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교구 지역별 심방예배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 5:8-9)
녹취자: 이경순
최근에 물리학계에서 커다란 혁명적인 연구가 이루어졌어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번에 노벨상과도 관련이 있는 것인데 전에는 어두우면 어두운가보다 그랬어요. 그런데 그 어두우면 우주는 다 어둡거든요. 캄캄하거든요. 그 우주 바깥으로 나오면 아주 캄캄한데 대기권 바깥으로 나오면 완전히 캄캄한 흑암인데 놀랍게 그 어두움에 암흑물질 이란 것이 있는데 그 자체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발견이 되었어요. 이상한게 우리 보이는 세계 속에서는 물질과 물질이 서로를 잡아 댕겨서 이렇게 응집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어두움 속에서는 놀랍게 서로를 밀어내는 힘이 있데요. 그 청력에 의해서 우주가 팽창해 가는데 여태 까지는 우주가 점점 더 천천히 팽창해 간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엑셀을 밟은 것처럼 우주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팽창해 나가는데 그 에너지를 어두움에서 발견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사에서는 이미 얼마 전에 어두움의 에너지를 이용해서 빛보다 빠르게 갈수 있는 우주선을 만들 수도 있다는 가설을 내 놓았어요.우리는 과학자들의 모든 이야기를 다 믿을 수 없고 또 판단도 잘 안서지만 저는 그러한 과학적인 발견들을 접하면서 '야 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참 놀라운 진리이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아요.
왜냐하면 이미 오랫동안 설교를 들으셨던 분들은 이미 배웠겠지만, 사실 우리의 죄악이다 영적인 어둠이다, 이런 것들은 사실 실체가 아니거든요. 아까 전깃불을 모두 끄니까 캄캄했는데 불을 탁 키기만 하면 어둠은 한 번에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아우구스투스가 그런 말을 했어요. 상처는 실체가 아니다 우리가 몸에 상처가 나서 병들었을 때 약을 바르면 온전해 지면서 병이 나으면 상처가 없어지지 않느냐. 만약에 상처가 실체라면 약을 발라서 치료를 하면 이게 사라지지 말고 어디엔가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야 되는데 그런 것은 아니지 않느냐 ,실체도 아닌데 그러면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는 어쩜 이렇게 어두움이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그렇죠.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무시무시할 정도로 어두움의 파괴력이 굉장해요. 그래서 어떤 때는 이 나라가 정말 변할까. 하는 것을 의심을 갖게 만들 정도로 인간의 악과 부패성들이 하늘을 찌르고 그리고 그 부패성 속에서 우리들이 살아간단 말 이예요. 그 힘을 생각해 보면 '아, 하고 무릎을 치게 되는 거지요. 우리가 옛날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오늘 성경이 뭐라고 했냐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었더니, 그냥 어둡기만 한계 아니라 그 어두움 속에서 강한 자기사랑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내 고집대로 내 생각을 하나님 위에 놓고 내 사랑을 하나님 사랑보다 더 높이 놓고, 그리고 나 원하는 대로 살았거든요.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다 싫어해요. 왜 싫어하는지 아세요? 자기기 하는 것을 못하게 하시니까. 두 번째는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을 하라고 하시니까 하나님 싫어해요. 그런 엄청난 어둠속에서 힘을 발휘하면서 우리들이 살았던 거예요. 그런데 그 어두움 속에는 큰 힘이 있어서 그 힘을 가지고 하나님 거스르고 불순종하고 죄를 짓고 이러고 사는 거예요. 그래서 좋았던 게 뭐가 있어요? 캄캄한 어두움 속에 살면서 그러면서 고통을 받고 그랬던 것이 우리의 일생이잖아요. 우리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니까 빛이신 그분이 우리의 마음속에 '확' 하고 들어오니까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를 움켜잡았던 죄들이 '확' 물러가고 어두움에서 벗어나고 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잖아요. 그러니까 어두움은 어둠끼리 모여 있을 때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되요. 일단 빛이 확 떨어지면 그것은 아주 놀라울 정도로 힘이 없어져요.
고등학교 때 밤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여객선을 타고 가다가 중간까지 덕적도에서 인천으로 나오는 절반까지 오다가 폭풍주의보가 내렸는데 떠날 때부터 조짐이 안 좋았어요. 그런데 배는 저쪽에서 떠나지 말아라. 그런 거만 없으면 무조건 가야되는 거예요. 중간에 왔는데 무전이 왔어요. 빨리 돌아오라고, 우리생각에는 빨리 그냥 가면 될 것 같은데 배를 돌리더라고요. 전부다 죽는 줄 알았어요, 구명조끼 입고 제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는데 데굴데굴 구르면서 사람들이 다 토하는데 그런 사이에 날은 캄캄해졌어요.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아마 한 5시간 정도 걸린 거 같아요. 정상적으로 5시간도 더 걸린 거 같았어요. 들어갔는데 완전 캄캄해요. 섬이 거기는 전기도 없고 성당에서 발전기를 돌려서 시간제로만 마을에 형광등 하나씩만 공급을 해주었거든요. 캄캄해요, 더군다나 폭풍까지 불었으니까. 그런데 3개도 아니고 2개도 아니고 등대가 딱 하나가 비치는 거예요. 불빛 보이니까 저게 등대구나 하고 아는 거죠 그거 하나를 보고 배가 피하는 거예요. 그 불빛의 고마움을 그때 처음 느꼈어요, 그 불빛이 없었으면 아마 못갔을거예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고 하냐면, 이제는 너희가 주안에서 빛이라 그게 바로 우리의 정체성 이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잘 들어보세요. 예수를 믿고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살면, 많은 경우에 100%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은 경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안도 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우리의 자녀들도 복을 주시고 우리의 사업도 인도하셔서 하나님이 선하게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셔요. 그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그것은 우리 신앙의 결과이어야지 그 자체가 우리의 신앙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우리들이 자녀를 기른다. 그런데 자녀를 잘 길러서 믿음으로 길러도 얘네들이 효도하겠지요 그래서 신발도 사주고, 편안하게 우리의 노후를 모시겠죠.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녀를 기른 결과이지 기어 다니는 아이를 보고 이것을 투자하는 기분으로 그렇게 해가지고 자녀양육이 되겠어요? 우리 신앙도 똑같은 거예요. 하나님 그렇게 복주시지만 우리는 예수 안에서 다른 목표를 가진 사람이예요. 그게 뭐냐면 변화되지 않은 교인은 예수 믿고 이 세상에서 행복해 지려고 하지만 정말 변화된 교인은 예수 안에서 거룩해지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날 같이 이렇게 어두움이 가득한 시대에 살기 때문에 오히려 오늘날 같은 때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회가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조금만 올바르게 살면 그러면 사람들이 깊이 감동을 받는 거예요.
오늘 아침에 잡지사 두 군데서 취재를 나왔어요. 인터뷰를 하고 왔는데 두 번째 온 출판사는 두란 노에서 취재를 나왔는데 무슨 일로 나왔느냐고 했더니 요새 교회 재정 때문에 사고가 많이 나서 신문에 나왔는데 열린 교회가 모범적이라고 해서 취재를 나왔다고 두 시간 반을 인터뷰했어요. 모든 게 당연한 거 같아도 상황이 너무 나쁘면 당연하게 하는가. 그 자체가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오늘날 같은 때에는 조금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면 이 세상 사람들에게 빛이 되는 거예요.
오늘날 젊은 애들이 워낙 개념이 없으니까 누구하나 선물 주었을 때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 숙여 인사만 해도 정말 대단한 젊은이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아 정말 인사를 할 줄 아는구나. 죄송합니다. 하는 이야기를 해도 ' 아 이놈은 별종이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의 큰 기회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들이 이런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가 하는가 생각해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그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하나님 자녀 삼아 주셨어요. 믿음으로 살게 만들어 주셨어요. 너무 감사하잖아요. 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그 속에서 소명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되요. 그 소명이 뭐냐면 목사가 되고 아니면 무슨 선교사가 되고 하는 것만이 소명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부름 받은 그 직업 ,가정, 그 현장에서 만약에 예수님이 거기에 계셨더라면 살아가셨을 것이라고 기대가 되는 삶, 그거를 살아가는 거지요. 사람들은 군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수 잘 믿는 정치가보고 감동을 받는 게 아니라 예수 잘 믿는 졸병보고 은혜를 받는 거예요. 군인이 저렇게 예수를 믿으면서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는구나. 그러면서 감동을 받는 거예요. 장사하는 사람은 군인이나 특수부대원들이 예수 잘 믿는 거 보고 감동을 받는 게 아니라 거래처에서 늘 만나는 사람이 정말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을 받는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세워주신 그 자리에서 우리는 빛으로 나타내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예요. 빛으로 나타나는 사람이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그랬어요.
오늘 아침에 성경을 묵상하다 보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이사야서를 인용한 구절이 나와요.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고, 원래 원문에 보면 연기 나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고, 그것도 불은 불이야, 그런데 불은 아주 희미하고 연기만 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만 쏟아지게 하는 거예요. 그것도 빛은 빛이 예요. 그런데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빛은 뭐냐면 아주 순수하게 예수님을 보여주는 그 빛을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순 없지만 그 빛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차를 몰고 붕 하고 길을 달려요. 갈림길이 딱 나왔는데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를 때 딱 손바닥만 표지판하나가 우리의 갈 길을 가르쳐 줄때 우리는 한없는 고마움을 느끼지요. 우리의 인생이 그러한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많이 베풀고 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하나님이 누구고, 사람이 누구고, 그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살면서 인간이 얼마나 행복해 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 그것이 제일 큰 사 명이예요. 촛불의 사명은 빛이 환하게 발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그 빛 된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세 가지로 듣고 있는데 첫째는 착한 것이 예요. 착하다는 게 뭐냐면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 애들이 누가 그랬데요. 애기를 돌보는데 애들 엄마들이 아이들 교육시킬 때 그러잖아요. 애가 밥을 먹을 때 막 장난치고 못된 짓 하면 엄마가 그러잖아요.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 누구? 그러잖아요. 그러면 애들이 가책을 받잖아요, 아 우리 엄마는 밥 먹을 때 장난하는 거 싫어하는구나!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누구' 그래도 대답을 안하다가 "아빠" 그러더래요.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원하는 대로 말을 잘 들을 때 머리를 쓰담으면서 뭐라그래요?'착하다'그러잖아요, 착하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그냥 물러터지고 무슨 뼈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물컹물컹해서 누구에게나 씹히는 사람이다 무골호인이다 그런뜻이 아니예요. 착하다는 것은 하나님 마음에 꼭 맞게 생각하고 살아가는것, 그것이 바로 빛으로 나타나는 삶이예요. 그것이 바로 착한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되요, 착하다고 해서 단호함이 없다든가 결단력이 없다든가 그런것은 아니예요. 착한데 하나님의 뜻안에서 착한거예요. 누구나 사람은 생각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내뜻은 이거다 라고 보여주실 때 자기의 뜻을 아파도 내려놓고 아멘 하고 그 뜻에 자기를 바칠수 있는 사람, 훌륭한 사람이예요.
그래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해요 수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사람이 좋으면서도 꺽이지 않는 사람보다는 거칠고 좀 나빠 보이면서도 하나님 앞에 잘 꺽이고 깨어지는 사람이 시간이 흐르면 그 사람이 훨씬 더 좋은 사람으로 변화되요. 그래서 착하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사람 하나님이 이게 내 뜻이다 라고 말하면 자기 뜻을 꺾을 수 있는 사람 그때는 무지하게 아프지요. 그런데 그렇게 꺾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점점 더 빛된 삶으로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두 번째는 의로움이예요. 의롭게 산사는 것은 왜 사람들이 올바르게 못 사냐면, 올바르게 살되 희생을 안하고 올바르게 살려고 해요.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해요. 우리들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올바르게 살려고 애를 쓰면 반드시 희생해야 하는 것이 있는 거죠. 희생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엊그제 교역자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전도를 갔는데 차를 세워놨다가 차를 빼다가 앞차를 살짝 긁은 거예요. 사실은 나쁜 사람도 있거든요 요만큼 다쳤는데 덤터기를 왕창 씌우는 사람도 있잖아요.
긁은 거예요 그러면 교역자에게 전화를 해서 그 전날 인가 그런 설교를 한번 했잖아요. 정직해야 된다고 그것을 거기다가 그 설교 안 들었으면 안 적었을지도 모르는데 떨리는 마음으로 적으려고 보니까 이게 수리비가 얼마가 나올지 너무 궁금한 거예요.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서 얼마가 라오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왜 전화를 해서 물어보냐 조금 나오면 물어주고 많이 나오면 도망갈래. 어차피 정직하게 할건데 거기다가 왔다가 부딪혔는데 아무리 찾아도 차주인 이 누군지 못 찾겠다고 전화하면 물어준다고 붙여놓고 왔데요. 그게 말하자면 올바른 삶이예요. 자기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올바른 삶이예요.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우리들이 깊이 반성해야 되는 게 희생 없이 살려고 하는 거 그러니까 잘못하기도 하거니와 잘못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이러한 부패성 때문에 기독교가 그렇게 욕을 먹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올바르게 살아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그것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다. 거기에는 희생을 안하는 한도 안에서 바르게 한다고 하는 것은 위선 이예요. 어그러진 세상에서 빛들로 나타나 살기위해서는 항상 고통이 있고 괴로움이 있는 법이지요. 우리들이 그런 점에서 아주 올바른 삶을 살아가야 되요. 이웃 속에서도 책임을 지고 그리고 타협하지 않고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될 때 그때 우리들이 빛된 삶을 살게 되는 거지요.
마지막에 나오는 게 뭐냐면 진실함이라고 그러는데 원래 이것은 참됨 이예요. '참이라는 게 무슨뜻이겠어요. 예를 들면 기름은 다 기름인데 참 기름이다 아니면 진짜들기름 뭐 이렇게도 써 붙였더라구요,얼마나 가짜가 많으면 그렇겠어요. 최근에 얼마전에 새롭게 안 사실인데 슈퍼에 가서 참기를 살 때 고소한 것을 사면 안된다고 그러네요. 고소한걸. 사면 잘 읽어보면 고소한 향을 많이 집어넣은 거래요. 그래서 그 기름색갈까지 전부다 참기름처럼 똑 같이 내고 사실은 그 기름이 참기름이 전혀 아닌데 참기름 향이 나게 만든 거예요. 그래서 싸고 그것을 음식점에서 쫙 뿌리면 고소하다는 거예요 , 그런데 사실은 아니라는 거지요. 그걸 우리들이 진짜 참기름이라고 안부르거든요. 그럼 여기서 참되다는 것은 무엇이냐면 이런 거죠. 솔직한 것을 참되다고 말하진 않아요. 나 너 죽이고 돈을 뺏으려고 그러거든 그거 우리들이 참되다고 그러지 않아요. 솔직해도, 아내하고 만나서 나 당신 전혀 사랑하지 않거든 그런 것 가지고 우리들이 참되다고 말하지 않아요. 참되다고 하는 것은 뭐냐면 진리라는 기준이 있고 진리에 부합하려는 정신의 경향을 진실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은 진실의 가치가 사라졌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아주 굉장히 중요한 가치로 생각을 해요. 그래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많은 재물을 가지고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 보다는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을 돈이 많은 사람을 보면 돈에 위력을 느끼게 해줄 수는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돈의 위력이 굉장하잖아요. 높은 지위에서 권력을 휘 두른다 그러면 권력의 위대함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는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그런 게 아니예요.그런게 아니라 참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우리 이런 적 없어요? 저는 그런 적이 가끔 있는데 비록 저 사람이 나보다 지위는 높지 않고 그리고 물질도 나보다 많지 않지만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사람, 그런 사람 있잖아요. 그런 것들은 어디에서 나오는 힘이냐 하며는 참됨에서 나오는 거예요. 비록 저 사람이 나보다 가진 것 없고 지위가 높지 않지만 그러나 함부로 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사람 속에 있는 것 그게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진실한 힘이 예요. 그런 참된 사람이 되어야 된다. 그 참된 사람이 되기까지 하나님은 우리들을 끊임없이 말씀과 성령의 은혜로 연단하십니다.
아까 누가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부패하기 때문에 오늘은 주님을 사랑하고 눈물을 흘려도 몇 달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다 구태의연하고 자신에게 감동이 되지 않을 때가 있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수시로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시련도 오고 환란도 일어나요. 아까 우리 현재 건강하고 돈 많이 벌 때 보다 이렇게 불편하고 하나님 의지하고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합니다. 하고 고백하는 것도 결국 참됨에서 나오는 평안 이예요. 그게 바로 우리가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된 삶을 살아간다라고하는 의미예요. 그러면 이거죠, 그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참되고 의롭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착하게 그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면 손해 볼때도 많고 고통을 당할 때도 많잖아요, 그런데 놀랍게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의 사명을 느끼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게 주님을 위해서 살다가 교회에 가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그래서 희생했던 사람을 주님이 상주시고 상처를 받았던 사람을 위로해 주시고 연약했던 사람을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하고 지켜주시는 큰 힘과 은혜를 경험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세요. 만일 여러분들이 환경이 잘 되어서 서울로 평촌으로 오시면 좋겠어요. 그래서 새벽기도도 오시고 교회 봉사도 하시고 전도도 하시고 하면 얼마나 감사하겠어요. 그렇지만 여기 계시는 동안 토요일 날 교구청소 안 나와도 돼요 그런데 그거 묻지 않게 중요한 게 지금 매일매일 살아가는 이 삶속에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나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서 그래서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을 통해서 그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고 그 빛된 삶을 살아가는 거죠. 그래서 단 한마디' 너 어떻게 그렇게 인간이 살아가느냐'고 손가락질 하지 않아도 우리가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 속에서 살아가면 저 사람은 깊은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고 하나님께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살 때 일주일을 그렇게 살고 돌아와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이 뜨거운 감격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아 그렇구나. 나에게 주시는 소명이 이것이구나, 그러면서 살아갈 때 하나님이 매일 매일 새로운 은혜와 힘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때는 시련도 있고 고난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이세상사람들이 모르는 기쁨이 있어요. 하나님 우리를 꽉 붙들어 주셔서 어디에 가든지 이기게 하시고 함께 하시고 함께하시고, 고통을 당할 때도 우리의 눈에 눈물 씻겨주시고 하나님과 함께 해주시니 그래서 우리는 쓰러지지 않고 어려움을 당하지만 넘어지지 않고 주님과 함께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거지요.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누룩처럼 이렇게 많이 흩어진 이곳에서 예수 믿게 만들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게 하는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보십시오. 교회에 가까이 사는 사람은 은혜가 떨어져도 관성에 의해서 교회에 나와요. 가까운 교회가 그 교회밖에 없고 다른 교회 가려니까, 인사하고 심방 받고 머리가 아픈 거야 그래서 다니던 곳 계속 다니는 거예요. 그런데 먼데 계시는 분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끊어지면 교회 못 나와요. 다 원거리에 있는 분들은 받은 증거 있어야지 나와 그래서 먼데서 나오는 거예요, 또 뭐냐면 교회가면 교회 가까운데 사는 사람은 항상 자신만만하지만 먼데 사는 사람들은 항상 죄송해요, 뭐도 못하고 뭐도 못하고, 뭐도 못하고 그러니까 와서 겸손해 지는 거예요.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많이 사랑하시구요. 그리고 주님 꼭 붙들고 의지하라고 하나님이 불러주셨습니다. 열렬히 기도하셔서 그래서 교회 가까이 오시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더 큰 은혜를 받으면서 믿음 생활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