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 새벽예배
성 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 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 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행 14:13~18)
녹취자: 이새봄
이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는 이 사람들은 분명히 하늘로부터 내려온 사람들임이 틀림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우스 신’과 ‘허메’라고 하는 그 신이, ‘헤르메스’라고 하는 신이 이제 현인신하신 것이다, 사람의 몸을 입고 아마 내려온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이제 화관을 가지고 그 다음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신들에게 제사를 드릴 준비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아주 종교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로마에서 신화에 나오는 그 많은 신들, 이것이 모두 그리스 신화에서 사실은 따온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의 개념은, 이집트나 이쪽은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이제 바람과 비, 구름, 작물의 결실, 이 모든 것들을 주관하는 신이 기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들이 노하면 나일강의 물이 범람하고 비가 오지 않고 해서 농사가 망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 신의 형상은 대부분 사람이 아니라 이 땅에서 잘 볼 수 없는 그런 신상들, 그래서 동물로 신을 삼는다는지, 이런 인간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그런 신들의 개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리스로 넘어가게 되면 이 사람들은 대부분 무역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기후의 변화도 관계가 있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신들이 관심사가 아니라 사람들이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신들을, 자신들이 신들을 만들어내는데 그 신들이 모두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신들끼리 결혼도 하고 연애도 하고 질투도 하고 거래도 하고 전쟁도 하고 하는 그런 인간중심의 신들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 사람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있지만 신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 이들이 쉽게 바울과 바나바를 제우스와 그 다음에 헤르메스라고 굳게 믿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사를 하면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이 뭐냐하면,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이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이렇게 눈길을 끄는 것은, 이렇게 영광을 받을 때에 이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이렇게 영광을 받을 때에 이 사람들은 온 마음을 다해서 이들에게 그 제사하지 못하도록 뜯어 말렸습니다. “그렇게 하지마라, 그렇게 하지마라” 그러면서 말을 안들으니까 그 옷을 찢으면서 그렇게 통분해 했던 것입니다. 옷을 찢는 것은 뭐냐하면 구약으로 보자면, 하나님 앞에 통절한 심령이 될 때, 예를 들자면, 자신의 죄를 인해서 혹은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한 소식을 듣고 통렬한 책임감을 느낄 때 옷을 찢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매우 원통한 일이 있어서 자복할 때, 원통할 때 혹은 자신의 죄를 자복할 때 옷을 찢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이 행실을 바울과 바나바가 매우 통분히 여기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이제 사도라고 나오는데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바나바는 사도가 아니잖습니까. 그래도 사도라는 말을 좀 넓은 의미에서 사용을 합니다. 그래서 열 두명 말고도 이제 거의 그들과 매우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사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통분히 여기면서 가슴을 찢는 것입니다.그러면서 우리는 너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인간에 불과하다, 우리가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로 이 허무한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데, 우리를 그렇게 하늘에서 내려온 신처럼 대접을 하고 경배하는 이 것이 합당하냐, 그러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들이 뭘 알 수 있냐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 전하는 삶 속에 있어야 될 본분입니다. 이게 뭐냐하면 오직 영광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 어떠한 영광도 가로채지 않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이제 그렇게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지 않는 삶을 살 때에 그것을 통분히 여기면서 아파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보여주어야 할 자세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바로 이런 자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통분히 여기면서 하나님 앞에 이처럼 자신들에게 제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을 꾸짖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은근히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그리고 주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할 자리에서 자신이 높임을 받는 그런 일들은 언제든지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런 일들은 언제든지 우리들에게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말하자면 약점입니다. 그런 순간이 오게 될 때에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려는 사람인지 하는 것은 이런 식으로 나타납니다. 그들은 자신을 신으로 떠받들며 자신들을 경배하는 사람들 위에 얼마든지 잠시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영광을 받는 것을 아주 더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임무는 이처럼 허무한 일에 굴복하는 사람들을 깨닫게 해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그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명을 감당해 나가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처럼 참된 복음의 도리가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자세를 여러분들이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속에 배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보면 이제 여기에서 이 사건을 계기로 사도가 다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지난 시대에는 이러한 허물들을 용서하셨지만, 다소 묵인하셨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전혀 안 보여주신 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이름을 알 수 없는 신들에게조차 감사하고 결실을 내려주고 비를 주고 곡식을 절실하게 하고 그렇게 너희를 먹고 살게 하시는 그 모든 은총을 내려주시는, 내려준 그 신들에 대해서 너희들이 감사하지만 바로 하나님이 그 일을 너희들에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 살아가시고 지금도 이 세상을 움직이고 계신,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신 것이니까, 그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그분의 이름만 높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이것을 사도들이 간절히 그들에게 당부했던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이 삶 전체 속에서 주님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생사간에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소망이시며, 그리고 그 주님만이 우리 인생의 참된 주관자라는 사실을 깊이 느끼면서 그러면서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