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새벽 예배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2:19~21)
녹취자: 오정민
어제 제가 말세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말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면서부터 말세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말세라고 하는 것도 그 기니까 특별히 말세의 맨 마지막 부분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말세의 지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죠. 여기에 나오는 해가 빛을 잃고 달이 피가 되고 하는 이 이야기들은 모든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말세의 지말 그 중에서도 맨 끝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나타날 현상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해가 빛을 잃고 달이 피가 된다고 하는 말이 꼭 문자를 가르키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런 우주적인 하나님의 심판이 우주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예요. 예를 들자면은 구약 성경 시대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의 치하에서 출애굽할 때 그 때에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이 어두움으로 가득차는 사건이 있었죠. 그 뿐만 아니죠. 장자가 모두 죽임을 당하고 그 전에는 나일을 비롯해서 모든 물이 피로 변하고 짐승들이 악질과 독종에 걸리는 일들이 일어나고 이런 일련의 재앙들이 계속 되었잖아요. 이런 모든 재앙들이 결국은 당시 애굽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들을 모두 타파하는 나일강 그 자체를 신성시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그 나일강보다 더 큰이가 계시다는 사실을 온 나일강을 피로 만들므로써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거죠 늘 자신들이 섬기던 신들에게 제사를 드려야 할 텐데 온 제사드릴 짐슴들을 악질과 독종에 걸리게 함으로 말미암아 제사 할 수 없게 만드심으로 제사를 받는 자신들의 신보다 더 크신 이가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주셨죠. 그들이 섬기고 있는 최고의 신은 레신이였습니다. 태양신 이였어요. 해가 빛을 잃게 함으로 어두움이 가득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태양신을 최고로 떠 받드는 그들의 신앙을 하나님께서 무력화 시켜버리셨죠. 그리고 천하의 참 하나님은 여호와 밖에 계시지 않다라고 하는 사실을 일깨워 주신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의 사건이예요. 그런 우주적 사건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베푸실 이 심판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심판이며 그리고 최고의 권위를 가진 심판이며 온 우주를 갱신시키시는 하나님의 재 창조와 관련된 사건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보여주기 위해서 그래서 이렇게 말세의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행하실 심판 속에 해가 빛을 잃고 달이 피같이 변하고 하는 이런 수사를 사용하시는 것이예요. 그 때에 그 심판이 엄중하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 엄중하고 무서운 심판이 바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당하여야 할 심판이다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 마지막 심판의 날에 마지막 그 심판의 날에 우리 모든 산 사람과 죽어 있는 모든 사람이 다시 부활해서 그 심판 아래 서게 된다. 하는 거죠. 이렇게 될 때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이루리도다. 그런 피할 수 없는 우주적인 심판의 때가 임할 텐데 그 때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지금이 그 심판이 임할 지금이 바로 그 앞으로 임할 그 심판을 준비해야할 시기다. 그러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고 구원을 얻어야 될 때이다 강조하는 거죠. 그런데 이 사도행전 전체를 보면서 서신서에서도 마찬가지고 보면서 우리들이 임박한 임박한 종말의 전말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사도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임박한 종말에 사로잡힌 것을 만나게 되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하죠. 사도들은 예수님이 곧 오실 꺼라고 생각했다. 이거죠. 그런데 실지적으로 살아보니까 안 오시더라. 그래서 할 수 없이 예수님이 곧 오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끝날에 오신다고 새로운 해석을 덧부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신약 성경에서 만나고 있는 종말론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그러나 사실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은 이거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강하게 신자를 사로잡을 때 그 때의 이 신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그 때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신적인 사실에 대해서 친근감을 갖게 되는 거죠. 그것이 이렇게 임박한 예수 그리스도의 날로 묘사가 된 것이지 그런 일단의 신학자들이 얘기 한 것처럼 그렇게 그들이 예수님이 금방 오시리라고 몇 년 안에 오시리라고 믿었는데 나타나시지 않으시니까 그 것을 실망하고 연기하고 그런 결과가 아니라고 하는 거죠. 증명을 해보이겠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깊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지 못 하면은 그냥 매일매일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매일매일 살아가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깊이 변화를 받게 되면은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냐하면은 분명히 이천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거든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그것이 마치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것처럼 느끼고 예수님을 마치 자기가 십자가에 못 박은 것처럼 아파하고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나잖아요. 동시에 하나님의 그런 은혜를 깊이 받고 나면 아직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오랫동안 살아갈 텐데 종말이 바로 눈앞에 임박한 것처럼 죽음을 인식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 그게 결국은 그리스도를 만난 체험이 가져다 주는 효과예요. 그런 것들을 확대해서 생각하면은 아주 간단하다 이거죠. 그런 것 때문에 이 사람들이 임박한 종말을 느끼면서 종말론적인 기대 속에서 살게 되는 거죠. 그래서 신약성경 전체에서 중요한 주제 중에 하나가 뭐냐면 종말론이예요. 또 종말이 가까이 왔기 때문에 신자는 이세상이 다라고 생각하고 살면 안되고 종말론적인 의식속에서 살아야되요. 종말에 대한 기대속에서 소망을 가지고 살고 종말에 대한 두려움속에서 긴장하며 살고 그 종말속에서 맛보게될 기쁨을 소망하면서 즐겁게 살고 그런 낙관을 가지고 살고 이것이 신약성경이 신자에게 가르치는 삶이예요. 누구도 그런 것 없이는 그 종말의 빛으로 지금 살아가는 우리에 인생을 빛 비추지 아니하고는 종말의 빛으로 우리 자신의 인생을 빛 비추지 아니하고는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는 거죠. 종말의 빛으로 우리 자신을 비추지 아니하고는 누구도 지혜로와 질수 없는 것이다. 그런 속에서 살아가요. 그때에 더더욱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불러야할 이유가 분명해지게 되는 거죠. 마지막으로 여기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 그런데 그 앞에 누구든지 라는 말이 나오죠. 그죠 그래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 누구든지 라고 하는 것은 이미 이제 이 복음이 이러한 구원의 복음이 이스라엘을 뛰어 넘어서 온 세상에 선포될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암시에요. 지금 성령이 강림함으로 말미암아 이제 이런 시대가 이르게 되었다는 거예요. 이제 성령님이 강림함으로 말미암아 이제 이스라엘 안에 갇힌 복음이 아니라 모든 사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위한 복음이 된 거죠. 여기서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 라고 하는 의미는 단순히 그분의 이름을 외친다 라고 하는 의미가 아니라 그러한 두려운 날들에 대한 전망을 정확히 깨닫고 자신이 그런 두려운 날에 어떠한 자비와 긍휼도 힘입지 못하고 심판 앞에 놓여있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한 가운데 외부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면서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외치는 것 그것이 여기에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 라고 하는 의미에요. 이거는 믿는다 라고 하는 의미가 포함된 것이죠. 당연히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으로 그 분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구원해 주신다 라는 것이죠. 우리는 바로 이런 예언이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이는 선택이고 말할 수 없는 기쁨이예요. 그래서 우리의 죄 가운데 가장 커다란 죄 중에 하나는 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상실하고 사는 것이예요. 그래서 이 구원에 은혜에 대한 감사를 상실하지 않고 그 감격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화 되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주님을 기쁘게 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이런 사람들이 되어야하는 것이예요. 기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