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lms 11
목 차
백성들이 부르짖을 때(시 11:1-4) 3
감찰하시는 하나님(시 11:5-7) 6
백성들이 부르짖을 때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시 11:1-4)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시인은 시련이 오거나 환란이 왔을 때 자신이 여호와께 피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도망을 친 것입니다. 그런데 악인이 이르기를 “너는 네 산으로 도망가라”고 합니다. 새들이 사냥꾼의 공격을 받을 때에 숲으로 들어가면 가장 유리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공중에 낮게 날아다니면 화살의 표적이 되겠지만, 숲속으로 들어가서 나무사이로 날아다니면 자기 몸을 숨길 수도 있고 화살을 피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마치 숲 속에 숨은 새가 사냥꾼의 화살을 피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이 시련을 만나고 고난을 만나게 되면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서 피하고 숨을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시인에게는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이런 시련과 고난과 도전을 만났을 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었을 것입니다. 주님께 피하는 이것이야말로 그 모든 악인의 공격, 악인의 간악함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인생의 시련들을 피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신자의 가장 커다란 신앙의 유익, 신자가 갖는 신앙의 가장 커다란 특권은 하나님께 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람들은 공격 때문에 상대방을 또 다시 공격하고, 미움 때문에 상대방을 또 다시 미워하고, 고통 때문에 상대방을 또 다시 괴롭게 하는 복수심으로 불타서 살지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악인으로 말미암아 평화의 질서가 흔들려서 고통당할 때를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로 삼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이기고 신앙으로 극복하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갑니다.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
두 번째는 이제 이 악인이 얼마나 집요하게 공격을 하는지, 마치 새를 잡는 사냥꾼이 화살을 날려서 새를 떨어뜨리고자 온 맘을 기울이는 것처럼, 악인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서 그렇게 화살을 먹인다고 표현했습니다. 사냥꾼이 새를 향하여 화살을 시위에 먹일 때 새에게 무슨 방패나 창이나 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두렵고 떨림으로 악인의 공격을 보면서 숨을 곳을 궁리하는 것처럼, 고난을 당하는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이것을 피하는 것은 시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못할 때에도 항상 두려움이 있고 항상 그 선이 있어서 넘지 못하고 혹시 선을 넘은 경우에는 마음속에서 늘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에게는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이 얼마나 악한지를 알게 됩니다. 전쟁의 역사는 무기를 계량해 온 역사입니다. 인간이 상상을 뛰어넘는 무기들을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서 실전에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볼 때는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그 경계를 넘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으니 놀랍습니다. 효과적으로 사람을 많이 죽이고 살해할 수 있도록 지극한 노력을 기울여서 어마어마한 무기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엄청난 무기들을 전쟁에 활용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미친 기운이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렇게 어마어마한 일들을 해냅니다. 악인은 여호와의 백성들을 공격함에 있어서 조금도 두려워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자기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촉하심
세 번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신데 보좌는 하늘에 있습니다. 하늘 보좌에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그 통치하시는 방식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통과 시련에 귀를 기울이시며 그들을 통촉하시는 것입니다. “통촉하신다”는 말이 원래는 불을 밝혀서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자녀의 울부짖는 소리와 고통소리를 들으면서, 그들이 왜 그렇게 흐느끼고 고통스러워하는지를 통촉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깊이 내려다보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악인을 통촉하시는 것은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이요, 하나님의 자녀를 통촉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우시기 위함입니다. 이속에서 시인은 위로를 얻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못할 때도 있고 부족할 때도 있지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깊이 통촉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그들을 도와주십니다. 도움을 입고 나면 그 다음에 시인의 마음속에는 다시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하는 간절한 소원들이 마음속에서 생겨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고난과 시련 속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 은혜와 도움을 늘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관계 안에 있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 하시도다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다”(시 11:5-7)
의인을 감찰하심
악인에게 고통을 받을 때 시인은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악인을 미워하고 의인을 감찰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찰하신다는 것은 어떤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깊은 생각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지켜보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알고 돌보시지만 특별히 의롭게 사는 사람들을 감찰하십니다. 물론 악인도 하나님이 특별히 감찰하십니다. 의인을 감찰하시는 것은 그를 고난에서 건지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함이지만, 악인을 감찰 하는 것은 그를 징벌하고 심판하기 위함입니다.
시인도 비록 죄를 지을 때도 있고, 넘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감찰하는 것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의로운 사람은 아니지만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의로운 사람으로 주님께 도움과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인이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심판을 준비하시는 것이 자신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신앙은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고, 보이는 난관들을 극복하며 위로를 얻고 안식을 얻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항상 의인이 승리하고 악인이 패배하는 일들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이 보입니다. 나는 믿음을 지키며 살려고 하는데 오히려 내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악인이 승리하는 것 같은 때도 많습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데 의인이 실패하고 악인이 이기는 것 같은 때가 아주 많습니다. 시인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하며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의인은 사랑하고 악인은 싫어하신다고 하는 평범한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던지 자신이 의로우신 하나님 편에 서고 그리고 악인들 편에 서지 않는 그런 간절함을 오늘 시인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감찰하시는 이유
우리의 신앙생활도 꼭 같습니다. 신앙은 잘 이해할 수 없을 때 필요한 것입니다. 악인이 처처에 횡횡하고 그리고 우리가 올바른 삶을 살려고 할 때 하나님에 도움이 끊어진 것 같다 할지라도, 우리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결론을 알기 때문에 우리들이 중간의 과정은 잘 몰라도 하나님의 뜻을 좇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우리들이 현실 속에서 잘 이해할 수는 없어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결론을 꼭 붙들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의인들은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감찰하시고 악인들은 심판하시기 위해서 지켜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느 때에든지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실 수 있도록 의로운 자의 편에 서야합니다. 잠시는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질서 속에서 고통을 받는다 할지라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매일매일 신앙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주의 백성들이 될 때, 우리의 삶은 난관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간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매순간 주님을 붙들고 매순간 주님을 의지하면서 매순간 주님을 믿으며 걸어갔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믿음에 삶을 살아서 주님께 칭찬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입니다.
시편11편 강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