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교직원예배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하는 사자와”(잠 30:20-30)
녹취자 : 허혜숙
사자가 백수의 왕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지휘자도 어렸을 적부터 사자를 많이 보면서 사자의 습성이나 혹은 생활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지혜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그 사자가 짐승 중에 가장 강하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사자로 하여금 모든 짐승들 중에 가장 강한 동물이 되게 할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우선 첫째는 정신입니다. 맹수에게는 맹수의 정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자가 강한 것입니다. 사자가 뒤로 물러설 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자가 절대 백수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이기지 못하는 짐승이 있습니다. 바로 코끼리입니다. 사자는 몸집이 커야 430kg에서 500kg 미만인데 코끼리는 5톤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아예 상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사자라고 해서 물러설 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정신력에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물러서는 모든 것들이 두려워서 물러서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경우가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피하게 됩니다. 두려워서 물러서는 것이 아닙니다. 또 어떤 일을 하려고 하다가 이 일을 할 시기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판단하게 되었을 때 뒤로 물러서게 됩니다. 그것은 판단 때문에 뒤로 물러서는 것이지 두려워서 물러서는 것은 아닙니다. 사자에게는 맹수의 정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는 불퇴전의 용기가 있습니다. 이것이 맹수의 정신이고 그 정신이 사자로 하여금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평범하고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적응을 해서 살아가는 목회자들은 이미 있는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더 이상 그런 목회자는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사자와 같은 강한 목회자가 필요합니다. 그 강함이 어디에서 나느냐면 정신에서 나는 것입니다. 맹수에게는 맹수 고유의 정신이 있었던 것처럼 목회자가 될 사람에게는 목회자가 되기에 적합한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 정신은 두려움이 없는 정신입니다. 물러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서 또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물러나는 것입니다.
바울이 믿음과 담대함을 가지고 목숨을 아끼지 않는 마음으로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유럽을 선교하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워서 물러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였기 때문에 접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물러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자기 편지 속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움이 아니요 거짓이 없는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담대한 용기와 정신이 필요합니다.
강아지가 아무리 용기를 내어도 맹수의 반열에 들 수 없습니다. 정신에 있어서 이미 맹수의 정신에 압도 당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우리 아버님이 사냥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그 때는 사는 것도 넉넉했으니까 사냥을 하셨는데 그 때 아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 그것만큼 운동이 되는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눈밭에서 짐승을 보고 발목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달리는 기분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더군다나 총을 쐈을 때 팍 쓰러지는 짐승을 보는 것이 말할 수 없는 쾌감을 준다고 합니다. 사냥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총하고 사냥개입니다. 그래서 오리를 탕 쏘면 정확히 가서 물어옵니다. 사냥꾼이 사냥개를 세 마리를 데리고 사냥을 다니는데 호랑이를 만났다고 합니다. 저는 사실 믿지 않습니다. 아마도 살쾡이를 만난 것 같습니다. 그 산에는 호랑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이야기는 어스름할 때 내려오는데 굴 같은 것이 있더랍니다. 사냥개에게 가서 물라고 했더니 코를 킁킁 거리더니 안 가더랍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굴에서 호랑이가 나타나더랍니다. 사냥개는 주인이 지시하면 사정없이 달려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 마리가 딱 땅에 붙어 서더니 오줌을 줄줄 싸더라고 합니다. 이것이 개의 정신과 맹수의 정신의 차이입니다. 이미 호랑이 같은 것이 하나 나타나서 냄새를 풍기고 모습을 드러내니까 가축의 정신은 맹수의 정신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가축은 그 맹수 앞에 네 다리가 붙어서 오줌을 줄줄 싸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사람의 정신입니다. 이 정신은 원천적으로는 소명과 함께 심겨집니다. 그러나 이 정신이 소명과 함께 심겨지지만 그러나 이 정신은 끊임없는 단련 속에서 정신이 강화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눅 1장 80절에 보면 세례요한이 어떻게 그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담대하게 맹수처럼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나왔는데 ‘아이가 자라매 심령이 강하여지고 이스라엘에 나타난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정신을 함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맹수의 정신에 충실한 사자처럼 소명이 정신에 충실해서 웬만한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지 않는 불퇴전의 자기 단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자가 사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자의 신체적 특징입니다. 사자나 호랑이나 마찬가지로 사람을 공격할 때에는 사람을 덥석 문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니고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자가 휙 하고 덤벼드는 그 순간에 이미 정신을 잃는다고 합니다. 사자가 사람이나 혹은 동물을 공격하는 수법, 특히 직립해 있는 사람을 공격할 때에는 본능적으로 직립해 있는 인간이 쓰러져야만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높이 점프하면서 앞발로 사람을 내리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보다 작은 사람이나 짐승을 쓰러뜨려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한 방을 맞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졸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건너들은 말이지만 어떤 사람이 호랑이를 만났답니다. 그래서 호랑이에게 밤에 공격을 받았는데 호랑이가 휙 하고 떠오르더니 자기가 기절을 했는데 마치 커다란 철퇴에 맞은 것처럼 자기가 쓰러졌다고 합니다. 그 사자를 가서 가만히 발을 보면 사자의 갈기에 비교해서 발이 적은 것이지 가서 보면 굉장히 큽니다. 그런데 그 발이 얼마나 유연하냐면 사자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털이 깎인 것처럼 자르르 한데 한 번 걸을 때마다 어깨 위의 뼈가 불룩 불룩 올라오는 장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주 유연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기계체조 하는 선수들의 유연성처럼 유연성이 아주 뛰어난 가운데 자기 몸이 맹수의 정신을 뒷받침 하는 것입니다. 경마장에서 말을 타는 기수들은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은 1년에 1억 5천만 원 이상을 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기수의 기본적인 자격이 몸무게가 45kg 이하여야 된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자기 체중을 관리해야 합니다.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김연아 같은 선수가 허리둘레가 38정도 된다고 하면 그 피겨스케이트를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사자가 사자일 수 있는 이유는 사자가 되기 위한 적합한 신체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되기 위한 준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준비는 불굴의 체격입니다. 사역을 하는 과정에 몸이 아프거나 건강이 이상이 생기는 것은 본인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며 좌절입니다. 그래서 내가 ‘자네 그 길을 정말 가려나’를 쓰면서 목회자가 되기 위한 처음의 준비가 육체의 준비라고 했습니다. 저는 젊었을 때 아주 건강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공부해야 한다, 이 일을 해야 한다’ 하면 잠도 물러가고 힘도 솟았습니다. 제가 신대원 다닐 때 기록이 스물 두 시간을 앉은 자리에서 에세이를 쓴 적이 있습니다. 책상 아래에 오강을 놓고...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나는데 삼위일체 공부할 때인데 스물 두 시간을 에세이를 썼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회 초기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부교역자들이 자꾸 아프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제가 묻는 것이 ‘아니 왜 아프냐? 젊은 사람이?’ 주일날 새벽기도하고 1부 설교, 2부 설교, 오후설교가 끝나면 바깥에서 저를 데려가려고 차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후 예배 설교하고 교인들 기도하라고 하고 그 차타고 가서 남의 교회 가서 집회 하고 집에 돌아오면 밤 11시였습니다. 목욕을 깨끗이 하고 자리에 앉아서 ‘나는 오늘 이 글을 써야 돼’ 그러면 새벽 4시 반까지 집중해서 글을 쓰고 다섯 시에 새벽기도 가서 새벽기도 인도하고 절대 졸지 않고 한 시간 반 이상 기도하고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이제 쉬자 그러고 두 시간 잤어요. 두 시간만 자고 일어나야지 하면 일어나서 다시 세수 하고 오후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제가 이 나이에 58권의 책을 썼습니다. 지금은 안 됩니다. 어제도 설교를 다섯 번이나 했습니다. 새벽에 아, 오늘은 이번 주에는 월요일이고 뭐고 필요 없고 회심집회를 위해서 열렬히 기도해야지, 밤새도록 소리를 내면서 앓았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몸입니다. 그래서 강한 체력을 지녀야 합니다. 허리가 망가지고 나니까 과격한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제가 여러분처럼 젊은 나이라면 과격한 운동을 하겠습니다. 스쿼시, 마라톤, 권투, 그래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불굴의 체력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사자가 사자입니다.
세 번째는 기회입니다. 사자가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사냥하는 훈련을 받는 다는 이야기는 속설로 알려졌는데 그것이 사실이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어미가 이 새끼를 데리고 가서 아주 감당할 수 있을만한 작은 짐승을 자기 새끼에게 맡깁니다. 그래서 그것을 공격하고 추격하고 잡아서 마지막에는 목을 물어뜯어서 그 숨통을 끊어놓는 과정을 아주 작은 짐승에서부터 배우게 합니다. 지금은 잘 안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어렸을 때는 투견이 있었습니다. 투견할 때 필요한 것은 강아지가 중강아지가 되기 전에 꼭 똥개를 데려다가 싸움을 붙여서 그것을 죽이도록 훈련을 시킵니다. 만약에 공격을 안 하면 두들겨 팹니다. 그래서 두세 마리 정도를 죽이도록 훈련을 시킵니다. 그 때 이 개에게서 야수적인 본능을 깨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과정을 통해서 상대방을 공격해서 단숨에 제압해서 죽여 버리는 쾌감과 공격의 기회를 터득하게 됩니다. 목회자가 되려면 정신만 있어서는 안 되고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그 기회에는 신학에 대한 이론적인 공부와 실천적으로 교회를 이끌어가고 목양할 수 있는 기술 모두를 포함합니다. 이것이 기회입니다. 라틴어로 ‘아르스’라고 합니다. 공부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공부만 해서 잘 될 것 같으면 교수들이 교회에 나오면 모두 목회를 잘해야 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신학은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공부하기 싫어하면 그것은 소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영혼도 인도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전도자로서 살면 됩니다. 목사가 되지 말고 전도자로서 살면 됩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그것도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신학적인 탐구를 죽는 날까지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기회의 일부입니다. 많이 공부한 사람이 설교를 잘 합니까? 설교를 잘 하는 사람이 목양을 잘 합니까? 목양을 잘 하는 사람이 전도를 잘 합니까? 전도를 잘 하는 사람이 교회의 조직을 잘 합니까? 따로따로 다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기회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철저히 배우는 것입니다.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비굴할 정도의 겸손한 자세와 끈기가 필요합니다. TV에서 언젠가 한 번 봤는데 닭발 집이 있는데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그 닭발을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밖에서 200번까지 표를 받고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그 닭발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기술을 전수받고 싶은데 가르쳐 주겠습니까? 1억을 준다고 해도 안 가르쳐 줍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뭐가 돈이 아쉽겠어요? 그 할머니가 그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아들한테도 그 기술을 안 가르쳐 준다고 합니다. 다 내보내고 퇴근 시간에 할머니가 혼자 양념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은 나와서 그것을 가지고 그 다음날 아침에 무쳐서 닭발을 파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가서‘할머니 내가 퇴직을 하고 먹고 살 것이 없는데 나도 닭발 집 한 번 해 보려고 하는데 양념 좀 가르쳐 주세요’하니까 ‘이 사람아 가라, 내가 우리 아들과 며느리도 안 가르쳐 주는데 어서 가’하는 것입니다. 가서 서서 3일을 기다린 것입니다. 지나가면서 저리로 가라니까 귀찮게 해 하면서 발로 차듯이 개 취급을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3일 동안 이러고 있어봐야 자기는 꼭 배워야 되겠는데 나를 개 취급해도 내가 꼭 배우고 말리라, 3일 동안 쭈그리고 서 있다가 그러지 말고 청소라도 해줘야 겠다 하면서 청소를 하고 사람이 모자라는데 그릇도 날라주고 도와주니까 처음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아무리 그래봐야 안 가르쳐주니까 가라고 몇 번 그랬는데도 일주일을 버티고 안 나가니까 할머니가 웃고 그냥 내버려두라고 하면서 앞치마까지 입고 월급도 안 받으면서 열심히 두 달을 있으니까 무 써는 법 하나를 가르쳐주더라고 합니다. 6개월이 지나는데도 안 가르쳐주는데 그러니까 리포터가 당신 그러면 언제나 가르쳐 주냐고 하니까 시기는 자기도 모르는데 자기는 꼭 배워야 되겠다고 이 할머니가 언젠가는 결국은 가르쳐주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버티는 이야기가 TV에 생생히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세요. 그래서 정신과 신체와 기회가 사자를 사자로 만드는데 그것 말고 또 하나가 있습니다. 여러분,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깁니까? 동물 전문가들에 의하면 ‘그런 싸움은 싸우면 사자가 이길 수도 있고 호랑이가 이길 수도 있는데 그런 식의 싸움이 발생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호랑이는 항상 홀로 다니는데 사자는 그렇게 강한 동물인데도 군집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호랑이는 죽어도 사자를 이길 수가 없다고 합니다. 홀로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 상황에서는 벌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자는 군집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사자들이 순식간에 협력해서 공격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호랑이는 사자를 피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자가 백수의 왕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합니까? 요즘 우리는 자기가 조금만 뭔가를 잘 하면 모두 다 독립해서 깃발을 꽂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강한 사람인데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연합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함께 연합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서로 정신도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다른 사람과 영향을 주고받고 기술도 나누고 학문도 나눠야 합니다. 우리가 여태까지 신학의 역사가 2000년 세월이 흘렀는데 여태까지 다른 사람이 학문하고, 공부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탐구한 것은 아무 상관이 없고, 오늘 내 마음에 부딪치는 것이 최고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돈키호테입니다.
그래서 개혁주의자들의 시대에까지만 하더라도, 아니 거기까지는 안 가더라도 헤르만바빙크나 벤자민 브리클리 웍필드가 소속한 월드프린스턴에까지만 가더라도 신학자의 기본은 라전어와 희랍어를 공부해서 교구들의 전집을 자유롭게 읽는 것이 신학자의 기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근대의 20세기 신학자 가운데 가장 충실했던 사람이 헤르만바빙크였습니다. 그것이 지적인 연합니다. 끊임없이 자기 스승과 동료들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담론들을 나누면서 그 안에서 오고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내용으로 가득 채워질 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상 우리가 이야기하는 개혁주의라고 하는 것도 칼빈 한 사람이었다면 칼빈주의라는 것이 성립을 하지 않았습니다. 칼빈 사후에 이어지는 약 150년 내지 160년 동안에 백여 명의 기라성 같은 학자들, 그리고 목회를 잘 할 수 있는 성학들이 나타나서 천재적인 사람들이 치열한 학문의 탐구 속에서 이 교리를 연구해 가면서 그 무자비한 카톨릭의 공격을 막아내고 그것들을 찌르고 수많은 알미니안 주의와 소시니우스 주의, 학문파, 소이우르 학파의 사상들, 아나벱티스트의 사상들, 샤벨리아니즘 이런 수많은 이단 사상들과 피 흘리는 싸움 속에서 소위 개혁주의라고 하는 이 거대한 사상이 완성이 된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사상입니다. 그래서 내가 아우구스티누스를 공부할 때에는 기독교인이 된 것에 대해서 한없는 자부심을 느꼈는데 최근에는 내가 리펀드, 개혁파의 교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 세계의 역사에서 가장 장엄한 이 지식의 체계와 사상의 체계를 가진 교파가 개혁파입니다. 그런 것들이 결국은 교류와 협력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이 인턴십 기간 동안 배워야 될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뜨거운 동지애, 그리고 우리가 모두 함께 이 길을 가는 동역자라는 것, 그리고 우리의 선배와 우리 동시대의 사람들을 통해서 지적인 교류를 나누는 이 학문적인 연대 이런 것들을 통해서 한 사람의 사자와 같은 목회자의 정신이 무리를 이루어서 한 시대의 구현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자의 강함입니다. 결국 그런 정신과 신체, 기예 그런 연합이 있기 때문에 사자는 어떤 짐승을 만나도 두려움 때문에 뒤로 물러나는 일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한 용기와 불퇴전의 각오를 가지고 피 흘리기까지 뒤로 물러서지 않은 훈련을 받아야 되겠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생활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긴 세월동안 때론 가혹하리만치 긴 세월동안 피를 흘리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난관을 만날 때에 한 번 굴복하는 것은 아주 쉽고 편합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 ‘안 됩니다, 못 하겠습니다’입니다. 사실은 솔직히 말하면 ‘힘듭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일을 하면서 그렇게 정직한 사람을 못 만났습니다. 그래서 와서 보고할 때 ‘안 됩니다’ 그렇게 먼저 보고를 합니다. 그 때 내가 타이릅니다 ‘그것이 아니라 솔직히 말하면 힘든 거지?’ ‘네 맞습니다, 되긴 됩니다’‘그러니까 항상 보고할 때 그렇게 하지 말고 똑같은 이야기인데 앞뒤를 바꿔라 안 됩니다, 힘이 들고 돈도 좀 들어갑니다, 하지 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돈도 들어가고 사람도 더 필요하고 그래서 지원이 필요 합니다 라고 말해라’똑같은 이야기인데 사람이 틀린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능력 있고 신령하고 영향력이 있는 목회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나이 들어서 갈 곳이 없어서 어느 교회에 얹혀서 그저 눈칫밥이나 먹으면서 그렇게 허접하게 있다가 정년퇴직하고 싶은 사람이 신학생 중에 누가 있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쉽게 뒤로 물러나는 사람이 많습니다. 힘들어서, 어려워서, 힘이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정주영씨가 아버지 몰래 도망을 쳐서 서울로 와서 처음 취직한 곳이 고대 앞에 있는 쌀집이었습니다. 직원을 구한다고 해서 가서 ‘저 좀 써 주십시오’ ‘그래? 자전거 탈 줄 알지?’‘못 타는데요?’ ‘그러면 안 되지, 나는 쌀 두 가마를 싣고 배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제가 메고는 갈 수 있습니다’ ‘그건 안 되지’ ‘주인님, 저에게 3일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래서 통과되면 저를 써 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안 쓰셔도 좋습니다.’ 그러면서 그날 밤부터 무릎 팍이 까지도록 밤새도록 자전거를 탔습니다. 혼자 타는 것이라면 3일 연습하면 탈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쌀 두 가마면 160kg입니다. 옛날 자전거는 허접한 짐자전거입니다. 160kg를 실으면 자전거의 중심이 흔들립니다. 한 번 쓰러지면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그 쌀을 두 가마를 싣고 탄다는 것은 저는 지금도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이 3일 만에 피눈물 나게 배워서 주인 앞에서 두 가마를 싣고 달리니까 그 주인이 ‘너는 뭐를 해도 되겠다’ 해서 그 쌀가게를 물려 준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 그룹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정신이 필요합니다. 강한 마음을 먹고 물러서지 않는 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박인중 목사님께 직접 배우진 않았지만 정말 존경합니다. 50세에 화란어를 배워서 화란으로 유학을 간 분입니다. 현직 교수로 있으면서, 그것은 해보면 알지만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50세에 혼자 독학을 해서 ‘free university’로 유학을 간 것입니다. 그 물러서지 않는 강인함, 그것이 목회자와 학자의 정신입니다.
16명이 시작을 하면 항상 마지막에 13명 14명 정도가 남습니다. 여기에서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길을 보여 줄 뿐이지 나머지는 자신을 여러분들이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를 악물고 불을 때주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수없이 긴 세월동안 쌓이고쌓이고 쌓여서 겨우 비슷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즐겨 쓰는 말 ‘한 사람의 목회자가 짧은 한 마디의 연설로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찌르는 감명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하나의 진리 때문에 가혹하리만치 긴 세월동안 피 흘리며 살아온 몸부림의 생활이 필요할 때 그 때 한 마디의 연설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사자와 같이 되어서 나타납니다. 동물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사자가 한 번 나타나서 한 번 큰 소리로 부르짖으면 동물들이 전부다 자기 굴속으로 숨는다고 합니다. 그것이 가축의 정신을 이기는 맹수의 정신입니다. 여러분들이 짧은 기간이지만 비슷하게 훈련을 받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