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새벽예배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행 8:3~8)
녹취자: 이새봄
스데반의 순교의 기사가 나오고 그 바로 이어서 사울이 이제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옥에 넘기는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때까지 사울이 아직 회심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서 마음이 더 굳어지고 그리고 이제 이렇게 잘못된 생각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없애야 되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런 커다란 핍박이 일어난 것이 하나님의 커다란 섭리 속에서 일어난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스데반 한 사람이 고난을 당하고 순교를 했지만 그 고난당하고 순교를 한 것을 통해서 이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사도들을 제외해놓고는 모든 사람들이 다 흩어진 것입니다. 흩어진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핍박을 통해서 단번에 그 사람들을 흩으셔서 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주는 그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특히 이제 빌립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제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흩어졌는데 사마리아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믿고 성령이 역사하셔서 그들에게 붙어있던 악한 귀신들이 모두 떠나고 그리고 그 성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신령한 기쁨이 충분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사실 만약에 핍박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들이 사마리아를 갈 리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가기를 꺼리는 지역이었습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이 갈릴리, 사마리아, 유다, 이렇게 위로부터 아래까지 크게 세 고장으로 나뉘어지는데, 그런데 이것은 행정구역은 아닙니다. 이렇게 대개 지역이 우리로 말하자면 영남 호남 경기 이런 식으로 세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이 갈릴리는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에 자라신 곳이고 사마리아는 말하자면 혼혈 유대인들이 살고 있던 곳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하면서 이민족과 교통이 국제결혼이 이루어지면서 그래서 유대사람들은 사마리아 땅이 하나님이 버리신 땅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서로 상종할 수 없으니까 사마리아는 자기 나름대로 유대인들과는 상관이 없이 나름대로 구약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세 5경을 새롭게 해석해서 믿는 그런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떻든지 간에 불결한 땅이다 라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갈릴리를 가려면 요단을 건너서 사람들이 돌아다녔단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를 그러한 편견을 가지고 보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빌립이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핍박을 당하니까 할 수 없이 황급히 피했는데 그 사마리아 땅으로 피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더니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그리고 변화되는 아주 준비된 듯이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빌립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이 확 흩어놓으신 사람들이 급히 피신하긴 했지만 사실 그것이 무슨 복음에 대한 배반이라든지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위협을 느끼니까 속히 피한 것이고 그들 속에 여전히 예수께서 우리를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다, 라고 하는 신앙, 이것을 사람들에게 전파해서 그들을 예수 믿게 해서 말미암아 새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라는, 말하자면 이 사명감이 그대로 남아있었단 말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흩어지게 되니까 그 속에서 더 뜨겁게 역사하게 된 것입니다.
스데반이 이 복음을 전하다가 죽었다라고 하는 것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화를 주었을 것입니다. 그도 우리와 같은 일곱 집사인데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랴, 이렇게 복음을 전파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빌립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흩어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도들 외에는 전부다 흩어졌습니다. 흩어진 그 사람들이, 수없이 흩어진 사람들이 거기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는 아주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들이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정말 하나님께서 크신 역사를 그들에게 베풀어주시는, 그러니까 너무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납니다. 거기에서 주님을 믿는, 수많은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깨닫게 되는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받은 교회, 그 성도들의 무리가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 선교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시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마음속에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명, 그 것이 이 땅에 있는 동안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 가운데 살고 있는 그 삶에서 돌이키게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는 것만으로 그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화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왜 이렇게 성화의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하고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많이 고민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주님을 믿고 변화되어서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되는 일이 없었더라면 우리들이 이렇게 좋은 신자가 됨으로써 하나님이 참으로 이 땅에 존재하게 하시고 싶어 하신 그런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하는 마음과 소원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지 않겠습니까.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신앙의 길, 믿음의 길을 우리들이 걸어갈 수 있게 된 것이 우리가 주님의 복음을 듣고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길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여기 우리들이 보니까 기쁨이 충만하더라, 라고 하였습니다. 예전에는 그 귀신에 매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 얽매여 살던 사람들이 그 귀신이 쫓겨 나가면서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사 자유케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유케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자유가 바로 성령께서 복음을 통해서 인간에게 주시는 자유입니다. 얽매인 것을 풀어버리시는, 그래서 예전에는 운명에 매여 살고 두려움에 매여서 그래서 그렇게 사단의 권세에 사로잡혀서 살았지만, 복음을 듣고 성령이 임하시고 나니까 자유케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가난과 결박, 그리고 억눌림과 질병, 그리고 이 세상의 자원의 부족으로 인한 고통, 여기에 매여서 살던 사람들이 자유함을 얻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 성에 충만한 기쁨이 임하게 됐습니다. 그런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