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 가득할 때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대하 5:13-14)
녹취자: 김은영
제가 처음 교육 전도사가 되고 서울 변두리의 한 교회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제 설교를 들었고, 또 공과 공부 시간에도, 성경 공부 시간에도 아주 총명하게 답변을 또렷하게 하던 아주 영리해 보이는 주일학교 학생이 있었습니다. 보니 우리 양영모 목사님(이십니다). 그래서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이렇게 우리 노회 송파동 교회의 담임 목사로 위임하신다고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만나면 못 알아볼 정도로 우리 서로 변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라고 생각하며 여러분들을 축하합니다.
오늘 성경은 솔로몬 성전이 완공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서 경험하게 된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성전이 완공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고, 아버지 다윗이 훌륭하게 준비해 놓았기 때문에 솔로몬은 어려움 없이 7년 공사 기간을 거쳐서 성전을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아름다운 성전을 지었으니, 성막밖에 못 보던 사람들의 눈에는 아마 휘황찬란한 성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낙성식이 있을 그때 일어난 일이에요.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가득하게 찼고, 그 충만한 영광 때문에 제사장들도 능히 섬기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영광스러운 광경이 전개되었습니다.
교회의 영광은 교회의 크기나 규모나 혹은 얼마나 높은 지위에 있는 성도들이 모였는지나 목회자의 학벌이나 명예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모두 세상에 있는 것들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표현에 의하면 이러한 명성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평판 안에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것이 행복의 요소가 될 수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교회의 가장 아름다움의 정수는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예배당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하나님이 여기 계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고 하는 것을 느끼며 압도당하는 그 무엇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교회입니다.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찼을 때, 거기에 모인 많은 사람은 조금 전까지는 성전에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주목했지만 이제 거기 계신 하나님께 주목하게 됩니다. 저는 김광성 목사님이 30년 동안 섬기시고, 양용모 목사님이 후임으로 오셔서 섬기는 이 교회에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죄인들이 와서 회개하고 믿었던 사람들이 와서 더 믿음이 견고해지는 것, 이것이 교회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목회이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전도이니, 전도 없이 어떻게 목회가 이루어질 수 있겠으며, 목양이 되지 않는다면 전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결국 이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드러나서 사람들이 어디서도 믿어지지 않던 하나님이었지만, 이 교회에 가득 찬 임재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되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언제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게 되었는가?
첫째로는 법궤가 들어오던 때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법궤는 지성소 속에 모셔져 있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사실 성전은 이 법궤를 위한 것이었고, 법궤가 없으면 성전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고 만나주시던 그 법궤가 성전에 들어올 때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찼습니다. 아시다시피 법궤의 속에는 모세가 받은 율법의 돌판과 그리고 만나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결국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고 거기에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또 거기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날 때,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생명을 상징한다면 만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리는 말씀을 먹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으로 영원히 살아날 것을 보여준 그림자였습니다. 결국 요약하면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인 동시에 말씀과 생명이 그 안에 상징처럼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교회에 충만할 때 그것은 하나님이 아무 데서나 그렇게 행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양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을 받은 성도들이 함께 그 말씀으로 성도들을 섬길 때, 그때 하나님의 충만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날 때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할 때마다 회개하고 예수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생명의 충만한 역사로 인생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이기며 믿음으로 살 결심을 가진 사람들이 구름처럼 많이 일어나서 이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성도들로 가득 차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이제 이렇게 솔로몬이 모든 성전을 완공한 후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당연히 제사를 드리기 전에는 제물이 받쳐졌고,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제물이 바쳐졌습니다. 하나님은 요행으로 교회의 부흥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부흥을 주시지 않습니다. 부흥은 두 가지 액체를 밟고 우리에게 건너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의 피의 액체와 그 보혈의 능력에 감격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의 눈물(의 액체)을 뿌린 양탄자를 밟고 부흥을 하나님이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흥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는 것인데, 부흥이 일어나기 전에는 모두 조짐이 있으니 많은 사람이 그 부흥을 갈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시는 김광성 목사님에게는 커다란 위로와 축하를 드려야 되겠지만, 양 목사님이 느끼는 영적인 깊은 부담감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위대한 일들을 위해서 역사하십니다. 영국에 가면은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목회하던 교회가 있습니다. 한국의 여러 목사님이 거기에 방문해서 안내하는 분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웨슬레 목사가 그렇게 엄청난 교회의 부흥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더니 거기 안내하는 교인이 이렇게 말했어요. ‘질문하신 목사님, 강대로 올라가십시오.’ 올라갔어요. ‘웨슬리 목사님이 앉아 계시던 의자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냥 뭐 새벽 기도 때나 늘 하던 거니까 무릎을 꿇었어요. ‘고개를 숙이십시오.’ 숙였어요. ‘얼굴을 묻으십시오.’ 묻었어요. ‘자 이제 통곡하십시오.’ 그것이 웨슬레 목사의 부흥 비결이었습니다.
옛날에는 짐승으로 제물을 드렸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제사는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십니다. 왜? 그리스도께서 이미 영원히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상한 심령, 목회자의 상한 심령, 성도들이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부르짖는 통회하는 심령, 이것이 하나님이 받으실 제물입니다. 양 목사님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자신을 온전히 제물로 드리고, 성도들과 함께 모든 교인들이 자신을 제물로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큰 영광이 교회에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