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새벽예배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히 12:28-29)
녹취자: 추진호
‘그러므로’ 라고 하는 거는 이제 그 앞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다. 그 진동치 못할 나라는 하늘나라를 이야기 하는 겁니다. 다시 하나님께서 하늘나라를 심판하셔서 흔들어 놓으시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그런 진동치 못할 나라를 우리가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럼 이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사도를 비롯해서 우리 모두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받은 그 나라 그 소유한 모든 사람이 바로 이렇게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은 사람입니다.
근데 이렇게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들이 은혜를 받자. 여러분 이 세상을 사랑하고 이 세상에서 자기 욕심을 따라서 살아가는 그 일을 위해서는 은혜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진동치 못할 하늘나라를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현실적으로 비현실적인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속에서 누리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은혜를 받아야 비로소 누리는 나라입니다. 은혜 못 받은 사람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 봤습니까? 세상을 사랑하고 자기 마음대로 정욕을 따라 살아가면 하나님도 비현실적인 분이 되고 하늘나라도 비현실적인 나라가 됩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으면 현실적인 나라가 된다는 겁니다. 은혜를 받으면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마음이 들고 오히려 하늘나라가 정말 아름다운 나라라고 하는 확신이 생깁니다. 그리고 하늘나라, 정말 그 놀라운 행복을 가진 나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이 현실보다도 하나님이 훨씬 더 실제적인 분으로 느껴지는 겁니다. 오히려 그래서 이 세상은 잠시 지나는 나그네 길이요 헛된 것이라고 부인을 하게 되고 우리가 하늘나라를 훨씬 깊이 신뢰하고 사랑하고 그렇게 변화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진동치 못할 나라를 우리가 받았으니까 그러니까 은혜를 받자. 왜입니까? 만약에 우리가 은혜를 안 받으면 진동치 못하는 나라를 받았는데도 그 나라를 위해서 바르게 살아갈 수 없다 이 얘깁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 나라를 제대로 기업으로 못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두려움과 떨림이 있기 때문에 그런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으니까 우리가 은혜를 받자. 여기서 은혜는 주관적인 은혜입니다. 그래서 무슨 뜻이냐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그 은혜가 아니라 주관적인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깊이 밀려오는 주관적인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은혜가 살아있다, 또 우리가 은혜를 받았느냐, 은혜가 떨어졌다, 그럴 때 그 은혜를 얘기하는 겁니다. 그런 은혜를 받자 이걸 보고 알 수 있는 게 뭐냐 하면 그런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도 이런 은혜를 별로 못 받을 때도 있구나. 물론 못 받을 때도 있는 겁니다. 근데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냐 하면 구원 받으면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주시지만 그러나 이후에 그 구원받은 은혜를 잘 지키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하나님의 은혜주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한번 받게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그 은혜를 보존하고 다시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러면서 그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걸 누리면서 날마다 살아가는 그런 삶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겁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우리가 그 은혜를 받자. 은혜를 받자.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혜를 우리들이 받자. 그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으니까 은혜를 받자.
뭘 위해서입니까? 뭘 위해서입니까?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해하기는 경건함이라 하는 것은 이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따라서 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가리키고 그런 경건함과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이게 오늘날 이 신약성경에서도 이게 이렇게 강조되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라고 하는 사실을 한번 주목해봅시다. 얼마나 의미심장합니까? 오늘날은 사람들이 이런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얼마나 중요하고 떨리는 것인가 이런 거 이해를 잘 안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근데 오늘 보십시오. 이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향한 깊은 두려움. 그래서 은혜를 받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만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마땅히 두려워하는 정신이 그 사람 속에 들어오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없는 사랑.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는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은 다 온전한 은혜를 받은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경험하게 되면 말할 수 없는 달콤한 사랑과 함께 어떤 말할 수 없는 경건한 두려움이 함께 밀려오게 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런 은혜를 누리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경건함과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겁니다. 우리의 일생을 사는 모든 생애의 날이 하나님을 섬기는 날이 되게 그렇게 사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 이겁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이 있는데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근데 히브리서에서는 대게 이 불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1장에서도 보면 당신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셨느니라. 결국은 하나님의 천사들의 심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심판하시는데 있어서 천사들이 수종을 드는 장면을 가리키는 겁니다. 여기 나오는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하는 것도 결국에 뭘 가리키느냐면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이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것을 가리키는 겁니다. 그래서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 그렇게 가까이 다가가고 그의 뜻대로 살아가는 그 신앙생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는 걸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에게 이런 신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가까이 가까이 하나님께로 다가가고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두려워하면서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되도록 늘 그렇게 살아갈 때 진동치 못할 그 나라가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느껴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배교, 그들은 배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은혜가 떨어지니까 배교를 하는 거지 정말 은혜 안에서 살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