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택 시무권사 MT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눅 1:31-38)
녹취자 : 조원정
우리가 읽을 때는 쉽게 읽혀지는 성경이지만 당사자인 마리아 입장에서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이 말씀이 여성으로서는 이 세상에서 보여주는 최고의 믿음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의 믿음이 어떤 종류의 믿음이었는가 하면 제일 먼저 자기 신분에 대한 자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는 주의 여종입니다. 아시다시피 마리아와 요셉은 자유인이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매인 종이 아니었습니다. 옛날 성경에는 계집종입니다. 했습니다. 우리는 가슴에 와 닿지 않지만 당시의 풍습으로 보면 전적으로 주인에게 매어 있습니다.
시편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는 모습을 종이 상전을 바람같이, 여종이 주모, 그것도 집 주인도 아니고 주모를 바라는 것 같이, 여주인일 수도 있고 자기에게 일을 시키는 상관일수도 있는데, 그것을 바람과 같이라고 시인이 묘사한 것을 보면 시인의 눈에 보기에 종들이 얼마 상전의 뜻에만 꽂혀 있는지, 여종들은 주모의 뜻이 무엇인지만 받드는지를 시인이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비유하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이 여자가 자기의 신분에 대해서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명령 앞에서 자기의 신분을 자각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화) 오늘 신문에 보니까 ktx에서 근무규칙을 만드는데 고객을 응대할 때 무릎을 꿇으라고 하진 않고 자세를 낮추어서 한쪽무릎은 꿇고 한쪽무릎은 세워서 눈높이로 응답하라는 그런 지침이 내려왔던 것입니다. 위탁한 직원들이 인권위에 제소를 해 버렸습니다. 맨 처음에 시작된 곳이 싱가폴 에어라인입니다. 싱가폴 에어라인은 비행기 요금도 비싸고 혜택도 별로 없습니다. 옛날에 싱가폴 에어라인은 마일리지도 안 줬습니다. 요즘은 줍니다. 서비스가 최고입니다. 우리나라 아시아나 수준에 될 정도입니다. 사람들이 응대를 하다가 보니까 스튜디어스는 기본적으로 키가 커야 되는데 짤막한 사람은 보통 안 쓰는데 키가 1m 65㎝는 돼야 쓰는데 앉아 있는 키가 1m 10밖에 안되는데 항상 고객들이 이러고 커피주세요, 물주세요 하는걸 보고 이게 아니구나 하며 눈높이가 되는 것입니다. 다음부터 모든 항공사에 퍼졌고 심지어는 음식점까지 퍼졌습니다. 구라파에 늙은 아줌마들 싸구려 비행기에는 절대 그렇게 하는 법이 없습니다. 할머니들이 뭘 시키면 손을 덜덜 떨고 가져와서 경로사상 때문에 시킬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 얘기를 왜 하는가 하면 눈높이로 응대하니 너무 편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위탁해서 한 직원이니까 ktx승무원 월급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서비스 정신이 없는 것입니다.
서비스가 ‘세르부스’라는 라틴어에서 옵니다. ‘세르부스’는 노예입니다. 노예 남성형입니다. ‘세르바’는 여성형입니다. ‘세르부스’에서 서비스가 왔는데 누군가 봉사하려면 스스로 마음이 다져져야 하는 것입니다. 난 이렇게 보면서 사업주들이 직원들을 폭압적으로 누르고 주일날 분노에 차서 삼성반도체까지 싸잡아서 내가 좀 밟았지만 그런 것은 옳지 않습니다. 반대로 노동자 측에도 보면 너무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네들이 그 정도는 스스로 회사에서 규칙을 주지 않아도 내려서 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그것을 제소를 하고 이러는 것입니다. 결국은 어떤 서비스의 정신이 없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명령이 내려질 때 애를 배어서 배가 남산만 해지는데 그 당시 율법에 의하면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합니까? 돌에 맞아서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일이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일을 생각했더라면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신분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냐? 그것은 하나님의 계집종일 뿐입니다.
신분을 생각하니까 너무 마음이 가벼워 지는 것입니다. 교역자 회의를 하는데 중고등부 수련회를 가는데 강사 이름을 올렸는데 듣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라 이것이 뭐냐고 했습니다. 김현길 총장 같은 분 모셔가지고 중고등부 수련회를 좀 해달라고 그러지 했더니 담당교역자가 입을 크게 벌리고 껄껄대고 웃는 것입니다. 웃음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유명한 분이 어떻게 열린교회, 그것도 전교인 수련회도 아니고 중고등부 수련회 오냐고 말입니다. 내가 가르쳐줬습니다. 당신이 보기에는 김현길 총장이나 김남준 목사나 또 교계에 유명한 사람들이 높이 보일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위에서 내려다보시면 다 종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당신의 말씀들을 듣고 싶어 하는지를 한 장 말고 두 장으로 간곡한 편지를 쓰고 연락을 해라. 그랬더니 비서실에서 스케줄이 꽉 잡혔는데 그날만 딱 빠졌더라는 것입니다. 연락이 온 것입니다. 우리도 성의를 다했습니다. 관광버스 세대를 빌려서 청소년 자모들이 실어서 기도원까지 보내주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이분이 거기서 학생들이 자기 강의를 듣고 학부모들이 150명이 와 가지고 강의를 듣는 것을 보면서 너무 감동을 받으며 뭐라고 그러냐 하면 나를 다시 한 번 불러주면 만사 제쳐놓고 오겠다고 해서 그 다음해에 수련회에서 그 분을 만난 것입니다. 그분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나는 한 번도 자신의 사례금이나 명예를 생각해서 집회를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또 주는데도 없습니다. 항상 돈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비행기 표도 교회 돈 주고 사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내가 오천 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집회 요청이 들어 왔는데 거절했습니다. 감정적으로 거절한 것이 아니라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못 간다고 했습니다. 웬만한 사람이면 안 가겠습니까? 미국에서 제일 큰 교회인데 그것도 지하실 교회 목사를 오라고 하는데 안 갔습니다. 그런데 9명 모이는 교회에 제가 수락을 하고 갔습니다. 왜냐하면 명수를 얘기 안 했으면 내가 못 갑니다 할 건데 9명인데요 하며 얘기를 시작하는데 도저히 수화기를 못 놓겠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일본에서 선교사들이 오라고 하는데 일본이 아니었으면 내가 못 간다고 그랬습니다. 일본이란 얘기가 나오고 방사능이 퍼졌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못 간다고 말을 못하겠는 것입니다. 왜? 자신에 대한 자각, 나는 하나님의 종일뿐이라고 생각을 하면 하나님이 쓰시겠다는 것인데 아무것도 우리에겐 너무 부담스런 일이라곤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고백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너무 간단한 기도입니다. 나를 성모마리아 만들어 주시면 제가 큰 비전을 품습니다. 아마 온 교회가 내 얼굴을 만들어서 교회당 앞에 갔다 놓을 것이고 그러면 내가 예수의 엄마란 이름을 가지고 한번 예수도 흔들면서 내 꿈을 펼쳐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관심은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십시오. 그 뜻이었습니다. 그것을 자기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보면서도 마음속으로 했던 기도가 주 뜻이 이루어지이다.
교역자들도 마찬가지이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신분을 잊어버리고 나면 모든 것이 힘듭니다. 왜 이 짐을 내가 져야하나? 왜 하필이면 교회는 우리 기수에 걸렸나? 교회 복구는 왜 하필 우리 기수에 걸렸나? 별 생각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임기 끝났을 때 일이 시작이 되지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왜 나한테는 이런 사람들만 모아서 구역을 주는 건가? 아무데 가니까는 너무 좋은 구역도 있던데, 왜 나보고 이것을 하란 것인가? 다 불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누구인가를 자각하게 되면 아무것도 우리에게 너무 큰 부담이라든지 부당한 하나님의 명령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디든지 가셔서 봉사를 하게 되면 지금도 하고 있지만 이것을 생각하십시오.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데, 내가 이 교회에서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데, 자기에 대한 자각을 하고나면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무거운 것이 없이 우리 주님께 맡기고 의지할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