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짖는 자에게 주시는 응답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33:1-3)
녹취자: 이춘수
I. 본문해설
A. 부르짖는 자에게 주시는 응답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을 그 때에 존재를 능가하는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을 때에 그 사람이 누구인지 잘 드러나느냐 하면 그가 기도하고 있을 때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랑에 마음으로 기도 할 것이며, 그에 성품이 열렬하면 열렬히 기도할 것이고, 그에 마음이가 거룩을 추구하면 거룩한 기도에 제목들로 가슴에 사a묻히게 하며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보다 깊은 기도에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성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깊은 기도에 세계 속으로 이끌어 가고 싶은 사람들은 기도 자체보다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더 많이 탐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더 깊은 기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도 그 자체보다도 기도하는 사람자신을 거룩하기 위한 노력에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아침 성경을 읽으면서,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을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불이 타는 것과 같은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에 음성을 듣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들이 모세에게 말 했습니다. 당신이 혼자 올라가시오 오늘날까지 하나님에 음성을 듣고 죽지 않은 자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우리는 두려우니 당신이 하나님 앞으로 가시고 당신이 하나님에 음성을 듣고 와서 우리에게 전달해 주면 당신이 무엇을 명하든지 우리가 그대로 행하겠습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가면 죽어 버릴 것 같은 하나님 앞으로 자기네들은 가지 않고 모세의 등을 떠미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자기들이 한 번 더 만나면 죽을 것 같았는데 모세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세출에 기도자가 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비결입니다. 그가 기도에 대해서 뛰어나게 탐구한 사람이 아니라, 그는 하나님 자신에 거룩하심을 그 면전 앞에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거룩하심을 대면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도 자체로 준비된 사람이라기보다는 사람 자체가 거룩히 준비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기도에 세계를 지닐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뛰어난 기도에 세계를 지닐 수 있었던 것, 그런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그에 중심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남다른 경험적인 지식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기서도 예레미야에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당신이 어떤 분인지를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이 예레미야는 모든 일이 이미 끝난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외치지 않으면 말씀을 주셨고 거기에 순종해서 하나님에 말씀을 외쳤지만 사람들은 자기 성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하나님에 말씀을 전한다는 이유 때문에 언제 시위대 뜰에 갇혀서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위기에 놓였습니다. 하나님에 역사는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에 하님께서는 당신이 예레미야에게 당신이 어떤분이 신지를 예레미야에게 상기 시키셨습니다. 그것은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더 이상 진전이 될 수 없을 것 같고 이제 모든 상황이 끝났고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것 같은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인생을 살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할 필요를 느낍니다. 우리를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커다란 이유는 우리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대신 기도해도 소용없다고 우리에게 계속 속삭이는 환경을 보고 좌절하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기도해도 이루어지는 것이 없고, 그리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상황의 변화는 없고, 응답까지 가기에는 너무나 멀어 보이는 것 같은 바로 그때에 예레미야에게 당신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상기시켰던 것처럼 우리에게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상기 시키시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일을 이루시는 여호와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희망이 끝난 그 시점에서 자기에 일을 시작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인간이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그 지점이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시는 시점입니다. 믿음에 눈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에 이러한 역사를 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이 계속 펼쳐질 때 그들은 신앙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실 수 있으며 지금도 일을 성취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기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때 기도하였다고 하더라도 더 계속해서 기도할 힘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자신이 일을 성취하는 하나님이라고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예레미야가 놓여 있던 삶에 환경을 볼 때에 하나님이 이 말을 인정할 수 있었겠습니까? 모든 상황은 끝났고 자기에 선포를 믿는 사람도 없고 자신은 이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파 했다는 이유로 그는 시민에 뜰에 갇힌바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일은 끝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자기가 일을 성취하는 하나님, 자기가 약속한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성취하실 그 일을 왜 지금 잠시 멈추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왜 예레미야가 얼마나 헌신적인 삶으로 주님에 음성을 대연하려고 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 예레미야를 버린 자처럼 내버려 두셔서 시민에 뜰에 갇히게 만들어 버리셨습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오늘 성경에 의하면 예레미야로 하여금 부르짖게 하시게 하기 위함 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기도를 들어 주실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자신에 모든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 바쳐서 하나님을 찾는 마음으로 부르짖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이지루지지 않는 기도도 있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고 기도가 이루어 졌을 때에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응답이라고 믿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며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그 기도에 제목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았든 그에 신앙으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왔던 이 예레미야가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극단적인 어려움 속에 놓여 있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이 예레미야가 생명을 걸고 자신에 전 존재를 쏟아 붇는 기도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기도 할 힘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 할 그때에 아직 기도할 힘이 남아있는 때입니다. 하나님에 응답이 없다라고 할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제껏 우리들이 해오던 기도에 한계를 한 번 더 뛰어 넘는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러 오기를 원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치 높이 뛰 선수가 필사의 노력으로 1mm라도 더 뛰어서 종전에 기록을 갱신하려고 몸부림치는 것처럼 우리는 매 순간의 기도에서 이전에 쏟아 부었던 우리에 마음 그 이상에 마음을 것을 붇고 이전에 하나님 매달렸던 그 뜨거운 강도 그 이상에 것을 하나님 앞에 보여드리고자 하는 그 거룩한 결심으로 매 순간에 기도에 임하고 또 우리 자신에 기도에 생활을 현재와 과거를 비교 해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부르짖으라 하는 이 말은 큰소리로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치는 이 외침은 마음에 있는 견딜 수 없는 답답함과 그리고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 희망도 없다고 하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 의존에 신앙에서 비롯된 전 존재적인 외침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외치는 소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에 들리고 외치는 소리는 수많은 사람들에 시선을 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이 외치는 간절한 부르짖음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외침이라면 그는 그 외치는 소리를 통해서 자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외치며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시도록 부르짖을 때에, 주위에 있는 아무 사람도 의식하지 않은 채 그는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높이뛰기 선수가 기록을 갱신하려고 몸부림치는 것처럼 기도에 순도에 있어서, 기도하는 마음에 정결에 있어, 기도하는 열정에 있어서, 응답을 사모하는 갈망에 있어서, 예전에 기록을 갱신하며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 모든 마음을 기울여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으라고 하는 순종하고 있는 동안에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며 낙심하는 대신 자신에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성취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기도 속에서 만나지 못하는 자신에 기도에 무기력함을 인해서 안타까와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며 부르짖는 사람들에 갈망은 마치 피를 쏟아 붓는 것과 같은 그러한 거룩한 핏빛 갈망입니다 그리고 그들에 그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에 놀라운 계획들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부르짖는 자에게 두 가지 축복을 주시는 데 하나는 응답하시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크고 비밀스런 일들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선 첫째로 그렇게 간절히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이 그 토록 사모하고 원하던 일들이 이루어지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모든 성화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이 기도에 세계는 침노하는 사람들에 것으로 귀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말하기를 우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 함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간구하고 구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은 풍부한 기도 속에서 살아갑니다. 자기를 의지하는 자만에 빠진 사람들은 거의 기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짜피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하나님에 도움을 기대하는 대신 자신이 스스로 자기를 도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를 신뢰하며 사는 사람들이 결국은 패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성경은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의지하고 사는 사람에 특징은 교만이고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고 그들은 물리치십니다. 교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도 속에서 늘 차가운 하나님에 거절감을 맛볼 것이며, 그것은 단지 육체의 부르짖음이지 육체가 부르짖을 때에 그의 영혼은 울려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마음을 바쳐서 간구하고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응답하심으로 모든 좋은 것이 오르지 당신을 통해서 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어서, 늘 하나님 한분을 의지하며 사는 것 밖에 소망이 없는 사람들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과위 관계는 돈독해지고 그분에 거룩하심 앞으로 나아가는 친밀함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과의 우리사이에 교재는 더욱 풍성해 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에 인격을 더 깊이 알게 되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크고 위대한 일의 전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 일들이 풍부하게 일어나게 되고 더욱 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체험적인 신앙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응답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기도 속에서 살 때에 남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받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작은 기도를 통해 응답받아 본 사람들은 더 큰 것에 대해서 도전해 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됩니다. 급기야는 자기에 무릎 꿇는 기도가 역사를 움직일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간절히 부르짖을 때에 자기에게 응답해 주시는 것을 늘 경험하며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큰일은 덜 응답해 주시고 작은 일은 쉽게 응답해 주신다고 하는 이상한 신앙에 공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마음에 나에 기도가 합당하고 그 합당한 기도를 하는 나 자신이 하나님에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사는 올바른 기도자라고 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일은 반드시 자신에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 질 것 이라고 하는 그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에 기도를 지렛대로 삼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지렛대가 있고 지렛점이 있으면 커다란 물체를 옮길 수 있는 것처럼 자기의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그 일을 기도라고 하는 지렛대를 통해서 능히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에 응답을 경험하고 사는 사람들이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나 원하는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올바른 것인가 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소원이 하나님에 마음에도 기뿐이 된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껏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 얻기 위해서 힘써던 것과는 비교가 된 않는 열심과 뜨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해 주시도록 부르짖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자들에게 응답해 주시는 것과 함께 또 한 가지 약속해 주셨는데 크고 비밀스러운 일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뭔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였는데 그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이전에는 기도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신앙에 세계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한나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아이 하나를 낳기 위해서 아들 하나를 달라고 하나님에 집에 나아가서 마치 술 취한 여인처럼 간절하게 자기에 억울한 사정을 토로하며 눈물로 하나님 앞에 자기에게 자녀를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그 여자에 마음속에는 다른 고상한 소원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애 못 낳는 여자라고 주위에서 놀리고, 무시를 받고 심지어는 첩에게 우습게 여김을 당하는, 첨에게 없이 여김을 당하는 자신에 처지가 한탄스러웠기 때문에 아들을 하나님 구했습니다. 그에 기도는 고상하고 신령한 제목에 기도가 아니었고, 하나님에 거룩한 영광이 충만하게 열리는 그런 기도도 아니었고, 아기를 달라고 하나님 앞에 매달렸을 때에 이스라엘에 역사를 움직일 사무엘과 같은 아들이 아니라면 차라리 아들 없이 사는 것이 낳겠습니다라는 마음을 가진 여인은 더 더욱 아니었습니다. 바보만 아니라면 그저 사람처럼 생겼으면 그저 아들 하나만 주시면 내 부끄러움을 면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그런 소박한 소원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집착이 기도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약속대로 아이를 주셨습니다. 젓 뗄 때쯤 되었습니다. 아이를 길러 본 분들은 젓 뗄 때쯤 되면 아이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 아이를 이제 그 사랑스러운 아이를 하나님과 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받치려고 하나님에 집으로 다시 올라가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고 서원을 지키려고 그 아이를 거기에 두고 내려오는 한나에 모습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아이를 하나 낳기 위해서 하나님 집에 올라갔지만 간절히 부르짖고 매달리고 그리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동안에 그는 한나 자신이 바뀌는 놀라운 신앙에 경험을 했습니다. 그는 아이를 하나님 앞에 바치기 위해서 하나님께 올라갔던 그 때에 한나는 억울한 마음을 쓰러 안고 아들하나만 달라고 하나님에 집으로 올라 갔던 기도하기 전에 그 한나가 아니었습니다. 왜 냐하면 하나님에 크고 비밀스런 세계를 부르짖는 기도의 세계속에서 보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간절히 자기를 쏟아 부어서 기도하는 기도가 아니면, 이렇게 크고 비밀스러운 하나님에 신앙에 세계에 대해서 전망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선 우리에 기도를 원하십니다. 대충하는 수만 마디에 기도 보다는 마음을 쏟아 붇는 한마디에 기도가 하나님에 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응답이 있고 거기에 비밀스러운 세계에 대한 계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에 경험들을 통해서 우리는 신앙에 거장들로 차츰 자라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