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붙들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20:32).
이 말씀은 사도바울이 마지막, 어쩌면 순교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예루살렘으로 올라 갈 그 때에 이제 에베소 교회에 있는 장로들에게 남긴 유언적인 당부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사도바울이 이 말로 사랑하는 성도들을 대표해서 온 장로들에게 훈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던 평신도 한 사람이 교회를 떠나도 빈자리가 한동안 남는데 하물며 큰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던 사도바울과 같은 거목이 교회를 떠나게 되었으니 3년 동안이나 이분에게서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은 에베소 교회 교인들 입장에서는 아마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은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의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붙들어 주십니다. 돈 많은 사람이 교회를 나가면 교회가 재정적인 위기가 올 것 같아도 하나님이 붙들어 주십니다. 돈이 모자라면 돈이 모자라는 것을 내버려 두셔도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게 하는 은혜를 주셔서 나빠 보이는 때를 통과하면서 좋은 것을 받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교회가 이렇다는 것을 사도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정으로 보자면 그렇게 정들었던 이 교회를 떠나게 될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그때 이 장로들을 밀레도에 불러서 이제 마지막 당부를 합니다. 그때 그가 남긴 말이 우리에게 커다란 깨우침을 줍니다. 그것이 뭐냐면 내가 이제 순교의 길로 떠나가면 이 교회는 너희들이 잘 이끌어야 된다, 아니면 부목사 누구를 남기고 가니까 그 사람을 의지하거라 이렇게 하지 않고 지금, 지금이 언제 입니까? 3년동안이나 잘 목회를 하다 이제 순교의 길을 떠나야 되는 이별의 순간에, 그 지금에 나는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 주와 및 은혜의 말씀께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면 동격입니다. 주님 곧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 그런 뜻입니다. 우리 흔히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을 합니다. 무엇을 의지 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어디에 있어 기댄다는 뜻입니까? 또 우리가 주님께 붙들려 산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주님이 우리의 어디를 그렇게 붙들어 주십니까? 말을 안들으면 모가지를 붙들겠죠... 목덜미를 붙들어 주십니까? 어디를 붙들겠습니까? 그것도 사실 어떻게 보면 말이 안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말을 씁니다. 결국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하면 주님께 붙들려 산다 아니면 주님께 사로 잡힌다 주님 의지한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의지 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마음이 모아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한 심령이 되지 않으면 성경은 읽어지지 않습니다. 눈은 성경을 읽어도 성경은 성경대로 가고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 가기를 마치 톱니바퀴가 어긋나서 각자 알아서 돌아 가듯이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 마음이 모아지고 마음이 간절해지면 성경이 읽어 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경이 읽어 질때에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게 됩니다. 아 이런 말씀이 이런 뜻이었구나! 이런 약속이 있었구나!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구나! 아! 이렇구나! 깨달아 집니다. 그런데 그 단계에서 좀더 지나가면 내가 말씀을 읽는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읽습니다. 그래서 내가 살펴도 몰랐던 내 마음이 어떠하다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 보여 주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표현에 의하면 나를 내 앞에 세워 줍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은 나를 잘못된 내 앞에 세워서 주님은 보아라 이것이 바로 네 모습이다. 그렇게 일러 주십니다.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내가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읽는 것입니다. 그 단계에서 더 들어가게 되면 말씀이 나를 읽을 뿐만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강하게 사로 잡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말씀과 내 몸이 따로 노는 단계 두 번째는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하는 단계 세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읽기 시작하는 단계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스며 들어와서 나를 강하게 사로 잡는데 그 사로잡는 분이 누구신가 하면 성령님입니다. 주님입니다. 주 곧 성령님입니다. 주님의 영이 나를 강하게 사로 잡아서 이제는 말씀에 의해서 내가 잘못했구나 하나님 내가 잘못 했습니다 내가 이런 인간입니다. 이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나에게 강하게 스며 들어 와서 강하게 나를 사로 잡아 나로 하여금 그 하나님 앞에서 내가 사로 잡혀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로 잡히게 해 주시는 그것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강력하게 사로 잡을 때 그렇게 사로 잡히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이제 자기도 떠나가고 커다란 위험에 처한 에베소 교회를 두고 가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부탁한 것은 이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게 해 달라는 간구 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할 가장 절실한 기도제목입니다. 솔직히 이야기 해서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믿음을 가져서 구원에 이르러야 되겠지만 구원 받은 모든 사람들이 똑바로 살고 있습니까? 구원 받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구원 받은 예수님의 모든 사람들이 교회를 사랑하고 창조의 목적에 따라서 살려고 합니까?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이 읽혀지지 않으니까 자기가 항상 옳다고 생각하니까 자기의 결점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사로잡히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강제력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의 주리에 붙들려 매이는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그의 삶이 하나님 앞에 올바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지 교회를 다니고 회심했다는 것만 가지고 충분하지 않고 그것은 겨우 시작일 뿐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강하게 붙들리는 성도가 되어야지만 성도답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붙들어 주실 때에만 주님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지 주님이 놓으시면 예전에 아무리 훌륭한 신앙생활을 하였어도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이 사도는 에베소 교회 교인들을 주님의 은혜의 말씀에 붙들리는 성도들이 되게 해 달라고 그렇게 사랑하는 성도와 하나님께 간청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기도가 이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김영길 총장님 오셔서 여름특강을 들으면서 참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는 없지만 우리들이 늘 하는 이야기지만 그렇구나 새삼 깨닫습니다. 우리가 가난하면 돈 달라고 기도 합니다. 그려면 하나님이 돈을 주십니다. 그러면 그 순간은 하나님 앞에 응답을 받았다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안 주실때가 더 좋았을 때가 더 많습니다. 왜냐하면 안 주실때에는 달라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서 하나님을 찿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때에는 교회에 돈이 없어서 간절히 기도 했는데 돈은 안 주시고 다른것을 주시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그렇습니다. 병이 걸렸는데 병이 낮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 했더니 병은 낮지 안았는데 예수님 만나 구원받게 해 주시고 결국은 그 병 때문에 하나님이 데려 가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도 사실은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지 않았더라면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잘 살다가 죽은것 보다도 훨씬 더 행복한 것 아닙니까? 예수님 잘 믿고 죽었으면... 물론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도 잘 믿게 되고 병도 낮게 되고... 그것을 원합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 잘 믿는 것은 양념처럼 따라 오는 것이고 뒤에 무엇을 달라는 것이 훨씬 더 강력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다루시는 구나. 그래서 조금 어렵고 할 때 그 강의를 듣고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 그렇구나! 이것이 결국은 이렇게 어려우니까 기도도 하고 하나님 의지하지 아마 모든 것이 형통하면 안 그럴걸... 아마 그것도 하나님 은혜의 간섭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시면서 하나님 의지 하면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 하십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붙들리는 것 그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릴 때, 그 붙들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사실 자기 자신의 의지가 하나님 사랑에 감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뜻으로 받아 들여서 하나님의 마음과 합치를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강력하게 그렇게 하고 싶은 간절한 사모하는 마음이 될 것 아닙니까? 그것이 주님께 붙들려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 붙들려 산다고 할 때 실증내고 게으르게 사는 사람들은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모든 사람들은 우선 불꽃처럼 사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주님께 붙들려 하루종일 잤다. 주님께 붙들려 슬슬 일년동안 놀러 다녔다. 주님께 붙들려서 푹 쉰다. 그런것은 없습니다. 주님께 붙들린 삶은 하나님 앞에 받은 바 거룩한 목표를 위해서 자기를 온전히 쏟아 붓는 그런 삶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에 붙들린 삶입니다. 그런것을 강력하게 경험했던 사람이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복음에 빚진 자이다. 유대인이 사도바울이 예수님 믿는데 보태어 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맨날 핍박했습니다. 헬라인들이 사도바울 예수 믿기 전까지는 헬라인들을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닙니다. 이방인들인데 정통 유대인이 이방인들 알기를 얼마나 우숩게 생각했습니까?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이 우리 같이 예수님 잘 믿고, 또 이방인들 중에도 유대인들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 있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착하게 사는 사람들 있을 것 아닙니까? 이 다음에 죽어서 유대인들의 발 닦아주고 시중 들어주는 종이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왜 창조하셨을까? 지옥의 땔깜이나 하려고 창조 하셨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사도바울이 도대체 헬라인들에게 무슨 빚을 졌습니까? 헬라인이 무엇을 주어서 빚을 진 것이 아니고 유대인이 무엇을 주어서 빚을 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을 받고 났더니 예수님이 구원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 아직 구원을 못 받은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주님의 마음을 사도바울의 마음속에 부어 지니까 예수님에게 진 빚이 예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갚아야 할 빚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다시한번 이야기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붙들리니까 예수님께 갚아야 할 빚이 예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갚아야 할 빛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확장성입니다. 그러면 예를 들어서 이런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누군가에게 큰 신세를 졌다. 그래서 정말 생명의 은인입니다. 옛날에 나하고 같이 직장에 근무하던 직원은 가끔 노래를 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남긴 유언이 있는데 이것을 해 드려야 하는데... 무었인데 했더니 가족이 경찰 가족이었다고 합니다. 6.25때 북한이 쳐 들어 왔을 때 1순위를 죽인다는 사람들이 군인하고 경찰가족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공무원, 선생 차례대로 쭉 나옵니다. 그 다음에 목회자도 나오고 합니다. 이번에도 신문에 보니까 3명이 총살 당했다고 나오는데... 그렇게 가족들이 죽으려고 일렬로 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따발총으로 쏘려는데 그중에 어떤 완장 쓴 사람이 그냥 나 둬라 아이들도 어리고 불쌍하지 않냐? 그냥 풀어주고 가자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다 살아 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광경을 알고 있던 가족이 그것을 알리니까 아버지가 마지막에 그 아들에게 유언을 한 것입니다. 누구인지 이름도 알 수 없는데 온 가족은 그 사람 때문에 살았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든지 그 사람을 찿아서 은공을 갚아라. 찿을 수가 있겠습니까? 가능하겠습니까? 그런데 만약에 찿았다고 칩시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서 자기를 살려 준 그 사람은 죽었어요. 그 자식들이 아주 어렵게 산다면 그 자식들에게 무엇인가를 베풀겠어요 안 베풀겠어요? 자신들이 죽을 때 살려 주는데 그 아들이 보태어 준 것이 있습니까?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것이 사랑의 확장성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니까 예수님이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빚을 졌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 갑니다. 무엇이라 합니까? 내가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 같다. 언제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했습니까? 그러신적 없습니다. 그냥 예수님이 이방인들을 위해 내가 복음을 전하는 자로 내가 택한 것이다. 너를 통해서 내 뜻을 이루겠다 라고 말씀하셨지 너 복음 전해 안 전하면 죽여 버리겠다 주님 그런식으로 협박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화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극단적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보여 주는 것인가 하면 사랑의 강제력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은혜의 말씀에 붙들린 삶입니다. 그것을 강하게 느끼느 것이 사명입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되겠다고 신학교에 많이 오는데 그런것을 강하게 느꼈고 그런 강한 소명이 있는 것이 교회생활속에서 확인이 되어야 합니다. 전도는 한번도 안하고 교리도 열심히 안 배우고 성경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어느 교회에 가서 교회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성도를 섬기는 것에 기쁨을 누리는 것도 아니고 구령의 열정도 별로 없고 그러면서 소명을 받았다고 하는데 가짜입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런것입니다. 그 말씀에 그렇게 붙들려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할 가장 강한 기도제목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천명이 모여도 못하는 것을 열명이 할 수 있습니다. 헌신하기 싫어 하는 사람 천명은 헌신하고자 하는 열명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망해 버렸지만 옛날에 우리나라 군인들로 죽었습니다. 월남전에 가서... 월남이 망하던 역사를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오늘 미군에게 무기를 받으면 그 다음 3일 뒤에는 월남군하고 미군들이 자기가 준 총에 맞아 죽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월남 군인들이 그것을 받아 가지고 술집에서 술 바꾸어 먹고 무기를 파는 것입니다. 그 무기가 베트콩에게 넘어 가는 것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 소용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에 강하게 붙들려 살아야 합니다. 꾸역꾸역 교회에 나오는 것 그것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나와야지 은혜를 받을 것 아닙니까? 집에서 놀면 은혜를 못 받습니다. 그러나 나오는 것은 하나의 기회이지 그것이 새사람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뜰만 밟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강력하게 탄핵합니다. 여러분 제가 17년이나 되었지만 교회 문 앞에서 성도들하고 수요일은 꼭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절대 안하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도사 생활 할 때 목사님 담임 목사님 고개 숙이시며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해서 제가 물어 보았습니다. 목사님 무엇이 그렇게 고마우세요? 교인들이 나와 주었쟎아! 나와 준 것이 뭐가 그렇게 고맙습니까? 누구를 위해 나오는 것입니까? 누구를 위해 교회에 나오나? 그래서 나는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의식적으로 한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가운 것은 사실입니다. 감사합시다. 주님께 우리 감사하자. 내가 여기서 이렇게 악수 하고 있지 않냐? 우리 모두 감사하자 그러면 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합니까? 여기가 슈퍼마켓이요 아니면 백화점 입니까? 자기 신앙을 위해 자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오히려 나가면서 자기가 섬겼던 성도들에게 감사하다고 합니까? 그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강하게 붙들어 주는 것 그것이 사실은 하나님이 교회에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축복들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자기의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셨는데 여러분 주님이 무엇이 아까우시겠습니까?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그 모든 것을 주신다면 우리가 만약에 주님께 강하게 붙들렸다면 안될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안되는 일은 주님이 원핫시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붙들려 사는 것입니다. 잘 들어 보십시요. 하나님은 몸이 아픈 사람을 한번에 낮게 하시면서 기적을 보여주시기도 하지만 아픈 사람이 전에는 아픈것을 견딜 수 없었는데 그 아픈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셔서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아름답게 만드실 수 있는 적도 있고 또 어떤때는 물질이나 무엇이 부족한때가 있는데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채워 주셔서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는 때도 있지만 겉으로 보기에 인색한 것처럼 안 채워 주셨는데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정말 없는 줄 몰랐던 것을 주님께서 많이 채워 주시는 예는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께 붙들려 살면서 주님의 뜻을 이루려 몸부림치면 모든 것이 다 선하게 협력하게끔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붙들려 살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열심은 있지만 요동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 모두 다 무엇인가 종교적인 경험은 있는데 그 종교적인 경험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끔 우리가 얼마큼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되는가 묻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을 하려고 태어 난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한 것입니다. 여러분중에 누가 도대체 우리가 언제까지 숨을 쉬어야 하는지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숨 쉬는 것은 자연스런 생존의 과정이고 결혼해서 가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남편에게 여보 내가 언제까지 당신 아내 노릇을 해야 해 하고 도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남편을 한번 해 보고 싶다는 것입니까? 다른데 시집 가고 싶다는 것입니까? 그런것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런 물음 자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나님에 대해 배우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이 세상에 창조하신 것입니다. 종교적인 감동은 있고 종교적인 느낌은 있는데 그때에는 뜨거워지고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서 무엇인가 하나님을 위해 해 보고자 하지만 그러나 그 감동 자체가 말씀에 붙들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든든하지 않습니다. 오늘 보십시요. 사도바울이 이 교회를 위해 간절히 비는 것은 그 말씀이 너희를 든든히 세우사 라고 했습니다. 은혜의 말씀에 붙들려 살면 그 말씀은 우리를 든든히 세워 줍니다. 오늘 받은 말씀이 지난주 받은 말씀과 연결이 되고 지난주 받은 말씀이 오늘 받은 말씀과 연결이 되는 이 모든 과정을 경험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이고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요동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붙들려 살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오늘 말 합니다. 성도들 가운데서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이것은 둘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은혜의 말씀에 붙들려 살아야지만 하늘의 영원한 기업을 누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은 믿음으로 살다가 온 사람들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또 한가지를 생각하면 그 하늘에서 물려 받을 영원한 기업은 하늘에서나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에서 실제적으로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비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비결, 은혜의 말씀에 사로 잡히는 신앙의 경험,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 목회사역 안에서 하나님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유익을 얻도록 우리들을 선대 하시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장차 누릴 영원한 하나님의 기업일 뿐만 아니라 지금 또한 앞당겨서 누리고 있는 기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요동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 하게 될 때 하나님은 은혜의 세계의 비밀스런 계획들을 그 사람에게 보여 주십니다. 더 깊은 하나님의 사랑속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경건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시고 말씀의 힘을 경험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붙들리지 않았더라면 행할 수 없었던 일들을 행하면서 믿음으로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말씀에 붙들려 사는 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기껏 사경회를 했더니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 사경회를 하든 여름 수련회를 하든 저는 꼭 유효기간이 두달입니다. 두달 동안은 그 말씀에 은혜를 받는데 두달이 지나면 다시 옛날로 돌아 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열심히 은혜 받으려고 참여는 했지만 받은바 은혜 말씀안에서 살아 가는 실제적인 말씀에 붙들린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경회에서 은혜 받고 여름 수련회에서 은혜를 받아도 성경 안 읽고 경건서적 안 읽고 교리공부 안 하고 그렇게 펑퍼진 삶을 살아가면 그 은혜가 우리 안에서 부패하는 것은 순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주님의 은혜로 채워 주시도록 주님의 말씀에 붙들려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매일매일 성경을 읽고 옛날에 사다 놓은 묵상집 있죠? 몇권씩은 다 사다 놓았을 것 아닙니까? 꺼내서 저녁마다 아침마다 한 장씩 읽으면서 기도하고 또 부지런히 공과공부에 들어가서 구역예배에 갈 때 기본적으로 빽빽하게 예습을 해 가지고 가서, 덜렁덜렁 가서 거기에서 자기도 한마디 거들려고 하지 말고 말재주 가지고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그 말씀에 젖어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자기 말만 하지 말고 말씀을 깨달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자신도 그 말씀에 잠기고 하면서 충만하게 말씀에 마음을 담구는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너무너무 편합니다. 손만 뻗으면 안 읽어서 그렇지 오죽 했으면 안수집사, 권사 이런것을 뽑을 때에는 도서관 이용 실적을 보자고 내가 제안을 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책이 많습니까? 누가 사라고 합니까? 가서 이름만 대면 빌려 주는데... 오늘 저녁에 가다가 다 들리십시요. 그래서 한권씩 다 가져 가세요. 그래서 읽고 그리고 깨닫고 그래서 기도하고 그래서 항상 마음속에 나를 붙들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에 우리가 주님께 붙들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께 붙들린 사람이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