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새벽기도회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시57:6-7)
녹취자: 백지영
표제에 보면 다윗의 시라고 되어 있고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쓴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표제어를 의심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늘 이 시인이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하는 핵심적인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원수들이 자신의 걸음을 막고 또 자기를 해치기 위해서 모함을 하고 생명을 노렸는데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그물에 걸리고 또 웅덩이에 빠지게 되어서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그 사건들을 통해 일어난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피력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즉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가 펼쳐지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향해 마음을 정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마음에 정함이 없는 사람이 하는 기도, 마음에 정함이 없는 사람들이 드리는 섬김, 마음에 정함이 없는 사람들이 올리는 찬송, 예배, 이 모든 것들은 가식입니다. 그리고 정말 저 깊은 영혼의 밑바닥에서 주님을 만나는 은혜의 감격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확정된 사람만이 진실하고, 마음이 확정된 사람만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마음이 확정된 사람만이 충성스럽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시인은 바람 부는 봄날에 꽃피는 계절에 그 꽃길을 걸으면서 마음을 확정한 것이 아닙니다. 깊은 시련과 고난에 몸부림치면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생명을 주님 앞에 맡겨야 하는 위기 가운데서 그는 마음을 확정하는 법을 배웠던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의 교회를 섬깁니다. 그러나 누구도 한 사람이 교회를 모두 섬길 수는 없습니다. 각자 하나님이 부르셔서 거기에 두셨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은 지도자가 되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주님을 섬기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이 세워준 사람들이 마음에 확정함이 없다면 어떻게 그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겠으며 더욱이 충성스러운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때로는 아프고 괴로울 때나, 보람을 느껴 즐거울 때나, 거기가 하나님이 두신 자리라고 믿고 흔들리지 않고 서 있어야 합니다. 그가 일을 잘 하느냐 좀 잘 못하느냐, 혹은 큰 성과를 내느냐 못 내느냐, 이것은 두 번째 문제입니다. 우선 하나님이 맡겨준 자리에서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고 여기에서 나는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을 받았다라고 하는 확정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그 큰 시련과 광야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친히 일하시는 것을 보며 마음을 확정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만 사랑하는 시인에게도 마음에 흔들림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뜻을 세우고 헌신하니 이제 마음의 요동함이 모두 물러가고 주님 앞에 굳게 붙들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선배들이 복음이 들어온 그때부터 이제까지, 지금은 사람들이 별로 기억하지 않지만 네 자로 된 목회의 경구가 있었습니다. "목양일념(牧羊一念)"입니다. 그러니까 한국교회 많은 신앙의 선배목사님들이 목회라고 하는 것은 그 하나에 마음을 쏟으며 자기를 바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 목회가 꼭 한 교회에서 다른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목회가 결국 목양을 해야 되겠다는 그 일념이 온전히 쏟아 부어질 때 열매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은 그렇지 않겠습니까? 선교면 선교 하나에 온 마음을 쏟아 붓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확정된 사람들은 그 마음에 향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와 함께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결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인처럼 고난 속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으나 무엇에 부름에 받았든지 마음에 확정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마지막 한 가지는, 이렇게 마음이 확정되었으니 이것이 얼마나 확고했는지 그는 이 시에서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확정되었사오니" 두 번이나 반복을 합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굳세게 하나님께 붙어 있는 마음에 찬송이 울려 퍼졌습니다.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노래는 무슨 노래입니까? 원수들이 에워싸고 그물을 놓고 웅덩이에 파서 죽을 것 같은 삶의 상황을 방금 지났는데 찬송은 무슨 찬송이고 노래는 또 무슨 노래입니까? 좋은 일이 일어났어봐야 그 광야에서 여전히 도망자의 신세이고 반역자의 누명을 쓴 사람으로 이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데 무슨 노래고 무슨 찬양이겠습니까?
그러나 시인은 그렇게 했습니다.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돌아가고 육신을 위한 모든 것들이 즐겁게 나를 중심으로 움직일 때 우리는 콧노래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입니다. 오늘 이 시인은 원수 몇 명이 웅덩이에 빠졌다고, 오늘 겨우 목숨을 얻었다고, 그 하나 때문에 찬송하고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들은 잠시 있다 지나가는 것들이지만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 놀라운 증거를 본 것입니다. 우리가 작은 선물 속에 그 사람의 마음이 크게 느껴져 감격하는 것처럼, 시인이 오늘 악인이 친 그물에서 벗어나고 웅덩이에서 구출되었다 할지라도 이런 일들은 자신의 인생에 수없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을 통해서 시인은 하나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생사 간에 나 다윗이 의지할 분은 하나님 주님 한 분 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진영(? 12.12)에서도 버리지 나를 붙들고 계시나이다."
(찬양)
온 땅과 하늘 위에 계셔
홀로 영원하신 이름
온 땅과 하늘에 가득 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한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해서 마음에 기쁨이 있을 때에도 노래가 나오거든,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시인이 그 하나님의 위대함을 생각하면서 방금 자신의 앞에 스치고 지나간 그물과 웅덩이에 대한 생각을 모두 잊었습니다.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풍랑 이는 인생의 바다에서도 그 모든 것을 한 손에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주권, 그 속에서 자신을 눈동자처럼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하나님을 뵈 온 것입니다. 그러니 영혼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길에서 미끄러지는 일은 하나님 바라보며 살지 않고 하나님 손 바라보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조금 뭔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눈을 이 세상에 꽂고 어떤 일들이 일어나서 자기를 힘들게 하는지에 온 마음을 쏟습니다. 좀 좋은 일이 일어나면 깔깔거리고 웃고 마음에 힘을 얻지만 그 순간이 지나가고 다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은혜로부터 멀리 미끄러져 낙심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늘 좋은 것만 주시겠습니까?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이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좋은 것을 통해서 더 좋은 것을 주시기도 하지만 나빠 보이는 것을 통해서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원하고 기뻐할 모든 것만을 우리에게 주시지 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우리로 하여금 당신만을 바라보도록 만들어주게 하시기 위해서 내 뜻을 꺾으시는 때를 우리는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오히려 우리는 나보다 높은 하나님의 지혜, 나보다 더 존귀한 하나님의 뜻을 봅니다. 그것을 나를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를 향한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살 때 우리는 상황이 어떻다고 하더라도 주님을 찬양할 수 있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시인이 그물과 깊은 웅덩이에서도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에 굳게 설 때에만 우리의 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이 나타날 수 있으니 세워주신 그 자리에서 마음을 확정하고 하나님 때문에 기뻐 노래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