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6일 새벽예배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쌔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여러 성으로 다녀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행 16:1-5)
녹취자: 윤은정
이제 여기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납니다. 할례를 주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여기 디모데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이 바로 디모데를 쓸 때에 바울의 그 편지의 수신자가 되었던, 이후에 바울을 아버지처럼 여기면서 이제 신약에 훈련을 받고 ,또 같은 목회자가 되기까지 애를 쓰게 되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사람이 이제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이 사람을 어떤 목적에서 전도여행에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그때는 믿은 지가 얼마 안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때에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잘 믿는 유대인이 아니라, 그리스도 바깥에 있는 유대인들이었겠죠. 그런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거기서 이제 디모데를 할례를 시킨 것입니다. 아버지는 헬라인이고, 어머니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히브리 사람들은 혈통에 의해서 유대인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혈통에 의해서 유대인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관계가 됩니다.
무슨 뜻이냐면, 혈통이 유대인이라도 어머니를 이방인이라면 유대인 취급을 받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아버지가 이방인이어도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그 자녀는 유대인으로 취급이 됩니다. 왜냐하면은, 이 유대인이 되는 것이 혈통의 문제라기보다는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피를 받아서 유대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어머니가 이방인이면 집안에 있을 때 어머니하고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이 아이들을 옳게 교육을 시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아이들을 옳게 교육을 못시키면, 그러면, 이 아이들이 진정으로 유대인이 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제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 아이는, 이 디모데는 그야말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가 이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니까 할례를 시키는 것입니다. 인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분명히 자기가 청원을 해서, 바울 일행이 청원을 해서, 그래서‘ 이방인들을 선교하는 데에 있어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이렇게 물었더니, 이제 이방인 중에 주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주지 말고, 그리고, ‘살인과 음행과 그 다음에, 목메어 죽이는 것과 피, 네 가지를 멀리하라고 그러면은 모든 것이 괜찮겠다. 이렇게 가르켜 주기로 하자.‘ 그렇게 해놓고 기뻐하면서 그것을 갖고 와서 이제 자기가 전도한 이방교회들에 그 소식을 전해주는 가운데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이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아마 고도의 선교 전략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거기에 많이 있었으니까 ‘그 많은 유대인들에게 전도하기 위한 일종의 선교 전략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울의 입장을 두둔하고 옹호하는 변명이고, 이제 우리가 보기에는 이것이 이제 ‘사도바울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거기에 많은 유대인들이 있고, 그리고 그 유대인들이 있으니까 어떤 면에서는 선교의 목적으로 우리 유대인들이 이제 하나님을 믿는 도를 전하는데, 그런데, 이제 ‘우리 율법을 막보는 그런 종교가 아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비록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유대인이니까 할례를 행한다.‘ 이렇게 본 것입니다.
또 하나는 뭐냐 하면은, 바울이 지력의 부족으로 인해서 상황판단을 잘 못하고 엉겁결에 두려움 속에서 이 일을 행했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평가를 미루고 침묵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를 보든지 간에 이 할례를 행하는 사건은 올바르게 행한 사건이다.’ 그렇게 말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쨌든 이런 사건이 이제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사건이었고, 이 성경을 쓴 누가도 이제 이것에 대한 도덕적인 평가는 일단 유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이것은 잘못된 사건이었다라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배우고, 확신하고, 믿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쉽게 어떤 상황에서 이런 것들을 따라서 행동할 때에 이렇게 잘못을 하게 되는가 하는 것을 여기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에 있어서 항상 이제 튼튼한 신앙이 되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되는 비결이 세 가지인데, 첫째는 뭐냐하면, 잘 믿는 것, 두 번째는 탐구해서 그것을 잘 아는 것, 그 다음에 세 번째는 그것을 굽히지 않고 주장하는 것, 굽히지 않고 주장하려면은, 자기가 정확하게 잘 알아야 하고, 자기가 정확하게 잘 알기 위해서는 머리만 써서는 안 되고 주님을 믿어야 됩니다. 진리의 말씀을 잘 믿고, 그 다음에 두 번째 잘 알고,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그것을 굳세게 주장하게 될 때에 아주 튼튼하고 견고한 신앙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매일매일 살아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