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과연합기도회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요 21:15)
녹취자: 김경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제자들은 특별히 신앙이 없었다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랐기 때문에 그저 다시 그들은 고기 잡는 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이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수님이 세 번째나 나타난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 의미를 몰랐습니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남 경험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경험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모른다면 그리고 그 경험이 우리에게 실제로 없다면 우리도 역시 주님을 믿지만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명료한 생각을 갖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신앙의 깊이는 그 사람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또 그분의 십자가의 고난과 의미를 깨닫게 되었느냐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의미를 간직하고 어떤 인생을 살아가느냐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다시 고기 잡는 사람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마침 누가복음 5장에서 고기를 잡다가 밤새도록 실패했을 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베드로를 무릎 꿇게 만드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똑같이 제자들에게 실패했을 때 다시 그들로 하여금 고기를 잡을 수 있게 만들어주셨고 배 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지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그 굶주린 제자들을 손수 떡과 물고기를 구워서 제자들에게 먹이셨습니다. 그리고는 별 대화가 없는 가운데 예수님이 조반을 다 먹은 후에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 베드로 개인에게만 주는 말씀이라기보다는 모든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었고 또 베드로를 영적으로 회복시켜주시고 지도력을 다시 되찾게 하심으로써 사도행전 1장에서 왜 사도 베드로가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는지를 설명해주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조반을 먹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당신을 버리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마음에는 여전히 이 사람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반을 먹은 후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서 요한의 아들 시몬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 가정에서 부르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이름보다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더 불렸기 때문에 반석이라는 뜻의 그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야’라고 부르는 대신에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셨습니다. 그 옛날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 고기나 잡으면서 삶의 특별한 목표가 없이 살던 때에 베드로의 그 이름을 예수님이 다시 부르신 것입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것은 사도 베드로였지만 그가 오늘 예수님께 부름을 받을 때에 예수님은 그런 위대해 사도가 아니라 그 당시에 그 흔한 이름, 이름 없는 가문에서 태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흔해빠진 이름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불러주심으로써 마치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누구인지 알라.’라고 말씀하신 것 같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구원받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고, 교회에서 섬기게 해주시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높여주시니까 여러분은 지금의 여러분에게 익숙해져있지만 원래 우리 모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는 상관없는 이방인이었고, 외인이었고, 그리고 예수를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사람들이었고, 자기를 주인 삼으며 자기의 인생을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사람들을 예수님이 부르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하시고 존귀한 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원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살았을 우리의 삶 주님을 만나고 살아가는 삶 이 둘 사이에 무한한 격차를 발견하면서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루에 두 번씩 주님의 이 은혜에 감사할 수 있다면 그러면 아마 미끄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망갔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느냐? 죽는 데까지 나를 따라오겠다고 하더니 왜 나를 버렸느냐?’ 예수님이 그렇게 묻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버리려고 마음을 작정하셨다면 아마 그렇게 물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다시 사용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현재를 물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집을 팔아서 교회에 내놓고, 혈압이 올라가도록 주의 일을 하는 것 좋습니다. 문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맨 처음 열린 교회에 인생의 벼랑 끝에서 찾아와서 아는 사람도 없고 이 황량한 세상에서 누구를 의지하고 살꼬? 이 낯선 교회에서 내가 누구와 낯을 붙이고 살까? 하는 마음으로 와서 주님을 만나던 때를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때에 얼마나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을 사랑했는지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지금도 그때를 잊어버리지 말고 겸손하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주님의 은혜라!’ 고백하고 주님을 찾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