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새벽예배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행 9:23-25)
녹취자 : 이시내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한 사울이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전도자가 된 것이 아니라 곧바로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전파했습니다. 특별히 이 사람이 제일먼저 유대인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던 것입니다. 물론 지역이 아직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니까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것 이외에도 사울이 회심하고 나서 즉각적으로 유대동족에 대해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채의식을 느꼈을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들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유대교의 그릇된 가르침 때문에 그 사실을 믿지 못했던 자신의 옛 과거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빌립보서에서 고백을 하기를 이전에 유익하던 것들을 다 해로 여길 뿐 아니라 배설물과 같이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 배설물이라고 하는 것은 난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고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고 하는 그러한 과거의 자기 고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게 했던,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마음에 믿어지지 못하도록 방해했던 그 모든 것들은 바로 유대교의 가르침이었고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게 했던 그 모든 것들은 사울에게 있어 배설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랬기 때문에 사울은 이제 동족들에 대해서 그 눈에 비늘같이 가려져있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하는 그래서 참된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항거하고 그리고 그 사람의 눈에서 비늘처럼 덮여있는 그것들을 열어주어야지만 되겠다는 강한 사명감 내지는 동족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꼈을 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것이 동기가 되어서 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시라는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유대인들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귀를 기울였겠지만 모두 그 도에 굴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복음을 듣던 어떤 사람들은 굴복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고 그리고 사울과 함께 신앙을 갖는 그런 길로 들어섰습니다만은 어떤 사람들은 그 복음을 듣고 마음이 강팍해져서 이제 사울을 핍박하기 시작했고 마지막에는 사울의 목숨을 노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복음은 변함이 없는 복음이지만 정말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기울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복음이 떨어져서 열매를 맺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기회가 되게 하지만 강팍하게 굳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그 복음이 떨어지는 것이 그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하는 요인이 됨으로서 그 자신이 구원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마치 봄에 내리는 비가 모든 나무에 새싹이 돋게 하고 그리고 그 내린 비로 말미암아서 모든 생물들이 살지만 그러나 살아있는 나무는 내리는 비로 인해서 싹이 나고 잎이 피게 하지만 죽어있는 나무에 내리는 봄비는 오히려 그 봄비를 맞지 않았을 때 보다 속히 썩어 들어가듯이 복음도 그런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유대인들이 복음을 듣고 마음이 강팍해지면서 사울을 죽여버림으로서 유대교를 해롭게 하는 자신들의 종교적인 대적을 제거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질적인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울을 제거하려는 계획들이 알려졌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에 사울이 피난을 가게 되는데 이 위기를 피할 때에 이를 목숨을 건지고 유대인들의 박해로부터 도망칠 수 있도록 안전하게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는데 여기에 보면 그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것은 사울의 제자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며칠 동안 있었고 복음을 전하고 잠깐 기간인데 어떻게 제자들이 생겨날 수 있나 이것은 두 가지를 말해주는데 하나는 신앙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비록 사울이 예수를 믿은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예수님을 믿는 복음을 전파하게 되자 사울을 통해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닫고 신앙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눈뜨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말하자면 신앙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가르쳐져서 그 신앙을 소유하게 될 때 어떤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되고 거기에 자신이 은혜를 받고 그 계획대로 자기 자신을 헌신하게 될 때 비록 그가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자만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 사이에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면 회심한 사울의 신앙의 깊이와 지적인 넓이를 보여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예수 믿은 지 오래된 사람보다 더 깊이 있는 신앙을 소유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참된 신앙이 무엇인가에 대한 탁월한 인식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만난 신비한 경험의 깊이에서 온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것과 함께 그런 주님과의 신비한 만남을 담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지적인 그릇이 있었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은 하나님에 대한 경험, 혹은 그 경험을 통해서 오는 신적이고 영적이며 초자연적인 빛, 지식 그런 것들을 대하게 될 때에 똑같이 그런 것들을 경험한다 할지라도 지적으로 말하자면 지식과 이성의 그릇 혹은 이성적인 추론을 할 수 있는 능력 지성적인 양이 풍부하게 되면 똑같은 경험을 했을 때에도 더 많은 계시의 양을 그의 지성 속에 담게 되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면 여러분들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제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지만 사실 저기 아프리카나 열대지방에 가면 눈이라는 단어가 있기는 있지만 하나밖에 없습니다. 눈이라는 단어밖에. 우리만 해도 사계절 중 한 계절이 눈을 볼 수 있으니까 눈이라는 단어가 꽤 여러 개입니다. 함박눈, 싸락눈, 진눈깨비 등등 시기에 따라서 내리는 첫눈 이런 거 말고도 그런 단어가 있지 않습니까 에스키모 지방에 가면은 눈을 가리키는 단어가 약 80개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늘 눈이 내리니까 세 종류를 가지고 그렇게 구분을 해낼 수는 없을 정도로 다양한 눈의 여러 측면들을 관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눈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눈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이 똑같이 눈을 딱 경험했을 때 눈에 대해 인식하는 이것이 틀릴 것 아닙니까
모든 진리는 어거스틴이 고백한대로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다른 일반적인 지식들도 많이 소유하고 그것이 자신 안에 잘 갖춰져 있을 때 주님을 만나는 은혜의 체험이 있게 되면 그것들이 신속하게 빨려 들어가면서 해석이 되어져서 사상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상이 올바르지 않을 때에는 이러한 은혜와 계시의 빛이 비쳐도 이것들을 올바르게 해석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올바른 지식을 갖고 있을 때 그 때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이 가지고 있는 많은 구약성경에 관한 지식들 그리고 인간의 본성과 종교에 관한 도리에 관한 지식들 이런 것들 중에 오류가 있었고 잘못된 해석이 존재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고 그 인식이 그의 지성의 세계 속에 비추게 되자 그가 가지고 있던 많은 지식들은 새롭게 해석되기 시작 했고 그래서 누구보다도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유능하게 증명할 수 있는 실력이 있는 전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많은 제자들이 그렇게 짧은 시간동안 생겨나게 된 것이고 거기서 목양관계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 제자들이 그를 구출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탐구하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 지식의 도를 올바로 가르쳐주는 삶을 살 때 그 때 그들이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와 은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