 아이들이 두줄로 서 있습니다. 우리도 한번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아마 인간성이 다 드러날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 앞에 두줄, 세줄로 서서 삼층까지 올라갔다고 하더라.. 그렇게 하나님이 그 일을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이 아이들은 미워하는 것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번 그렇게 잘못했다고 빌면 어김없이 하나님이 그 아이들에게 은헤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사실 아이들 만큼 화해를 하지 않습니다. 십년전에 미운털 박힌 사람은 마지막 죽으면서 유언을 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저 최집사 집과 상종하지 말아라" 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것이 어른입니다. 그런 모든 것들이 기도의 문을 계속 막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기도의 문이 늘 열려 있어서 기도가 잘 되는 사람은 딱 막힐 때 "아! 막혔구나 내가 사람을 미워하니까 이렇구나!" 하는데 원래 막혔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더 막혀봐야 어차피 안되던것 또 안되니까 이것이 그것 때문에 안되는 것인지 저것 때문에 안되는 것인지 감각도 없는 것입니다. 뚫려 봤어야 막힌것을 알지... 그러니 이것이 모든 경건치 못한 삶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경건의 모양이 있는 껍질의 신앙에 만족하지 말고 그 안에 정말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움직이시는 능력이 그 안에 있는지 깊이 돌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꾸 세월은 가지 않습니까? 엊그제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는데 "목사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는데 한동안 못 보았는데 잠시 정신이 아득한게 아이가 옆에 큰 애가 있는데 저 아이하고 관계가 어떻게 되나? 하고 보니까 애가 "엄마" 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갓 졸업하고 아리아리하게 왔는데 애가 벌써 그 만큼 커서 "엄마" 하는데 세월이 그렇게 빨리 갑니다. 그러니까 언제 우리가 사람을 미워하고 하면서 세월 보내고 원망하고 하기에는 세월이 너무 아깝습니다. 바람같이 세월이 지나 갑니다. 여러분 중에도 열린교회에 온지 10년이 넘은 사람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세월이 빨리 지나 갑니다. 그러니까 빨리 정신 차리고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미워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하고... 그렇게 한번 맺히면 풀지 못하고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고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받은바 그 십자가의 큰 사랑을 생각하면서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성도로서 인생을 살면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원 안에서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것들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용서와 구제입니다. 용서는 영혼으로 하는 것이고 구제는 물질로 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위해서는 하늘의 자원이 필요하고 구제를 위해서는 이 땅의 자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런 십자가의 은혜를 내 마음에 깊이 새기며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하기 힘든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면서 그렇게 매일매일 걸어갈 때 그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집중되고 기도의 새로운 은혜가 우리 속에 부어지는 것이 이런 실천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경건의 비밀들을 알아 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오늘 가슴에 깊이 새기십시요. 기도 안하면 이길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이길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 하십시요. 이제 더위도 한풀 꺾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다시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라 1
2.뜻을 정한 사람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단 1:8).
이번 올림픽에서 화살을 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화살을 쏠 때에는 쏘는 선수의 마음에는 어쨎든 정중앙에 맞히고 싶어서 쏘았는데 그것이 빗나가고 나니까 화살 한발로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기도생활도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한다고, 장시간 한다고 하는 것은 참 좋은 것이지만 우리의 경험을 보면 많은 시간을 기도하는데도 왠지 마음의 평강이 충만하지 않고 기도속에서 확신이 오거나 기도속에서 필요한 능력을 공급받거나 혹은 기도속에서 응답을 받지 못하는 때가 자주 있습니다. 기도를 많은 시간을 들여서 기도한다는 것은 아주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장시간 기도하지 않고도 기도가 깊어 진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길이는 그 기도의 깊이를 보여 줍니다. 그래서 깊으면 반드시 길어지고 그렇다고 길다고 해서 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 우리가 생각해야 되는 점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기도의 초점이 분명할 때 기도하고자 하는 제목과 기도하는 마음이 일치를 이룰 때 그때 우리의 기도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기도가 온전히 힘을 얻어서 그 기도가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 허공을 휘저으면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가운데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듯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기도제목과 우리의 마음이 일치가 되어야지만 기도가 절실해지고 간절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나오는 다니엘이라는 사람은 그런점에서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유대나라가 멸망한게 주전 586년 이었습니다. 나라가 망하자마자 즉시 모든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끌려 갔던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친구들이 역사에서 여러분들이 아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은 주전 605년경 이었으니까 나라가 망한지 9년정도 후에 다니엘과 친구들이 끌려 갔습니다. 이 사람들을 끌고 간 목적은 무엇이냐면 유대나라의 동향처럼 학문과 지식이 뛰어나고 재능이 있고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고 왕 가까에서 모실만한 동향들로서 자라나고 있는 젊은이들을 데려 갔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라를 통치하려면 그 나라를 잘 아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도 보면 이슬람이 십자군 전쟁 이후에 기독교 국가를 점령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고 자기 나라를 잘 알지만 예수 믿는 신앙은 안 들어간 젊은이들을 가려내는것 이었습니다. 그렇게 모아서 철저하게 교육을 시키고 이슬람 국가에 충성하도록 만들어서 겉 모양은 예수 믿는 사람이지만 속에는 철저하게 이슬람 신앙으로 무장 시켜서 자기가 살던 도시에 말하자면 군대 지휘관 혹은 통치자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들도 똑같지는 않았지만 그와 유사한 목적 때문에 이 사람들을 데려간 것입니다. 바벨론은 유대하고 비교하면 비교도 안될 정도로 문명이 발달하고 큰 나라입니다. 오늘날 말하자면 미국하고 한국과의 차이가 나는 나라입니다. 거기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없겠습니까? 그렇지만 이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 이런 사람들을 데려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다니엘이라는 사람은 친구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세 친구와 함께 하나님에 대한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데려다가 왕궁에서 훈련을 받게 하면서 왕이 그들을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자기의 진리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이들에게 날마다 먹이게 하고 3년을 기르게해서 자기가 나라의 일꾼으로 쓸려고 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이렇게 왕에게서 나오는 것을 먹는 것이 커다란 하나의 영광이요 명예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옛날에 왕들도 보면 매끼 밥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역사를 보면 사람마다 좀 차이가 있는데 왕에게 음식을 공급하기 위해서 부엌에서 적으면 백명 많으면 사백명씩 되는 사람이 요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귀한 먹거리를 구해다가 만드는데 많이 만듭니다. 양으로 따지자면 2.5톤 트럭 정도, 그 보다 더 작거나 많거나 이렇게 엄청나게 만들어서 그것을 왕이 다 먹지 못하니까 왕이 그것을 먹고 아래 사람들을 시켜 다 싸서 신하들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황제께서 음식을 싸서 보냈습니다. 그러면 절 한번 하면서 감음하면서 먹는 것입니다. 제가 1년전부터 생긴 버릇인데 외국에 집회를 가든지 국내에 가든지 식당에 가면 왠만하면 다 싸 오는 것입니다. 우리집에는 안 가져 오지만 누구를 줘도 줍니다. 왜냐하면 음식도 아깝지만 환경을 너무 파괴 합니다. 그래서 도시락을 깨끗이 싸서 교역자들이고 직원들에게 들려 보내 집에 가서 먹어라 하는데 남는 것 싸 가지고 왔다고 하지 말고 예쁘게 싸 가지고 가서 부인도 주고 하라고 하는데 그 나라 사람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것이 큰 영광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믿음을 따라 살려고 하니까 이 사람들에게 이것이 큰 고난이 되었던 것입니다. 구약을 보면 사람들은 이 이유를 두가지 정도로 생각합니다. 왕의 식탁에서 나오는 음식 가운데에서는 아마도 구약의 율법으로서는 먹을 수 없는 그런 음식들이 나왔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아니라 재정일치 시대에서 왕의 식탁에 올라 오는 것들은 먼저 그 나라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왕이 신에게 하사를 받아 조리를 했을 것이라고 보는데 저는 후자일 가능성이 굉장히 많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8절에 보면 왕의 진노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는 말이 되지만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포도주는 이스라엘 사람이 늘 먹는 것이지만 이것이 아마도 음식 전체를 신에게 제사를 드린 그런 음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됩니다. 이런 상황이 되었으니까 이것은 바벨론에 끌려 가서 첫 번째 당하는 난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칼을 들이대는 고통스러운 난관이 아니라 아주 굉장히 유혹과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엉켜 있는 그런 난관이었습니다. 이 뒤를 보면 다니엘은 깊은 말씀의 사람이고, 심오한 말씀의 사람이고, 깊은 기도의 사람으로 일평생을 살아서 다니엘의 서책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회복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깨달아서 역사의 새벽을 밝힐 정도로 말씀 연구에 몰두한 사람이었고 또 그러한 역사를 전망하면서 기도속에서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런 사람이 오늘 이 성경에서 첫 번째 난관을 만났는데 제일 먼저 한 것은 뜻을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뜻은 무엇이냐면 나라가 죄 때문에 망했으니 이제 우리는 이 땅의 영광을 인해서 이땅의 영화와 번영 때문에 우리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 하겠노라 하는 그런 종류의 뜻을 굳게 세웠던 것입니다. 그 뜻을 굳게 세우고 나서 이 난관을 헤쳐 나갔던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약에 이 사람이 처음 바빌론에서 만나는 신앙의 도전에 이렇게 믿음으로 맞서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후의 삶도 그런 심오한 말씀의 계시와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통속에서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뜻을 정했습니다. 뜻을 정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 입니까? 이것은 시편에서 이야기 하는바 내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어두움을 해맨것 같은 상태이고 실제의 삶에 있어서도 혼란스럽고 염려와 근심 걱정이 있는 무엇인가 어지러운 상황이라면 거기에서 자신의 삶과 마음의 갈피를 잡고 현 상태는 환경이 어떠하든지 현재 시각으로는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떠하고 환경이 어떠하든지 간에 나에게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를 분명히 깨닫고 뜻을 세우는 것입니다. 나는 아직 그렇게 안 되었지만 성령으로 충만해지기를 원합니다 라든지 사업에 있어서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주님의 손에 붙잡히고 싶습니다 라든지 무엇이든지 초점을 분명히 하여 그것을 자기의 마음속에 하나님 앞에 기도를 통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로 떠 올리고 거기에 마음을 쏟아 부어서 그 일이 꼭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되겠다 라고 하는 절박한 마음을 품고 기도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뜻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에게 오셔서 무슨 기도를 들어 주랴 하고 물으실 때 망설임 없이 아주 명료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있을 때 기도는 불붙게 되고 힘을 얻게 되고 마음이 거기에 쏟아 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초점이 없이 기도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초점이 안 맞은채로 찍은 사진과 같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광경을 훌륭한 구도에 맞게 찍었다고 할지라도 초점이 맞지 않으면 사물이 모두 흐려져서 분간을 할 수 없는 가치 없는 사진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들이 나는 어디에 뜻을 정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은혜에서 멀어지고 마음이 부패해지게 되면 희미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가 임하고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있게 되면 이상하게 우리의 복잡해 보이던 삶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 명료해지고 나머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이것은 이렇게 되어야해!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라는 마음이 생기니까 안하던 새벽기도도 하고, 안하던 철야기도도 하고, 심하면 해본적이 별로 없는 금식기도도 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바로 뜻을 하나님 앞에 세운 사람의 마음이 기도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그래서 지난주부터 우리가 기도를 하자고 말씀을 듣는데 오늘 한번 여러분들에게 숙제를 드리겠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여러 가지도 말고 그냥 신앙생활 잘 하게 해 주십시요 그것은 평생 해야 할 기도제목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것 말고 지금 당장 너에게 절실한 것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신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그 대답할 말이 여러분들의 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기도의 초점이 되도록 맞추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하나님이 나타내시는 큰 역사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햇빛은 비치면 강렬해 보이지 않지만 그 햇빛이 모이면 강렬한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낮에는 화초에 물을 주지 않습니다. 왜 안주는지 아십니까? 물을 주면 화초가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이파리와 꽃잎에 물방울이 떨어져서 동그랗게 뭉칩니다. 이것이 볼록렌즈의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햇빛이 내려서 이파리와 꽃잎을 태웁니다. 그래서 이상하게 낮에 물을 주고 나면 저녁에 가서 이상하게 시든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낮에는 물을 안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마음이 한곳에 분명하게 꽂혔을 때 그때 우리들이 깊이 몰입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자매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아이는 공부할 때 게임할 때 처럼 집중하면 참 좋을텐데요" 집중하는 거기에 놀라운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중한 사람은 못 당합니다. 여러분 책 한권 들고 다니면서 생각없이 덜렁덜렁 읽으면서 어떨때는 한달 내내 들고 다닐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읽은 것은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그런데 어 이것봐라 하고 줄 치면서 하루만에 읽은 책은 놀랍게 그 내용이 기억에 남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어떻게 하면 기억하는지 방법도 가르쳐 드렸습니다. 그렇게 하면 기억에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읽은 책이 기억에 남지 서너달 들고 다니면서 너덜너덜 해질 정도로 들고 다니면서... 남들이 보기에는 깊이 판 것 같은데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뜻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한주간 뜻을 분명히 세우고 열심히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라 1
3.깨닫는 마음으로 기도하라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시 119:147-148).
우리의 기도생활에 풍부함은 물론 장시간의 많은 기도 속에서 우리의 기도생활이 풍부해진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제는 이 풍부한 기도생활은 한 번에 어떤 사람이든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커다란 물길을 낸다고 칩시다. 중국에서는 각 지방에서 거두어들이는 조공들을 운반하기 위해서 천 킬로씩, 이천 킬로씩 되는 수로를 팠습니다. 지금도 그곳을 보면 어마어마한 크기로 인공 강을 만들어 운화를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조공을 실어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런 아주 커다란 강과 방불한 운화를 팔 때도 처음 시작은 아주 작은 샛길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기도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해서 아주 풍부한 기도생활이 되는 것이지 마치 커다랗게 파여진 운화를 흐르는 아주 풍부한 강물에 비교한다면 그런 풍부한 기도의 강물이 흐르기 위해서 맨 처음 도랑처럼 흙을 파고 그리고 거기에 작은 물들을 흘려보내는 시간들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입니다.
오늘 이 시인은 말씀의 영광의 장으로 불리는 이 시편 119편에서 기도생활과 말씀생활이 어떻게 밀접하게 연관되었는지를 자기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깊은 곤궁과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으며 자신에게 응답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고백하기를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겠나이다.” 한 번 더 똑같은 기도를 드리기를 “주께 부르짖었으니 나를 구원해주옵소서. 내가 주의 증거를 지키리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서 주님이 응답해주는 것이 은혜라면 그 다음에 내가 주의 율례를 따라서 살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율법입니다. 그래서 그 율법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의지인데 그래서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의 의무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고 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진실한 생활 속에서 그 은혜가 보증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아주 귀중한 액체가 있다면 그것을 좋은 용기에 잘 담아 보관할 것이지만 만약에 그것을 바구니에 담는다면 모두 쏟아져서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많은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삶이라고 하는 그릇에 담길 때 그때 은혜가 오래도록 잘 보존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은혜는 받기 쉬워도 그 은혜를 유지하는 것은 힘들다고 하는데 은혜야 하나님께 거저 받는 것이지만 삶은 내가 힘을 기울여 그 은혜에 부흥하는 순종의 실천이 필요하니 많은 에너지가 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많은 기도가 허공을 맴돌다 흩어지고 또 우리의 절실하고 간절한 기도생활이 힘든 이유는 바로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갈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갈망은 이 시인의 고백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의 갈망이었습니다. 순종하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더 많이 주님의 말씀을 깨달으려고 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사람들은 순종하며 살려고 하는 것이니 있는 사람은 더 많이 없는 사람은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이 여기에 시인이 언급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이 시인은 새벽 전에 부르짖고 그리고 말씀을 바랬습니다. 라고 나옵니다. 남들이 곤히 잠든 새벽시간에 그는 마음 깊이 갈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간구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기도의 제목이 무엇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그 앞에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불신자들이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분투하며 고통 하는 장면이 나와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서 아마 이 시인은 새벽 전에 내가 어떻게 하면 이 환란과 많은 시련 속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처처에 이렇게 많고 주님의 말씀이 멸시당하고 있는 이런 때 내가 어떻게 하면 이런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면서 살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환란과 어려움에서 어떻게 내가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인은 그 앞부분에서 환란과 우환이 내게 미쳤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이 모두 전쟁입니다. 전투적인 삶입니다. 그 속에서 이기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마다 온 힘을 다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시인은 이런 마음의 깊은 갈망이 있었기 때문에 아침까지 기다릴 수 없었고 새벽 전에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의 모든 시작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에서 시작됩니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들이 기도생활을 많이 하고 잘합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도도 다스리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추스르며 그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내가 하나님 앞에 간구하면 얻을 수 있는 은혜의 상태와 그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소외된 자신의 메마른 상태를 잘 비교하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기도할 때 흩어진 마음으로는 기도할 수 없고 모아진 마음으로 해야지만 기도가 잘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은혜 가운데 있다는 것은 마음의 초점이 항상 하나님을 향하고 있어서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 기도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마음을 모으면 마치 햇빛을 모아 불을 붙이는 것같이 그렇게 마음이 모아지면 모아진 그 마음에서 절실한 기도가 흘러나옵니다. 그 쏟아져 나오는 기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지 될지를 명료하게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곤고하고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걱정되는 것은 많은데 마음을 기울여 기도해야지 될 것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초점이 흩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도 분산되어서 그래서 쪼가리로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속에서 우리는 이 마음의 조각들을 모으는 일을 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가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의 문제가 무엇이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우리의 마음을 고정해야지 됩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의 주변의 환경과 여건, 그리고 우리가 처한 여러 가지 문제들로부터 시작되지만 그러나 더듬어 올라가보면 더 깊은 내면의 세계 속에 우리의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많은 환경과 여건들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흩어졌던 우리의 마음은 환경에 대한 염려와 환란과 시련 고통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영혼의 침체, 이런 것들로 인해서 어두워졌고 혼탁했던 우리의 마음이 쪼가리 되었던 것이 하나씩 하나씩 모아지면서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우리에게 있었던 많은 소원들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명료하게 우선순위를 가지고 줄을 서게 되고 그 중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의 마음의 빛을 함께 모을 때 우리는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갈망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육체의 욕심을 접고 이 세상의 즐거움에 취해있는 사람들에게서는 이런 마음의 집중된 상태를 우리들이 기대할 수 없습니다. 금식기도의 놀라운 유익이 무엇입니까? 금식기도의 유익은 단지 하나님 앞에 밥을 굶어 불쌍히 여김을 받는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금식기도의 위대한 힘은 집중에 있습니다. 마음과 영혼이 육체의 일들을 중지하고 육체의 욕망들을 억제하며 한곳을 향해 바라는 것입니다. 이때 이 기도는 놀라운 집중력을 가지게 되고 이것이 바로 기도의 힘입니다. 우리들이 금식을 하게 되면 기운이 없어서 사실 기도도 별로 못합니다. 그렇지만 그때 마음이 온전히 모아져서 몸과 마음은 기운이 넘칠 때 부르짖는 것보다 훨씬 강한 힘을 그 기도 속에 발휘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은 밥을 굶었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이 그렇게 집중되는 그것이 기도의 얼마나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기도의 힘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갈망이 가져다주는 기도의 유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약에 기도가 기차라면 갈망은 기관실에서 석탄을 때서 증기를 끌어올려 기차를 돌리는 기관과 같습니다. 갈망이 없는 아주 아름답고 훌륭한 기도의 제목들은 아무리 나열해도 우리의 영혼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문제들에도 영향을 미쳐서 그것을 바꾸어놓지 못합니다. 그러나 갈망이 있으면 그 갈망은 기도를 움직이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움직여 하나님을 움직이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을 움직여 그 기도하는 바가 이루어지도록 적합하게 살아가는 놀라운 마음의 변화가 내 안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갈망 속에서 내 마음에 달라붙었던 세상의 염려와 근심, 욕망과 이런 찌꺼기들이 아주 힘차게 휘감으면서 이 갈망 속에서 이 쓸모없는 것들이 떨어져나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 날개를 펴는 것입니다.
이 시인이 바로 이 새벽 전에 일어나 이런 기도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기도는 허공을 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비록 환란과 우환이 자기에게 미쳤고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시련과 핍박을 당하고 대적들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도전하는 고통의 시기에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단지 대적들이 물러가고 원수들이 거꾸러뜨려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이런 속에서 하나님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깨닫지 못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둔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깨달음이 없는 사람들의 기도는 허공을 치는 기도와 같고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의 큰 유익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을 굴복시켜 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지 않는 것을 우리의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고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붙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점령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을 때는 절대로지지 않던 사람이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 앞에 굴복되는 것입니다. 이게 기도의 승리입니다. 그래서 기도에는 하나님을 꺾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 꺾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 꺾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있을수록 기도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집중해야지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의 제목을 보이기도 하시고 바꾸기도 하시고 우리의 기도의 힘을 실어주시기도 하고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열렬한 기도 속에 아주 밝은 진리의 빛으로 끊임없이 깨닫는 것입니다. 그때 기도의 뜨거운 열정은 올바른 방향을 찾게 되고 그래서 바른 기찻길로 들어선 기차가 큰 기관의 힘으로 질주하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가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기도의 뜨거운 열정은 항상 두 수레바퀴가 되어서 우리의 영적생활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날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깨달았을 때가 제일 많이 기도하던 때였고 또 우리의 기도생활이 아주 풍부하던 때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도 많았던 때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는 항상 같이 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만약에 기도의 갈망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영향을 받으면서 여러분들이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로 데워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으로 여러분들의 마음이 데워지면 여러분들의 기도는 더욱 하나님 앞에 잘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갈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깨달음에 얻게 된 마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은혜에 대한 절실한 소망을 품게 되고 그 갈망을 꼭 붙들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정말 기도하기를 원하는 기도의 제목들을 보여주실 것이고 여러분들의 마음은 하나가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도의 제목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나라문제로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자녀들, 그리고 교회의 현재와 미래, 하나님의 나라뿐만 아니라 변하지 않는 자신의 성품과 완고함, 그리고 교회와 그리고 복음의 사역과 목자들과 그리고 이 모든 세계와 그리고 우리의 가정들을 위해서 기도의 제목들이 산재해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곳에든지 거기서는 영적인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해야지 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우리의 육체의 게으름을 이기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지 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제 이 9월에 여러분들의 자녀를 위해서 전심으로 기도하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의 자녀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전심으로 기도하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으며 주님의 마음을 따라가는 신앙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고난과 환란이 닥치면 괴로워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한번 주님 앞에 매달리고 다시 하나님께서 자유와 은혜를 주시면 멀리 떨어져나가고 하는 반복적인 실패의 신앙생활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 신앙생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을에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사랑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여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깊이 깨달으면서 은혜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실 때 여러분들의 마음이 은혜를 받으시고 얼음처럼 차가웠던 마음에는 은혜의 온기가 깃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할 오랫동안 잊혀 졌던 기도의 제목들이 생각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