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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새벽예배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4:32)
녹취자: 박은경
큰 핍박이 있고 나서 그 핍박을 회중들에게 고했더니 그 핍박받는 어려움이 교회가 온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매달려서 간절히 기도하고 났더니 그 다음에 성령이 강력하게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핍박을 받은 것이 오히려 교회를 더 강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는 마치 불이 일어날 때 물을 끼얹는 것과 같습니다. 보통 평범하고 작은 불은 물을 끼얹으면 불이 꺼지지만 기름이 섞여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에는 물을 끼얹으면 오히려 기름들이 이동하면서 불길이 더 강렬하게 치솟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으로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핍박의 찬물을 끼얹음으로 오히려 교회가 더 강하고 한마음이 된 능력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역사에서 하나님이 교회를 강하게 하신 비결입니다.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적당한 박해, 혹은 박해가 아니더라도 적절한 어려움의 십자가, 고통이 있는 시련등이 적절한 기회에, 적절하게 신자에게 주어질 때에 그 신앙이 썩지 않고 오히려 그 고난과 박해를 통해서 더 힘 있는 신앙으로 타오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교회를 강하게 하시는 비결은 하나님이 마냥 그 교회를 보호하고, 우리 개인을 보호해서 어려움을 만나지 않는 것만이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방법은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는 순교의 피를 머금으면서 교회가 창성하도록 능력있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그런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그 은혜를 통해서 성장하는 것을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끝나고, 그 다음에 교회 안에서 일어난 어떤 변화를 여기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물건을 통용하고, 누구도 자기의 물건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교회가 성령이 임하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니까 사람들이 자기의 재산을 다 팔아서 사도들의 발아래 갖다 두었습니다. 이렇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녀가 되고 나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이 세상에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나니까 박해를 견디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그 곳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있으니까 그것을 힘입어 살기 위해서 모인 것입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지시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했고,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두었고 교회에 바쳤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커다란 공동생활의 집단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역사상 많은 교회, 많은 사회가 시도해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큰 역사를 경험하자 자기 마음속에 있는 이기심이 사라진 것이 핵심입니다. 자기만을 위하고 자기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그 모든 것이 이 속에서 사라지고 나니까 그 다음에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람들을 겸비하게 용납하고 물건들을 나누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변화를 가져다 준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교회가 이기심을 타파하고 사랑으로 가득 찬 공동체가 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모습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셨습니다. 지금 비록 이렇게 똑같은 공동생활을 반복하는 것이 교회에게 주어진 임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렇게 자기사랑이 타파되고 이기심이 깨뜨려져서 지체들을 돌보고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에게 공급해서 모든 사람들이 핍절함이 없이 살아가도록 만드는 신앙적인 이상은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결국 자기 사랑을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사랑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모든 근본적인 원인이 빗나간 자기사랑에 있기 때문이고 모든 우리의 정욕과 죄는 자기 방식대로 살고자 하는 경향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 모든 자기사랑의 중심에 정욕이 있고 탐욕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자랑과 자기사랑, 이것을 십자가에 못 박고 탐욕과 자기중심적인 모든 만족과 욕구를 십자가에 못 박는 절제가 없이는 누구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훌륭한 제자로서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탐욕에 눈이 어둡고 무절제에 의해 생각이 가려져서 우리 주님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제하고 자기 자신을 통제하되 미래의 자기 자신을 위해 절제하는 것 또한 자기사랑입니다.
구두쇠들이 하나님만나기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절제하고 아끼고 낭비를 하지 않지만 그것이 미래의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그것 역시 변형된 탐욕입니다. 절제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통제하되 미래의 자기를 위한 것으로 변형된 탐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살면서 우리들이 미래를 위해서 저축하고 나의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서 연금을 드는 것은 그렇게 불신앙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도를 넘어설 때 문제가 됩니다. 오히려 자신을 절제하고 통제하는 이런 모든 결과들이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데 보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재물보다는 주님을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깨뜨려진 자신을 이웃사랑에 적용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핍박을 통해 성령의 은혜가 가득 넘치니까 이런 삶이 가능해졌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