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별명
녹취자: 남궁지선
계시록에 일곱 교회가 나오는데 모두 공통적으로 일곱 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을 주기 전에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알려 주는 소개구절이 나옵니다. 일곱 교회마다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들은 이것이 1장에서 사도요한이 본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놀라운 비전을 일곱 개로 나누어서 보여주는 것이고 일곱 교회에 계시된 내용들을 다 합하면 하나의 전체적인 요한이 만난 예수그리스도의 놀라운 성품의 빛이 완성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무얼 기준으로 그렇게 예수님이 보여주신 당신의 성품의 빛들을 이렇게 일곱 개로 나누어서 보여주듯이 그렇게 보여줬을까요? 그것은 저의 생각에는 그 교회에 주고자 하는 메시지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라오디게아 교회가 나오고 이 라오디게아 교회는 여러분들이 너무 잘 알다시피 덥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아주 게으른 교회로 이름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 라오디게아 지방은 굉장히 부유한 지방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로마에서 라오디게아산 안약 이라고 하면 아주 유명할 정도로, 안약을 제조해서 많은 수입을 올리고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그랬으니까 예수님이 어떤 의미에서 워드 플레이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가 안약으로 유명하다며? 그런데 너는 어떡하니 영적으로 눈이 멀었으니 안약을 사서 네가 발라야겠다. 오히려 네가 눈을 떠야겠다. 아무튼 그 얘긴 긴 이야기이고, 그 교회에 처한 영적인 상황과 예수님의 자기 계시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여기서 예수님의 자기 계시가 이렇게 소개됩니다. “아멘이시오 충성된 증인이시오, 창조의 근본이신 이” 이렇게 세 가지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하나씩 연결을 시켜봐야 하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첫째로 보면 예수님의 별명을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원래 아멘이라는 것은 히브리 동사에서 ‘아만’이라는 동사가 있습니다. ‘아만’ 이라는 동사는 ‘굳게 하다’, ‘굳건히 하다’ 원래 그런 뜻입니다. 명사가 되어 ‘오므나’는 양육. 어린아이를 기르는 것 이라는 뜻이 되고, 유모라는 뜻도 됩니다. 어쨌든 구약성경에서도 많이 쓰이는 단어인데 아멘 이라고 하면 부사가 됩니다. ‘certainly’ ‘확실히’ 이런 뜻을 가지고 있고 이게 그대로 그 음이 그대로 헬라어로 넘어가서 아멘이라는 말로 풀어서 쓴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부사입니다. ‘확실히 꼭 그렇게’ 그러니까 뒤에 아멘 하면 앞에 무슨 말이 나왔는데 그것에 대해서 ‘확실히 그렇게 되어지이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화답하는 용도로 쓰인 거라 말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아멘이시오..’ 라고 했습니다. 아멘은 명사도 아닌데 따옴표처럼 묶어서 예수님의 생애는 ‘certainly’ 의 생애였다. 확실히 그런 생애였다. 이렇게 얘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이게 결국 무슨 뜻이냐 하면 라오디게아 교회가 알아야 할 것은 교회의 영적인 상태가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그 문제에 대한 모든 해결을 예수를 아는 데에 있다. 이런 뜻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분이 신지를 알아야만 그것이 너희에게 영적인 치료책이 될 수 있다.’ 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나 라오디게아 교회에 꼭 필요한 계시는 그분이 아멘이었음을 깊이 기억하고 되새기는 가슴에 새기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별명은 아멘이었다. 그럼 아멘이라는 것은 원래 혼자 있을 수는 없고 앞에 무슨 내용이 선언이 되어야지만 아멘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 행동이든지 약속의 계시든지 환상이든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을 때 그때 아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라오디게아 교회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부유하고 그리고 부족할 것이 없는 넉넉한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렇게 주님께 책망을 받게 되기까지 교회가 주저앉게 되는 것은 결국은 아멘의 신앙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아멘의 신앙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이 다 아멘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아멘 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는 아무도 아멘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결국 중심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아멘의 생애를 살려고 해도 선포된 말씀이 있어야지 아멘을 합니다. 내가 붙들고 살 말씀이 있어야 아멘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이라는 외침이 만약에 쓰러진 자가 일어나는 결단의 함성이라면 말씀은 붙들고 일어나야할 지팡이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우리가 아멘 할 대상이 없고 아멘을 통해서 힘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너무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람이 누구이든지 간에 오늘 내 마음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 그것이 나에게 감화를 주어서 아멘 하는 그것은, 결국 구약으로 돌아가 보면 모세가 하나님과 언약을 갱신할 때 율법을 낭독하고 짐승들의 피를 뿌릴 때 백성들이 ‘아멘 아멘’ 하고 화답을 함으로써 다시 한 번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로 다시 헌신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 율법이 낭독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피를 뿌리는 것은 죽기까지 그 서약을 지키겠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만약에 우리가 그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면 죽임을 당하겠습니다. 라는 언약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아멘. 아멘.’ 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낭독이 없이는, 하나님의 뜻의 계시가 없이는 아멘이라는 것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런 사람 없지만 예전에 지하실교회 있을 때 하여튼 정신없이 아멘을 해. 제발 좀 하지 말라고. 무슨 정신이 산란해서 설교를 할 수가 있어야지 어디서 배워가지고 와가지고 말도 안 되는 대목에 와서 아멘이라고 아멘이라고, 아멘을 삶으로 아멘을 하라고 삶은 아멘 안하고 경쟁하듯이 아멘을 해. 삶으로 아멘을 하라고 여기서는 조용히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 말씀드리는 게 그것입니다. 뭐냐면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옛날의 은혜의 경험이나 나의 체면이나 내가 하는 일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산다면 그것은 또 다른 동기로 사는 것입니다. 나를 진정으로 살게 하는 것은 내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현재의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이 나의 생각을 지배하고 마음에 까지 감동을 주고 나는 나의 고유한 의지를 가지고 거기에 대해서 아멘 함으로서 전적으로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되겠다라고 하는 감화, 그것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물어보는 것입니다. 지금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냐, 이런 저런 일이 있어서 하나님이 인도해 주셔서 이 교회로 왔습니다. 간사로 일하고 있고 교역자로 일하고 있고 그런데 한 일 년 해보니까 어디 좀 다른데 알아봐야 하겠습니다. 그런 거 말고 지금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 그게 과연 살아있는가. 물어보는 것입니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보면 다 착실하다고 하고 변함없이 충성되다라고 이야기하고 옛날에 은혜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얘기해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의 예증을 위해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 그게 있으면 눈물도 있고 기도도 있고 자기반성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움직일 때 그 말씀이 빛이 되어서 내가 과연 이렇게 믿고 있나 이런 사람이 되고 있나 이런 것들을 가지고 고민을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고민이 없습니다. 거울이 없습니다. 나를 반성하지도 않고 고민하지도 않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은 오고가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서 나 자신을 고민하고 나를 하나님 앞에 고발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고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고 싶고 그런 마음은 안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평생 사신 생애가 아멘의 생애였습니다. 이분의 생애 전체를 보면 결국은 이렇게 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아니하겠느냐? 말씀에 기록된바 뭐를 하든지 간에 당신 자신이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오신 분이라는 의식이 꽉 차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진실로 말씀으로 오셨기 때문에 말씀으로 오신 분으로서 내가 말씀으로 왔으니까 이제 내게 무슨 말씀이 필요하랴 이러지 않으시고 매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묵상 속에서 주님이 자신에게 주신 말씀을 받으며 그걸로 자신 마음속에 아멘의 생애를 사셨고, 그 아멘의 태도가 모든 삶에 다 묻어나서 마지막에 아멘 하신 것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게 아멘의 생애입니다. 그래서 죽기까지 복종하사 곧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그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가슴에 새기라 이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그리고 교역자들의 경우에는 그것이 너무 마음에 가득차서 내가 그것을 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런 마음을 가진 것이 교역자의 심성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한주만 그렇게 되면 되는 게 아니라 항상 마음속에 차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와서 근무하는 이 사역은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진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외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개척의 동기가 되고 사역의 동기가 되고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 없이 어떻게 우리가 아멘의 생애를 살 수 있겠으며 말씀 없이 사는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가엽게 여길 수가 있겠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가슴에 손을 얹고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오늘 나를 움직이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 그것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없으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1번입니다. 무언가 말씀을 주셔서 내 마음에 아멘이라고 외치고 싶은 믿음과 의욕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그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마치 돛대도 없고 삿대로 없이 바다의 풍랑에 떠맡기도 떠내려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누군들 못하겠습니까? 간사의 자리에 갖다 놓으면 누가 그만큼 못하겠습니까? 조금씩 능력의 차이가 나겠지만 합니다. 교역자도하고 다 해합니다. 아주 탁월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그것을 묻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아멘의 삶을 살고 있는가?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의 비전대로 온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나면 그 나라가 아멘의 나라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계시가 있고 모든 백성들이 기쁨으로 경배하며 아멘으로 화답하는 그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 모습이라 이것입니다.
그 다음에 충성된 증인이시오.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별명이 증인이었습니다. 너무 당연합니다. 아멘이 있으니까 아멘의 말씀을 가지고 충성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신뢰할 만하게 충성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충성이라는 말 속에는 자신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 속에 자신의 모든 마음과 정성을 다 드려서 주님이 원하시는 그 뜻이 이뤄지는 것이 자신의 존재의 이유가 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어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드려져서 무엇으로도 계속성을 끊을 수 없는 힘차게 뻗어 나오는 상태가 바로 충성입니다. 그런 자세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멘할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데 어떻게 충성되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종종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아멘 했다고 할지라고 충성되게 못 살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충성되게 산 모든 사람은 말씀의 사람입니다. 그 말씀에 감화를 받아서 그 말씀 속에서 은혜를 받고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었습니다. 충성되신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증인이셨습니다. 결국 당신 자신이 하나님을 증언하러 온 사람 세례요한은 ‘나는 빛이 아니요. 빛에 대하여 증거 하러 온 자.’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동시에 당신 자신이 빛으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더 큰 빛이신 자기 자신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하나님을 증언하기 위해서 온 증인으로 당신 자신을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한 것입니다.
순교자라고 하는 영어 단어의 martyr 라는 단어가 마트리온이라는 증인이라는 단어에서 나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뭔가 진실을 증언한다는 것은 항상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증언을 합니다. 증언하려면 결국은 목격자가 되어야지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학식이 문제가 아닙니다. 법정에서 증인의 자격은 현장에서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자격요건은 없습니다. 결국은 귀결되는 것은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깊은 감화를 받고 거기에 대해서 내가 온 몸과 마음으로 아멘하고 화답하고 그 아멘의 선언대로 마음과 삶을 다 바쳐서 살면서 자기에게 주신 그 말씀의 증언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교회에 주신 사명입니다. 교회가 이것이 풍부할 때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세우는 것입니다. 결국 주일 예배는 성도들이 모두 와서 세상에 정신 팔고 사는 사람들이 정신이 버쩍 나는 그 시간입니다. 거기서 말씀을 받고 큰 감화를 받아서 아멘을 외치지 않을 수 없고 그 말씀의 감화 때문에 일주일을 충성되게 살되 자기가 받은 그 말씀을 많은 사람에게 증거 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창조의 근본이신이” 그랬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지은바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 눈에 보기에는 마른땅에서 나온 연한 순 같아서 보기에 아름다운 것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사실은 믿음으로 보면 그분은 바로 그렇게 연약한 모습 뒤에 창조의 근본자로서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이것입니다. 이것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렇게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신 창조의 근본이신 이 예수를 의지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깊이 신뢰하고 의지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우리 앞에 놓인 모든 환경이 우리의 이성으로 다 해결이 되고 아무것도 다른 도움이 필요 없고 내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우리들이 믿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혹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자신들은 안약을 팔아서 부유한 자들이 되었고 자신들도 그 안약을 사용하지만, 영적으로 눈멀었습니다. 그걸 만약에 보았더라면 자신들이 돈이 많고 로마에서 유명한 안약을 판다는 자부심을 느끼는 대신 자신의 눈 먼 것을 뜨게 해달라고 주님 앞에 울부짖었을 것입니다.
결국 사람 마음이 부유하다는 것은 영적인 것을 못 보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의 삶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슬픔이 없을지 모르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주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지만 우리가 우울하게 살지 않고 명랑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그 분이 창조의 근본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며 사는 것입니다. 시인도 얘기합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오나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그러면서 눈을 들어 산을 보는 것입니다. 저 높은 산을 누가 만드셨을까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셨고 그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고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다 그런 이유에서 어려움이 올 때 산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나의 도움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요약을 하면 아멘 할 말씀을 받으라. 말씀을 받으라. 아멘하라 충성되게 살라 그리고 증거하며 살라 그리고 어려운 일이 올 때마다 두려워하지 말고 명랑하게 살아라 왜냐하면 창조의 근본이신 그리스도께서 오늘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 넘지 못할 시련이 어디에 있겠고 극복하지 못할 환란이 어이에 있겠는가? 내 인생의 어떤 무게를 그분이 감당하실 능력이 없겠는가? 이 말씀을 붙들며 깃털 같이 가벼운 영혼으로 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