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새벽예배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입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행 4:33-35)
녹취자: 이시내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자기의 집 그리고 자기의 땅 있는 것들을 팔아서 모두 가져와서 제자들의 발앞에 두었습니다. 사실 제자들이 이 일을 조직적으로 시켰을리는 없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자원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하게 된 것 이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하는것이거든요? 확실히 다음과 같은 이유는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서 그래서 자기의 집이나 이런 모든 것을 팔아서 가져온 것 도 아니었고 또 이렇게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서 바치면 하나님께 더 큰 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는 어떤 신앙적인 투기심으로 하나님 앞에 바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전 재산을 모두 팔아서 그것을 사도들 앞에 가져왔습니다. 사실 전 재산이었고 그렇게 바쳤으니까 나머지 재산은 뭐 이루 말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절대로 어떤 기획된 것이라기보다는 사람이 은혜를 받고나니까 자기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바칠 마음이 생겨난 것 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이 우리를 위해서 다시 살아나셨다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들이 경험하게 된 가치관의 변동입니다.
이 집이나 땅 이모든 재산들은 예전에 자기가 의탁했던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바쳤다라고 하는 이야기는 무엇이냐 하면 이제는 내가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알고 나니까 이제 나는 이 세상에 있는 길과 가치를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예전처럼 이 세상의 길과 가치를 따라서 이 세상에 있는 재산을 자원으로 해서 살아가던 옛 삶을 포기합니다. 이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도움으로 그분의 은혜를 힘입어서 사는 사람입니다. 하는 고백이 거기에 묻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고백이 거기에 묻어있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입니다. 그게 바로 이 사람들이 자기의 전 재산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던 신앙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받으면 모두 자기의 집과 자기의 땅을 팔아서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될 것이냐 하는 것은 적용의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 정신은 언제나 변함이 없이 똑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물질을 드리는 것 그것도 많은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에서 보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 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다가 보니까 무슨 날이 되면 사람들이 선물을 하지 않습니까? 사실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분수에 맞게끔 절제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하거나 그럴 때도 보면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나 존경 그리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선물을 하게 되지 않습니까? 마음은 그런것이 많은데 선물을 좋은 것을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내가 누구를 향해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의 소중한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집과 땅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 입니다. 그것은 결국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예전에 내가 살았던 삶과 길 그리고 그 가치를 버립니다 라는 고백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왜? 옛날의 길과 가치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행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행복을 확보하는 가장 커다란 자원이 이 땅에 있는 자원이었습니다. 근데 그거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마게도냐 교회나 빌립보 교회가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을 돕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헌금을 한 것을 보면서 그렇게 기뻐했던 이유가 돈 때문이 아니라 그 헌금 속에 우리는 주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들로써 우리는 이 세상의 길과 가치를 버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이 세상에 있는 물질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라는 고백이 그 속에 있었기 때문이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사도가 그렇게 기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런 똑같은 일들이 초기 기독교 시대에 일어났던 것 입니다. 이건 마치 무엇을 생각나게 만들어주게 하냐면은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집에 계실 때 오셔서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 오셔서 향유를 부었던 여인이 생각나게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자기생애 전체에 모아놓은 그 향유를 식사하시는 예수님에게 부어버렸던 그 여인의 섬김을 두고 말씀하시기를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전하여져 기념이 되리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복음이 전파되고 자기에게 임한 죄의 용서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큰 사랑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달은 사람들은 그 사람이 누구이든지 간에 이처럼 예전에 자기를 살게 했던 이 세상의 길과 가치 그것을 성취하게 만들었던 이 땅의 있는 자원 이것을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드릴 수 있는 마음들이 생겨났던것입니다. 그래서 진실한 회개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참된 마음의 돌이킴은 예전에는 내가 이 세상이 있는 자원을 의지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내가 의지할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라는 고백이 있어야합니다. 요한 웨슬레가 설교하기를 나는 당신들의 지갑이 회개하지 않는 한 나는 당신들의 회개를 믿지 않겠습니다. 라고 이야기 한 것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지는 않지만 그러나 물질을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사는 것은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커다란 원인이 되는 것 입니다. 부자인 젊은 관원이 예수님께 와서 영생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영생, 하나님의 참된 생명을 얻기 위해서 고뇌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그것만 해도 있기 굉장히 있기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젊은 사람인 동시에 부자였고 그리고 관원이었습니다. 젊고 돈도 많고 이 세상에 권력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영생에 대해서 고민했으니까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러면서 예수님께 말씀드리니까 네가 십계명을 행하여야 하겠다. 하시니까 희색이 돌았습니다. 어렸을 때 부터 다 지켰습니다. 마지막에 예수님이 네가 한 가지 영생을 얻기에는 부족한 것이 있다. 그것이 뭡니까?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팔아서 나눠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사람한테만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영생을 위해 고민하고 있지만 그러나 너는 네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오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이 바로 물질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예수님께서 지시하신것입니다. 그 사람이 만약에 이 세상에서 취미생활 하는 즐거움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면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 입니다. 너는 바로 그 취미생활을 버리고 너는 나를 따르라 고 말입니다. 우리 교회에 전화공사도 하고 그러던 사람이 있었는데 몇 번을 전도를 했는데 교회를 못나옵니다. 교회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데 못나옵니다. 왜 그러냐 했더니 조기 축구회를 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을 예수님이 만났다면 뭐라고 하셨겠습니까? 그것을 버리라고 하셨을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것을 경험했습니다.
신앙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데서 나오는 것 입니다. 나는 이 세상의 길과 가치를 이제 버립니다. 이제 나는 이 세상에 있는 자원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 나는 그리스도를 의지하면서 그분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고백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면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권능있게 증거한 것 입니다. 부활을 증거했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사실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사실과 함께 그 앞뒤를 전한 것 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시고 하나님은 그분을 통해서 우리가 당신에게로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 된다라고 하는 종말을 바라보는 성도의 삶을 ,언약백성의 삶을 설교했을 때에 그 때에 강력하고 놀라운 변화가 그들에게 임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얼마를 이 세상에서 살든지 우리는 이 세상의 길과 가치를 버리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 아니요 오직 내안에 주님이 사신 것입니다.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우리를 남겨두신 것은 이제는 이 세상에 있는 자원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시기 위해서 남겨두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고 다시 사시고 부활하셨으니 이제 내가 그 분만을 자랑하고 그분만을 의지하고 살리라 하는 새로운 인생의 고백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자원은 이 땅에 있는 자원만이 아니라 예수부활의 증거를 통해서 전파되는 그 놀라운 하늘의 자원, 그 은혜의 자원을 힘입어서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핍박을 두려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모든 일들이 강력한 핍박을 받은 이후에 바로 교회 안에 충만하게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