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새벽예배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3:5)
녹취자: 김은정
형제 사랑에 이어서 음행과 감음을 주의함에 이어서 이번에는 돈을 사랑할 위험에 대해서 사도가 강력히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도가 이야기 사는 것은 돈을 사랑하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앞에 보면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을 본받고 그리고 12장에서 그런 믿음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면서 살도록 까지 부름을 받은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돈을 사랑할 위험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 전서 6장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그 돈 안에 세상이 다 들어있습니다. 돈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은 하늘나라에 속한 것을 제외하고는 땅에 있는 것은 그 돈을 가지고 거의 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사랑하는 것은 돈 속에 있는 돈으로 소유할 수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사랑과 동일한 것입니다. 사실 돈이 얼마나 편리한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사회적 계급제도들이 봉건사회의 후퇴와 함께 다 무너지고 이제는 모두 다 평등한 사회가 되었다고 하지만 돈을 가지고 있으면 평등한 사회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리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돈을 자기가 필요하는 어떤 것 이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훌륭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도구가 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두 가지가 한 인격 안에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이 이를 중히 여기든가 저를 경히 여기든가 이렇게 되는 것이지 결코 두 주인을 동시에 함께 섬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절대로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고 남은 찌꺼기로 가지고 당신을 사랑하는 그런 종류의 섬김을 받으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늘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렇지만 우상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려 했을 때 하나님은 항상 너희는 나를 섬긴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섬긴 적이 없습니까" 하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더라도 역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느냐 그리고 지난 수요날 설교한 것처럼 결국 성화의 마지막 결과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 거기서 비롯되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돈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물론 탐욕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탐욕도 결국은 깊이 캐들어가보면 어떤 것이 존재하냐면 하나님에 대한 현재적이고 인격적인 깊은 신뢰의 부족에서 돈에 대한 사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하신다. 나를 도와주실 것이다. 나와 함께 하실 것이다'이런 신앙이 없으면 결국은 자신이 자기를 보호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자신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 땅에 있는 자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자원을 가장 최소한으로 크기를 줄여서 언제든지 이 세상에 있는 자원과 바꿔서 쓸 수 있는 재화가 바로 돈입니다. 결국 돈에 대한 사랑은 탐욕도 있지만 소극적으로 볼 때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한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논리가 이어지기 때문에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리라'는 그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는 것이 돈을 사랑하는 그 일을 하지 않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돈을 사랑하게 되면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신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절실히 의지하려 하겠지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가 별로 없으면 자기 스스로 해결하려 하면 하나님을 훨씬 덜 의지하려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덜 의지하면 덜 순종하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덜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느슨한 그 삶을 통해서 계속해서 죄가 들어오고 방종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언제든지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이 우리를 버리지 아니 하시리라는 약속을 상기시켜주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이 모든 삶에 있어서도 역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족하는 마음이 있어서 과다한 욕심을 품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고 생애에 있어 진정한 가치는 이런 소유의 다과와 육신의 안락함에 있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과 얼마나 동행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이 신앙과 내적인 삶의 가치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들이 이 세상이 우리의 궁극적 나라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보다 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필요하고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나라의 시민으로써 적합하게 하나님 앞에 살아야 되겠다는 각오와 결단들이 생겨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돈에 대한 많은 사랑이 얼마나 우리의 영혼을 찌르고 더럽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그것을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올무에 빠지고 자신의 영혼을 팔아먹는 그런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래서 정말 지족하는 마음을 갖고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물질이 없이 살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또 사업을 한다든지 경제활동을 하면 많은 물질들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물질을 얼마나 많이 소유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그것에 대한 갈망으로 얼마나 가득차는지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거의 없어도 돈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꽉 차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이 있어도 돈에 대한 생각보다는 하늘의 신령한 은혜에 대하여 생각이 가득차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는 소유하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소유했냐? 버렸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향해 가지고 있는 마음의 태도 여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더럽고 부유한 사람이 되겠느냐? 심령이 깨끗하고 가난한 사람이 되겠느냐? 고 물으며 우리들은 두 말할 것 없이 후자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물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또한 심령이 깨끗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것처럼 아름다운 일이 없겠지요.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건한 사람의 손에 많은 물질들이 들려있고, 하나님 이외에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소유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손에 그것이 들려 있을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사용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정말 심령이 깨끗하고 그리고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지족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써 이 세상을 깊이 사랑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주님의 신령한 은혜와 세상을 더 많이 갈망하는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오늘 이 새벽의 시간에 우리를 주님의 교회로 불러 아버지 앞에 아뢸 수 있도록 은혜 주시니 감사합니다. 좋으신 하나님 우리 안에 있는 각양 탐심과 그리고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과 이런 모든 것들을 제하여 주시고 그래서 저희의 마음과 온 삶이 순결하고 순전하도록 주께서 축복해 주시고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저희들이 잠시 머무는 이 세상에서 소망을 주님의 나라에 두고 매일 주님을 의지하며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