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새벽예배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대하7:1)
녹취자: 김 은 영
성전이 완공되고 나서 솔로몬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었고 두 번째는 그 성전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6장에서 전체가 솔로몬이 완공된 성전에서 그 성전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올리는 기도로 이뤄졌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로 성전을 받쳤습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그 교회당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게 해주셨습니다. 성경의 역사에서도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곳에 가득하게 되는 일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 선지자가 소명을 받을 때 성전의 쇠락가운데 서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엎드린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했을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백성들이 시내산에서 이런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했습니다. 성경의 이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은 사실이나 그 긴 성경의 역사에서 이런 일들이 항상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모두 엎드려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었고 솔로몬 그 자신도 새삼 그 하나님의 영광을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우신 분이신지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 은혜를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영광과 놀라운 영광의 경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솔로몬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다 교회생활을 한다고 왔다갔다 하지만 그러나 진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들과 그리고 그냥 자기의 열심에 의해, 혹은 체면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하고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진리가 무엇인지를 생애적으로 깊이 경험한 사람하고는 다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 가득 찰 때에 사람들은 겸손해지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궁금한 것은 이런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집에 가득하게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이런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가득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 있었는데 하늘로부터 불이 내렸습니다. 이 불은 의심할여지 없는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불은 이미 이스라엘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하시던 하나님이 당신의 살아계시던 현존을 불기둥으로 보여주시기도 했고 또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이 강림하실 때의 그 임재를 불기둥으로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 아브라함에게 당신의 언약의 신실하심을 입증하시기 위해서 불로 강림하셔서 아브라함이 바친 제물을 태우시기도 하셨습니다. 갈멜산에서 선지자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함께 대결할 때 임하였던 불도 이런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 이것이 오늘 날 교회에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정말 이런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임재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 앞에 깊이 엎드려져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깊이 깨뜨려지는 그런 역사가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가르쳐도 이런 강력한 은혜의 불, 하나님의 현재적인 임재의 불이 함께 역사할 때 그 사람이 굴복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의 불, 임재의 영광,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바쁘게 움직이고 많이 애쓰나 하나님의 이런 임재의 불이 없기에 열매가 너무 초라하고 그리고 우리들이 많이 애쓰지만 하나님 앞에 거두는 것이 너무 적습니다. 그러나 물론 이런 강력한 은혜의 영광, 영적인 부흥 없이도 하나님을 늘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하나님께서 이런 강력한 은혜의 영광을 우리에게 비쳐주시기만 한다면 얼마나 복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지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궁금한 것은 어떻게 해서 이런 은혜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가 이 자리에 임하였을까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가지 요소를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는 제물이 드려졌습니다. 번제물이 드려지고 그 위에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가 내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나타난 이유였습니다. 물론 헌신이 있는 모든 곳에 이런 강력한 하나님의 현존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 철저히 죽고자하는 희생이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보여 주십니다.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았던 사람에게 이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하시지 않으시고 자기를 다 드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려 철저히 복종하고 헌신하며 살게 하셨던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영광과 은혜와 능력이 나타나게끔 만들어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많이 헌신하여야 합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살고자 하면 그러면 반드시 그는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삽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불쌍한 사람들은 이세상과 하나님나라 사이에 끼어서 그래서 갈팡질팡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막상 애굽을 떠나기는 했고 가야할 목적지도 있었지만 불신앙으로 인해 돌아갈 수도 없고 목표로 향하여 나아갈 수도 없는 그러한 처지에 있었던 이스라엘사람들과 같은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런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제일로 불쌍한 그리스도인은 가난하고 시련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인생의 목표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벌어먹고 그저 매일 매일 살아갑니다. 그런 것이 어떻게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들은 목표를 위한 수단입니다. 정말 사명이라고 하는 것은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가지고 있는 그 일을 성취하기 위해 내가 부름을 받았다라고 하는 마음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그 일을 위해서 헌신하게 됩니다. 온 햇빛을 모아서 렌즈에 모아서 종이에 비출 때 종이를 태우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모두 모아서 하나의 우리의 사명을 향해 쏟아 부을 때 그 때에 이런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지적해야 할 것은 이때 드려진 제물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 때 드려진 제물들은 순전하고 깨끗한 제물들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 앞에 제대로 바쳐질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순전한 제물이 하나님 앞에 바쳐졌듯이 동일하게 우리도 다만 주님을 위해서 대체로 헌신한 거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오늘날 목회를 하는 우리 목사 같은 사람들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물론 게으른 분들도 있겠지만 웬만큼 생각이 있으면 정말 게으를 수가 없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기전에는 일을 너무 열심히 했기 때문에 쓰러질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거의 없습니다. 목회를 하면서는 서너번 그런 것을 경험했습니다. 참 이 한계를 넘어서면 사람들이 요절을 하는구나하는 경험을 말입니다. 게으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게으르지 않습니다. 근데 문제는 뭐냐하면 무조건 헌신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순결해야 합니다. 자신이 온전해지는 가운데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의 영광을 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헌신할 뿐만 아니라 순전해져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돌아보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많이 헌신할 수 있을까 동시에 이 헌신이 인간을 향해 바치는 헌신이 아니라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 바치는 헌신이 되어야합니다. 깨끗하고 순결해야 합니다. 사실은 하나님 앞에 팔을 걷어 부치고 힘을 다해서 헌신하는 일보다 더 쉬운 것은 그 헌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순결한 헌신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드리는 이 제사위에 임재의 강력한 불을 내리십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 속에 어떤 탐욕도 없고 진짜 나를 다 태워서라도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고 주님만이 높임을 받으시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입니다. 언제 이런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나타났느냐하면 솔로몬이 기도를 마쳤을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깐 마음이 정결하지 않으니깐 우리가 이런 임재의 영광을 구하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마음을 모아서 부르짖고 기도할 때에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임재의 영광을 구할 수 있을 만큼 정결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깐 순전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기도할 수 있지만 마음을 바쳐서 기도할 때에 그의 마음이 순전하여집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의 영광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일을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바람을 몰듯이 바람이 불면 많은 메뚜기 떼들이 한 곳으로 몰려 쓸리듯이 모입니다. 그렇듯이 그런 자극들을 주어서 휘몰아가야지만 메뚜기 떼처럼 움직이면서 기도하는 것 말고, 하나님의 그 위대한 역사는 그렇게 휘모는데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자신을 보고 또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교회를 보는 것입니다. 보면서 지금은 우리에게 정말 마음을 드리는 기도가 필요하구나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기도하지 않는다고 할찌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나의 기도구나라고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제일 먼저 그렇게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구하며 하나님 앞에 간구하며 기도하며 매달리다 보면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이고 이런 큰 하나님의 큰 임재의 영광을 구하기에는 자신의 삶, 내면이 쓰레기와 같은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때 이 온 땅에 불이 내리기 전에 먼저 내 마음에 하나님의 불이 임해서 나의 주위를 태우고 내 마음에 있는 탐욕과 불결을 태워달라는 참회의 기도가 함께 나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의 불씨가 되는 것입니다. 큰 장작들을 가지고 불을 사를 때에도 처음부터 큰 장작을 키 높이만큼 쌓아놓고 성냥불을 붙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엔 잦은 가지를 올려놓고 나뭇잎을 올려놓고 불을 붙이고 그 위에 좀 더 굵은 가지를 올려놓고 하다가 나중에는 커다란 통나무를 올려놓아도 능히 불에 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딱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인데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헌신할 때에 얼마나 헌신할 수 있겠습니까. 짧은 인생을 하나님앞에 헌신하는 건데 우리 인간이 태어나서 이 세상에서 하고 죽을 수 있는 일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의 불이, 임재의 영광이 우리의 섬김과 사역 속에서 나타나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욕심을 따라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이렇게 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인생을 산 보람이 없습니다. 마지막에 롯이 불의 심판을 받는 가운데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는 천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 불에 타는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아마 그렇게 인생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바쳤던 사람들, 이 땅에서 하나님이 더 많은 영광을 받으시고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 온 땅위에 이런 영광이 가득하기 위해 순결하게 자신을 희생하고 간절한 기도 속에서 자신을 바쳤던 사람들에게는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이 얼마나 복된 날이겠습니까! 모든 수고와 근심과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는 날일 것입니다. 우리가 한번밖에 없는 인생에서 그렇게 살아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