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것 같은 날에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시 126:1-3)
녹취자 : 김지혜
I. 본문해설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기적적인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지 약 7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주전 536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서 이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넓은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각기 종교의 자유를 주고 그들을 통합하기 위한 정책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그 뒤에는 하나님의 큰 섭리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아의 선지자에게 예언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포로로 끌려간 지 70년 만에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II. 꿈꾸는 것 같은 날에
그것은 꿈꾸는 것 같은 날이었습니다. 그토록 그리던 신앙의 고향 예루살렘으로서의 귀환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믿기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현실로 일어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쁨은 우리가 아무리 미루어도 짐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A. 포로들의 귀환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고국에서 끌려갔던 포로들이 귀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포로 생활이 끝난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자들에게 이것은 이제까지 타국의 포로 생활로부터 고향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이거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사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제사는 예루살렘에서만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모두 훼파되었고 이방인들이 지배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본토에서 쫓겨나 가보지도 못한 남의 나라 땅에서 포로로 살아가고 있던 세월이 무려 70년이었으니 삼대나 지나가는 세월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 상태에서 돌아가게만 한 것이 아니라 돌아가서 성전을 새로 짓도록 허락이 떨어졌으니 이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꿈꾸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성전을 새로 지으면 거기서 오랫동안 끊어졌던 제사를 다시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이었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목숨을 바쳐서라도 보고 싶은 꿈꾸는 것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 감격에 대해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시 126:2)라고 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시편 120편부터 130편 이 약 10편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제 멀고 먼 순례의 길을 걸어와서 마지막으로 저기 예루살렘 성전이 보이는 곳을 향하여 걸어 올라갈 때에 이 노래들을 불렀던 것입니다.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는 순례객들의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하던 시대가 아니라 여행의 위험이 가득하던 시기에 그들이 하나의 고행으로써 성지 순례를 한 것입니다. 그 순례의 길에서 이제 끝에 도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 멀리 성전이 보일 때 그들의 감격이 어땠겠습니까? 가슴 벅차는 감격을 안고 오랜 세월 동안에 순례자의 여정도 그 고단함도 잊은 채 성전을 향하여 마음의 감격이 끓어오를 때 그 성전을 바라보며 올라가면서 이 노래를 부르며 한 가지 사건을 기념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벨론 포로 귀환이었습니다. 이 찬송을 부르면서 순례객들은 당시 이방 민족의 지배 아래에 살아가던 슬픔을 기억하며 성전을 향하여 눈물을 쏟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더 큰 구원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바벨론의 포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보다 더 크게 감격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신 사건입니다. 구원받기 전에 우리가 누구였습니까? 이 세상에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바벨론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사단에게 노예가 되어 죄의 포로가 된 채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거기서 지배를 받으며 우리는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 욕심을 따라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를 지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았고 우리의 삶에는 어떠한 희망도 없고 좌절과 슬픔밖에 없었습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포로 생활을 하면서도 우리는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취해서 우리는 다가오고 있는 죽음의 위협까지도 모른 척한 채 그렇게 허망하게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은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허물을 견디지 못한 채 오히려 두려워 그것을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디로부터 왔고 지금 어디 있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으며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것들에 취해서 살아가지만, 그것이 곧 끝날 것이라고 하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압니다.
방금 베네딕도 16세 교황이 돌아가셨다고 뉴스가 떴습니다. 모든 인간은 이렇게 죽습니다. 지위 고하의 상관이 없이 모두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이 세상이 얼마나 허무한지도 모르고 인생이 이렇게 부은 듯 끝난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도 알아보지 못한 채 짐승처럼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를 구원해 주셨으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분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의 마음에 말씀하시고 복음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같은 죄인을 그 죄에서 건져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신앙은 회상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누구였는지를 회상하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그늘 아래 살던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받았을 때의 감격을 되새기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걸 자주 하는 사람을 신앙이 깊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이런 생각을 안 하고 사는 사람을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렇게 우리에게 있었던 꿈 꾸는 것 같은 나를 회고해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려주신 그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면서 회고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지난 한 해에도 다사다난한 일들이 우리에게 수없이 많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데려갈 사람들은 데려가셨지만 우리는 남겨두셔서 여기까지 인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에 포로되었던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간직하십시오. 그리고 한 해를 보내면서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회상하십시오. 나는 약하나 주님은 강하셨고 나는 미끄러졌으나 주님은 그때에 나의 발을 붙드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홀로 두지 아니하시고 한 해 동안 붙들어 살게 해 주셨으니 이 모두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한 해를 보내면서 다시 한번 나 같은 죄인 살려주신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며 이 세상으로부터 주님의 품으로 귀환하였던 그 은혜의 감격을 되새기며 한 해를 시작한다면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는 새해가 될 것입니다. 이 은혜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 큰 일을 행하심
마지막으로 큰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위대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놀라운 일은 당시 메대 바사에 있던 모든 제국의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방 백성들의 시기를 이스라엘은 한 몸에 받아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에스라서와 느헤미야를 읽어보면 그 바벨론 포로로 돌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순탄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때 이민족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모함과 질투를 받았는지를 아실 것입니다. 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 놀라운 특권이 주어졌을까? 끝까지 저항하던 반역의 땅이었는데 그런데 그 백성들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고 종교적으로 뭉치게 하고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게 하고 심지어 성전을 재건하고 성까지 수축하게 하였으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들은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이 모든 위대한 일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저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행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라는 사실을 이방의 민족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크고 놀라운 일들을 우연히 행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살아가는 죄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벌하여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포로로 끌려가게 하셨습니다. 눈동자처럼 사랑하시던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지게 하셨고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그 하나님의 집이 이방 군대의 말발굽 아래에 짓밟혀 버리게 만드셨던 것입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풀이를 하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진짜 참된 교회를 일으켜 세우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육신적 이스라엘의 껍질을 깨고 그 속에서 영적인 이스라엘이 태어나도록 만드시기 위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멸망되도록 내버려 두시고 그 극심한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서도 별빛처럼 빛나는 하나님의 종들을 세우셔서 신앙의 횃불을 들게 하셨습니다.
화려한 성전이 있고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에는 방탕하던 많은 사람이 그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며 온갖 고난을 겪을 때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그리움이 싹텄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저녁되면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을 지으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성전에 갇혀 있고 그 안에서 안일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깨고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 이 역사의 모든 수레바퀴를 움직이고 계시는 하나님, 그리고 눈에 보이는 그 예루살렘을 버리시지 아니하시는 그 하나님, 그 예루살렘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적인 교회를 세우시는 위대한 역사를 그리워하게 만드셨던 것입니다.
모든 이방 민족들도 이 일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저들과 함께하는 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스라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찬송합니다.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랜 속박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돌아와 말할 수 없이 기뻐하였습니다. 그것은 단지 귀환의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고향을 찾아오는 그런 정도의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자, 7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때에 이 땅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사람들은 나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예루살렘은 비어 있는 곳이 아니었고 이방 민족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그 먼 길을 떠나 예루살렘까지 가면서 무슨 어려움을 만났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온 삶의 기반을 모두 포기하고 어쩌면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난 것 같이 타향을 떠나서 그리고 타향 같은 본향으로 돌아가야 되는 처지였던 거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동네에서 이사만 가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근데 70년을 살아온 그 삶의 기반을 버리고 이방 민족들이 득실거리고 있는 그곳에서 어떤 위험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귀환한다고 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결단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만 바벨론 포로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겠다고 손을 든 겁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 위대한 모험을 감행한 것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 때문에 누리는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을 다시 짓고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조상으로부터 듣기만 했던 그 일을 직접 경험한다고 하니 그들의 가슴이 설레고 뛰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비록 크기와 그 화려함에 있어서는 솔로몬 성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 초라한 성전이었지만 그들의 손으로 새로 지을 성전에서 하나님께 첫 번째 제사를 드리던 그들의 감격을 생각해 보십시오. 열린교회를 하고 22년 동안 두 주씩 쉬는 한 달씩 쉬는 안식월은 가져봤지만 안식년을 갖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22년 됐을 때에 한 7개월인가요? 교회를 떠나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못 가게 해서가 아니라 전 교회를 못 떠날 줄 알았어요. 제가 수술을 하고 두 주를 교회를 비운 적이 있는데 그 요양을 하다가 두 주 만에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마당에 들어서면서 눈물이 콸콸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안식 휴가 좀 가고 싶다.” 그랬더니 아내가 하는 말이 “교회는 당신을 안식 휴가를 보내줄 수 있는데 당신이 교회 안 보고 살 수 있겠어?” 근데 살 수 있더라고요. 해보니까 한 6-7개월은 가능하더라고요. 앞으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어쨌든, 참 특이한 경험이었어요. 그래서 편도선 수술을 하고 분명히 의사가 설교하지 말라고 그러는데 설교하다가 수술한 게 터져버렸어요. 피를 반 컵쯤 길거리에서 쏟고 의사한테 야단맞았어요. 그래서 두 주 동안 교회를 비워야 했어요. 두 주 만에 돌아와 마당을 들어서는데 눈물이 확 쏟아져요.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 생각을 했어요. 겨우 두 주인데 이 사람들은 70년, 제사 지냈다는 이야기를 조상들로부터 들어보고 또 어떻게 지냈다는 거를 이렇게 설명으로는 들었지만 자기네는 진짜 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 제사는 아무 데서나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 당시엔 동영상도 없었으니까 그런 기록도 없었을 거 아니에요. 근데 처음 그 성전을 짓고 거기서 처음으로 제사장들이 그 자기들을 위해서 제사를 드려줄 때 그때 그 감격은 제가 두 주 만에 교회에 들어와서 마당을 밟으며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났던 걸 무한대로 연장해서 생각하면 될 거예요. 그러니까 성전의 지대가 놓이는 것만을 보면서도 젊은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소리를 쳤으니 성전이 완공되고 거기에서 제사가 드려질 때 그 연기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하나님의 임재가 거기에 임했을 때 그들의 기쁨이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웠을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한 감격을 가지고 그들은 큰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송했던 것입니다.
한 달, 두 달, 6개월, 1년씩 아주 먼 길에서 걸어서 모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그 당시 소원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걸어왔던 그 순례객들이 마지막으로 성전을 향하여 바라보면서 올라갈 때 부르던 노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꿈꾸는 것처럼 우리를 그 비참한 포로 생활해서 구원하셨고, 환란 중에도 하나님은 우리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시고 눈동자처럼 보호하셔서 고레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우리에게 이러한 신앙의 자유를 주셨구나 하는 이 감격을 그들이 온몸으로 느끼며 이 찬송을 부르며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런 감격은 오늘 우리가 누리며 살아야 할 감격입니다. 새해에 새 소원을 마음에 품으십시오. 실패로 얼룩진 지난해를 잊어버리십시오. 모든 좋은 일들은 하나님 때문에 일어난 일이고 모든 나쁜 일들은 우리가 연약하고 세상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좋은 일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하시고 삶의 고비 고비마다 우리를 인도하셨는지를 회고하십시오. 성령 충만할 때뿐만이 아니라 비참한 눈물을 흘릴 때와 쓰라린 탄식으로 하나님 앞에 괴로워할 때조차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셨습니다. 그늘이 되어 주셨고 피할 바위가 되어주셨고, 방패가 되어 주셨고, 우리의 상급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그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쓰러지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살려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이 행하신 이 크고 놀라운 일을 우리가 찬송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죄와 궁핍, 질병과 시련의 포로처럼 얽매였던 생활에서 벗어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대한 일을 이미 행하셨으니 또한 새해에도 더 큰 일을 행하셔서 우리에게 하나님 찬송할 기회를 주실 것을 믿으십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꿈이 무엇입니까? 누가 그 꿈을 이루어 줍니까 잠을 자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그 꿈을 이룹니다. 새해를 맞아 주 안에서 소원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봅시다. 그리고 그것을 꿈으로 간직합시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주께 아룁시다. 단지 꿈만 꾸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비전이 되도록 그 꿈을 위해 대가를 치를 마음의 각오를 합시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더 꿈꾸는 것 같은 일이 없을 그런 위대한 일을 꿈꿉시다.
이제껏 내 일생에 나를 얽어매 두었던 모든 속박을 새해를 맞으며 끊어버리고 이루지 못했던 한처럼 우리의 마음에 남아있었던 기도의 제목들이 영광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을 포도로 우리 주님께 매달립시다. 하나님이 어디서든지 나를 지키고 붙들어 오셨던 것처럼 또한 새로 오는 한 해에도 나는 주님의 손에 붙들려 살리라는 소망을 가집시다. 주 밖에 누가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시겠으며 주가 아니면 누가 우리의 소원을 성취해 주시겠습니까? 모든 소망을 주님 앞에 두고 모든 꿈을 주님께 걸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자녀답게 삽시다. 복을 받읍시다. 그래서 모든 얽어맨 수치를 2022년과 함께 세월의 강물에 떠내려 버리고 이제는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갑시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큰 일을 행하셨도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III. 적용과 결론
믿음으로 살지 않고 어찌 꿈꾸는 것 같은 나를 맞이하겠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지만 거룩하지 않기에 신앙이 없이 살기에 세상에서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2022년과 함께 이 모든 수치스러운 일에 종지부를 찍읍시다. 눈 앞에 펼쳐진 새로운 한 해가 우리에게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정복하도록 주신 땅입니다. 그 신앙을 정복하기 위해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합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다짐하고 마음의 할례를 받으며 새 소망을 가지고 한 해를 이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