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과 등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을 찧어 낸 순결한 기름을 켜기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잔불을 켤찌며"(레 24:1-2).
레위기 24장 1절과 2절을 봉독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을 찧어 낸 순결한 기름을 켜기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잔불을 켤찌며” 아멘. 기름과 등불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시겠습니다.
일 년 만에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동안에 영적으로 지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하셨죠?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의 등불을 밝히는 규례에 대해서 지시하시는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성막 이 등불을 밝히는 것, 이것은 성막 안에 있는 모든 하나님이 지정하신 그 제사에 쓰여 지는 물건들을 밝힐 뿐만 아니라 또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들을 위해서도 이 등불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이 등불을 꺼지지 않고 언제나 그 성막 안에서 언제나 밤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잠이 들고 아무도 보는 사람 없어도 성막에서는 이 등불이 끊이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죠. 이 제사장은 바로 이렇게 사람이 보기에는 위대할 것이 없고 하찮아 보이기까지 하는 이 성막 안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최전선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통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들을 받고 또 전달해주고 하는 가운데에 이스라엘 역사를 움직이는 인물이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등잔불을 켜도록 그렇게 명령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등잔에 쓰여 지는 기름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바로 감람유였습니다. 알다시피 히브리말로 ‘자이트’라고 하는 이 감람은 올리브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이 감람, 혹은 감람나무에 대한 기록들이 많이 나오지만 전체적으로 이 감람나무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그런 백성, 혹은 인물을 가리키는 것이죠. 그래서 기름을 짤 수 있는 많은 식물들이 있고 또 동물의 기름도 있었을 텐데 하나님께서는 유독 이 감람 열매를 찧은 그 기름으로 성막의 등불을 밝히는 거기에 사용하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은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감람나무와 같이 아주 소중한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정상적으로 이 신학의 길을 들어왔다면 아마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이 신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길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큰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 직분도 아니고 세속적인 명예가 보장된 그런 길도 아닙니다. 그리고 목회의 이 길은 끊임없는 고통과 그리고 가시밭길의 연속이에요. 나는 목회를 경험해왔고 경험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 마디의 보탬도 없이 이것은 정말 가시밭길이고 그리고 고난과 슬픔, 외로움이 가득한 길이에요. 소명이라고 하는 것은 할 게 없어서 신학을 하는 것은 우리가 소명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명은 환경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부르심에서 소명이 오는 거죠. 그래서 소명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사명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주님을 만났던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그 큰 사랑, 죄인을 용서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까지 버리신 그리스도의 그 탁월한 사랑 앞에서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 그래서 분에 넘치는 하나님의 긍휼과 그 사랑을 한 몸에 다 받고 그 은혜와 사랑이 너무나 커서 어떻게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 그래서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영혼을 위해서 무엇인가 이바지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가장 훌륭한 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길이라고 믿은 사람들이 바로 신학도들이에요. 우리에게 이런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부르심 없이 사역의 길을 걸어가는 것인데 이것은 본인을 위해서 매우 불행한 일이고 교회를 위해서도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그래서 이런 소명의 문제가 분명하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하나님 앞에 금식하고 매달리면서 ‘내가 이 길을 참으로 가야하는 필연성이 내 안에 있습니까?’ 물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어쨌든 그런 사람이 바로 여러분들이고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은 아주 소중한 감람나무 열매와 같은 사람들이에요. 더욱이 우리나라도 많이 나아져서 이제는 정규적인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이 신입 목사 되는 길을 걸어갈 수 없도록 그렇게 정착이 되었어요.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은 아마 이 길을 들어서지 않았더라면 세상에서 훨씬 훌륭한 직업을 가지고 돈도 벌고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을만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에요. 어쨌든 여러분들은 감람나무와 같이 소중한 사람들이에요. 바로 그 감람나무에서 기름을 받아서 그 기름으로 하나님의 성막의 등불을 밝히는 그 일을 하게 하신 것이에요. 의심할 필요도 없이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기름은 성령을 예표하고 있는 것이겠죠? 그렇죠? 이것이 바로 성직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가슴에 죽을 때까지 새겨두어야 하는 명제에요. 그것이 바로 이렇게 복음을 위해서 영혼들을 위해서 이 진리를 전하는 것, 그리고 이 진리를 깨닫는 것, 이 진리를 따라 사는 것, 어두운 이 세상을 향하여 이 복음으로 도전하여 그들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는 것, 그래서 모든 내 동포의 가슴에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심어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오게 하는 이 모든 것들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이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이 사역은 사역뿐만 아니라 우리 개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목회 사역의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 여러분들은 성령의 기름 같은 은혜가 심령 속에 항상 부어지는 그러한 신령한 경험 속에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성령의 기름부음은 우리를 세속적인 마음으로부터 분리시켜 신령한 것을 쫓게 하고 교인들이 가득한 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도 우리는 그 죄와는 상관이 없는 성결한 길을 걸어가도록 사모하게 만들어줍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향한 탁월한 깨달음도 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죠. 더욱이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이 사역에 있어서는 성령의 이 기름 부으심의 은혜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기름부음이 없이도 설교는 얼마든지 진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지한 설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느 정도의 감동을 받게 만들 수도 있고 지적인 내용들을 발견하는 기쁨들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르고 있는 영혼들을 후벼 파고 죄인들의 가슴에 진리의 칼을 꽂고 그들로 하여금 십자가 앞에서 진실한 참회를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도록 만들어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잠시 스쳐가고 어떤 좋은 인상을 남겨 둘 수는 있지만 말씀을 선포하는 궁극적인 목적, 하나님을 거스르고 배향하던 인간들을 진리 앞에 눈부신 빛을 발견하고 무릎을 꿇게 하고 하나님을 향해 회심하는 삶, 그래서 진리를 향해 정향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그런 놀라운 일들은 모두 인간의 상식과 자연적인 재능에 속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신령한 일이고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성령의 기름부음 없이는 다른 일은 일어나도 이런 근본적인 일을 일어나지가 않는 것입니다. 하늘을 가르고 내려오는 것 같은 진리의 찬연함, 완고하기 짝이 없던 죄인의 지성을 갈라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는 설교의 능력,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의 권세를 파하고 죄의 사슬에 얽매인 영혼들을 자유롭게 하는 복음의 자유케 하는 능력, 이 모든 것들은 성령의 기름 부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전 세대에 비해서 훨씬 체계적인 신학 교육을 하고 있고 신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지적인 수준도 예전보다는 훨씬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복음사역이 지난 세대에 우리의 선배의 그것에 비하여 성공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우리 세대는 지난 세대 선배들이 직면했던 사회와 다른 사회이고 훨씬 악하고 어두운 세대라고 말하지만 어느 시대든지 그 시대는 그랬습니다. 예전과 비교되지 않는 좋은 여건 속에서 훌륭한 자격을 갖추신 교수님들 밑에서 더 좋은 책으로 더 많은 시간을 전문적으로 공부함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목회에 있어서 추수하는 열매는 예전 시대보다 훨씬 더 많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바로 우리 사역에 있어서 성령의 충만한 은혜, 하나님의 기름 부으시는 이 충만한 이 도유의 사역이 우리에게 결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머리로부터 나온 지식은 사람의 머리에까지 다다르지만 마음으로부터 나온 지식은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다다릅니다. 더욱이 그 지식이 성령의 충만한 기름 부음으로 가득하게 될 때에 그때에 그 지식은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뿐만 아니라 그의 영혼을 찔러 쪼개고 부수어서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변화될 수 없는 그런 변화를 경험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죠. 가슴에 손을 얹고 저와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에 우리가 이런 충만한 기름 부음 받음 속에서 설교하고 또 예배를 드리고 또 기도하였습니까? 우리의 예배 생활 가운데 언제 저항할 수 없는 큰 권세로 우리에게 밀려오는 진리의 위대한 힘, 그 파도와 같은 큰 진리 앞에서 나의 지성과 존재가 하잘 것 없기 때문에 주님의 그 엄위로움과 그 탁월한 영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는 다만 주 앞에 티끌과 같사옵나이다.’ 라고 고백을 하게 되는 말씀의 경험이 우리에게 얼마나 드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인격과 우리의 사역 속에 충만한 하나님의 기름 부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연적인 재능, 훌륭한 것입니다. 저는 할 수만 있으면 신학대학에 들어오는 문을 좁게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신통치 않은 학생을 받아서 훌륭한 주의 종의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신학교가 지금과는 다른 매우 큰 변화를 경험하기 전에는 그런 일들은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좋은 학생으로 입학한 사람이 좋은 목사가 되지 들어올 때에 하나님도 제대로 못 만나고 인격도 야비하고 거기에다가 자연적인 이 지성의 능력까지 거의 없는 사람이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후에 훌륭한 주의 종이 된다고 하는 것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 우리 신학교 동기 가운데 그런 케이스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거의 못 만났습니다. 들어올 때에 조잡한 인격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20, 30년 지나도 목사가 되어서 여전히 비슷합니다. 그때 공부 안하던 사람들은 후에도 공부안합니다. 그때 신비주의적인 경향에 빠져있던 사람은 여전히 그런 문제를 일으키면서 목회를 합니다. 그러니 자연적인 능력도 얼마나 가치 있습니까? 요즘은 제가 학교에 안 가지만 신학대학원 학생들이 저희 교회에 와서 같이 공부를 개인적으로 같이 스터디를 하는데 얘기 들어보면 저는 이 학교는 잘 모르는데 총신 제가 가까우니까 대단해요. 이제 1학년밖에 안 됐는데 라틴어 원서 줄줄줄 읽어요. 독일어 원서. 뭐 소수에 불과하지만 라틴어 원서 줄줄줄 읽어요. 이스라엘에서 아예 유학을 하고 신학교에 들어온 학생들도 있고 뭐 히브리 원서, 독일어 원서, 심지어 라틴어까지 심지어는 중세 불어까지,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 사실 신학에 있어서 얼마나 유리합니까? 그렇죠? 우리가 기껏 접하는 것이 영어쪽에서 그것도 미국쪽에서 나온 자료, 그것들 중에서도 일부만 접하잖아요. 뭐 통계에 의하면 신학대학원에 다니는 학생들 가운데 영어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학생이 3%가 안 된다고 해요. 그럴 거예요. 그러니 그렇게 자연적인 능력이 뛰어나면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러나 그것도 훌륭하지만 그게 더 훌륭해지기 위해서는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성령의 기름 부음.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생겨나요. 공부를 좀 하는 학생들은 성령의 은혜에 대한 갈망이 없어요. 그리고 자기 머리만 믿어요. 그리고 얼른 유학하고 와서 어떻게 교수 좀 해보려고 생각하는데 그거 그렇게 재미있는 것 아니에요. 여기에 교수님들 계시지만 재미없어요. 또 성려의 은혜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사람들은 공부를 안 해요. 그래가지고 총신에서도 제가 이번에 수련회를 갔는데 교수님들이 너무 좋아해요. 왜냐하면 내가 공부 안 한다고 반쯤 죽였거든. 그날 하나님이 제일 많이 은혜를 주셨어요. 그래가지고 수련회가 끝나고 났는데 폐강 위기에 있던 선택과목들이 만원사례를 이루었어요. 히브리어강독, 라틴어강독, 뭐 조나단 에드워즈 특강, 뭐 청교도, 뭐 개혁신학 특강 이런 것들이 폐강 위기에 있었는데 맥시멈까지 인원들이 다 찬 거예요. 교수님들이 너무 좋아해. 공부를 안 해. 그리고 그거는 정말 잘못된 거죠. 그러니까 작년에도 제가 이 얘기를 해서 여러분들을 한 번 찌르고 갔는데 제가 목회를 한 사람으로,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 교회에 서서 성도들에게 그래도 신선하고 성경적으로 깊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설교를 하려면 최소한 5년 정도는(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기간이에요.) 육체의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공부에 쏟아 붓다가 나와야 해요. 그렇게 하면 모두 그런 설교를 할 수 있냐? 그건 아니에요. 아까 얘기했듯이 그것은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대한 체험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아무리 은혜에 대한 세계를 체험해도 지적인 역량이 축적이 안 되면 그냥 이상한 일을 하다가 끝나기가 십상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고 경험을 많이 한 사람들이 자꾸 이상한 문제를 일으키는 거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최소한 그런 정도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공부를 해야 해요. 2학년 때까지는 사역을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더라도 그리고 공부에 올인 해야 돼요. 그리고 교회에서 교사정도 하세요. 구역장정도. 그리고는 올인을 해서 마치 이 공부를 하다가 죽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쏟아 부어야 해요. 다 쏟아 부어서 최소한 3년 후 졸업할 때에 여기에서부터 이 머리까지 키로 최소한 3키 내지 6키 정도의 책을 읽어야 돼요. 그 책 속에는 설교집이나 시중에 나와 있는 이렇게 하면 목회 성공한다 그런 책은 빼놓고 신학적인 책들만 그런 정도의 양을 독서를 해야 돼요. 그런데 그런 것조차도 사실은 자연적인 재능에 지나지 않아요. 그 위에 성령의 충만한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저는 언젠가 이 24장을 히브리어 텍스트로 읽다가 아주 충격적인 경험을 했어요. 그걸 내가 오늘 좀 설명을 드릴테니까 은혜가 되는지 한 번 들어보세요. 여기에 보면 가람을 찧어 순결한 기름을 켜라고 그랬거든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찧어 라고 읽는 단어가 히브리말로 ‘카티트’라는 단어예요. 이게 피동태의 단어죠. 그런데 ‘카타트’라고 하는 동사에서 나온 형태인데 ‘카타트’는 무슨 뜻이냐면 ‘치다’, ‘때리다.’ 그러면 그대로 말한다면 무슨 뜻이냐면 감람이 있는데 그 감람을 쳐서 그래서 그것이 깨어진 상태에서 나오는 기름을 가리키는 거예요.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구약시대에 감람유 제조 방법을 이해를 해야 됩니다. 구약시대에는 이 가람나무의 열매를 짜서 기름을 만들어서 광범위하게 사용을 했어요. 이 제의에 쓰는 기름뿐만 아니라 먹기도 하고 바르기도 하고 아주 폭넓게 이 감람유를 사용을 했어요. 그런데 제조 방식이 어떻게 되냐면 우선 잘 익은 감람나무 열매를 따. 그걸 말려요. 그래서 그것을 절구에 넣고 찧어요. 이것이 ‘카타트’라는 동사가 의미하는 바에요. 쿵쿵쿵 찧어요. 그러면 감람이 깨뜨려지겠죠? 그러면 거기에서 초벌 기름이 나오는 거예요. 이 기름은 압착을 해서 짠 게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감람나무 열매가 깨뜨려지면서 자연적으로 흘러나온 기름이에요. 그것이 최고의 기름이에요. 그것이 바로 이 성소의 등불을 밝히는데 사용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먼저 기름을 받아낸 다음에 원래는 그렇게 찧은 다음에 찧은 그것을 압착기에다 넣고 돌려서 그래서 기름을 짜게 되는데 이게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쓰던 감람유에요. 이 성소의 등불을 밝히는 감람유는 그렇게 압착해서 짠 기름이 아니라 깨뜨려서 자연적인 상태에서 흘러나온 그 첫 번째 기름을 사용했던 거죠. 그런 자연적인 재능, 열심히 공부를 해서 얻게 된 성경과 신학에 관한 탁월한 지식, 그리고 어학의 능력, 이런 것들은 아주 값지고 고귀한 것이죠. 그러나 그것들은 깨뜨려진 사람의 손에 붙들릴 때에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이 충만한 기름 부으심, 우리가 무엇을 말하든지 그 말하는 진리 속에 스며들게 하는 이 신령한 하늘의 놀라운 능력, 인간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위대한 힘과 큰 능력,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자기가 깨뜨려지는 간절한 기도 속에서 나오는 것이에요. 물론 하나님의 성력의 충만한 부으심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속하지만 하나님이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갈망도 없고 은혜에 대한 목마름도 없고 자기의 부족을 깨닫는 철저한 자기 부인도 없는 사람이 어느 날 엉겁결에 성령에 충만한 능력을 받게 된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보세요. 그래서 하나님의 종인 여러분들이 자연적인 재능, 심지어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각양 좋은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자체가 성령의 충만한 기름 부으심을 대신 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것은 끊임없이 그 진리 앞에 나아가고 방망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이 깨뜨려질 때에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놀라운 거기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마치 잘 보관되었던 감람나무 열매가 절구에 의해 찧어지면서 거기에서 맑고 순결한 기름이 나오는 것과 같다고 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왜 이렇게 순결한 하나님이 집착하셨을까? 압착을 해서 기름을 짜게 되면 기름 아닌 것까지 함께 섞여서 나오겠죠. 거기에 불을 붙이면 그으름이 많이 납니다. 똑같아요. 오늘날은 목회를 하다가 하다가 잘 안 되니까 이 영의 역사를 흉내내거나 대치하는 인본주의적인 시도들이 교회 안에 많이 들어오게 되잖아요. 그렇죠? 개혁신학을 배웠는데 개혁신학을 애정을 가지고 잘 설교했더니 정말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셋씩, 넷씩 나와서 교회를 세우더라. 그러면 개혁주의를 계속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있던 교인이 자꾸 떠나. 재미가 없다고. 그리고 한 번에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끌 수 있는 그런 인본주의적인 목회를 하는 교회에서 더 재미를 느끼면서 신앙생활을 한다. 그런 목회적 상황이 되었을 때에 모든 사람이 떠나고 사모 하나 남아도 계속 개혁주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돼요? 이 이야기는 여러분들은 아직 잘 실감을 못해요. 부목사 할 때도 실감을 못해요. 그런데 십자가 세우고 교회를 개척해보면 제 이야기가 뼈 속 깊이 와 닿게 될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의 선배들이 개혁주의를 배우고도 개혁주의를 못하는 거예요. 가슴에 손을 잘 얹고 탁월하게 오직 이 개혁주의 사상만이 참 성경적 신앙입니다 라는 신념을 가지고 목회를 해서 여러분이 부러워할 정도로 이 세상에서 환영받고 성공한 교회가 어디인지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여러분들 어느 교회처럼 되고 싶어요? 아마 대답을 찾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어디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오늘날 불건전한 신비주의들이 한국 교회 안에 이 기독교 신앙을 더럽히고 있죠? 사실 가장 신비한 것이 개혁주의적 경건이 아니고 또 어디에 그런 위대한 신비가 있겠어요. 그렇죠?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지를 못하는 거죠. 하나님의 진리 앞에 비록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해서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개혁신학을 잘 배워서 신앙적인 확신을 곤고히 하게 되었고 성경을 어디를 펴든지 깊이 있는 설교를 하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갈멜산에 쌓아 올려 진 장작더미에 불과한 것이에요. 그 장작더미 그 자체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기 위한 준비일 뿐이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지는 못했어요.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은 하늘에서 불이 내리고 그것들이 확 불붙게 되었을 때에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던 거예요. 우리가 개혁자들로부터 물려받지 못한 것이 하나있어요. 초대종교 개혁자들은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었어요. 깊은 기도의 사람들이었어요.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에 은혜 허락하시네.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며 그 진리 앞에서 자기를 부스는 철저한 복종, 하나님을 더 온전히 사랑하기 위한 끊임없는 극기의 노력, 자신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거룩함에 대해서 깊이 낙심하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붙드는 믿음, 그 분께 대한 전심의 의존, 이 속에서 우리의 옛 자아는 끊임없는 타격을 입고 그 진리 앞에 깨뜨려지게 되는 거예요. 그 깊은 고통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우리가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요. 그리고 그렇게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가운데 신령한 하나님의 영의 역사가 우리의 내면을 가득 채우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거예요. 하늘의 은혜로 불 붙여진 한 마디의 말은 인간의 지식으로 가공된 일만 마디의 지혜로운 말보다 사람을 바꾸어 놓는 위대한 힘이 있어요. 굴복할 수밖에 없는 큰 능력, 어디에서든지 질그릇같이 연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하잘 것 없는 인간이지만 하나님이 말씀을 외치기만 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의 나타남을 보여줄 수 있도록 그렇게 층만하게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 이런 사람들이 오늘날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이 세대에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말한 거죠. 지성의 가치, 학문의 가치를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훌륭하게 준비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성령의 충만의 기름 부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모두 사라지고 등불만이 남아있는 성소에서도 등불은 찬란하게 타오르고 있었어요. 성도들이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흩어진 후에도 하나님의 종은 교회를 지키는 등불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해요. 그래서 그 충만의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서 끊임없이 자기 깨어짐과 자기 부인 속에서 기도의 씨름으로 기름을 준비하고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조명을 따라서 지성을 환하게 밝혀 진리의 빛을 자신 속에 끊임없이 비추게 하는 그 지성적인 노력이 목회 사역에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우리의 사역이라고 하는 것은 목회의 성공을 통해 자신의 번영을 꿈꾸는 가장 세속인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이에요. 그래서 지금부터 그렇게 끊임없이 나는 하나님 앞에 선택된 감람나무 같이 소중한 사람이지만 끊임없이 그것들이 깨뜨려져서 순결한 기름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나의 인격을 적시고 나의 말씀 사역을 충만하게 적셔 흘러내리기까지 끊임없이 지성을 밝히고 하나님 앞에 기도로 혼신을 다하며 사는 그런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