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회복하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장 6절)
녹취자: 임윤이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시작하시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팔복에서 말씀하신 다음 그러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치십니다. 그 다음 이 부분에서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시는데 기도 앞에 구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구제 바로 앞에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아버지께 상을 받을 것이 없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제와 기도의 공통점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아라. 그리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는 행위여야 한다.”라는 것이 요점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왜 이렇게 강조하셨을까요? 그것은 그 당시에 종교생활을 보면 왜 이런 강조를 하실 수밖에 없으셨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습관이 그랬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영광을 받기 위해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나팔을 부는 것처럼 사람들을 구제하였고 그렇게 얼마 되지 않는 돈을 구제하면서도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려 하였고 또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였으며 심지어 바리새인들은 기도 시간에 올라가서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의식하며 그렇게 거룩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신랄하게 비판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백성들은 그런 삶을 바로 떠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진실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의식하면서 하나님 한 분이 이유가 되어 어떤 의무를 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진실이라는 것은 진리에 부합한 정신과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 진리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 한 분을 의식하고 그 하나님 때문에, 그 하나님 한 분을 위해서, 그 하나님 한 분께만 자신의 행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을 똑바로 향하고 있을 때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나 상처 같은 것들이 줄어들게 됩니다. 하나님 한 분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나를 여기에 보내셨고 또 나를 여기 세우셨고 나에게 이 일을 행하게 하셨고 내 의식 세계 속에는 온전히 그분만 있어서 오로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만이 나의 섬김의 목표이기에 흐트러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순수하게 하나님 앞에서만 그렇게 살려고 하는 것들이 모자라는 것입니다. 모자라는 것만큼 거짓된 것이 됩니다.
구제를 말씀하시면서 기도를 말씀하신 이유는 이것이 다른 교훈이 아니라 사실은 더 큰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구제할 때 너희들이 하나님께 상 받을 것이 없는 이유는 외식하는 방식으로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사람들에게 그렇게 구제하기 때문에 상 받을 것이 없고, 기도하는 것도 똑같이 상 받을 것이 없고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의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영광을 자신이 가로채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핵심으로 들어가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큰 거리나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외식하는 자가 된다고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대조적으로 이런 것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 팔복의 사람들이 된 사람들은 어떻게 기도해야 되는지 그것이 6절에서 나옵니다. 그것은 골방으로 들어가라 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골방이 없지만 옛날에는 작은 골방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사용하는 방이 아닙니다. 골방에 물건을 넣어두기도 하고 어쩔 수 없으면 잠을 자기도 하지만 그런 용도가 아닌 그런 골방입니다. 그야말로 창문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서 사실은 집안에서도 그런 방이 있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 그런 은밀한 장소를 여기서 골방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말고 어떤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자원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네 은밀한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뜻입니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책 속에서 하나님을 우리 모든 세계와 만물을 초월해 계신 분이라고 합니다. 내 위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소프라메) 내 속으로 들어가야 된다(인트라메) 이것입니다. 자기 자신 속으로, 깊이 내면으로 파고 들어갈 때만 나를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골방은 하나의 아무에게도 발각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눈에 띄는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기도자의 마음을 은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이지 않은 곳에 혼자 있어도 의식하는 기도를 할 수 있고 또 많은 사람이 있는 장소라 할지라도 그 속에서도 골방에서 드리는 것 같은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장소와 분위기에 상관없이 한 번에 깊은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도를 갖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존 오웬도 우리가 시험으로 미끄러지는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께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 되어있는 상태가 흐트러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결국 기도에 비례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쏟아지듯이 기도가 쏟아져나올 수 있는 사람들만이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이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그러한 개인적인 기도의 골방을 자신들이 가져야 하고 돌아가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개인 기도의 골방이 어떻게 됐는지 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거미줄이 끼고 쥐도 왔다 갔다 하고 쥐가 물어다 놓은 이상한 음식 찌꺼기 같은 것들이 있어 차마 더러워서 들어갈 수 없는 골방이 되었다면 그것은 우리가 껍데기만 사는 것입니다. 깨끗이 그 방을 소제하고 언제든지 그 방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역의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에너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에서 오지만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은 산에서 패온 장작에 지나지 않고 그것을 불을 붙여서 불길이 타오르게 하는 것은 성령이 하시는 것이고, 그 불을 지피는 일은 기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말씀에 은혜를 많이 받아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 은혜의 불길을 유지할 수 없고 또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할지라도 말씀에 깨달은 것이 없는 사람들은 그 불길을 계속 지속할 수 없습니다. 옛날에 증기 기관차가 나왔을 때 속도를 높이고 싶으면 어떻게 했습니까? 타이타닉호에서도 봤지만 속도를 높이고 싶으면 어떻게 했습니까? 석탄을 한없이 갖다 쏟아부으면서 불을 땝니다. 줄이고 싶으면 석탄을 더 이상 집어넣지 않고 증기가 약해지길 기다립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석탄이 계속 들어가고 기도라는 불길이 계속 타오를 때 비로소 둘이 상승 작용을 하면서 우리에게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에너지가 충분하게 신령한 하늘 자원으로 가득 찼을 때 현실을 다르게 해석하고 그 현실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의 세계를 갖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살아가는 모든 삶에 원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진실성과 함께 기도를 강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은밀한 중에 계신 내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숨어계시는 하나님 (Deus Absconditus), 하나님이 당신 자신을 영광중에 확 드러내실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숨어계신 것처럼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면의 깊은 곳에서 자신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을까요? 결국은 그 속에 담겨있는 깊은 섭리는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약에 항상 눈에 보이시게끔 우리에게 나타난다면 우리는 면역이 될 것입니다. 한번은 깜짝 놀라겠지만 두 번 세 번 계속되고 나면 우리는 면역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도 두려움을 모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숨어계신 분으로서 은밀한 중에 계시는 이유는 우리가 마음으로 그분을 찾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고 찾고 찾는 사람들은 그 과정을 통해서 그 마음이 하나님께 바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마음이 되면 그 사람의 마음이 팔복의 사람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미 천국을 누린 사람이고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은밀한 중에 계시고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을 은밀하게 찾는 사람들만 당신을 만나게끔 허락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기도에는 마지막으로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내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치 기도가 하나님께 무슨 돈을 빌려드린 것처럼 하나님이 갚아주신다고 말씀하시는데 기도는 결코 허사가 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 그 자체가 기도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영혼을 강하게 만들고 또 우리의 기도는 끝났어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는 사라지지 않게 만드셔서 그렇게 간절하게 매달렸던 우리의 기도에 대해서 그 당시가 아니면 그 오랜 후에라도 하나님이 갚으시는 것입니다. 마치 구제와 기도는 하나님을 빚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분께 꾸어드리는 것 같은 그런 행위가 바로 구제와 기도입니다. 그래서 똑같이 갚으시리라는 말씀이 나오기를 구제에서도 나오고 기도에서도 똑같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응답이 안 된 것 같아도 기도의 시간은 결코 허무하거나 무의미하지 않고 혹은 우리가 분별을 못 하여 잘못 기도한 것이라도 그것은 반드시 우리에게 보상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니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동치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삶도 요동치지 않기 위해서는 요동치지 않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믿음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수련회와 또 주일 그리고 성경학교나 수련회 등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자신의 기도의 골방을 다시 한번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 든든한 기도의 세계를 갖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