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말씀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편119:50)
녹취자 : 장예은
119편에서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깨달아 가는 과정은 고난을 받는 과정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고난이 말씀을 깨닫게 해주신 것이 아니라 고난을 받는 중에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말씀에 대한 이해가 더 깊이 체득되어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시인이)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에 위로라”고 했는습니다. 이 말씀이 어떤 말씀을 가르키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시인이 고난을 받으면서 말씀을 통해 소망을 얻은 것입니다. 가장 힘들 때는 힘들 때가 아니라, 힘들지만 이 힘든 게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를 모를 때, 힘듦 속에서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지 못할 때 더욱더 힘들어집니다. (시인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소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어거스틴 사상의 맥락에서 보면 고통과 괴로움, 심지어는 파괴, 멸망 이런 것까지도 제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인간에게 적용하면 고통과 괴로운 것은 있지 않아야 할 상태에서 참 있어야 할 상태로 우리를 데려가시는 한 과정입니다. 시인이 그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고통 그 자체에는 그냥 괴로움만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는 고통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소망을 발견합니다. 지금 겪고 있는 많은 괴로움과 어려움이 나에 대한 하나님의 복수라거나, 의미 없이 내가 힘이 없어서 당하는 괴롭힘이라거나, 혹은 재수가 없어서 견뎌야 하는 불행이라거나, 이런 많은 괴로움을 겪어 봐야 결국은 본전일 뿐이라는 생각을 안 하는 것입니다. 이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시는 것이고 거기는 지금 여기보다 훨씬 더 좋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소망입니다.
그 말씀이 히브리어 본문에 보면 ‘네하마티 레 아메이’, ‘네하마티’라고 하는 것은 ‘나함’이라는 동사에서 왔습니다. ‘후회하다’라는 단어로 사용이 됩니다. ‘위로하다’라는 뜻도 됩니다. 이것이 나를 위로하였습니다. 언제 위로했냐면 ‘레아메이’ 고통 안에서 나를 위로하였습니다. 고통에서 괴로움 속에서 나를 위로했나이다. 이미 이루어진 완결형입니다. 그 말씀이 위로를 준 것은 이 고통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를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할 때는 마음이 아주 독해지고 거친 말들을 쏟아내고 상스러운 언어와 절제 없는 비난으로 사람들을 욕합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이 파괴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입으로 아무리 정의와 옳은 것을 말해도 이것은 그 마음에 평정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인은 고난 중에서 자리를 위로해줌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의미를 파고드는 그것이 신앙의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불신자나 신앙이 어린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경건의 비밀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시인에게 위로를 주었을까요? 히브리어 성경에 ‘이메라티카 히아테니’ ‘이메라티카’는 당신이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말하다’라는 단어가 히브리어에 크게 두 가지 동사로 쓰입니다. 대표적인 동사가 하나는 ‘아마르’이며 창세기 1장에 여러 번 나옵니다. “주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할 때 ‘요멜’이라는 단어이고 ‘다마르’라는 단어인데 차이점에 대해 학자들이 많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합의를 본 것이 ‘아마르’는 말로 소리 고기를 올려서 나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까지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다마르’는 하나님이 누구에게 말씀하실 때 직접 발성을 통해서 언어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 시인은 그 말씀을 고난을 통해서 깊이 묵상하다가, 하나님의 또 다른 말씀에 의한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깨달은 말씀이 ‘이메라티카’라고 표현이 되어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하아테미’ ‘살게 하다’ 나를 살리 셨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난 중에 우리의 마음은 양 갈래 길에 섭니다. 근심과 걱정으로 마음이 나뉘어 하나님 앞에 기도도 할 수 없고 예배도 드릴 수 없고 염려와 근심으로 꽉 차는 상태로 가든지 아니면 그 큰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마음이 모아져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게 되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마음이 평범할 때에는 평범한 생각을 하지만 마음이 특별할 때에는 특별한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신령한 것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이고 세속적인 것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 리스도를 팔았지만 만약에 그 순간에 그에게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있어서 후에 후회할 것을 그때 후회했더라면 죄를 짓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죄를 지을 때도, 하나님을 찾을 때도 특별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입니다. 그 위로가 아주 값싼 위로가 아니라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싸구려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위로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고난 중에 그런 것을 주십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갑갑하고 힘든 때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요즘처럼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고 말씀을 듣는 시간이 충분하고 평소에 읽을 수 없었던 책을 읽을 수 있기에 감사합니다. 요동하지 말고 고요히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자기 성숙의 시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언제 이게 끝날까 물론 생각은 하지만 애달파 하지 말고 고요히 침묵하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은혜를 구하면서 산다면 여러분도 고난 중에 오히려 염려와 근심 속에서 마음이 갈라지지 않고 진정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라는 말이 왕관이라는 뜻인 것을 아시죠? 코로나 기간 동안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은혜를 받으므로 오히려 여러분들이 은혜의 왕관을 쓴 것 같은 그런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