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 새벽예배
또한 이와같이 다른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히 5:6)
녹취자:박정윤
구약에 나오는 인물가운데 수수께끼와 같은 인물중 하나가 멜기세덱입니다. 멜키는 히브리말에 멜렉인데 멜렉은 왕이고 멜키하면 나의 왕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세덱은 의입니다. 그래서 의의왕 그런 정도로 번역이 되는건데 멜키세덱에 대해서는 명쾌한 해석이 없습니다. 딱 한번 나오는데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브라함때에 소돔이 있고 다른 작은 나라들이 연합해서 싸움이 벌어지는 와중에 아브라함이 그 싸움에 말려드는 이유는 그 싸우는 과정에서 소돔에 살고있던 조카 롯이 가족과 함께 잡혀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왕과 사람들을 도와서 구출해옵니다. 전쟁으로 노획물도 얻어 싸워이기고 돌아올때 마중나오는 인물이 멜키세덱이라는 사람입니다. 살렘왕이라고 나오는데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나옵니다. 아마 예루살렘의 왕이었을것이다 해석하고 어떻게 거기에 제사장이 나오게되는지 그 사람은 위에 도대체 어떤 가문을 타고 제사장이 내려왔는지 하나님의 제사장의 기능이 어디까지였는지 대해 명쾌한 해석을 잘 못합니다. 그 이야기가 시편에서 나오고 히브리서에서도 나옵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은 하나의 전설처럼 사람들에게 이해되는 인물로서 하나님의 제사장이고 밑도끝도없는 제사장이다 그래서 무언가 신비스러운 인물로 부각이 됩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았다 멜기세덱의 이야기는 거기밖에 안나오는데 어떤면에서 유기가 이뤄지냐하면 멜기세덱이 밑도끝도없이 어느 가문이나 혈통이 아니라 제사장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아브라함을 축복했던 것처럼 예수님 또한 분명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고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기는 하지만 제사장의 혈통을 타고 오신거도 아니고 무슨 가문이나 그런것에 있어 이 아버지가 대제사장이라든지 이런 가문을 타고온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단번에 하나님의 선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고 그래서 자신의 몸을 화목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밑도끝도없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예수님을 멜기세덱과 비유하는 것입니다. 또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멜게세덱이 아브라함 일행을 맞이할때 일어난일이 세가지였는데 하나는 그들을 축복한것이었고 두번째는 그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준비해서 나눠줍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계실때 떡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눠주시면서 당신의 고난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던것과 상당한 관계가 있는것이고 세번째는 십일조를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바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일들이 일어났는데 이것도 예수님과 묘한 유비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밑도끝도없이 제사장이 되신 것처럼 멜기세덱이 그러했던 거처럼 예수님도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을 히브리기자가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나 대제사장이 되는것이 아니다라는 아론의 자손만 될 수있었던 것처럼 구약에서 그랬던것처럼 예수님을 하나님이 특별히 택하셔서 넌 내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널 낳았도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영원히 단번에 제사를 드려서 속죄의 효과를 가져오는 제사장이 될 수 있었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신 분이었기에 대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두가지 사실을 지적함으로서 예수님이 매우 특별하신 분으로서 주님의 선택하심을 입어서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우리를 위한 영원한 속죄를 드려주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외에는 누구도 이런일을 위해 선택받은 사람도 없고 그 선택을 받기에 적합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존재하지도 않고 실제로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분이 매우 특별한 것이었고 이 직분을 통해서 우리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자기몸을 버리신 희생적인 속죄의 제사때문에 우리들이 아버지 보좌에 이르는 사는길을 얻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죄인인 우리들이 잠시가 아니라 단번에 영원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려서 속죄의 공로를 의지해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고 용서를 빌 수있는 그런 특별한 은혜를 우리들이 입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에 있어 살아가는 날 동안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영원한 찬송제목이 되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우리같이 쓸모없는 죄인들을 위해 생명을 버리시고 자기를 다 바치신 그 하나님의 놀랍고 크신 사랑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기 때문에 우리들이 날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의무이고 매순간 단 한순간도 자신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속함을 받았다는 것과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그 공로로 깊이 은혜를 입어 오늘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라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어버리지 않고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입은것은 비할데없는 영광스러운 특권이고 만약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영원한 속죄의 제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말할수없이 그 비참한 인생의 상황을 모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무엇을 먹고 마시고 누리는 일들에 골몰하면서 살지만 매일같이 구원받지 못했으면 죄 가운데 멸망받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자신과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통해서 구원의 은혜를 얻게된 우리 자신을 깊이 비교하면서 한없는 위로와 용기, 은혜를 힘입는 그러한 백성들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