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 교직원예배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찌니라 (잠언 22:28)
녹취자: 박효준
이 지계석이라는 것이 무슨 뜻이냐면 '여기는 내 땅입니다.' 라고 하는 그것을 가르키는 표시입니다. 이 표시를 지계표라고 하고 그것을 돌에 세겨서 쉽게 사라지지 않도록 박아놓은 것을 지계석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구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지계표 사상을 이해해야만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계표 사상이라는 것은 기업 사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가나안 건너편에서 제비뽑기를 합니다. 그 뽑은 제비를 가지고 가나안 땅을 그림을 그려서 가나안 땅 지도에 표시를 하는 것입니다. ‘누구의 지파, 누구의 지파’. 지파는 다시 족속으로 나누어지고 족속은 다시 씨족으로 씨족은 다시 가족으로 나누어지면서 거기에서 자기의 기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 우리가 볼 때에는 ‘그게 뭐 대단할까’ 생각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이 가만히 있는데 어디서 전화가 와서 ‘당신 할아버지가 남겨두신 땅이 있는데 아냐?’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면 있는데 와서 보겠냐?’ 그리고 만약에 여러분들에게 저 백운 호수 뒤쪽으로 들판과 산을 가르키면서 ‘이 산끝에서부터 저 골짜기 까지 당신 땅이다’ 라고 하면 밤에 집에와서 잠이 오겠습니까?
그렇게 기업을 갖게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그리고 애굽에서 430년. 애굽에 들어가기 전 아브라함과 모든 조상들은 유목을 하면서 떠돌아 다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이 땅에 우거하는 자요.’ 그러면서 자신의 신분을 나그네라고 했던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아예 처음에서부터 선택된 백성은 처음부터 땅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는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으로 간 이후 부터는 땅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땅은 생명 입니다. 땅이 있는 사람은 노예를 부리고 땅이 없는 사람은 노예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땅을 중심으로 인간이 예속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땅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처음부터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년 제도‘ 희년 제도 등을 두어서 땅을 중심으로 사람이 지배 하고 지배 받는 이 세속의 제도가 없게 만드신 것입니다. 땅을 자기의 지계표로 갖게 되는데 이 세상의 사람들이 ’이것은 내 땅이다‘ 라고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땅을 영구 임대받는 것입니다. 지계표를 거기에 세우는 것입니다.
이 지계표는 빼앗아도 죄고 빼앗겨도 죄입니다. 그러니까 욕망 때문에 다른 사람의 지계표를 치워버리고 그 땅을 강탈해도 하나님 앞에는 율법을 어기는 큰 죄입니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가 그렇게 8C에 나타나서 피를 토하듯이 외친 것은 부자들이 강포하게 땅을 그렇게 빼앗고 지계표 사상이 무너졌을 때 그들은 율법도 버린 사람이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기업인데 그것을 빼앗기는 것도 하나님 앞에 책망 받을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기업은 사실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주었는데 주시되 그 기업은 하나님이 그냥 너나 먹고 살아라 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 기업에서 농사를 짓고 땅을 경작해서 거기에서 나오는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하고 자기와 이웃을 섬겨서 그 기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좁게는 자신과 가족, 넓게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 더 넓게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이익이 되고 유익이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께 이바지 하도록 그렇게 하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리고 ‘난 그냥 불편하게 살아도 상관 없어’ 라고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신 기업 자체가 자기만을 위한것이 아니라 이웃의 행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기업 사상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기업을 빼앗길 것 같으면 거기에 철저히 대항하고 그리고 자신의 기업을 지키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기업사상입니다.
(예화) 그래서 이해안가는 대목이 나옵니다. 아합왕이 아주 나쁜 왕으로 나옵니다. 신앙이 아주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근심이 나서 병이 들었습니다. 이세벨이 ‘왜 그러세요’ 하니까? ‘너무 간절한 소원이 있는 데 이루어주는 사람이 없어. 나봇의 포도원이 너무 예쁘고 아름다운데..’ 그러니까 왕인데도 백성이 가지고 있는 포도원을 못 뺐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업 사상입니다. 동양 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가산제 국가 개념입니다. 왕위에 오르면 그 나라에 모든 영토는 땅속이든지, 하늘 위에 든지, 땅에 나는 풀포기 까지도 모두 왕의 것이고 왕의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런 나라가 아님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기업사상이 이스라엘 백성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는지 보여줍니다. 왕이라도 나의 이 기업은 뺏을 수 없다.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침에 종교개혁 역사를 읽다가 마음 아픈 일이지만, 남부 독일에서 루터파와 칼빈파가 치열하게 싸우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결국은 전쟁으로 번져서 다투게 되는데 우리 입장에서 보면 ‘대충 타협하고 믿지. 같은 개혁파 끼리..’ 그런 아쉬움이 드는데 그 당시에 문맥으로 돌아가서 보면 그들은 모두 충성스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이 짐이, 그리고 이 신학, 이것을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기업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성경을 토대로 해서 믿는 바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기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비진리(非眞理)’ 라고 생각하는 것들과 자신을 온전히 바쳐서 싸운 것입니다.
오늘 날에 평신도들을 보면은 선교등을 위해 봉사를 많이 합니다. 옛날에는 평신도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무지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 평신도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주님을 깊이 만나고 회심을 하게 되면 그 권력을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 칼빈이나 루터의 작품의 주석을 보면 ‘폐하, 이 책을 프레드릭3세에게 바칩니다.’ 등 ‘폐하...’ 이렇게 나옵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이런 권력자들에게 이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참된 신앙을 받아들이고 나면 자신의 권력을 가지고 철저하게 헌신해서 개혁자들이 참된 신앙을 자기의 나라에 펼칠 수 있도록 헌신한 것입니다. 얼마든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데 그것을 위해 전쟁을 하고 심지어는 가문이 망하기도 하는 것을 신앙으로 해냈던 것입니다. 기업사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업사상은 나랑은 상관도 없다 난 땅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구약사상의 땅의 기업은 신약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며 살아가게 될 그 영원한 생명과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업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땅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땅을 향하여 가는 그것이 예표론 적으로 보면 그것이 그리스도를 향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땅 안에서 샬롬을 누리면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은 예표론 적으로 보면 신약의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샬롬을 누리며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아갈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땅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그의 율법과 공의를 펼치심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백성을 통해서 당신의 통치와 왕권이 영적인 왕국 안에서 이 세상을 향해서 확정될 하나님의 나라의 태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지계표 사상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에게 이중으로 적용 되는 것입니다. 우선 첫째는 신앙 적으로는 우리의 지계표 사상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땅 한 평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은 없지만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있는 영생을 유업으로 지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유업을 지키기 위해서 오늘도 매일 싸우는 것입니다. 날마다 부패한 본성을 죽이고 죄와 더불어 싸우며 날마다 육신의 게으름을 이기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매달리고 이렇게 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인 우리의 유업을 하나님 앞에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 안하고 말씀에 착념안하고 기도 생활 없이 그렇게 흔들거리면서 살면 겉으로 보면 모든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영적으로는 속에 있는 기업을 계속 죄에게 빼앗기고, 세상에 빼앗기고, 마귀에게 빼앗겨서 사실은 주님이 주신 그 큰 유업이 있는데도 그 안에서 가난하게 짝이 없는 노숙자와 같은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은 지계표 사상에 충실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풍성한 것들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생활이 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지계표는 우리의 세상에서의 직업활동과 관련 있는 것입니다. 직업을 vocation 이라고 하는데 라틴어 보카치오에서 온것입니다. 보카치오는 소명 입니다. 이것을 vocation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소명입니다. 직업은 소명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직업활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은 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목적이 직장다니는 것이고, 심지어는 집에 들어올 때 까지 직장입니다. 휴식을 취하는 것도 그 다음날 직장에 가서 일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삶이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면 그 사람은 밥 벌기 위해 매일 매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이 직업 소명론을 주장했습니다. 그전까지는 노동이 하나님의 형벌의 결과라고, 인간이 죄를 지어서 받는 형벌 때문에 당하는 것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개혁자들이 노동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을 내놓았습니다. 그것은 노동이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한사람 한사람 모였을 때 각자의 유업이 있습니다. 전실장의 유업이 있고 임실장의 유업이있고 유팀장의 유업이 있고.. 이 유업은 겹치지 않습니다. 교회가 해야할 모든 일이 다 유업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 유업으로 안 덮이면 사람을 씁니다. 그래서 다 덮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자기에게 맡겨진 이 지계표를 성실하게 근실하기 지키면서 잘 해나가지 못하면 자꾸 타의에 의해서 다른 사람에게 그 지계표가 침범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장을 다니면서 보면 유능한 사람들 중에서 한가하게 다니는 사람이 없습니다. 유능한 사람들은 모두 바쁩니다.
(예화) 삼성이 얼마나 뛰어난 회사인가 봅시다. 1980년이니까 지금부터 28년 전입니다. 이 때에 이미 계약제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연봉을 얼마 받는지 모릅니다. 누설 하면 퇴사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 되는 이야기에 의하면 같은날 같은 시에 입사해서 동일 직급인데 월급이 40~60% 차이가 났다고 합니다. 이미 30년전에 해고하는 방법이 뭐냐하면 자꾸 어떤 사람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양쪽에 사람들은 정신 없이 바쁜데 이 사람은 직장에 출근해서 할 일이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심리적 으로 3개월을 버티면 철판 깐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퇴출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유사한 사상을 성경에서도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없는 자의 것을 빼앗아 있는 자에게 더 준다‘ 말씀하십니다. 달란트 맡은 비유에서 그렇게 나옵니다. 그러면 그게 기업사상과 어떻게 달라집니까? 지계표는 누구도 옮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옮기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에서 이 지계표를 이리 옮겼다가 저리 옮겼다가 하시면서 왕을 세우시기도 하고 왕을 버리시기도 하시면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마지막 결론을 내리자면 우리가 영적인 일에 있어서나 우리의 사역, 혹은 직업활동에 있어서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지계표가 있는 자신의 기업을 아주 아름답게 가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지게표가 쳐져 있는 자신의 사명지 안에서 성실하고 지혜롭게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기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람의 삶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뒤편을 보면은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잠언 23장 29절) 말씀하십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안에 주어진 유업을 누리기 위해서 마음을 다해서 늘 성실하게 힘쓰고 그래서 신앙적으로 충만해지고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직업활동, 우리의 사역, 이것을 훌륭하게 근실하게 잘 감당해서 다른 사람에게 침범당하지 않고 자신도 다른 사람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하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서 주님이 물려주신 그 기업을 가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이웃과 자기 자신에게 유익이 되도록 사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신 이유요, 목적인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