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택임직자엠티 개회예배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행 20:18-21)
녹취자: 김재혁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준 유언 같은 설교입니다. 여러 번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첫번째는 무엇이냐 하면은 이런 얘기입니다. “내가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너희 가운데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이게 이런 말을 하기가 참 쉬울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려면 최소한 겉과 속이 똑같은 생활을 했어야지 이게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모두 잘했다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적어도 겉과 속이 일치하는 가운데 살았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들은 이제까지는 그저 산등성이에 있는 그 동네였다면 이제 산 높이 있는 동네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항상 말합니다. 장로가 왜 금요기도에도 안나와, 이제 걸핏하면 장로가 왜 그래, 장로가 왜 그렇게 밖에 못 섬기나, 장로가 그거를 사람들이 교인들이 입에다가 달고 삽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완벽할 순 없습니다. 그것도 누구나 우리 목사나 장로나 우리에게 아픔도 있고 남이 모르는 상처도 있고 모든 것들이 있으니까 우리가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교인들이 본받을 만한 그런 삶의 모범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장로 선발할 때, 기도 생활 열심히 하시는, 새벽 기도 생활 열심히 하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 중에 하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범을 보이셔야 합니다. 첫째가 그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라고 내세우지 않아도 조용히 이제 까지 살아온 것 교인들에게 더욱 더 모범을 보이면서 그렇게 살아야지만 칭찬받는 장로가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겸손입니다. 그 겸손을 뭐라고 표현을 했냐면, 모든 겸손이라고 그랬습니다. 이것은 한번이 아니라, 한 번 사람들에게 겸손하게 보이게 하는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겸손, 이렇게 하는 것은 도저히 겸손할 수 없게 만드는 없게 만드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혈기가 확 뻗칩니다. 그런데 그것이 본인은 한 번 그렇게 하고 잊어버리는데 성도들의 가슴에는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무개 장로, 혈기 부리던 사람. 이렇게 되면 안됩니다. 교만했던 사람, 그러면 안됩니다. 그래서 모든 겸손입니다. 그래서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 그래서, 우리는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한번 어떤 일이 있었나면 가난한 개척교회 위해 목회자가 왔습니다. 내가 직접 보진 않았습니다. 아내를 통해서 들었는데 안수 집사를 이제 소개 시켜주면서 “이분이 이렇게 개척교회를 하십니다.” 그런데 너무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목회자인데 가난한 개척교회 목회한다 그러니까 무시하는 태도가 이렇게 눈에 띄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내 하는 말이 삼천명 교회 목회자라고 소개했으면 저 안수 집사가 저렇게 했을까? 열린교회의 안수 집사의 얼굴이 붉어졌다고까지 얘기할 정도니까 참 가슴 아픈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평소처럼 똑같이 해도 사람들은 장로가 되더니 참 교만해 졌네, 이게 너무나 쉽게 듣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런 얘기는 웃기지만은 여러분들을 시기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장로 되고 나면 시기하는 사람 많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게 아니고 수십 명의 안수 집사 가운데서 이 주어지는 건데 그게 무슨 뭐 검정고시로 보는 것처럼 저 사법고시를 보는 것처럼 시험을 받아서 뭐 보고 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지 구역장들의 투표를 받아가지고 당내에서 투표를 하고 해가지고 되는 거니까 당연히 시기를 합니다.
여러분들 그거 각오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어떤 사람들은 장로가 되고 나서 또 그 주위에 그런 시기하는 시선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거를 그래서 뭐냐하면 옛날처럼 똑같이 해도 사람들이 아 장르가 되더니 변했구나 그렇게 생각을 한다 이것입니다. 그거는 여러분들은 잘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역지사지가 돼 보면 그러면은 여러분들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가 필요하냐 하면 모든 겸손, 겸손할 만한 상황에서나 아니면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항상 겸손한 것 그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더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고 더 챙겨주고 더 친절하게 하고 그렇게 하면서 장로의 본을 보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가 눈물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세상에 나쁜 장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떤 특수한 교회라면 모르지만 열린교회 같은 데서 한 교회가 장로를 그래도 어쨌든 장로로 투표를, 구역장의 지지를 받고 당내의 지지를 받아서, 구역장의 지지를 못 받은 사람이 당회의 지지를 받아서 장로가 된 경우가 없어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들도 어쨌든 구역장의 지지는 한 때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항상 눈물이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지 그렇게 그 악한 그 생각에 빠져서 그렇게 교회를 어지럽히는 일들을 안 할 수 있쟎습니까? 뭐 세상에 여러분 직장생활하고 사업을 해봐서 알지만 모든 것이 자기가 원하는 게 이상적으로 되어가는 적이 언제 있습니까? 그것 한두 사람이 아니라 수천 명이 모여서 교회를 이끌어 가는데. 그런데 그런 때를 정욕으로 혈기로 그리고 악한 마음으로 그런 식으로 해서 장로직을 더럽히는 것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장로로 한번 그렇게 해서 떠나간 사람들이 다시 그런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깊이 생각하고 눈물이 있는 신앙생활을 언제까지 나 계속 하셔야 합니다. 장로가 오년 십년 십오년 이렇게 돼서도 항상 교회를 생각하는 눈물이 있고 그리고 목회자를 생각하는 눈물이 있고 성도들을 생각하는 눈물이 있는 그런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세 번째 덕목입니다.
마지막에 그리고 이제 네 번째는 뭐냐 하면 인내입니다 인내. 뭐라 그랬냐면 시험을, 참고 그랬습니다. 악랄하게 괴롭히던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복수의 복수 그 관계라고 그랬는데 그 복수로 나옵니다. 이게 한두 번이 아니라 어떻게 치사하고 더럽게 그렇게 괴롭히고 주님의 일을 할 수 없도록 방해를 놓고, 시기하고 모함하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당회에 그냥 얹혀서 무위도식 하면서 살면 여러분을 욕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뭔가 올바르게 일을 하고 주님의 교회를 위해 열심히 품으려고 할 때 그럴 때 때로는 여러분들이 주위에 교인들에게서 싫은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때 그 모든 수모를 참아야 합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오래 참고, 깊이 인내하고, 그래야 됩니다. 그러려면 은혜를 받아야지 이길 수 있습니다.
얼마나 뭐 장로가 월급을 줍니까? 무슨 연금을 줍니까? 그 엄청난 짐을 짊어지고 고통을 받고 살고 그런데, 말하면 뭐합니까? 서울 서울역에 가면 성도교회라고 있습니다. 그 교회가 아마 한 80년 이상 된 교회입니다. 성도교회가 100억을 들여서 교회를 지었습니다. 교회를 딱 지을 때가 하필이면 교회를 짓다가 IMF 가 터져서, 100억을 빌려서 교회를 지었는데 IMF가 터졌습니다. 대출금을 빌릴 때 4% 5% 6% 이렇게 은행에서 돈을 빌려, 5% 6% 정도에 빌렸는데 IMF가 터지면서 금리가 33%까지 올라가 100억에 대한 월 이자가 2억 5천만 원이었답니다.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1월달에 김 장로 집 팔고, 2월달에는 박 장로 집 팔고, 3월 달에 최 장로 집 팔고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이 집을 팔아서 그 부도를 메꾼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뭐 이렇게 그 평소에 막 순복음처럼 뜨거운 사람들(?) 근데 그게 말하자면 장로로서의 믿음의 저력인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보면서 그 얘기를 이렇게 들으면서 그때 그때 우리는 저기 거기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 방배동에. 그때 내가 설교 시간에 그런 얘기하였습니다. 교인들이 다 전기줄에 앉은 참새 같았습니다. 뭐냐하면 은혜 받았다고 후루룩 날아왔는데 조금만 어려움이 생기면 다 날아가 버릴 참새입니다. 그게 지하실 교회에서 분명히 이백삼십 명이 모였는데 이곳으로 이사를 한다고 그러고 건축 헌금을 하니까 오십 명이 날아가 버리고 백팔십 명이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고 그 다음에 안수집사라고 세워주고 그랬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전기 줄에, 안수집사 임직하고 나가지고 2년도 안 돼가지고, 훨훨, 아무 부담도 없이 훨훨 날아갑니다. 그걸 보면서 아 어떻게 저렇게 저렇게 신앙생활을 하나? 우리 교회의 생명력이나 모든 걸로 볼 때 그 교회는 비교도 안 되는 은혜를 우리가 받았지만 그 교회는 나름대로 장로들이 살아온 인생의 저력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와서 살지만 교회 때문에 재산을 흔든다는 건 쉬운 게 아닙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에서 푼돈을 내는 거는 어려운 게 아니지만은 재산을 흔든다? 아이고, 쉬운 게 아닙니다. 그것은 목사가 되도 쉬운 게 아닙니다. 그런 거를 하면서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결국은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시험을 참고 인내해 깊이 인내하면서 중심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들이 마지막에 뭐라고 했냐 하면은 십구절에 이십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거리낌이 없이 전하여 가르쳤다.” 그 가르치는 내용이 믿음을 증언한 것이었습니다. 믿음을 증언한 것.
그래서 절대로 구역장 내려놓는 건 안됩니다. 그리고 구역장 하면서 끊임없이 영혼을 사랑하면서 그 사람들에게 참된 신앙을 가르치는 그 기쁨을 여러분들이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 장로로서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목양을 하지 않는 장로는 장로가 아닙니다. 장로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무 처리를 하는 게 아니라 목양을 하는 겁니다. 그 목양을 절대로 그만두면 안됩니다. 그리고 내 마음 같아서는 말이에요, 나는 정관에 목양을 하지 않는 장로는 퇴직한다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목양을 위한 눈물이 있을 때 그때 올바른 장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본이 되라. 둘째 겸손하라. 셋째 눈물을 흘리라. 넷째 시험을 참으라. 다섯째 믿음을 가르치라. 누구에게나 믿음을 가르치라. 가슴에 새기시면서 겸손하게 배우면서 여러분들이 교회에 큰 일꾼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