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19: 30)
녹취자: 김경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일곱 마디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당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는 기도를 제외한다면 메시아로서 아버지께 올린 마지막 기도였고 또 선언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다 이루었다’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 말씀입니까? 고작해야 3년 정도 공생애를 사시다가 지금은 간악한 사람들에 의해서 사형언도를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온몸에 저주를 겪으시며 죽어 가시고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이 시간에 남겨놓은 일이 얼마나 많이 있는데 예수님이 다 이루셨다고 하신 것입니까? 아직도 주님의 은혜의 말씀을 기다리는 무지몽매한 죄인들이 가득 있고 고침을 받지 못한 병자들이 아직도 예수님의 섬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건만 예수님은 도대체 무엇을 이루셨기에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남기신 바로 이 지점이 인간과 세계가 창조된 이후로 흘러내려오는 모든 역사가 만나는 지점이고 여기에서 새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말입니다. 실로 이 지점은 천지가 창조된 것과 맞먹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당신 자신이 충만한 사랑과 생명으로 넘치는 분이시기에 삼위 하나님 사이에 그 아름답고 무한한 사랑의 교통은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성향으로 나타났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셔서 그 피조물들과 관계를 맺으심으로 당신의 영광의 충만한 빛을 이 모든 창조세계에 비춤으로 당신 자신이 영광을 받고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지극한 선과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의 원인이시기도 하고 창조된 이 모든 세계의 목적이기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조화와 절제와 균정의 상태를 이루고 있었고 이 모든 세계는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대로 창조되어 이 모든 피조물들, 크게는 우주에 떠있는 거대한 천구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영적인 연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연결은 창조주 하나님의 신성의 영광의 충만한 것을 이 모든 세계 속에 찬란하게 보여주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세계를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도록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주님은 두 개의 세계를 창조하셨으니 하나는 천상의 세계요, 또 하나는 지상의 세계입니다. 천상의 세계는 당신이 직접 다스리고 천사들을 종으로 부르셨지만 지상의 세계는 당신이 직접 통치하지 아니하시고 인간을 만드셔서 당신을 닮은 모양으로 이 모든 세계를 당신처럼 통치하고 다스리도록 주님이 만들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인간은 천사를 능가하는 고도의 영혼을 가진 지성적인 피조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피조물들 중 가장 당신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게 하셨습니다. 육체와 영혼으로 창조하셔서 육체로는 이 모든 세계와 관계를 맺게 하시고 영혼으로는 당신과 직접 관계를 맺게 하심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모든 세계를 아름답게 가꾸어 주님의 신성의 영광의 충만한 것을 이 모든 세계에 가득 드러내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는 완전하고 선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 완전과 선은 더 이상 완전해질 필요도 없고 선해질 필요도 없는 그런 종류의 규정적인 선과 아름다움의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세상을 선하고 아름답게 창조하셨지만 현실태적인 선함과 아름다움과 더불어 인간의 노동과 헌신을 통해서 아름다운 것에서 더 아름답고, 선한 것에서 더 선하게 빛날 수 있도록 잠재태적인 선과 아름다움과 완전성을 이 세계에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가장 큰 의무는 위로는 하나님을 알아서 경배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신이 다스려야 할 이 모든 세계를 잘 이해하고 공부하고 함께 하나님을 섬겨야할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는 것, 그리고 자신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 모든 세계의 통치자로 세워주시기 위해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의무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가장 커다란 의무는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카테키스무스 교육을 하는데 교인들에게 항상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 왜 태어났습니까?’ 그러면 ‘스투데오 에루구숨= 우리는 공부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럽니다. ‘당신들은 무엇에 대해서 공부해야 합니까?’ 하고 물으면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와 인간, 일반으로서의 이 모든 인류와 개별적 인간으로서의 나에 대해 배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세 대상에 대한 지식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가장 잘 배울 수 있을 것이니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에 대해 배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당신의 가장 큰 의무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답을 해야 합니다. 아멘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오늘 한 가지만 배우고 가면 됩니다. 따라 해보십시오. ‘스투데오 에루구숨’ 나는 공부한다. 고로 존재한다.
어쨌든 이렇게 아름다운 지위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면서 말할 수 없는 지복 속에서 이 모든 세계의 피조물들을 돌보고 가꾸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충만하게 하는 것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었고 인간은 그 창조의 목적을 따라서 사는 그 한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행복하고 존귀한 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를 범했습니다. 이 모든 피조물들이 자신 아래 있고 오직 하나님 한분만이 자신 위에 있건만 그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명령받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명령하고 하나님조차도 자신의 지배아래에 두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를 범한 이유였습니다. 그 과일은 평범한 실과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일이 아니라 거기에 담겨있는 하나님과의 언약의 약조였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종종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도 쪼잔 하시지 그까짓 선악과 몇 푼이나 된다고 다 먹지도 못하고 한입 먹다가 목에 걸렸을 텐데 그것가지고 무엇을 그렇게 그 인간들을 처벌하고 그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들을 죄 가운데 태어나게 하셨을까?’ 하고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중국의 황제가 있다고 칩시다. 청소부가 한사람 있었습니다. 황제의 방에서 청소를 하다가 갑자기 황제가 앉는 용상으로 올라가 앉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털썩 앉아서 몇 번 엉덩이를 들썩이며 ‘에헴’ 하고 기침을 했다고 칩시다. 그때 황제가 들어오면서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추호의 용서의 의지 없이 사형 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의 의자가 닳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행동의 의미가 자기를 제거하고 황제가 되고 싶다는 야망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범죄하고 나서 죄는 물밀듯이 들어왔고 그리고 온 땅을 두루 뒤덮어서 이제는 도저히 그 죄를 떠나 살 수 없는 커다란 질병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경험하는 인간의 죽음과 불행, 고통과 질병, 인간관계의 깨어짐과 이 모든 사회의 황폐화와 고통, 비극, 이 모든 것들은 죄가 만들어낸 증상들입니다. 감기에 걸리면 콧물이 나고 열이 나고 오한이 드는 것처럼 인간이 죄라는 질병에 걸렸기 때문에 그 증상들이 이 모든 세계에 두루두루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는 죽음을 경험하며 자연과 더불어 싸우고 그리고 이 모든 세계의 환경과 더불어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비참한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은 그 죽음을 연기시키셔서 자손을 번식시키며 죽어가게 만드셨고 이어지는 자손들의 씨를 통해서 하나님은 메시아가 올 약속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사의 제도를 주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언약 안에서 주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일시적으로 죄를 용서받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자비와 사랑을 힘입어 생명과 사랑을 누리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사를 드릴 그때에는 주님과 화해를 누리고 평화를 얻을 수 있었지만 제사가 끝나면 다시 그들은 죄를 짓고 그리고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으로부터 멀어진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약속하셨습니다.
이 모든 세월들이 지나는 동안 경건한 사람들은 날마다 하나님 앞에 주시기로 약속하신 그 메시아의 출현을 고대하며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그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대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는 단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을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의 육체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도록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셨지만 그분은 낮고 천한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그가 동등 됨을 받을 것으로 여김 받을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니’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33년 동안을 이 땅에 사시면서 하나님으로서는 당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인간의 모든 고통과 쓰라린 슬픔들을 모두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오히려 우리와 함께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웠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하였습니다. 그래서 죄는 하나도 없으신 그분이 자신을 위해서는 그럴 이유가 없는 그분이 우리 같은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머리 둘 곳 없는 생애를 사셨던 것입니다.
언제나 그분은 병든 자 가까이 계셔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무지한 자를 깨우치기 위해서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어 그들을 깨우쳐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자들에게 병든 자를 고치고 그리고 문둥병 들린 자들의 헌대를 어루만져 고치시는 그 사랑의 선한 행동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목 메이는 사랑이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전달되었는지를 성경에 기록하게 하심으로 당대 사람들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그 사랑에 목메어 돌아오도록 만들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종처럼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셔서 섬기시고 그리고 우리를 위해 손발이 다 닳도록 봉사의 삶을 다 사신 후에 마지막에는 당신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그 중요하고 유일한 목적을 위해서 당신 자신의 옥체를 십자가 위에서 주님께 제물로 바쳤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서 우리 모든 구원받을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생동안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놓쳐본 일이 없는 완전하고 아름다우신 예수님이셨습니다만 우리의 죄를 모두 짊어지고 주님께서 아버지가 아니라 더러운 죄인들을 심판하시는 공정하신 하나님으로 공의의 심판을 내리실 때에 그는 두려움 속에 떨면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절규하였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으로는 주님께 버린바 되지 않으셨어도 인성으로는 우리 인간이 지은 모든 죄를 짊어지셨기 때문에 불타오르는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해야하는 그 인성 안에서의 두려움과 몸부림치는 탄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못 박히셨습니다. 죄인들을 고치고 주린 자들을 먹이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그 손에 사람들은 못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자나 깨나 우리 같은 죄인들의 구원을 생각하시던 그리스도 예수의 머리에는 굵은 가시면류관을 씌워서 온 얼굴에 피가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매일 애끊은 마음으로 기도하시던 그분의 심장에는 옆구리를 찌르고 들어간 그 악한 자들의 창이 심장을 터뜨려 물과 피를 쏟게 하였으니 사도요한이 보았다고 증언한 그 물과 피가 그렇게 쏟아진 것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비참한 죄인으로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로 죽임을 당하셔야 했습니까?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나쁜 일을 하셨습니까?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누구에게 악한 일을 행하셨습니까?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을 위해 낮고 천한 이 세상에 내려오셨고 존귀와 영광을 한 몸에 받으셨던 천상의 영광을 등지셨습니다. 그리고 오셔서 병든 자들과 함께 무지한 자들과 함께 이 세상에서 쓰레기처럼 취급받는 더러운 죄인들과 함께 당신의 온 생애를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찬양)
얼마나 우실까 하나님의 마음은 인간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제물 되실 때
예수님의 생애 중 기념할만한 시간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병든 자를 고치셔서 수많은 사람이 환호성을 지를 그때에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한번 축사하시므로 물고기와 보리떡으로 수만 명의 사람이 주린 배를 채우고 예수를 임금 삼고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를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으로 우리 인간들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능력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 그분이 감히 인간의 더러운 손아귀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에게 쏟아져야할 그 불같은 진노를 당신의 육체위에 한 몸에 받으셔서 당신의 몸을 찢고 피 흘리심으로 그것도 마지막에 숨이 넘어가는 그 순간에야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를 범한 인간 사이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제물로 당신을 바치실 그때에 당신의 옥체를 다 깨뜨려 물과 피를 모두 쏟고 한 어린양으로 우리를 위해 완전히 죽어 가시는 그 즈음에서야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까? 우리를 위해 필요한 모든 구원의 조건을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당신이 죽으시고 우리에게는 생명을 주시기 위해 감당할 수 없는 아버지의 그 진노를 감당하심으로 예수님은 다 이루셨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파괴하고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에 대해서 무한한 형벌을 받으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의 요구를 당신 자신의 무한한 죽음으로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한히 순결하고 무한히 거룩하신 예수님이시기에 무한한 형벌을 감당할만한 무한한 대가를 치룰 수가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이 죽으심으로 이제 주님을 믿고 예수께 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율법이 정죄할 수 없도록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율법보다 더 나은 한 의가 나타났으니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를 위해 죽으신 그 의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강물과 같이 넘쳐나는 더러운 죄들로 아무 희망이 없는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예수 앞에 나아가 자신이 죄인인 것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서 그 모든 물과 피를 흘려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을 고백하는 사람들마다 주님이 용서해주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자비와 사랑으로 모든 인간들을 용서해주셨기에 소문난 죄인들이 주님 앞에 용서를 받고 새 삶을 살아 십자가가 우리에게 얼마나 위대한 구원의 증거인지를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주저주저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그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날 이 캠퍼스, 그리고 오늘날 이 시대의 조국의 교회, 그리고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십시오. 정말 우리가 이 피 묻은 십자가를 오늘도 우리의 신앙의 중심으로 삼고 있습니까? 오늘도 이 불변하는 하나님의 진리,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만이 이 어두운 세상을 위한 유일한 지혜의 책이요, 우리가 숨질 때까지 증거하여야 할 불변의 메시지라고 믿고 있는지 말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 십자가의 정신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고 이제 예수와 함께 이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길을 가려고하는 사람들보다는 예수와 더불어 번영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었고 십자가가 아니라 번영이 중심이 되었고 고난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영광이 그리고 이 모든 이 세상의 허탄한 것들이 신앙의 중심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예수는 오늘도 하늘 보좌위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실 것입니다. 내려다보시면서 당신이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와 그리고 이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십자가를 떠난 삶을 보면서 어떤 마음을 품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실까요? 사랑하는 학우여러분! 세월이 많이 흘러도 불변하는 기독교의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먹고 입고 마시고 공부하고 그리고 미래를 꿈꾸는 모든 것들이 이 십자가의 사랑 하나에 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종종 저는 학교 다닐 때에 주님이 보고 싶었기 때문에 채플 실에 자주 올랐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구석구석에서 무엇 때문인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학우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기도하는 학우들이 있었고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을 생각하며 자신도 이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소수의 학우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회복해야할 신앙인 것입니다. 나는 오늘 한 사람의 목회자이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과 더불어 형제된 자로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최근에 여러분들이 어디에서든지 무릎을 꿇고
(찬양)
이 벌레 같은 나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눈물로 여러분들이 부르던 찬송가를 적셔본 일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을 생각해보십시오. 젊은 시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고 그는 일평생 오직 복음을 위해, 교회를 위해,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 선교를 위해 살았습니다. 그러나 순교의 종소리가 울려오는 인생의 황혼에서 그는 백발의 노 사도로서 하나님 앞에 감격하고 있었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함이로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로다.’ 라고 말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이 여러분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시간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은 오늘 우리의 삶이 예수 십자가의 정신에 붙들려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을 위해 죽을 수 있어야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을 드리며 마치겠습니다. 캐나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마지막 강도사인 분을 목사로 만들 때 모든 면접이 끝나고 시험도 끝났습니다. 이제 합격하게 되었고 이제는 곧 목사를 받을 자격이 주어지게 되었는데 마지막 면접관이 최종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형제여 당신은 이제 목사가 될 터인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묻겠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 와서 당신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 후 너의 살아온 인생을 내가 아는데 너같이 비루한 인간이 어떻게 감히 목사가 되겠느냐고 손가락질을 한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그랬더니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고개를 쳐들고 흐느껴 울기 시작해답니다. 그리고는 ‘오, 주님!’ 하고 주님을 불렀대요. 그랬더니 면접관이 어깨를 두드리며 ‘잘 했습니다. 그것이 정답입니다. 당신은 목자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그분과 함께 임마누엘의 샘에서 평화를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