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23)
녹취자: 이경순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종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다섯 달란트 맡은 종 이야기는 거의 설교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은 책망을 받았으니 설교하기 싫고 만만한 게 두 달란트 맡은 사람이라서 늘 이사람 이야기를 하며 은혜를 받습니다. 이 두 달란트를 가지고 이 종은 주인이 없는 사이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래서 두 달란트를 남겼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후에 주인의 평가가 뒤따라옵니다. 세 가지였습니다. 잘 하였도다 이것은 그 종이 그 주인이 없을 때에 한 일이 잘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웰 던 이렇게 나옵니다. 모든 일들이 잘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냥 일하는 것이 모두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 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시간도 유한하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원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몇 년이나 더 이렇게 설교하고 이렇게 주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을까요? 오늘 은퇴하시는 두 분은 모두 40대에 저를 만나셨습니다. 지하실 교회에 교인 70~80명모일 때에 그 때에 교인이 되셨고 그보다 훨씬 적을 때부터 교회에 나오셔서 충성하셨습니다. 그리고 50대 60대가 지나서 이제 70이 되셨습니다. 잠깐 지나갑니다. 저 역시 그때에는 젊었습니다. 보십시오. 이제는 잘 할 수 있는 때가 되었는데도 더 이상 잘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께 받은 기회가 있는 이 날에 우리는 주님의 일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잘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잘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충성스럽다는 칭찬입니다. 이 말씀은 원래 믿을 만 하다라는 뜻입니다. 믿을만하다는 말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열정이 있는 사람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을만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순간의 열정은 있으나 믿을 만하다 신실하다는 것은 긴 기간 동안의 섬김을 통해 입증된 그 충성된 사람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긴 세월동안 변함없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섬겼던 사람 이런 사람들은 충성스럽습니다. 이 두 분이 교회에 계시는 약 20년 내지 23년 사이에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교인이 이 교회에 와서 은혜를 받았고 그중에 많은 사람은 생애 적으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중에 어떤 분들은 사명을 받아서 해외로 다른 도시로 그렇게 옮겨가서 충성스러운 사람들도 있고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그 때는 뜨겁게 주님을 만났지만 그 후에 갈 길을 잃어버린 사람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충성되게 산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 충성은 삶의 자세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사람의 삶의 외면이 아닙니다. 그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불붙어있는 사람이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기에 바친 그 심정의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충성스러운 사람과 똑똑한 사람이 서로 의견이 다를 때 물론 하나님은 옳은 자의 편이시지만 충성된 자의 편에 계십니다. 세상의 이론과 이치로 무장을 했어도 그는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 충성된 사람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미리암과 모세는 논리로 무장하고 모세의 리더십에 대항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내가 선지자들에게 환상으로도 보이고 말 도하였지만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면서 나는 그와 대면하여 말하였노라 이는 그가 나의 온 집에 충성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미리암과 모세는 논리에 있어 뛰어났고 지지자들도 꽤 있었으나 한 가지 면에서는 모세를 따라 올수가 없었습니다. 모세는 자기 자신을 다 드려 아버지의 집에 충성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난 성격으로 때로는 잘못하고 실수도 있었으나 그의 중심은 그리스도와 함께 능력을 받는 것을 애급에서 누리는 모든 죄의 낙보다 좋아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왕국의 낙을 왜 거절했을까요? 왕국의 낙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소명을 따르고 싶은 충성스러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신앙이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나가고 때로는 죽음으로 떠나보내고 혹은 죽음이 아니더라고 멀리 장소적으로 헤어져야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쳐간 사람들 남아있는 사람들 기도할 때 근심이 되는 사람들이 있고 마음깊이 충성스럽게 살았기 때문에 잊혀 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충성스러운 사람이 이렇게 잊혀 지지 않는다면 그 충성을 받으셨던 우리 하나님의 마음에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도록 기억되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고 함께 하실 것이며 그들이 눈을 감아도 그들의 자손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잘 하였도다 충성된 종아 라고 하였지만 그 사이에 착하다는 말이 들어갑니다. 대게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거칩니다. 확신이 넘치는 사람들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줍니다. 그리고 논리와 그리고 비난의 칼을 휘둘러 사람들에게 그런 모든 활동의 과정을 통해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또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정말 충성스러우면서도 착한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착하면서 충성스러운 사람이 쉽지 않은 것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주인은 이 종을 칭찬했습니다. 정말 충성스러울 뿐만 아니라 주인이 보기에 이 사람은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주인 의도대로 맞게끔 일했을 뿐 아니라 그의 성품자체가 착한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일을 많이 하면서 갈수록 예수를 안 닮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일을 안 하고 그냥 신자로서 그냥 교회 뒤에서 눈물을 흘리며 설교를 들을 때에는 예수 닮았던 사람들인데 거친 바닥에서 주의 일을 하다 보니 일은 주의 일을 하고 있지만 사람은 주님의 사람이 아닌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많이 하고 이런 저런 감투를 씁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모두 두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죽고 나면 한 세대가 지나가기 전 매우 매우 특별한 사람이 아닌 한 모두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립니다. 그것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죽은 후에도 주님께 가지고 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어떤 인격으로 주님을 섬겼는가 하는 것입니다.
(찬양)
큰 은혜를 주신 내 예수시니 이전 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만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마지막 일을 모두 끝낸 후에 착한 사람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매일 매일 그리스도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죽으신 그 큰 사랑에 붙들려 살아야 합니다. 그 사랑으로 주님의 일에 충성했던 사람들은 마지막에 사람들은 그 충성을 잊어버리고 역사는 기록해주지 않아도 그들은 외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자신의 인격 안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섬기는 신앙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최고의 복은 우리를 높은 지위, 많은 재물을 가진 사람으로 세우거나 올려놓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복은 예수를 많이 닮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가진 재물 별로 없고 높은 지위는 없으나 그리고 이제는 모든 하나님의 일에서도 물러났으나
(찬양)
너를 보는 이 마다 주 생각 하리
이런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사실 오늘 이 마지막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여기에 보니까 이제 모든 일을 다 마친 종에게 주인이 남기는 마지막 위로의 말 이 있습니다. 그것은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때가 있는 줄을 잘 모릅니다. 그냥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평생 자기가 주님의 갑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예수님 도와드린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사람들은 그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우리는 모든 일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를 기억해야합니다. 주님 앞에 잘하고 충성스러우면서도 착한 인격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은 주님이 특권을 주십니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하고 말입니다. 제가 전도사로 섬기던 교회에서 장로님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는 모두 모여서 장례예배를 드렸습니다. 저와는 오랜 교분을 가지신 분은 아니었고 제가 부교역자로 부임했을 때 장로님은 이미 언어를 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연세가 드셨습니다. 그런데 그분과 함께 교회를 섬겼던 분들은 그분의 충성스러운 모습을 추억했습니다. 겨울에 수도가 얼어서 주일날 교인들이 물을 쓰지 못할까봐 밤새도록 교회를 드나들면서 그 수돗물을 지킨 이야기부터 시작으로 해서 교회를 사랑한 이야기를 쭉 회고할 때 많은 성도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보십시오. 우리의 즐거움은 이제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같이 미약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당신이 이루시는 위대한 일들을 보고 그 열매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을 들어서 당신의 이러한 교회를 영적으로 번영하는데 사용해 주시고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가 잊고 있으나 하나님이 나를 그 역사의 현장에서 사용하셔서 당신의 일을 이루시고 그 열매를 여기까지 보고 있다는 깊은 은혜의 감격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누구에게 주시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게으르게 살았던 사람들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상처를 주고 헤를 입히기만 했던 사람들 아닙니다. 예수를 믿었다고는 하지만 주님의 일을 했다고는 하지만 마지막에는 망가진 인격 고장 난 영혼으로 흩어져 버린 사람들, 그 사람들은 결코 이 즐거움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교회와 더불어 고난을 받고 눈물을 흘리고 교회가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하고 성도들이 고통 받을 때 함께 고통을 나누며 자기를 모두 드렸던 사람 그 사람들만이 노년에 이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우리의 노고를 영원히 기억해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잘 한 것도 사람 때문에 한 것 아니고 충성스러웠던 것도 인간 때문에 충성스러웠던 것 아니고 착한 사람이 된 것도 누구 좋으라고 착한사람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 분이 은퇴하시면서 저에게 한 주간동안 많은 상념을 안겨주셨습니다. 참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그리고 때로는 바람 부는 날도 있고 눈보라치는 때도 있고 장대같은 비가 퍼붓는 때도 있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교회의 일꾼으로 남아서 이렇게 영광스러운 물러남을 경험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이후에 주실 안식이 얼마나 큰지를 미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은퇴하는 두 분은 물론 여기에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이렇게 주님을 충성스럽게 사랑하고 그리고 주님을 공경하므로 잘 하고 충성스럽고 착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즐거움에 평생토록 참여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