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5일 교직원예배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빌 2:20-22).
사도바울이 선교사들에게도 참된 선교사의 본이 되고 신학자들에게도 아마 사도바울이 신학자로서의 본이 되겠죠? 또 목회자로서도 본이 되겠죠? 말로만 하나님의 일 하던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신명을 바치던 사람이었고 그럴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서 또한 능력 있는 사역을 하던 사람 아닙니까?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의 병을 고치고 죽은 자들을 살리고 하는 이런 이적을 일으켰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 곁에서 주님의 일 하겠다고 서있었던 사람들이 괜히 그렇게 됐겠습니까?
교회 일꾼이 부족한 것은 다른 것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이 모자라서 일꾼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은혜가 모자라서 일꾼이 부족합니다. 나는 주일 예배드리고 이렇게 나올 때 마다 그...어떠한 심령의 동요도 없이 흔들리지 않는 영혼들을 이렇게 보면서 가슴이 무너지는 거 같아요. 이게 신앙생활이라는 게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끔씩이라도 말씀을 받고 와르르 무너져 내려야지만 이게 하다못해 신앙이 제자리에라도 있지 이게 그렇게 안 되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은 강퍆해지고 가슴은 더러운 정욕에 불타고 영혼은 싫증으로 가득차서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거 에요. 내 목회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거는 나쁜 거 아니에요? 나쁜 사람 아니냐 이거에요! 변화되지 않는 영혼들을 욕하기 전에 내 목회에 넘치는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의 몸을 아무리 망가져도 우리 몸을 욕하지 않아요. 그리고 우리의 몸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치료해주고 고치고 그러죠! 제가 아주 무좀이 굉장히 심했어요. 저녁때면 항상 집에 가서 발을 소독하고 무좀을 치료하는 게 일이었어요. 한 일 년 그렇게 신경을 썼더니 싹 낫어요. 그래서 몇 년을 행복하게 지냈는데 최근에 다시 발가락이 갈라지면서 무좀이 생겨요. 그때 에이! 더러운 놈의 발가락!! 그러고 도끼생각이 나는 게 아니라 아! 참! 내가 잘 못 돌보았구나! 다시 인제 약국에 가서 소독약하고 사다가, 사다가만 놓고 못 발랐어요. 너무 바빠서... 이제 돌보려고 해요. 그런 거거든요! 그러니 이 사도바울은 그런 능력 있는 사역을 했으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주변에 있겠어요! 참 목숨까지 내놓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었겠죠. 그런데 이제 오늘 성경에 보면 굉장히 허전한 이야기를 하죠. 머라냐면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사람밖에 없다.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그러면서 ‘디모데는 나와 함께 수고 하였느니라.’ 전 이걸 볼 때마다 위로를 받아요. 우리가 목회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목회사역을 배신하고 한때 그렇게 큰 은혜를 받았는데도 미끄러져서 정신 못 차리고 살고 이러는 거를 굉장히 못마땅하게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첫째는 사랑 없음이고 또 하나는 그런 게 그게 인간이라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아무리 능력 있게 사역을 하고 많은 사람에게 여향을 끼치는 섬김의 삶을 살면서도 우리로 하여금 세워지는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시는 거죠.
근데 오늘 관심은 이 디모데가 사도바울에게 아들 같은 사람이었겠죠. 근데 뭐 그런 사람이 디모데 한사람만 있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또 바울처럼 그렇게 유명해 지면 너도 나도 바울이 우리 아버지라고 하는 그런 사람이 많이 있었겠죠! 근데 오늘 성경은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생각할 때 모든 사람이 자기를 떠나도 늘 자신 옆에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수고한 사람으로 이 디모데가 기억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충성스러운 디모데의 모습과 함께 결별할 수 없이 떠오르는 인상이 하나 있어요. 그게 뭐예요? 연단, 연단, 연단, 끊임없는 연단. 그걸 경험한 거예요. 사도바울을 도우면서 그렇게 능력 있는 목회를 하고 교회의 최고 지도자였던 바울 옆에 있었기 때문에 온갖 혜택을 누린 게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는 연단을 받은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이 디모데를 예수께 붙잡힌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교회에서 보는 그림가운데 제일 더럽고 냄새나는 그림이 뭐냐 하면 목회자들이 혹은 교인들이 인간적인 끈끈한 정으로 결탁되어 있는 거 에요. 이거는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에 거치는 돌이 됩니다. 반드시 거치는 돌이되요. 반드시 거치는 돌이되요. 나는 내가 왜 거치는 돌이 되는지를 여러분들에게 30분에 걸쳐서 설명할 수 있어요. 근데 결론을 이야기 하자면 반드시 논리적으로도 거치는 돌이 될 수밖에 없어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거를 밖에서 생각하지 말고 우리 안에서 생각해 봅니다. 어떤 한 사람이 자연적으로 좋은 기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그것을 거스르지 않을 때에는 자연적으로 좋은 기질이 좋은 게 되요. 근데 하나님의 말씀이 그 자연적인 기질과 거스리게 될 때 그때에는 그 좋았던 것들이 가지고 있는 쓰고 더러운 물들을 그 안에서 토해내는 거 에요. 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깨뜨려지지 않은 것 중에서 인간 안에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가장 선한 사람들에게도 이 목회사역은 필요한 거란 말이에요. 디모데가 그런 연단을 받은 거예요. 이 사람이 그런 치열한 연단, 건강으로부터 오는 연단, 그다음에 목회지에서 그 수많은 영지주의자들과 그리고 당시에 있었던 수많은 이단, 유대인들, 이런 사람들과 싸우면서 몸도 연약한 목회자가 끊임없는 연단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이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께 붙들려 있게 하신 거죠. 그러면서 사도바울이 자기를 위해서 수고한 사람이 자기와 함께 수고한 사람이 이 디모데 외에는 없다. 이 편지 쓸 때 사도바울이 어디 있었죠? 잘 나갈 때는 사람들이 많이 꼬입니다. 잘 나가는 때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말이 있어요. 정승 집에 개가 죽으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데 정승이 죽으면 사람이 안돈다고...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꼬이는 거예요.
근데 이 사람은 지금 어디 있어요? 감옥에 갇혀서 사형을 기다리는 형의 집행을 기다리는 죄수의 몸 이예요. 그러니 왠만한 사람이 그 가까이에 가겠어요? 변함없이 있었던 사람이 바로 이사람, 디모데였던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연단을 받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되고 그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내가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해야 돼요.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가만두시지 않으셔요. 그 왜 노래 가운데 그런 게 있잖아요? ‘가시밭에 백합화 예수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세상적으로 말하면 장수무대에서나 부를 노래지만은 한 30년도 넘은 노래 같아요. 나도 몰랐는데 나중에 식물에 대해서 배우다 보니까 그런 얘기가 나와요. 향기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보기에는 뭐 자기를 자랑하는 것 같은 그런 향기, 향기를 뽐낸다 그러는데 그게 아니고 이 꽃에서 꽃이 향기를 내면은 그 향기가 확 쏟아져 나오면은 해충이나 벌레들이 그걸 그렇게 싫어한대요. 그래서 이 꽃향기는 공격을 받을 때 꽃이 그런 해충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위해서 자기 자신에게서 뿜어내는 것이죠. 허브같은 것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허브냄새 맡을 때는 그냥 맡으면 냄새가 안 나는데 막 나무를 때려서 한참 괴롭힌 다음에 냄새를 맡으면 냄새가 확 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아름다운 우리의 신앙의 인격이나 이런 것들을 하나님이 만드시기 위해서 연단하시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속 찌르셔요. 아프게 만드셔서 그래서 이 세상에서 아무리 하나님이 좋은걸 많이 주셔도 괴로움을 남겨두셔서 그래서 이 세상의 끈끈이에 붙어있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시는 거예요. 그런 연단을 겪으면서 이 사람이 예수께 붙잡힌 사람이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처음 맡은 그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해 나갈 수가 있었던 것 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