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새벽예배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와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사가 없다 하더라.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일러 가로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사도행전 26:30-32)
녹취자 : 이민희
하나님은 결국은 사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지키십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정치적인 힘까지 동원해서 사도바울을 죽이고자 온 힘을 다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으로 있으니까 주권이 없어서 종교회의에서 율법을 따라 재판을 해도 율법에 따라 사람을 벌주거나 죽이거나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 때에도 종교재판에서 예수님을 먼저 사형이라고 하고,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를 죽일 수 있도록 세상의 재판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온갖 권모술수가 들어가고 했던 겁니다. 이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에 빌라도가 예수님을 사형시키게 된 것은 유월절에 엄청나게 몰려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데모를 하고 있었고, 예수를 죽도록 하지 않으면 폭동이 일어날 위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경우에는 베스도뿐만 아니라 아그립바왕이 이 자리에 있었고 거기에 있는 많은 재판하는 사람들이 심리를 해보니, 유대인과 사도바울사이의 현저한 견해차이가 있어서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고자 하는 것은 알았지만 로마의 법을 가지고 재보니까 사람을 때리거나 죽인 것도 아니고 로마의 시민들에게 해를 입힐만한 오만불손한 태도를 가지고 그릇된 사실을 전파한 것도 아니고 순전히 자기 종교의 도리를 얘기한 것인데 벌을 주거나 죽여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 사람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보호받을 수 있는 특별한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일 수 없다.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유대인들의 모든 계교가 허사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이 사람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고, 상황으로 볼 때에는 살았다고 볼 수 없는 목숨인데, 하나님이 놀라운 방법으로 지키고 보호해주십니다. 바울을 지지하거나 보호하는 세력이 없었고 사도바울은 혈혈단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었기에 헤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일생을 섬기면서 살아갈 때 수많은 두려움들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바울과 같은 삶을 우리가 사는 건 아니지만 종류는 틀리겠지만 수많은 두려움들. 하나님을 위해 작은 일을 하며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대적이, 주님을 위해 큰일을 하며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대적이, 오래도록 주를 위해서 살려고 할 때에는 오랜 대적이 그 사람을 에워싸고 있어서 역사하고 말할 수 없이 곤고하게 합니다.
그런 것들을 이기며 나아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 강한 하나님의 보호가 있는 법입니다. 그것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예루살렘을 거쳐 다시 로마로 호송해나갈 처지에 이르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놀랍게 지켜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에 올라오기 까지 사도바울의 결심은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23-24)라는 그 결심 하나였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서 죽어도 주를 위해서 하면서 믿음으로 이 길을 걸아오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고난도 이기고 시련도 이기면서 이 믿음의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정신이 필요합니다. ‘내가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따라 살면 살던지 죽던지 주님이 나를 지키시리라 나를 붙드시리라’ 라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이런 놀라운 의존의 힘, 의지하는 힘,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나오는 이런 놀라운 힘들은 전부 다 하나님과의 평화에서 옵니다. 손으로만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놀라운 확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룩한 용기 이런 것이 없습니다. 사도바울의 경우에도 그 수많은 유대인들이 심정적으로는 바울의 편에 서고자 하는 정치적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으나 사도바울이 흠이 없이 순수함으로 복음을 전파하였기 때문에 사도바울을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을 깊이 본받아 그렇게 살아가면 하나님은 늘 동행해주십니다. 짓밟히나 누구에게도 꺾일수 없는 자로, 어리석은 것 같으나 가장 지혜로운 자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그래서 매순간 주님을 위해 길을 걸어가도록 그렇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