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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할 때
1998.5.15 금요기도회
“내가 곡하고 금식하므로 내 영혼을 경계 하였더니 그것이 도리어 나의 욕이 되었으며,
내가 굵은 베로 내 옷을 삼았더니 내가 저희의 말거리가 되었나이다. 성문에 앉은 자가 나를 말하며
취한 무리가 나를 가져 노래하나이다. 여호와여 열납하시는 때에 나는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아멘.”(시 69:10-13)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지난 다세의 반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 안에서 보호하심을 입게 하시고 오늘도 이처럼 하나님이 특별히 불러주시는 은혜로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하셔서 금요기도회로 하나님 앞에 드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붙들어주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정말 하나님의 귀한 사랑과 은혜를 많이 깨닫고 저희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에 더욱 힘쓰는 그런 삶을 다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시인은 누구보다도 고난의 넘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확실히 평탄한 환경을 통해서 배우기보다는 고난과 위기를 통해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우 것 같습니다. 인간의 영혼이라는 것은 마치 우리 신체와 같이 아주 오묘하게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 같이 간단한 구조로 되어 있지 않잖아요, 인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쉬 그 인간이 정말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 없고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면 우리의 인체를 그렇게 신비하게 만들어 놓으실 수가 없다는 그런 확신이 듭니다. 인간의 신체의 신비는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사실 인간의 영혼은 이 신체보다도 더 오묘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질병과의 싸움도 결국은 인체구조와의 싸움입니다. 인체에 대한 신비를 벗기면 벗길수록 질병의 문제도 드러나잖아요.
최근의 어느 잡지를 보면서 오랫동안 의문을 가졌던 것이 하나 풀렸어요. 그것이 아직도 논쟁이 되고 있지만 암에 걸린 사람을 수술을 하면 암이 번식하는 속도가 떨어집니까, 가속도가 붙습니까, 가속도가 붙잖아요. 우리 모든 사람의 경험 이예요. 최근에 밝혀졌는데 암세포가 발암물질과 항암물질을 동시에 낸다는 거예요. 그 세포를 뜯어 내면은 그 항암물질이 없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세포 수는 적어졌는데 그 세포가 급속하게 발암물질을 확산해서 온몸으로 번진다는 그런 연구결과가 나왔어요. 그렇게 인체 속에 있는 신비가 밝혀지면 밝혀질수록 질병의 설자리가 적어진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혼도 그렇게 섬세하고 아주 오묘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저 대충 생각하고 대충 이럴거다고 생각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결코 우리의 영혼의 건강을 보증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에는 섬세한 성찰이 필요하고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정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런 것들을 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것이 어떤 때인가 하면 고난을 받을 때 역경에 처하고 고난을 받을 때 자기를 잘 들여다보게 만들어 준단 말이예요. 인간은 말이죠 아무리 자기 자신을 들여 볼려구 애를 써도 자기 자신만을 들여다보아서는 인간이 누군가인지 아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어느 명상록을 읽었는데 한없는 많은 명상가들이 인생에 대해서 명상을 하고 인간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그렇게 곰곰이 생각을 하잖아요, 그게 어떤 의미에서 철학의 역사고 사상의 역사가 아닙니까? 그러나 그렇게 깊이 골똘히 인간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생각한 사람치고 올바른 결론에 도달한 사람이 없어요. 이 때문에 결국은 단지 인간이 누구인가 알기위해서 인생을 그 자체를 주목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을 보면 말이죠, 이 시인이 그 금식을 하니까, 사람들에게 그게 화재거리가 되어서 모욕을 당하고 그리고 비참하게 베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니까 그것이 사람들에게 말거리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결국은 뭘 보여 주는가 하면은 이 시인이 고난을 당한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봤단 말이지요. 이렇게 고난이 우리에게 우리자신을 잘 깨닫도록 만들어 주는 놀라운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면 우리 마음이 고난당할 때에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고난을 당할 때 그 동안에 우리가 관심을 갖고 사랑하던 많은 것들이 헛된 것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답니다.
그래서 제레미 테일러 같은 사람은 그 성도들이 질병을 당할 그때야 말로 영혼이 정결하게 되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에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기만 하면 우리의 마음속에서 헛된 것들에 분주하게 매달렸던 모든 세상에 속한 어리석은 사욕과 헛된 욕망과 거짓된 위선들을 벗어버려서 진실한 욕망을 갖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비로서 무엇이 보이기 시작하냐면 인생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누구인지 깨닫는 정직한 성찰이 가능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자기가 정말 누구인지 바로 깨닫기 위해서는 온전히 하나님께 관심께 가져요, 그러면 자기가 누구인지 깨닫게 되는 거예요. 토마스 아켄피스 같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본받아라’ 같은 책에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거 아니에요 인간의 내면에 깃들어지는 죄와 인간 본성 속에 잔재해 있는 모든 그 그리스도의 참된 생명을 가로막는 모든 부패하고 악한 요소들에 대해서 그렇게 놀라운 성찰을 보여주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은 그 자기를 주목 했다라기 보다는 하나님을 주목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데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는 말이죠.
이 시인은 그렇게 고난을 당하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아버지 앞에 간구할 때에 그것이 그의 부끄러움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마 그랬던 것 같아요. 죄를 무릅쓰고 하나님 앞에 베옷을 입고 기도하니까 그렇지 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죄가 많아서 그랬겠지,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면 그렇지 결국은 네가 잘못한게 있으니까 그렇게 고난을 당하지. 그렇게 하나님을 정말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을 찾아가는 그런 모든 모습들이 사람들에게 자신을 정죄받게 하는 재료가 되었고 자신을 멸시하고 모욕받게 하는 그러한 소재가 되었단 말이예요. 그런데도 이 시인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원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모욕거리가 되고 웃음거리가 되는 이때야 말로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를 열납 해 주시는 때구나 라고 하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펄전 목사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아름답고 유창한 기도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없는 탄식과 성도의 통곡을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거예요. 마음이 단지 그냥 고통 자체를 주목하면서 울부짖고서 짐승처럼 고통하는 것을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은 아니지만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울고 하나님 앞에서 흐느끼고 있다면 그 흐느끼는 울음소리는 틀림없이 하나님 나라의 거문고를 움직여서 아름다운 가락으로 하나님의 보좌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많은 고난과 시련을 당하면서도 이 시인은 자기가 그렇게 고난을 당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친 것 같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비방하는 그 상황이야 말로 주님이 자기의 기도를 열납 하시는 때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모욕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당신을 향한 갈망을 멈추지 않은 사람들을 홀로 버려두시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 인생을 지키고 나를 보고 계시다는 사실 하나가 우리에게 조금만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으로부터 너무나 많이 실망한 사람 때문에 너무나 많이 실망하거나 사람 때문에 너무나 많이 아파하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런 고통과 아픔을 통해서 우리 안에 정말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새롭게 하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사랑이나 잠시 있다가 사라져 가는 눈에 보이는 조건들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소망 사라지거나 그 소망이 사라지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의 자세를 흩트러 버리는 일들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각양 좋은 모든 것이 하늘의 아버지께로부터 오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렇게 각양 좋은 것들을 부어주시는 하나님께 손을 벌리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기서 시인도 바로 그때나 열납 하시는 때이고 바로 그렇게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당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이 고정되는 그때에 바로 하나님이 자기를 열납해 주시는 때이기때문에 자기는 기도할 것이라고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무언가 뜻을 세우고 기도 할려구 마음을 먹으면 즉시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어떤 어려움이 생겨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려고 할 때는 몰랐는데 이제 내가 주님 뜻대로 살아야지 하고 결심을 하게 되면은 반드시 그렇게 살지 못하게 어떤 유혹이 우리를 따라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말 우리들이 하나님을 바라는 사람인가 하는 것을 시험하셔서 드러내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다 진실한 마음으로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런 신앙생활을 정말 아름답게 해내가야 합니다.
근데 오늘 하나님 앞에 응답을 기대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겠어요? 기도는 응답을 기대하는 것 아닙니까? 뭐, 언젠가 새벽기도를 나왔는데 문이 잠겼어요. 좀 일찍 나왔죠? 4신가 나왔는데 아무리 문을 열어도 안 열려요 맞는 열쇠가 어딘가 빠졌는지 안 열려요. 아무리 기도가 유창하고 훌륭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기도가 없는 기도는 마치 화려하고 예쁘기는 하지만 자물쇠에 맞지 않는 열쇠와 같은 것입니다. 모든 기도는 응답을 소망하는 응답을 각별히 바라고 믿는 그런 기도이어야 한다 말이죠. 그래서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이제 자기가 그렇게 열납 하시는 때에 기도하리니 그러면서 하나님께로부터 그 응답이 어떻게 올지를 기대를 합니다. 그게 뭐냐면 많은 자비를 통해서 응답이 온다는 것 이것은 자기가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이 이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시고 이 기도를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하는 어린 아이와 같은 신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한 기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지 정말 마음을 다하고 순수한 열정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한다면 그 기도는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때로는 그것을 원하는 그대로 응답해 주실 적도 있고 그것을 바꾸어서 응답해 주실 적도 있지만 그러나 그 기도는 반드시 잊혀 지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 시인은 그 기도가 많은 인자를 인자로 인자하심으로서 다시 말하면 사랑으로써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 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아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아는 사람들은 아는 것만큼 많이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냉랭한 가슴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기도하기가 힘든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인자로서 우리에게 응답해주신다고 하는 것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모두 믿어져야 합니다.
(금요예배설교/1998/5/15)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인 내가 목 놓아 울며 슬피 당신 앞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스러운 일들을 내게 보여주실 거라는 그런 희망과 믿음을 져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이제껏 인도하셨던 모든 기억과 그 모든 추억을 최대한 되짚으면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런 은혜와 그런 긍휼을 베풀어 주실 거라는 믿음을 놓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기도하는 자들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야 말로 우리들이 당신의 긍휼과 자비가 아니면 존재 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하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들은 바로 이처럼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목마른 사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운 손길에 자신의 모든 존재가 달렸다고 믿는 그런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목마른 사람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이들의 기도는 결코 냉랭할 수 없고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기도는 정말 절실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렇게 확신하고 또 그들이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주의 인자와 그리고 진리로 자기를 자기에게 응답해 주실거라고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실 것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인이 많은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이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기의 응답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시인의 마음속에 커다란 감동을 주고 의미를 줄때 그것은 단지 고난에서 피하는 수단이나 아니면 고난을 잠시 잊어버리는 마취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그런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은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은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며 아직 깨닫지 못했던 일들이 어떻게 성취될 것을 우리에게 보여줄 뿐 아니라 낙심하고 쓰러진 사람들을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일으켜주고 교만하고 아버지께 불순종하던 사람들을 겸비하게 만들어서 제왕이라도 그 멸류관을 그리스도 앞에 벗어드리게 하고 방탕한 사람이라 도 옷깃을 여미고 하나님 앞에 순결한 삶을 살도록 다짐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는 모든 영혼들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부르짖는 모든 영혼들에게 이렇게 진리의 말씀을 주셔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들에 대해서 확신을 갖게 만들어주시고 소망가질 것이 하나도 없는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소망을 갖게 만들어 주십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런 소망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두운 길에서 주님을 찬송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단지 주님이 명령하셨다고 해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어둠이지만 그러나 그는 어두움 속에서 남이 보지 못하는 구원의 빛을 보았기 때문에 낙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하나님 찬송하고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계획을 바라보면서 희망과 소망의 들뜨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힘이 이러한 모든 놀라운 마음의 변화가 어디로부터 옵니까? 그것은 결국은 하나님이 말씀을 보내주셔서 그걸 깨닫게 하실 때 그런 일들이 이러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하나님 앞에 정말 어려움을 무릅쓰고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에 처할 때가 바로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때라는 사실을 믿고 아버지 앞에 매달리고 기도하기 힘쓰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우리같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