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농어촌 목회자 개강예배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빌 2:17)
녹취자: 홍성림
제가 최근에 40대 후반에서 50대에 들어서면서 누구라고 말씀은 안 드리겠습니다. 괄목받는 교회의 젊은 목회자들을 몇 사람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 집회도 가고 그랬습니다. 저도 목회를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물론 여러분 같은 농촌 목회는 아니지만 도시에서 지금 교회들이 안 됩니다. 어느 목회자가 믿음으로 개척교회를 하라 그래서 믿사오니 하고 개척의 문을 확 열로 나갔더니 낭떠러지더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말 안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길래 그렇게 교회가, 그런다고 그 분들이 인간적인 수를 쓰는 것도 아닌데, 사실 수를 쓴다고 목회가 된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시골목회가 아니라 도시목회로 부름을 받았고, 여러 목사님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좋은 조건에서 목회를 하고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면 무제한 헌신이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목회자 한 사람은 저도 지금 13년을 이 교회에서 목회를 했는데, 2주 이상 교회를 비워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목회자도 13년이 되었는데 아직 한 번도 안식년을 못 가져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몇 달이라도 쉬라고 충고를 하고 왔습니다. 그 무제한의 헌신, 사모님이 굉장히 순박하신 분이신데, "목사님, 저희 교회가 지난 주에 3600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저희 교회에서 주는 사례비 통장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무제한 헌신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말씀을 보니까 빌립보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헌신을 합니다. 헌신과 봉사가 있는데 그 위에 내가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된다, 관제라고 하는 것은 액체를 뿌리는 제사를 이야기합니다. 결국은 피 있는 제사 그 위에 기름 같은 것을 부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결국은 그것이 마무리입니다. 여러분, 성도들이 아무리 헌신한다고 교회가 됩니까? 절대 안 됩니다. 물론 뺀질거리는 교인들 데리고 목회를 하려면 참 힘들고 목회가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헌신적인 교인들이 있을 때 목회가 정말 힘이 납니다. 어제도 50 가까이 된 자매님 한 분이 와서 "목사님, 저 눈도 이상하고 귀도 안 들리고... 기도 좀 해주세요." 그래서 기도를 간절히 해줬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그랬습니다. "무리하지 마라." 교회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니까 건강을 돌볼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평신도들이 우리 교회에 많습니다. 정말 열심히 삽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만 있으면 목회가 저절로 됩니까? 아닙니다. 그 위에 관제와 같이 부어드리는 마무리 제사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 자신의 희생입니다. 그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시골교회에서 그렇게 고생하는 목사님들 모아놓고 더 고생하라고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고생하는 것과 헌신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고생해도 목회는 전혀 안 될 수 있고, 헌신을 많이 했는데도 고생이 안 될 수가 있습니다.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사도들이 성령강림 있고나서 복음을 전했더니 데려다가 개 패듯 패지 않았습니까? 그러고 예수를 전하지 말라고 했더니 "우리가 어떻게 안 전할 수 있겠나 한 번 생각해 봐라. 사람의 말을 듣는게 옳겠냐, 하나님 말을 듣는게 옳겠냐?" 하고 계속 전하니까 할 수 없이 놓아 줬습니다. 그랬더니 성경에서 뭐라고 했냐하면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 핍박받는 것을 인해서 기쁨이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고생입니까, 헌신입니까? 헌신입니다. 고생이 있습니까? 고생 아닙니다. 그러니까 목회의 복은 고생하는 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헌신하는 데 주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를 설립해서 목회자가 3~4년이 되었는데도 도시에서 10명도 안 모일 때 고생을 안 한다면 인간이 아닙니다. 검은 머리를 가지고 교회를 개척하러 나갔는데 한 3년 몸부림을 치니까 머리가 하얀 백발이 됩니다. 고생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고생하는데 왜 목회는 안 됩니까? 그 고생이 헌신이 아닌 것입니다. 헌신은 다릅니다. 헌신과 고생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고생은 그냥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헌신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양보할 수 없는 목표로 나아가면서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거기에 부어집니다. 정말 거기에 하나님은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저희는 저와 열린교회, 특별히 우리 주님이 사랑하셔서 쓰시는 우리 김준성 목사는 우리 모두 함께 도시에 있는 다른 교회가 느끼지 못 하는 정말 마음 깊은 소명을 느끼고 있습니다. 김목사와 저의 평생 소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빨리 열린교회 안에 국내 전도센터를 세우는 것입니다. 최소한 5명 이상의 목사와 5명 이상의 직원들, 그래서 여기에서 모든 전도 프로그램과 농촌목회의 성공사례, 그리고 농촌교회 목회자들이 은혜를 받는 비결, 그들을 후원하는 모든 시스템을 갖추어서 1000 교회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저희의 꿈입니다.
덕지중앙교회 목사님 오셨습니까? 우리가 아웃리치를 본격적으로 한 것이 1997년입니다. 지금 10년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교회에 가서 빛을 받았습니다. 물론 무교회지역 전도 계획은 제 머릿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현장에 가서 보면서 정말 하나님이 이 일을 원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이야기하면 그렇지만 제자훈련, 찬양집회가 시골교회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강해설교, 할머니들이 강해설교를 하면 안 잡니까? 제 목소리로 하면 깹니까? 해당사항이 없는 겁니다. 아무리 말끔한 성경공부 교재 같은 것은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저 교회에 가서 저희는 생생하게 봤습니다. 물론 저 교회보다 더 간증이 넘치는 곳이 많지만, 가서 교인이 얼마 모이지 않는 교회였는데 저희 팀이 가서 전도를 할 때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교회가 100명 가까이 출석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간증입니다.
그 때 그럼 거기에 무엇이 있었을까요? 우리 전도 대원들이 정말 열심히 했겠다, 물론 열심히 했습니다. 목사님이 6년 목회하시면서 다 돌지 못 하셨던 473 가정을 저희가 다 돌았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역사는 우리 목사님 마음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목사님의 마음이 정말 뜨거워지니까, 저도 시골교회를 다녀봐서 압니다. 시골교회는 우정으로 목회하는 것입니다. 거기가서 손님처럼 있으면 목회 안 됩니다. 모낼 때 가서 모도 같이 내주고 비오면 또랑도 같이 쳐주고, 같이 막걸리는 먹을 수 없지만 가끔 가서 옛날 이야기도 해주고 장기도 떠주고 하면서 친교를 맺으면서 삶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가해도 그렇게 목회를 해야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하는 동안에 우리들이 정직하게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상대적으로 상실하는 것입니다. 늘 만나던 이웃집 할아버지께 "똑바로 들어요. 할아범, 당신 예수 안 믿으면 오늘 지옥 가." 내일 안 볼 사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시골에서 목회하는 목회자들 자신은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열정을 가지고 있었어도 그렇게 5년, 10년, 15년 흐르는 동안에 이 속에서 뜨거운 복음의 열정이 함께 있으면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목회자는 아주 소수고, 이렇게 사람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는 환경 속에서 친교는 될지 모르지만 복음의 열정이 식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 분들을 매일 볼 사람들은 아니니까 아주 예의바르게 대하면서도 정직하게 복음을 전하니까 할머니들이 맨 처음에는 쓸데 없는 놈들이 왔다고 빗자루와 부삽을 집어던지고 흙을 끼얹고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가서 복음을 전했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왜 그 좋은 예수를 이제야 전해주는가?"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아무리 많이 헌신해도 목회자가 죽어야, 목회자가 고생해서는 안 되고 헌신해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여러분 혼자서는 안 됩니다.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교만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교회가 도시에 걸쳐있을 경우에는 사람이 계속 바뀌니까 조금 다릅니다. 그러나 완전 시골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가서 그 교회를 도와줘야, 지원사격을 해줘야 합니다. 우리가 가서 정직하게 복음을 전하니까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교회소식을 김목사님 통해서 상세하게 늘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들은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눈이 펑펑 오는 날에 할머니들이 교회에 못 나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목사님이 가보니까 발에다가 쇠가락지를 걸고 미끌어지는 언덕을 계속 오르다가 나는 죽어도 교회 가서 죽고 싶은데 힘이 없어서, 눈이 와서 미끌어져서 못 간다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영혼들을 끌어안고 목회하는 그것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복입니까? 제가 은퇴하고 나도 꼭 끈을 놓고 싶지 않은 일이 이 일입니다. 그래서 센터를 세워서 죽기 전에 텅 비고 목회자도 의욕을 잃어버렸던 교회 1000 교회가 일어서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청산교회 목사님도 오셨습니까? 작년에 저 교회에 가서 정말 마음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총신 후배인데, 당신 같은 사람이 있어서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거기도 목회가 안 되는 곳입니다. 그냥 그 곳에 가서 전심으로 기도하고 사모님과 빵을 만들어서 이 빵의 맛을 보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 사랑의 맛도 보게 해달라고, 그렇게라도 접촉점을 만들어서 동네 깊이 파고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생각할 수 없는 아이디어입니다. 그러니까 정말 목회자의 헌신과 눈물이 있는 그 곳에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납니다. 여러분, 너무 어려운 가운데서 목회하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지금도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계속 세울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가 생활의 문제일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자녀교육의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희 교회가 이렇게 저렇게 많이 후원을 했고, 작년 장로 임직식 때도 그랬고 제가 담임목사로, 위임목사로 임직할 때도 저희들이 시골목회자들을 다섯 곳씩 채택을 해서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 저희들이 대학 입학금까지 주는 장학증서를 내보냈습니다. 그래서 10명을 저희들이 계속해서 보내고 있고 그 아이들의 대학 첫 번째 등록금까지 우리들이 내서 이번에 한 아이가 430만 원을 타갔습니다.
우리는 그런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김목사와 이야기한 것은 우리 전략을 조금 바꾸자고 이야기했습니다. 누구의 이야기를 듣고 어렵다더라 해서 도와주는 것 말고 정말 살아있는 교회를 하려는 목회자님들을 우리들이 돕자, 그래서 후고의 염려가 없이 정말 이 시골 목회를 위해서 보람을 가지고 신명을 바칠 수 있도록 우리 교회가 온 마음을 다해서 참여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비전이 없다고 하는데, 비전이 무슨 비전인지 묻는 것입니다. 없는 청년을 시골에서 만들어냅니까?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언젠가는 노인들도 다 죽고 마을이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일본 같은 사례에서도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 목회자의 사명은 있는 동안에, 지금은 안 하지만 옛날엔 목회자가 하던 중요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요즘은 시골교회에서는 할지 모르지만 도시교회에서는 안 하는데, 목회자들이 염을 해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를 다 씻어서 자기 품에서 마지막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회의 끝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10년 동안 섬기면서 보니까 가슴에 한이 맺혀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제가 작년부터 아웃리치 가면 복음만 전하지 말고 가서 전부 다 의부모 맺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몇 지체들이 가서 양부모를 맺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전화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구들에 불은 잘 들어옵니까? 괜찮습니까?" 그랬더니 펑펑 울면서 감격을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 주려고 고구마, 감자, 콩 싸놓았으니까 와서 가져가라." 그래서 지난 번 추석 때 열 댓명이 내려가서 각기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그 고구마를 받아왔습니다. 고구마는 마트에 가면 많습니다. 다 합해도 만 원어치도 안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주면서 자식도 자기들을 버렸는데 어떤 도시 사람들이 내복까지 사가지고 와서 어머니라고 하고, 애들까지 데리고 와서는 너희 할머니니까 인사하라고 하니까 "아,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구나. 예수의 사랑이구나." 그래서 우리 교인들에게 한 사람이 적어도 열 명의 부모님을 갖자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 분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생활비를 달라고 하겠습니까, 아니면 노후대책을 세워달라고 하겠습니까?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씩 전화해서 "아버님, 평안하십니까? 제가 아버님 위해서 기도합니다." "어머님, 건강하십니까? 보일러에 불은 잘 들어옵니까?" 한 달에 한 번씩만 전화를 해주면 그렇게 감격하고 내려가면 손을 잡고 놓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식들도 안 찾아오는데, 예수 사랑 갖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들 얼굴 봐서라도 교회를 나간다는 것입니다.
전 10년을 하면서 이 시골 농어촌 전도라고 하는 것이 떡 사들고 가서 경로잔치 한 번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맺힌 한을 풀어줘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위로하고 그 다음에 떡, 미용 같은 것은 두 번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 지체들이 추석 때 열 댓명이 내려갔습니다. 그들도 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렇게 해서 위로를 해주는 것입니다. 그 사역을 함께 펼치면서 그 교회들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위해서 꼭 기도해 주십시오. 아마 이렇게 구체적인 꿈을 품은 교회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여력만 닿으면 그런 전도 센터를 세워서 목회자들을 불러서 훈련하고 또 시골교회에 선교사를 파송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선교사냐 하면 목사님들을 도와주는 선교사입니다. 목사님들을 모아서 본부에 있는 프로그램을 갖고 전도훈련도 시켜주고 목사님들에게 좋은 성경 지식도 가르쳐주고, 그 다음에 새롭게 성공한 농어촌교회의 사례들을 발표하게 해서 도전도 받게 하고 할 것입니다.
조금 있다가 청산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의 간증을 들어보십시오. 정말 놀랍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면 그런 아이디어들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저 교회가 얼마나 재미있는 교회인지 아십니까? 추수감사절에 다 나와야 합니다 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부주를 들고, 그들은 감사헌금도 아니고 부주라고 합니다. 그렇게 온 동네가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것이 선교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온 농어촌을 싸안고 그들의 아픔과 한을 씻어주고 위로해주고, 자식들은 찾아오지도 않는데 남모르는 사람이 와서 내복도 사다주고 와서 도배도 해주고 그렇게 챙겨주고 하면서 나중에 알고 보니까 예수의 사랑 때문이었더라, 그래서 그것을 끌어안고 그런 농어촌 목회자들을 파송하고 할 것입니다.
저희 교회가 드디어 올해 의료 선교회가 조직되었습니다. 40여명 멤버가 되는데, 정기적으로 의료진도 보내고, 그 분들을 치료할 수 있는 그래서 한 두가지가 아니라 가족들을 돌보는 것과 같이 전방위적으로 시골에 있는 성도들, 주민들을 섬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어청도에서 목사님이 곧 오신다고 했습니다. 정말 먼 곳, 군산에서 배 타고 3시간 반 걸리는 곳에서 오십니다. 저희가 이번에 거기에 갑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군산 해안 경찰서와 업무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거기서는 우리가 원하는 어디든지 배를 빌려주고 우리는 의료진과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주겠다고 해서 맺었습니다. 저희의 꿈은 3년 안에 배를 한 척 건조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의료진과 컴퓨터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시설, 그리고 기본적인 구제물자 같은 것들을 싣고 정말 외진 섬, 큰 섬 말고 외진 섬에 가서 마음을 다해서 그들을 진료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렇게 외롭게 사는 노인들의 눈물을 씻겨주고 싶습니다. 제가 은퇴해도 계속 지휘를 하고 싶은 일이 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물론 농어촌 목회자들의 복지도 향상되어야 하겠고 아이들의 교육 문제도 해결되어야 하겠고,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교회당도 잘 지어야 하겠고, 그런데 그것이 지어지면 교회가 부흥합니까? 시골은 도시와 다릅니다. 영적인 전쟁이 훨씬 더 강력한 곳이 시골, 그 중에서도 특별히 섬이나 어촌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목회자 자신의 헌신을 통해서 관제처럼 드려질 때 거기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찾고 있습니다. 한 번 열린교회와 관계를 맺은 교회 중에는 황당한 교회가 너무 많습니다. 전도팀들이 금식하고 기도하고 전도하러 갔는데 담임목회자는 낚싯대를 메고 고기잡으러 간 것입니다. 실화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실족을 했습니다. 어떻게 목사가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결국은 아무리 몸부림을 치고 후원을 하고 해도 그것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그것 가지고 되는 것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 너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생명이 거기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 자신이. 그래서 저는 아주 구체적으로 김목사님과 나눕니다. 이제는 우리들이 시골교회를 돕고 후원하고 하는 모든 정신적, 물질적, 신앙적인 모든 것들을 일어나려는 목회자가 있는 교회,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그 곳에서 빛을 발하려고 하는 그 교회에 우리가 모든 것을 쏟아붓자고 했습니다. 모르겠다고 하면 가르쳐주고, 와달라고 하면 가주고, 후원해달라고 하면 후원해주고, 자녀들을 맡아달라고 하면 맡아주고,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서 그런 교회가 살아나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것이 제 꿈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는 이 사역이 점점 펼쳐질 것입니다. 저는 아직 성에 안 찹니다. 올해 계획서를 보니까 600명 쯤 나가겠다고 하는데, 제가 강력하게 연초부터 주장하고 있습니다. 1000명을 훈련하고 내보내겠다고, 주일에 교회 안 지켜도 괜찮으니까 목금토일 해서 다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목회자들도 이 정도가 아니라 배 이상 모여서 50 교회 정도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가서 그렇게 복음을 전하고 오면 성도들이 불덩어리가 되어서 돌아옵니다. 열린교회에서 얼마나 편안하게 신앙생활하는지를 제가 아무리 설교해도 실감을 못 하는데, 가서 한 번 그렇게 해보고 나면 느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안일하게 살았구나, 그리고 이 세상에는 정말 예수님을 대신해서 우리가 눈물과 땀을 흘려야 할 곳이 정말 많구나.' 그래서 우리 청년들에게 도전합니다. 그냥 한 학기, 일년 정도 휴학하면 큰 일납니까? 취직 안 돼서 일부러도 휴학을 하는데 그러고 "가라. 덕지중앙교회 같은 곳에 두어명 내려가서 6개월 정도 헌신하고 오면 되지 않느냐? 주보도 만들고 가서 열심히 동네 주민에게 복음도 전하고 몇 명 안 되는 아이들 모아놓고 컴퓨터도 가르쳐 주고, 그러고 오면 후배가 또 가고." 작년부터 제가 부르짖는 것입니다. 올해는 구체적으로 청년들을 도전하려 합니다. 지금 우리가 단기 선교사들은 꽤 나갑니다. 그런데 그것 말고 "그것도 안 되면 3개월이라도 나가라. 12월, 1월, 2월 방학 때. 거기 가서 교회 환경 정리도 좀 해주고 그러면 목사님이 얼마나 힘이 나겠냐? 젊은 청년이 단 2명이라도 와서 움직이면. 그러면 내가 너희들이 거기서 묵는 것들은 우리 교회에서 다 보내주마." 그러면 그 중에서 목회자가 안 나오겠습니까? "아, 내가 이 시골 농촌에서 이 목사님의 뒤를 이어야 겠구나." 이런 사람이 틀림없이 나온다고 봅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이렇게 가야 됩니다.
절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인생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는 사역의 크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김목사님이 여기에 있지만 여기에는 여러분들이 모르는 또 다른 무거운 십자가가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제가 오죽했으면 목회하면서 6개월 동안을 하나님께 나 좀 데려가달라고 기도를 했겠습니까?
(찬양)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아멘
우리 자주 만납시다. 그래서 서로 위로합시다. 저는 여러분들이 시간만 내고 조금만 여유가 된다면 내년 부터라도 우리 수련회도 합시다. 이런 사역 수련회 말고 모여서 사모님들 위로도 해드리고 하면서 다시 모여서 같이 밤을 새면서 청산교회 같이, 덕지중앙교회 같이, 이렇게 일어나는 교회들, 정말 하나님이 새롭게 해주시는 교회들을 보면서 "아, 우리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정말 하나님이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함께 하시는구나." 이것을 보여주시는 그 안에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살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