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새벽설교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이튿날 마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문으로 돌아가니라
저희가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갈리기아 사람인줄 알고
가로되 너를 송사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사 23:31-35)
녹취자: 김광휘
신자가 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위기를 만나는 것 같아도 생명은 하나님 손에 달려있습니다. 때로는 더 많이 살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는 수 도 있고, 때로는 곧 죽을 것 같고 아무희망이 없는 것 같은데 하나님이 형언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지켜주셔서 살게 하시는 수가 있습니다.
오늘 바울이 그런 후자에 속하는 경우를 만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제 바울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결사대까지 조직하고 이렇게 해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데, 인간적으로 보면 사실은 아무 희망이 없고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에 간섭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렇게 못하게끔 깊이 개입하셔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보호해주십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 이 사람이 안드바드리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제 유대인들하고는 정식으로 법정에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의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다 의도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도바울은 신실한 신앙심이 있는 사람인과 동시에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서는 자기가 이렇게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기가 믿는 이 예수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전파할 수가 없었던 것을 이 사람이 안 것입니다.
또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데리고 전도를 한 이야기와, 민간 속에서 에피소드로 퍼져나가지만 이렇게 엄청난 재판 속으로 들어가서 그래서 법정에서 이야기들이 공방이 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이것은 정상적인 뉴스의 채널을 타고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것입니다.
당시의 이 로마는 로마하면 인류역사에 미친 것이 많지만 커다란 두 개가 법과 도로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나라를 통치하려니 법을 잘 정리 했어야 합니다. 현대의 법들이 로마의 법들을 많이 참고합니다. 그런데 법 이론들이 로마의 법 이론을 참고합니다. 그것과 함께 잘 되어있는 것이 도로입니다.
도로를 그 사람들이 잘 만들었던 이유는 두 가지 인데 우선 첫 째는 군사적인 목적이었습니다. 군사적인 목적은 그 넓은 제국을 통치하려니까 반란이 일어나면 문제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 넓은 땅덩어리에 어디에서 반란이 일어났는지도 알 수 없고, 나지 않으면 그것들을 순식간에 제압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동력이 필수입니다. 지방에 군사들을 많이 두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불안 하므로 입니다. 그 호적들이 그것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 문제가 되므로, 군대들을 중앙에서 전쟁이 일어나거나 아니면 반란이 일어나면 제압합니다. 그래서 길을 이용해서 질풍과 같이 달려갑니다.
또 하나는 경제적인 이유입니다. 세금하나는 칼같이 걷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어마어마한 제국을 통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금문제는 칼 같이 처리를 하였습니다. 거두어 들인 세금을 모두다 돈으로 내는 것은 아니므로 그 많은 물건들, 거둬들인 물건들 이런 것들을 도로를 통해서 운송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도로가 발달되었습니다.
그렇게 도로를 만들어 놓고 나면 그담에 누가 가냐면은 군인, 세금걷는 사람들이 가고, 그리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도로를 통해서 유통하면서 그러면서 거기에 기가막인 소식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그 도로를 타고 번져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누구냐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이제 그 길을 따라서 새롭게 개척된 상업루트를 따라 다니면서 그리고 시장이나 이런 곳을 이용하여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이런 빅뉴스가 있게 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제 이 길을 타고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이 노린 것입니다. 만약에 그때 나라가 로마시대가 아니었더라면 그렇게 빠른 시간에 순식간에 복음이 전파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빠르고 좋은 도로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립되지 않고 여기저기에 예수그리스도의 소식이 전파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파될 때에도 한군데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예루살렘 밖으로 사도제자들이 흩어지고 흩어진 곳에서 다시 사람들이 선교를 나갔던 것입니다. 여기저기에서 복음의 소식이 도로망처럼 펼쳐진 도로를 타고 유통되면서 만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그리스도예수의 복음이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노리고 그리고 사도바울이 사실 재판거리도 되지 않는 것인데, 재판하는 사람이 재판할 필요도 없는 것인데도 사도바울이 의도적으로 이 제판을 끌고 이제 여기 벨릭스까지 오게 된 것이고, 안드바드리에 와서 벨릭스 앞에 서게 되었고, 총독 벨리스를 지나서 그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거기서도 불복하여, 황제까지 가서 제판을 받아야 겠다 면서 드디어 로마에 입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식의 선교전략을 사도바울이 짰습니다. 이러면서 죽을 고비를 만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이제 회계해야할 일이 있으니깐, 하나님께서 사람들 보기에는 다 이제 죽은 목숨인 데 하나님께서 그 것을 지켜주십니다. 굳게 지켜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전한 것 같아도 하나님이 마음먹으시면 데려가십니다. 위기여서 이제 살 힘이 소망이 끊어진 것 같아도 사명이 남아있으면 하나님께서 살게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살아있다 죽어있다 하는 것도 존재의 한 양태에 불가합니다. 그러니까 죽음이라는 경계선을 넘어서 이쪽에는 육신을 입고 영혼이 있는 것이고, 저쪽에는 육신을 벗어버리고 자유한 가운데 영혼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줄이라고 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기위해서는 우리들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되고, 우리의 육신을 벋어버리고 나서도 주님과 만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현실의 현상에 메이지 않는 그런 종류의 삶을 우리들이 살아가야합니다. 그래야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