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건 기도제목이 있습니까?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몇 백성을 학대하였더라 (대하 16:9-10)
녹취자 : 윤은정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것 같으면은 살면서 정말 우리에게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뼈저리게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이 능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우선 우리들이 우리의 힘에 닺지 않으면은 우리가 그 일을 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이 모든 섬김은 그 자체가 이미 영적인 그런 일들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육신의 지혜, 우리의 육적인 지식, 이런 것들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도 사실이고, 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신령한 신보다는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강한 능력을 절실하게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능력을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도 일반적인 도우심이 있고, 매우 특별한 도우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베푸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인 도우심이 있고, 그리고 큰 도우심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이다’ 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그런 강하고 매우 뚜렷한 도움이 있는 것처럼, 능력도 또한 그러하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보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능력을 받고 싶어 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좀 힘이 있고, 유능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 이런 능력을 주시는가? 오늘 성경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런 힘과 능력을 주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가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탈진하기 직전의 사람들로부터 상담을 받거나, 혹은 전화로 물어오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탈진하고 많은 어려움이 오면은 ‘쉬게 되면은 그 탈진현상이 조금 벗어 날거다.’ 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물론 열심히 일하고,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열심히 살다가 잠시 한번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분명히 필요하고, 또, 우리는 섬기면서 그런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힘, 능력은 우리가 무엇인가 주님을 위해서 살려고 할 때에 우리가 모두 다 소진된 것 같은 그런 상태에 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어떤 한 목표에 고정시키고 거기다 자기를 다 쏟아 붓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가 하나님을 향해 가지고 있는 사랑을 입증하는 길이란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고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도 그렇게 깊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고 하나님이 세워주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계기가 되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변화를 경험하는 그런 일들이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것도 바로 그때문인 것입니다. 정말 사랑의 힘이 아니면은 우리는 주님이 세워주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오늘 뭐라고 얘기하냐하면 ‘여호와께서는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능력을 베푸신다’고 그랬는데, 어떻게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느냐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가? 어떻게 찾게 되는가? 무슨, 상황이 없이는 그렇게 자다가 ‘오늘은 하나님이나 한번 전심으로 찾아볼까? 심심한데?’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찾아지지 않는단 말입니다.
무엇인가 상황이 있어야 됩니다. 자신의 영적인 삶의 신앙의 한계라든지, 아니면, 오늘 이 문맥에서는 아사 임금이 이제 외적을 맞아서 싸우는 장면을 보여주잖아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외세를 의지했단 말입니다. 전쟁이라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지금 백척감두에 있단 말입니다. 곧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는 것 같은 그런 위기에 있다 이것입니다. 그런 깊은 위기에 있을 때에 그런 상황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만드는 것 아니에요? 상황 없이 어떻게 하나님을 전심으로 앙망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락하고 안일한 삶을 산 사람치고 마음이 순결해져서 하나님만을 주목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고난이 있고, 가시밭길을 걸어간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그러면 모두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주목해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냐? 아닙니다. 더 많은 사람들은 고난 때문에 미끄러졌고, 고난 때문에 뒤로 물러갔고, 고난 때문에 마음이 무뎌져서 오히려 마음의 악과 그리고 시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을 경험한다고 해서 모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상황이 있잖아요? 그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야 합니다.
제가 이번에 ‘불꽃 목양에 빠져라’를 쓰면서 몇 장인지 지금 기억이 잘 안 나는데, 5장쯤 보면은 결국 그런 이야기를 아주 몇 군데 걸쳐서 썼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은 자신을 어떠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을 다 붙잡아 바치는 그런 사람들이 당신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은혜를 주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살펴봅시다. 무엇 때문이냐 면은, 우리는 말이죠. 제법 잘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온갖 더러운 불결한 요소들을 우리 안에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뭐냐하면은 자기 속에 이런 불결한 요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의 그 놀라운 능력,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그 크신 힘, 이런 것들을 ‘못 경험하고 살아 간다’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상황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대안이 없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혹은 자신의 어떤 그 영적인 상태나, 도저히 변화되지 않는 어떤 자신의 영혼의 상태나, 혹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이 가져다 주는 한계, 그 안에서 몸부림치도록 이렇게 만들어 주심으로서 그를 정결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이 정결해지는 것은 금식하고, 뭐, 소리 지르고 기도한다고 해서 마음이 정결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한다고 해서 우리 마음이 모두 정결해집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정결한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렇게 고행을 하고, 금식을 하고, 그런다고 해서 자신이 정결해지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정결해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의 시선이 하나님께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서 집중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지만, 그래야지만 우리들이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이 정결해지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정결해지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의 친밀한 교제를 느낄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어지는 큰 은혜와 능력을 우리들이 공급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만을 바라보는데, 그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는 게 말이 쉽지만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그런 삶을 위해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커다란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자신의 개인의 영적인 문제든지, 아니면은 섬김에 있어서, 사역에 있어서, 한계의 상황에 둘러쌓여 있다던지, 그럴때에 혹은, 아니면은 뜻하지 않은 불행과 큰 위기를 만났다던지, 난관을 만났다던지 할 때에, 그 때에 인간은 말이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한도 내에서는 최선의 것을 택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그러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면서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것은 신령한 힘없이도 할 수 없지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도 할 수 있잖아요? 집이 불 나면은 일단 양동이에다 물을 부어가지고 와서 불을 꺼야 되잖아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도 할 수 있지만은, 자기가 어떤 상황에 있는데 거기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도우심에 목메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그 일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 내가 그 어려움을, 변하지 않는 상황, 그러면서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상황, 그러면서도 왠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 것 같은 상황, 이 사이에서 고통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그 모습은, 내가 그 자리에서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싫다고 그러면 그 자리를 피해버리면 되는 것 아니에요? 주님의 일을 맡았다. 그것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그러면 그만두면 될 것이고, 내 자신의 영적인 문제 때문에 고민이 된다. 그러면 생각을 딴 데로 돌려버리면 되잖아요? 어느 인간 때문에 내가 그런 상처와 고통을 받고, 견디도록 강요를 받는다라고 하면, 그 사람을 안보기로 작정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죽일 수야 없지만은 안볼 수는 없잖아요? 또, 본다고 하더라도 관계를 안가질 수 있잖아요.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게 많은데도 주님이 여기에다 두셔서 이 상황을 맞이하게 하였기 때문에, 이 상황의 주인은 나고, 내게 맡겨진 것이고, ‘내가 여기서 피하고 나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아주 나쁜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깊이 깨달으면서 그렇게 여기를 도망치고 나면, ‘하나님께서 매우 슬퍼하실 것이다’ 라는 사실을 알고, 자기도 어찌할 수 없는 그 상황에서 하나님밖에는 나를 도우실 분이 없다고 그러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많은 상황가운데서 여러 가지 대안이 있는데, 그 중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일지 모릅니다. 그 하나님을 계속해서 응시하고, 하나님밖에는 내 인생에서 진정한 소망이 없다고 하는 그 마음을 끊임없이 품게 되면은 그 하나님이 자신에게 크게 부각돼서 옵니다.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런 사람이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마음이 그렇게 된 사람, 하나님밖에는 눈에 뵈는 게 없고, ‘그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면 나는 살고, 안도와 주시면 사명이고 뭐고 다 송두리째 날라 간다. 나는 결국은 도망치는 사람이 될 것이고,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나는 승리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내 모든 성패는 하나님에게 달렸다.’ 그럴 때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위대한 기도는 이 마음의 상태에 안가기 때문에 불꽃같은 위대한 기도는 안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바라거나, 아니면은 하나님이라도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할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삶이 정리가 안되겠냐는 말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문제가 하나님께 달렸는데, 하나님 앞에 잘 보여야 될 거 아니에요? 그 마음 하나에 고정되어 있을 것 아니에요? 온통 거기에 완전히 빠져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내가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하는 그러한 간절한 갈망과, 그런 몸부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사랑해야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그것이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망갈 수 있는 자리인데, 서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몸부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온전하고 순전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결하게 하시고, 그에게 남다른 큰 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들이 그런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바라여야 할 상황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바라고 하나님만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상황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시는데, 그렇게 하나님께서 당신만을 바라고, 당신만을 주목하도록, 그렇게 주시는 상황이 있는데, 거기에서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두 가지 선택을 합니다. 그것은 뭐냐하면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계속 주시는데도 ‘괜찮겠지. 괜찮겠지.’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는데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은혜를 주신 것이 무엇인가를 찾으면서, 그 찾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동기가 잘못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것을 찾으면서 그것 때문에 그래도 ‘하나님이 나를 참 많이 복주셨구나! 그러므로 나는 아직 안전하다.’ 이런 식의 사고를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견디지를 못하고 거기를 도망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마지막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셨는데, 거기서 하나님을 찾는 대신 안일하게 살면서 ‘괜찮다. 괜찮다. 오늘 나는 편안하다. 편안하다. 하나님의 은혜가 참 감사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일한 삶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징벌이 있습니다. 그것을 기억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징벌하십니다. 우리에게 맡겨준 삶의 자리는 그게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도록 우리를 주인으로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거기서 살고, 죽는 각오를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목사가 된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성(끊어짐)
(끊어짐)의 변화되지 않는 여러분 자신의 영혼의 상태가 살고 죽어야 하는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식이 그럴 수가 있고, 혹 교회의 문제가 그럴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행한 일이기는 하지만은 교인들의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살고 죽어야하는 지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뭐냐하면은 ‘실제로 그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런 어떤 문제와 나를 무마시켜 주었는가?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나라가 한참 위기로 치닫는 그때에 저는 여러 사람들에게 그런 간증을 들었습니다.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를 시키시는데 죽도록 시키시는 것입니다. 평소에 그 사람들이 애국자들 이었느냐? 아니에요.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그렇게 나라를 위해서 애통하는 마음으로 몸부림치며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나라를 그냥 추상적으로 생각했었는데, 그때 그 상황에서는 그것이 생명을 걸어야하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없는 것이 있다 라고 하면, 그 사람은 산 사람이 아닙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산 사람이냐 이 얘기입니다. 목숨을 버리도록 하나님을 매달리고 추구해야할 추구점이 없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산 사람들이냐 이 얘기입니다. 그것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떠나갔기 때문에 없는 것입니다. 은혜가 사라지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사라지고 나면 사명도 없는 것입니다. 사명은 무슨 놈의 사명이에요. 내가 살고 보는 게 일이지. 그들의 신은 배요. 그들의 자랑은 자신의 부끄러움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말이죠. 뭐, 장난같이 깔짝깔짝하면서 말이죠. 이것저것 봉사한다고 그러는데, 하나님 앞에는 전부다 가증스러워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를 듣는 여러분 모두에게 살고 죽어야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없는 사람은 산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로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데 그가 하나님을 멀리 떠났기 때문에 자신이 못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느끼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징벌하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잠시 떠나는 경우는 있지만은 그러나 영원히 발견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삶을 살아가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지 않으니까 그의 삶은 불결해지고, 죄를 죽여야 할 절대적인 필요를 느끼지도 못합니다. 여러분들이 절박하고, 응답 못 받고, 해결 못 받고, 하나님의 도움을 안 받으면은 정말 큰일날것 같은 몸부림치는 기도제목이 있으면, 죄는 저절로 죽습니다. 왜?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은 주님이 들어주셔도 그만이고, 안 들어주셔도 그만인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은 기필코 이루어져야 할 일인데, 하나님 앞에 가기만 하면은 하나님이 ‘그래, 내가 네가 기도하는 이 일을 이루어줄 수 있다. 너는 이러한 능력을 받기에 합당하냐?’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런 식의 삶을 살지 않으면 그는 징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 징벌은 꼭 뭐 사람이 죽고 사는 것으로도 나타날 수 있지만, 그렇게 당장 현실적으로 물리적인 것으로 안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하나님께 자신을 모두 바쳐서 성취하기를 원하시는 상황이 있는데도 그 상황에 자신의 생명을 건 삶을 살지 않을 때, 그렇게 살아가는 그것, 그렇게 생명을 걸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그에게 가져다주는 영혼의 파괴적인 능력만을 가지고도 그는 충분히 징벌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그는 산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생명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도움을 받아야 할 제목이 있는가? 없다면,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마땅히 서야 할 자리에 안 서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거기서 도망쳐 버리는 것입니다. 요나처럼 말이죠. 그것은 영적인 감입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전쟁을 하다가, 아니면은 고지를 오르다가, 그냥 피가 맺히도록 오르다가 도저히 힘이 없고 견딜 수가 없어서 주저 않는 것, 그것은 안돼죠. 주저 않으면 안돼잖아요. 돼요? 안돼요? 안돼죠. 그런데, 안돼는 모든 것들을 인간이 안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돼는 데도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오르다가, 오르다가, 견디기 힘들어서 주저 앉는 것과, 고무신 꺼꾸로 신고 도로 내려가 버리는 것하고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싸우고, 싸우고, 싸우다가, 힘이 없어서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전쟁터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과, 자진해서 투항을 해가지고 아군들의 동태를 모두 스파이처럼 정보를 넘겨주어서 자기의 생명이 사는 댓가로 수많은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저희 아버님이 6.25때 전쟁하다가 총에 맞으셨습니다. 후퇴하다가 맞으셨습니다. 뒤에서 맞았습니다. 나라에서 그래도 ‘후퇴하다 맞았으니까 보상금 안준다.’ 그렇게 얘기해 본적 없습니다. 후퇴하다 맞았든, 전쟁을 하다 맞았든, 어쨌든 총에 맞았으니까 국가 유공자로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에 있어서 말이죠. 우리들이 골고루, 골고루, 몸부림치다가 너무 약하면 주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목사도 그럴 때가 있는데, 왜 우리들이 그럴 때가 없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너무 훌륭하게 지도자가 됐다는 모든 목회자들이 공통적으로 간증 속에서 고백하는 것이 뭐냐하면은 죽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두... 수 많은 사람들이 살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뭐냐하면은 죽고 싶은 때가 있어서 주저 앉을 때는 있었지만, 고무신 거꾸로 신고 내려가지는 않았습니다. 거기서 큰 소나기와 같은 고난을 받으면서 주저앉은 사람은 다시 이를 악 물고 일어나서 자기가 원하는 그 길을 걸어갔단 말입니다.
저는 말이죠. 여기에 신학생들도 많이 있는데, 앞으로 신학 할 사람들도 있는데, 여러분, 제 말을 잘 기억하면, 인생을 한 15년 정도는 아마 절약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뭐냐하면은 하나님이 세워주신 그 자리에서 단지 상황이 고통스럽다는 그 이유 때문에 주님이 맡겨주신 목회지를 훌쩍 떠나가 버리는 그런 목회자들을 제가 가끔 봤습니다. 그런데 정말 회복이 없습니다. 그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회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이 만약에 간음하고, 무슨 사기치고, 도둑질하고, 이런 것만 큰 죄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그 자리에서 이탈한 것입니다. 얼마나 큰 죄인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러니까 목표 자체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간구하고 추구하고 몸부림 쳐야할 목표 자체가 사라진 것입니다.
영적인 간음입니다. 그들은 깊은 무력감과, 말하자면은 깊은 한계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기도해요. 불행하게도 기도하기는 하는데, 그 자리가 하나님이 있으라고 하는 그 자리가 아닙니다. 삶의 그 자리로 돌아가야지만 기도도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것 아니에요? 그러면,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으면 되잖아요? 그런데 잘 기억해요. 하나님앞에 자기를 세워주신 그 자리에서 도망친 사람이, 용서를 받아서 하나님과의 그 관계를 회복하고 그 놀라운 감격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원래 세워두신 그 자리에서 고난을 받으면서 견디는 것 보다도 더 쓰라린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못하고 도망간 사람이 저걸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일 평생 그렇게 폐류자로서 빙빙 돌다가 인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목회자를 하면서도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물론 편애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하나님께서 그에게 중요한 뜻이 계시다’ 이렇게 생각되는 사람들을 불러서 똑바로 하라고 야단을 칩니다. 이유는 무엇때문이냐 면은 하나님은 내 마음을 아십니다. 나는 그 사람 이용해서 교회에 숫자나 좀 불켜 보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은 저 사람이 저런 식으로 하나님을 섬겨서는 미래가 없다. 저 사람이 교회의 직분자가 되든지, 아니면은 저 사람이 무슨 목회자가 되든지, 아니면은 뭐가 되든지 간에, 저렇게 해서는 하나님 못 만난다. 왜? 섬김은 있고, 봉사는 있고, 인간적인 성실함도 있는데, 문제는 한 번도 남김없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 부은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데로 살겠다고 인생을 유턴했지만, 그러나, 유턴만 했을 뿐이지, 유턴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죄의 길을 향해서 불순종의 길을 걸어갈 때는 얼마나 열심히 걸어갔는지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시속 한 130키로 놓고 그냥 돌진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순간에 말씀을 놓고 ‘이게 아니구나!’ 하고 유턴을 했어요. 유턴하는데, 유턴 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그 다음에 가지를 않는 것입니다. 유턴만 했을 뿐이지 가지를 않는 것입니다. 옛날에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죄를 향해서 그렇게 달음박질하고, 그 달음박질로 멈추고, 그래서 일단 유턴을 했으면, 다시 가속을 해가지고 옛날에 불순종하며 하나님을 떠나서 죄 가운데서 돌진을 하던 그 용기와 기백을 가지고, 이번에는 의와 하나님을 위해서 한번 부딪혀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을 가지고 돌진을 해야지만 그것이 진정한 유턴인데, 휙 달려오다가 유턴을 해가지고 딱 섰습니다. 안갑니다. 간다고 하더라도 천천히, 아니면은 유턴한 다음에 자꾸 돌아다닙니다. 갈지자로 돌아답니다. 세월은 흘러가도 유턴을 했는데, 바뀐 것이 없습니다. 유턴한 것이 자랑거리가 되려면은 그 다음에 유턴이 필요하리만치 그렇게 전 속력을 달려오던 그 속력으로 유턴한 후에 이번에는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야 할 것 아니에요? 그래야지 그 인생이 유턴한 보람이 있잖아요? 유턴만 해놓고 갈지자로 왔다 갔다하고 시동 끄고 주저앉아서 시트 뒤로 재끼고 낮잠이나 자고 있을 바에야, 한거나, 안 한거나, 하나님 보기에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불순종의 길을 버리는 것은 단지 불순종하는 길을 안 가려고 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 길을 가는 것이 우리의 순종하는 삶을 가로막는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가 그 가는 것을 버리고 순종하는 삶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 앞에 열심을 다해서 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를 드려도 항상 반짝할 뿐이고, 기도를 해서 은혜를 받아도 어디까지나 그것은 잠깐 스쳐가는 감동일 뿐이지, 다시 삶이 늘어났던 고무줄이 줄어드는 것처럼, 원위치 되는 것처럼, 영적인 상황도 다시 원위치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특별히 나에게만 은혜를 안 베푸시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두 번 범죄하는 것입니다. 한번 하고, 그다음에는 자신의 악한 모든 상황에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함으로서 ‘두 번 하나님 앞에 죄짓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온 땅을 살피시면서 이런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내가 내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것 하나 이외에 보이지 않아서 그래서, 내 사랑하는 독자 예수 그리스도라도 이 세상에 보내어 저희를 위해 못 박았고 이제는 이번에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이제 나를 위해서, 내가 세워준 자리에서 그 소명을 생명과도 기꺼이 바꿀 용의를 가지고 그렇게 몸부림치면서 나만을 주목하면서 사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입니다. 두루두루 찾으십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이 있는 나라는 소망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 의해서 역사가 새로 써져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으십니까?
고등학교 때는 도서관에서 밥도 같이 먹고, 공부도 같이 하는, 뭐 별로 공부에는 관심이 없는 친구였지만은 지금은 나이가 많이 먹었어요. 마흔 댓 됬습니다. 맨날, 자기는 탤런트라고... 맨날, ‘뭐, 나오냐?’고, ‘KBS에 나 나왔다’고, 아무리 봐도 없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탈 쓰고 나오는데, 발이 자기 발이래요. 평생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 역사의 무대에서, 인생의 무대에서 그런 사람...대모대가 되가지고 막 몰려가다가 ‘다르르르’하고 총 쏘면 ‘으악’ 그러고 죽어가는 그 한번 나오고 사라지는 수 많은 엑스트라같은 인생을 사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면은, 살고 죽어서 죽음과 삶을 걸고 하나님 앞에 성취해야할 주님이 주신 목표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능하고 잘난 사람들만을 주인공으로 사용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얼마든지 우리와 같이 미천하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사용하셔서 당신의 역사를 바꾸실 수 있고, 교회를 바꿔놓으실 수 있고, 변하지 않는 우리 가족들을 바꿔놓으실 수 있고, 또, 변하지 않는 자기 자신을 바꿔놓으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생명을 걸고 이루어야할 그런 간절한 목표, 이것이,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세워놓으셨기 때문에, ‘내가 하다가, 하다가 여기에 주저 앉기는 하지만, 그러나 고무신 거꾸로 신고 주님을 배신하고 뒤로 물러갈 수는 없다.’ 생각하면서 울어도 거기서 울고, 몸부림쳐도 거기서 몸부림치고, 위로를 받아도 거기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자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자기의 맡겨주신 그 부르심 자체가 그에게 원한이 될 것처럼, 원한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매어달리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오늘도 하나님은 찾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특별히 영혼들을 책임 맡았다고 한다면, 우리는 더더욱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깨뜨리시고, 또, 많은 영혼들을 깨뜨리십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낳아서 가슴을 풀어 헤쳐서 그래서 젖을 먹입니다. 그러나 말이죠. 영혼을 돌보는 것은 가슴을 찢어서 먹이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지 않는데, 무슨 생명이 나오느냐 이거죠. 정말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하나님나라에서 귀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내가 간절히 찾는데, 완전하신 하나님이 나보다도 훨씬 교회를 사랑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계신 그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을 얼마나 간절히 찾으시겠느냐...
저는 가끔 꼭 내가 목회하는 교회가 아니라도 어느 집회나, 혹은 어디 가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 흐느끼는 마음으로 자기를 찢는, 자기의 살을 찢어서 말하자면은 떡을 떼어서 물 위에 던진다고 했는데, 자기의 살을 찢어서 그렇게 목회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적마다 그렇게 눈물이 날 수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자기에게 주신 그 자리를 얼마나 존귀하게 여겼으면, 저런 삶을 살까? 내가 가진 것은 없지만은 진짜 다 주고 싶어요. 살도 안 섞이고, 피도 안 섞이고, 통성명도 많이 안했지만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다 주고 오고 싶어요. 하물며 하나님은 어떤 마음을 느끼시겠는가?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살고 죽는 그 무엇인가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지, 그것이 나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죽어도, 그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사명이 성취될 수 있다면은 내가 그렇게 나를 죽여서라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명령을 성취하고 싶다.’ 라고 하는 그런 간절한 몸부림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커다란 그 교제와 능력의 축복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바로 그런 삶을 살았잖아요? 견딜 수 없는 압박과 핍박, 고난을 받으면서 그렇게 살았는데도 그, 자기 몸이 부스러질 것 같은 압박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냐 하면은, 그렇게 박해를 받고, 정신적인 압박, 육체적인 압박에 시달리다가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위로가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어느 날 에스겔서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말씀하시니라’를 다 셔봤습니다. 오십 몇 번이 나오더라구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나님 앞에 고난이 넘치는 생애를 살았지만은 그렇게 우리가 보기에는 불가능할 정도로 꺽이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이 자기를 다 바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을 다 하나님 앞에 바치고, 우리 자신을 무가치한 것으로 치고 나면,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은 너무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1%라도 아끼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체로 당신을 바라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신다고 말하지 않고,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