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 새벽예배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빰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시 3:5-8)
I. 환란 중 찬송의 고백이 이루어지는 방법
하나님의 말씀은 사편 제 3편 제 5절입니다. 5절부터 8절까지 구약성경 805쪽입니다. 시편 3편 5절부터 8절입니다. 내가 자고,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하여도 나는 두려워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아멘
아~, 오늘 모니터 좀 키세요. 여기 강대에 스피커 모니터 좀 키세요. 예. 오늘 여기에서 이제 이 시인이 아~ 그 그렇게 압살롬의 반역을 받아서 어~ 그 도망을 가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는데 어~ 그런 와중에서도 그 하나님께 대한 찬송을 에,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1절부터 4절까지는 지난번에 했습니다마는 이 5절에 보면은 그렇게 하나님이 나의 아, 그 나의 방패요, 영광이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라는 그런 고백이 구체적으로 그 하반부에서 어떻게 이루어져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A. 하나님의 붙들어주심으로
그 뒷부분에 오늘 보니까 아~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음. 아~ 하나님이 나를 붙드신다. 아~ 나를 붙드신다. 라고 나오는거에요. 그 어, 사실은 그 이렇게 잠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거든요. 나라에 변란이 일어나고 더군다나 그 변란을 일으킨 괴수가 자기의 아들이에요. 그 시인의 마음은 갈가리 찢어지는 것처럼 고통을 받고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에 아~, 그런 가운데에 이 시인이 어~, 내가 아~, 누워자고 깨었으니. 그 변란 속에서도 시인은 자고 깰 수가 있었습니다. 그건 하나님이 그를 붙드셨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다고 오늘 시인이 말하고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큰 환란이 일어나서 나라가 찢어지고 시인의 마음은 갈가리 찢어져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되었지만은 그러나 그 속에서 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되었지만은, 그 속에서 시인이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심으로 말미암아 평정을 유지하고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우리들이 인생을 살다가보면은 환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환란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우리의 인생 마음의 불이 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파도가 거세도 바다 위에 떠있는 배가 찬란한 불빛을 잃지않고있다면 항로를 어느정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6장에서 우리의 마음의 등불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시인은 큰 환란과 고난을 당하였지만 그 고난과 환란을 당하는 가운데서 그 말할 수 없이 괴로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붙들어주심으로 어느 정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것이 바로 신앙의 유익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다면 그러면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환란을 만나도 흔들리지않을 것이며 또 그렇지못했다면은 이 환란을 통해서 깊이 참회하는 가운데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환란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자기를 붙드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B. 하나님의 인도를 회상함으로
두 번째는 여기에 보면은 아~, 하나님께서 원수의 뺨을 치셨다고 나옵니다. 여기에 ‘뺨’이라고하는 단어는 히브리말로 ‘레히’라는 단어인데 ‘턱’입니다, ‘턱’. 인간에게 있어서 이 얼굴은 존귀의 상징이고 특별히 이 턱은 더더욱 수염과 함께 그 사람의 기품의 상징이에요. 그것을 원수들의 그 턱을 하나님께서 치셨다고하는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신 앞에서 모든 존귀한 것들을 부수고 수치스럽게 하셨다라고 하는 것이죠. 다시말해서 하나님이 시인의 편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시인은 지금은 환란을 만나서 원수들에게 쫒겨 도망을 황급히 가는 상황이지만 이전의 자신의 인생을 생각했습니다. 그 때에 수많은 원수들이 시인을 에워쌌지만은 그러나 시인은 거기에서 원수들은 부끄럽게 하시고 자기는 존귀하게하시는 것을 경험했어요. 그래서 시편 23편에서도 그는 고백하기를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라고 말할 정도로 그런 간증을 가지고있었습니다. 환란 날 고난이 겹치는 날에는 예전에 하나님과 가졌던 달콤한 시간들, 주님이 어떻게 나를 붙들고 내 인생을 인도해오셨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에 큰 유익을 주는 것이죠. 지금은 내가 미끄러져서 주님으로부터 멀어졌고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지만 내가 예전에 소시 적에 내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 살 때, 그 때에 정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그 놀라운 은혜가 내 마음에 넘치고 그리고 나의 심령에 가득 차서 하나님이 나를 어루만지시던 그 때! 그거를 생각하게되는 거죠. 그래야되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깊이 감사하며 그래서 주님께 깊이 즐거워하며 그래서 주님께 깊이 영광을 돌리며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곤고한 날에는 곤고한 지금을 보지말고 과거를 회상하세요.
(찬양)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생각하는거죠.
C. 하나님의 복을 달라고 탄원함으로
마지막 세 번째는 하나님의 복을 달라고 탄원하고있습니다. 이 복,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복은 그 자체가 소중한 것이 아니라 그 복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자기를 인정해주신다고하는 것을 깊이 경험하게 되잖아요. 그게 오히려 복 자체보다도 더 큰 복이죠, 응? 복이죠. 그렇죠?
(예화) 여러분들이 며느리로 시집살이를 하는데 어느 날 과묵하시던 시아버지가 불러서 “애야, 네가 우리 집 안에 시집 온지가 얼마나 되었냐?” “한, 십년이 되었습니다.” “그래, 네 동서들이 넷이나된다마는 정말 네가 고생을 제일 많이 했구나. 나는 네, 네가 마음쓰는 것을 보면서 이 노년에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등을 두드리고 몰래 칭찬을 해주고 손에 쥐어준 것이 응? 땅문서나 집문서가 아니어도, 응? 작은 화장품하나라고 할지라도 그 얼마나 감격하겠어요. 그게 왜 그래요? 그 손에 받아든 물건 자체가 귀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바로 그 아버지가 자기를 인정해준 표야, 그러니까 그 후에도 그 화장품을 바르면서 늘 기분이 좋은거지, 그니까 그렇게 인정받았다고 하는 사실이 그 물건보다도 더 큰 복이란말이에요. 그걸 이야기하는거에요. 그래서 시인이 여러 곳에서 ‘주는 내게 복을 주옵소서.’ 특별히 언제 그럴까? 원수들에게 에워싸여있을 때. 나를 미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너는 이제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못한다고 말할 때. 모든 희망이 끊어져서 너는 절망이라고 말할 때. 내 양심이 나를 송사하면서 너는 이제 하나님이 버리셨다라고 말할 때. 그 때 기도하는거에요. ‘주는 내게 복을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이 정말 순전해져서 그래서 하나님을 간절히 앙망하게되면은 사실은 우리는 주님이 ‘내가 너에게 무얼 줄까’ 이렇게 물어볼 때 사실은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왜? 우리의 사랑이 이 세상에 있지않으니까. 있지않으니까. 필요한게 없는거죠. 그 필요한 것은 뭐냐하면은 하나님 자신이에요. 하나님 자신이 내게 가까이 해주시는 것.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나를 인정해주시는 것. 응?
(찬양) 어디선가 들리는 주님의 음성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그거거든. 응? 그러니까 이 복이라는 거는 그런 점에서 중요한 거야, 그래서 그것이 작은 복이라도 하나님이 그 복과 함께하시면 큰 것이고요. 그것이 아무리 큰 성공이라도 거기에 하나님이 없으면 그건 복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만복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에 그런거야. 그런거야. 그래서 시인이 뭐가 필요하겠어요? 한 나라의 왕인데, 예?. 모든걸 가지고있는데. 지금 반란이 일어나서 도망가고있지마는 시인이 뭐가 필요하겠어요. 그런데 복을 달라고, 달라 그러는 거에요. 원수들을 무찔러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게 복을 주십시오.’ 응? 원수들이 일어나서 백성들을 선동할 때에 그 구실이 뭐였어요? 다윗은 하나님이 버리셨다, 하나님의 세우신 사울을 해쳤고, 사실은 해친 것도 아니지마는 사울의 가문을 무너뜨렸기 때문에 저도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못한다, 그런 비방이었어요. 근데 사실은 다윗이 사울을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응? 이루말할 수 없죠. 다윗을 그렇게 죽일려고하고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기름부어주셔 세우신 자를 손대지않았어요. 그리고 하나님께 맡겼어요. 얼마나 사랑했는데요. 망한 다음에 그 집 가문, 가솔들을 대하는 이 다윗의 인정을 보세요.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런 비방이 일어나는거에요. 근거도 없는 비방과 모욕이 다 일어나는 그 속에서 시인이 취한 태도가 뭐였는지 아세요? ‘주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이시며 나의 방패시로다. 여호와는 내게 복을 주십시오. 사람들이 무어라고 말하든지간에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신다면 저들의 입이 닫힐 것입니다.’ 응? ‘한 말씀만 해주시면 됩니다. 나는 네 편이라.’ 이거를 바라보고 사는 것이 신앙이에요. 이거를 바라보고 사는 것이 신앙이에요. 이거를 바라보고 사는 것이 신앙이에요. 이걸 바라보고 사는 것이 신앙이에요. 응? 그래서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 복을 구했고, 만복의 근원 하나님, 내게 복을 주시옵소서. 이, 그렇게 기도하지않을 수 없는, 그러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지않을 수 없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