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히 세우는 말씀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지금으로부터 한 25년은 되었을 것입니다. 집이 철거당하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집을 철거하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도시계획을 가지고 다 철거를 합니다. 지금이야 굴착기 같은 것이 있어서 한번 쓸고 지나가면 집이 다 무너집니다만 그때는 그렇게 그런 도구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체격이 건장한 청년들이 와서 큰 해머를 가지고 집 아래 동아리를 내리쳐서 구멍을 내놓으면 그 다음에 커다란 막대를 가지고 지붕에서부터 밀어서 집을 쓰러뜨리는 그런 철거방식을 취했습니다. 그러고 지나가면 이제 트랙터들이 와서 철거된 잔해들을 트럭에다 실어 버리곤 했습니다. 그 브럭커로 지은 집이야 한번 내리치니까 안방에서 건너 방으로 구멍이 뻥뻥 납니다. 그러고 난 후 기다란 나무를 가지고 한 대여섯 명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밀면 그 브럭커 담이 허무하게 허물어집니다. 그리고 위에서 슬레이트 지붕이나 이런 것 들이 먼지를 뿜어내면서 이제 떨어집니다. 이렇게 해서 한집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철거당하는 집들 가운데 철거당할 동네에다 어떻게 그렇게 집을 잘 지었는지 꽤 단단해 보이는 집 양옥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을 부수는데 아무리 부셔도 이게 망치에 구멍이 나야지만 쓰러뜨릴 텐데 구멍이 나질 않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벽 전체가 탄탄한 기계벽돌로 세워 지은 집입니다. 브로커는 구멍이 났으니까 한방 때리면 구멍이 뻥 뚫어지지만 이 벽돌을 두 겹 세 겹을 쌓고 빨간 벽돌까지 겉에 싸서 단단하게 지니까 아무리 두들겨 부셔도 부셔지지 않는 것입니다. 기둥은 또 얼마나 세워놓았는지 단단한 2층 집이었습니다.
든든히 서있는 집들은 좀처럼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날림으로 지은 집들은 겉보기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한번 풍랑이 지나가거나 충격이 오면 여지없이 무너져서 비참한 몰골을 드러내고야 마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20장은 매우 감명 깊은 장입니다. 밀레도에 있는 사도바울이 이제 마지막으로 사력을 다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자 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것은 주의 놀라운 그 은혜의 복음을 그 은혜의 복음의 본고장인 예루살렘에 증거하고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이방인들을 위하여 복음전할 사명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언제나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이 하나님의 사람 바울의 가슴속에는 밤이고 낮이고 그칠 수 없는 심령의 얽매인 쓰라림의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동족이 예수그리스도 그분이 유일한 구원의 희망임에도 불구하고 그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자 할 때 사람들이 이 바울에 대해서 예언하기를 성령이 말하는데 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결박을 당할 것이고 환난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성령이 예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목회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사랑하는 사도 바울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생명을 잃는 일이 없도록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막아섰습니다. 그때에 이 바울은 생애에 남을만한 위대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보라 나는 심령의 메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데” 그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은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심령을 강하게 사로잡아서 무엇인가에 매인바 되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그 무엇이 이 바울의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그 성령의 매임을 받아서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지 나는 알지 못한다. 오직 성력이 각성해서 내게 증거하여 환난과 결박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전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아니하겠노라." 유명한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고백을 듣던 사람들은 바로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 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에베소에 가기 어려우니까 밀레도에서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을 청했습니다. 그것에서 3년 동안 이나 바울이 목회를 할 때에 감화를 입으며 신앙이 돈독해진 그러한 장로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잠시 목양실을 비우고 사랑하는 양떼들을 놔두고 존경하는 목회자 바울에게 달려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바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마지막 유언처럼 남기는 바울의 유시를 들었습니다. 바울은 3년 동안이나 그곳에 있으면서 그 모든 시련과 시험을 참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대인의 간교와 그리고 또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기고 유익하던 것은 무엇이든지 개인 앞에서나 공중 앞에서나 집에서나 어디서든지 끊임없이 전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행한 회개와 그리고 교훈을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사도가 예루살렘을 향해 순교를 각오하고 올라갈 때 영안이 열린 이 바울의 눈앞에는 에베소 교회가 당할 마지막 놀라운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간 후에 흉악한 이리들이 오고 거짓교훈을 가진 사람들이 와서 교회를 훼방하고 도전하는 악한 사단이 역사를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이 사도바울은 자신에 예루살렘에 비록 가지만 그러나 여전히 이 교회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안에서 모든 시련의 파도와 역경의 도전들을 극복하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순결하고 거룩한 교회로 남을 수 있는 비결을 이 사도는 알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장로들에게 부탁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이 교회를 든든히 서게 하기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도는 말합니다. 너희를 든든히 세워주시길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든든히 서있다는 말은 교회 속에서 생활하는 성도들의 신앙이 든든히 서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신앙이 약한 목회자 밑에서 그 교회가 결코 든든히 설수가 없습니다. 늘 유혹이 오면 흔들리고 시험이 올 때 늘 신앙을 져버리기 쉬운 그런 중직자들이 치리하는 교회가 든든히 서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악한 세력들의 강력한 도전이 가장 많은 곳이 여러분은 어디라고 생각되십니까? 교회입니다. 교회만큼 악한 세력들의 끊임없는 도전이 강력하게 역사하는 곳도 없습니다. 언제나 이 교회는 성령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와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에서 그 은혜의 불을 끄고 성령의 물을 말리고자 하는 이런 악한 사단의 역사들이 전면적으로 충돌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에서 세상의 풍랑과 그리고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세속주의적인 사상과 그리고 이세상의 모든 죄악 된 풍조와 악한 사단의 권세들은 끊임없이 교회를 흔들고 믿음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을 흔들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주님의 나라에 가는 그날 까지 우리는 이 세상에서 끊임없는 시련과 도전에 직면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시련이나 도전에서 우리를 지키는 것은 든든히 서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석 위에 든든히 서서 이세상의 어떤 권세가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은 우릴 지켜주는 것 이것 이외에는 우리가 주님 앞에 교회답게 설 수 있는 비결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움직이지 않는 요지부동의 강퍅한 사람들과 똑같이 하나님 앞에 잘못된 사람들 입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사람들 냄비와 같이 끓고 곧 식어버리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 작은 미래에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날뛰는 사람들 경박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서게 하는데 모두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직분을 맡고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가 섬김을 받게 되면 교회는 언제나 시험을 풍랑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든든히 서는 신앙. 여러분 오늘 사도 바울은 너희를 든든히 세워 주셔서 너희가 그 은혜가운데 견고히 서야지만 하나님의 기업이 있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의 평강으로 인도하신다고 말한 믿음이 많은 위대한 선진들이 어떻게 인내하고 어떻게 시련 가운데 참고 어떤 극심한 도전 가운데서 신앙을 지키고 궁극적으로 이겼는지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이기게 만들었던 것은 단순히 인간의 지혜나 사람의 학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피나는 시련과 도전가운데 직면했습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세상은 오직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그 사람들을 미워하고 그들을 공격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도 믿음을 버리고 이세상의 모든 세속의 풍조를 따라서 살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아마 세상은 여러분들의 친구가 될 것이고 사단은 여러분들의 앞에서 박수를 치고 말 것 입니다, 시련과 도전 참된 믿음과 의미를 따라 살겠노라는 그윽한 신앙의 동기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이 세상에서 진리로 말미암는 고난을 당하였고 참된 신앙의 길을 가기 위하여서 시련과 고난 속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타협하고 그 대가로 세상과 함께 친구 되며 그 속에서 평안함을 누릴 때 그들은 죄와 더불어 낙을 누리기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믿음과 함께 시련을 심난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시련의 파도를 넘어서 고난의 물결을 저어서 믿음을 그들을 역사하게 만들었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찬송하면서 이 풍랑 이는 세상 속에서 풍랑에 굴복하며 어리석은 자와 같이 살아가지 아니하고 노도를 향하여 명하며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영원한 포구를 향하여 전진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예화) 시편 말씀카드와 그림 그리고 교회에서 기도 중에 위로하신 주님.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 지라도 거기서도 곧 의로운 주의 손이 나를 붙으시나이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닙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오래 달려야 하는 마라톤과 같은 것입니다, 천로역정과 같은 것입니다. 골짜기마다 시험이 숨어 있고 계곡마다 환난의 폭풍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를 유혹케 하는 자들이 우리 인생의 골목 어귀에서 수시로 나타나서 우리를 믿음에서 흔들어 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오늘 사도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든든히 서야지만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해 주신 기업을 얻을 수 있다고 사도는 말하는 것입니다.
이 기업이 무엇입니까? 우선 이 기업은 현세의 기업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누구와 특별히 동행해 주십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두들 실패하고 낙심할 때 강력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도우심을 입으며 승리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패배를 숙명처럼 그렇게 경험하며 살아가도 오직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자신의 삶을 통해서 보여 주며 세상의 험한 풍랑과 파도를 복종시키며 하나님의 살아계신 놀라운 증거를 신앙생활을 통해서 불꽃과 같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모든 사람들은 인내할 수 없는 속에서 인내하고 참을 수 없는 속에서 참는 그런 굳건한 든든히 서는 견고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 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인생이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든든히 설 때에 그때에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거룩한 무리들 가운데 우리에게 주신 기업을 누리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을 믿는 자들만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없고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없는 그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기업. 우리들이 그런 사람들을 보기 힘들어서 그렇지 정말 하나님 안에 이 세상에서의 그 기업을 누리면서 사는 사람들은 그 얼굴에서 은혜의 빛이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살아갑니다.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간증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많아야지만 세상이 변화 됩니다. 매일 교회 와서 꾸벅꾸벅 졸다가 그리고 헌금 몇 푼 넣고 돌아가서 성경 어디에 뒀는지 몰라서 주일날 아침이면 성경 찾느라고 온통 북새통을 떠는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는 세상이 변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면서 살아갈 때 그때에 비로소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 앞에 예수의 사랑이 무엇이고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소망이 무엇인지 이것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기업은 이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 기업은 내세의 기업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았던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을 나그네 길이라고 고백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네가 누구뇨 물을 때 나는 나그네로 여기에 우거하는 자라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그들은 이방인과 나그네라고 일컬음을 받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자기 나름대로 독특한 본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인생의 모든 수고를 끝내고 그리고 평안한 가운데에 거할 수 있는 이런 놀라운 내세의 기업들이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주십니까? 끝까지 견디면서 인내하고 든든히 서서 세상이 흔들 수 없는 신앙을 가지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의 놀라운 기업을 주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그런데 세상에 하나님 앞에 견고한 신앙을 가지면서 살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누가 와서 저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강도사님 나도 내가 너무 미워 죽겠습니다.’ 왜. 자기가 바람처럼 흔들리니까 자신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바람처럼 흔들리는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마음껏 비추고 예수의 놀라운 사랑을 마음껏 전하고 그리고 자신의 이 젊은 몸과 마음을 예수를 위해서 다 태워서 드리고 싶은데 그런데 그것은 마음이고 몸은 그렇게 움직여 주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백하는 말이 ‘나도 내가 너무나 밉습니다. 나도 내가 너무나 밉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다 이렇게 든든히 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5년 10년 믿고 또 20년 믿었는데 교회 와서 목회자가 대할 때 늘 기저귀를 갈아 채워주고 젖병이나 물려주는 어린애 취급을 하면 여러분들의 마음에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습니까? 누구든지 그렇게 든든히 서고 싶어 합니다. 세상의 풍파에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믿음을 가지고 불굴의 신앙을 가져서 나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감화를 주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보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힘과 결심 때문이 아닙니다.
(찬양)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으옵소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살고 싶은 대로만 살면 이 세상에 지옥 갈 사람이 어디에 있겠고 천국 가서 면류관 얻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화) 축구 국가대표선수와 형편없는 실력을 욕만 하고 있는 배 나온 구경꾼 남자.
마음처럼만 다하면 천국 못 갈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은 그 마음처럼만 안 되는 신앙생활이 어떡하면 견고해 질 수 있느냐 그 이야기를 오늘 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바울이 이제 도저히 이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떠나게 되었습니다. 떠날 때 바울이 이 사람들을 홀로 내버려 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니까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 그랬습니다. 똑바로 번역을 하면 주 곧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 그러니까 주님께 부탁한다는 그 뜻은 주님의 말씀께 부탁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애기하면 이런 뜻입니다. 내가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습니다. 그럼 뭐대로 살기로 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다고 하면서 성경 읽지도 않고 설교시간에 조는 사람은 거짓말입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 원하는 사람들은 그 말씀에 깊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것이요 나도 너희를 사랑하여 너희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바울은 이 사람들을 자기는 떠나도 은혜의 말씀께 이 사람들을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사도가 이 에베소에 와서 3년 동안이나 전했습니다. 시련과 도전과 그리고 핍박이 있었습니다. 동족들을 불쌍히 여겨서 동족들을 구원해내기 원했지만 동족들은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을 사랑했지만 그들은 바울의 가슴에 못을 박았고 그의 사역에 앞길에 함정을 파 놓았습니다. 이방인들은 그러면 바울을 환영했습니까? 헬라인들은 오히려 복음의 도를 전하는 바울을 어리석은 도를 전한다고 조롱하고 욕하고 무슨 육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을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전한 것은 00 것도 아니었고 이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리석은 도의 십자가였습니다. 시련과 도전을 받았습니다. 박해와 결핍 속에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한번 손을 들고 기도하면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의 사도가 3년 동안의 목회를 눈물의 목회였다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큰 시련의 상황에서 모든 겸손과 눈물과 참음이며 이모든 것을 한 몸에 받으며 고난 받으며 그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목표는 오직 하나였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이 바울의 이름을 기억해 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이 바울의 위대한 제자가 되는 것도 바울의 꿈이 아니었습니다, 대형교회를 만들어 놓고 몇 백 년 지나도 부서지지 않는 큰 교회를 짓는 것도 바울의 꿈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내가 이 에베소에 오래 있지 못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단단한 교회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든든한 믿음의 성을 지어주길 원했던 것입니다. 사단이 화살을 쏘아도 넘을 수 없고 이 세상에 있는 어떤 물결들이 밀려와도 쓰러뜨릴 수 없는 믿음의 성을 이 사람들 가운데 쌓아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바울은 무엇을 했습니까? 3년 동안 눈물을 흘리며 고난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고난과 시련은 오직 이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심령 속에 깊이 새겨주기 위한 기간 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나는 이제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에베소 성을 하나님이 심판 하셔서 믿지 않는 자들을 지옥으로 보내셔도 나는 할 일을 다 했다. 왜냐하면 구석구석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 얻는 도가 무엇이고 인생의 참된 소망이 그리스도 예수 뿐 일수 밖에 없는 이유를 모두 전했다.’는 것입니다. 지혜로 능력으로 다시 한 번 주의 복음을 전할 기회를 에베소에서 주셔도 그 이상 전할 수 없는 최선의 목회를 이 바울은 다 했던 것입니다. 누가 한 교회를 목회하고 난 다음에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면 그는 세상이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앞에 성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사람들의 성공은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성공과 같지 않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3년을 목회하고 지금 죽을 곳을 행해 달려가는 허름한 옷을 걸쳐 입고 지금도 손에는 분필을 쥔 손으로 굳은살이 베기고 그리고 온몸은 젊었을 때의 눈빛이 가시고 건강한 모든 육신은 궁구하여 나날이 늙어가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 육신 그 외모에서 무엇 부러워 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목회자로써 성공한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언제나 여러분들의 영혼을 돌보는 목자들이 이렇게 세상적인 시각에서 가 아니라 하나님적인 시각에서 성공하는 사역의 생애를 살도록 여러분들은 목자가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처럼 여러분들은 그 목자를 위해 그렇게 기도해야 할 영적인 의무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오늘 자기가 간 후에 어떠한 역사가 일어날 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너희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말씀밖에는 없다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견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이냐 하면 세상에서 얼마나 인정을 받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사랑한 사람들 이외에는 견고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없어요. 견고 할 수가 없어요. 우리의 신앙생활은 진공 속에서 요람 속에서 살아가는 영적인 생활이 아닙니다.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면 폭탄이 비 오듯 쏟아지고 곳곳에서 저격병들이 우리의 머리를 겨누는 이런 치열한 전쟁터 한복판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세요. 우리가 예배드리고 있는 이 시간에도 세상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던 사람들이 악한 원수 사단의 그 유혹의 화살에 맞아서 쓰러지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든든히 선 사람들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깊이 사랑하고 진리를 깨닫기 위해 서라면 어떤 것도 아끼지 아니하는 열심이 이 사람들의 신앙을 든든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예화) 수련회에서 기도원의 건축을 위해 새벽에 홀로 기도하시는 장로님
여러분 이와 같이 말씀을 곧게 사랑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집회는 끝났어요. 이제 외식은 다 했어요. 이제 우리가 그 말씀을 가지고 든든히 서서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말하기를 그 말씀이 그냥 말씀이 아니라 무슨 말씀 이었다고 말합니까? 무슨 말씀이요? 은혜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에베소 교회에 들려질 때에 이 말씀은 허공을 치는 말씀이 아니라 잠들어 있는 유두고와 같은 백성들을 깨우는 역사가 일어나는 말씀이었습니다. 죄 가운데 있으면서 자유를 잃어버린 심령들의 마음 깊이 파고 들어가서 양심을 일깨우고 죄의식을 일깨우고 그리하여 회개하게 하고 자기의 죄를 토설하게 만들고 메마른 심령에 불을 붓고 은혜가 식어진 마음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물 붓듯 부어서 다 말라 비틀어 져가는 시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살려놓는 말씀이었습니다. 언제나 말씀은 그들의 귀만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심령 속으로 뚫고 들어와서 가슴속에 커다란 파장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의 심령을 시원하게 만들었습니다. 답답하던 심령 속에 하나님의 진리가 역사함으로 말미암아 심령 속에 시원함을 남겨 주었고 그리고 가슴속에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살아가던 은밀한 죄들을 드러내서 회개케 하는 놀라운 역사를 받아냈던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교회 되는 것이 여러분 무엇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여러분들이 만약에 죽을 때 까지 이 신앙의 고백을 누구에게나 할 수 있다면 여러분들은 이 에베소 교회에 부탁하는 바울의 부탁대로 여러분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워 지는 것을 무엇일까요? 그것은 진리의 말씀이 은혜로 역사하여서 사람들을 변화 시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그 말씀이 성령님의 놀라운 은혜로 은혜롭게 역사하고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는 역사가 일어 날 때에 거기에 그 교회가 진정한 교회의 참모습으로 새롭게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일들을 위해서 교회는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이전에 3년 동안 이곳에서 전한 말씀이 은혜의 말씀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시련을 만날 때 마다 바울을 생각하기를 원했습니다. 어떤 바울이었습니까? 그 바울은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에게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고 복음의 진리를 증거 하던 그 모습을 모든 사랑하는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이 생각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 에베소 교회에 교인들이 시련을 당하거나 환란을 당할 때 고요히 눈을 감고는 바쁜 일이 있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목회자가 생각이 나거나 한가하게 천막을 깁고 있는 목회자가 생각이 나거나 쉬고 있고 놀고 있는 목회자가 생각난 것이 아니라 눈물을 뿌리며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며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살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여 외치는 겉 사람이 후폐해져 가는 노사도를 생각하게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고 그리스도의 놀라운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자 교회는 하나님 앞에 든든히 설수 있는 소망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니까 교회 성도들이 조는 것은 70%는 목회가 책임이고 30%는 본인들 책임입니다. 심령이 죽어있고 은혜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시간에 자니까 그의 신앙생활이 전부다 자는 신앙생활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조용히 눈을 감고 바울이 이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하며 주의 말씀을 증거 하였던 때를 묵상해 봅니다. 틀림없이 거기는 오늘 우리들이 예배를 드리는 자리와 같이 이렇게 아늑하고 조용하고 훌륭한 시설이 갖춰진 예배당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길거리에서나 공중 앞에서나 개인의 집에서나 어디에서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비록 그곳에 훌륭한 시설은 없었지만 그러나 모여 있는 사람들이 소수이던 다수이던 하나님의 놀라운 진리의 말씀을 들고 이 어두운 에베소와 같은 세상에서 믿음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능력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였습니다. 환란과 시련과 핍박이 있어도 그는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에누리 없이 증거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증거의 말씀을 붙들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눈물을 흘리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한 후에는 이 복음에 따라 살도록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눈물로 중보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값진 옷이나 훌륭한 의복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소망은 부르시는 그날에 우리를 이 세상에 말씀 증거자로 보내신 그리스도 예수께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증거자로서의 유일한 소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범사에 모든 동무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우리의 쓸 것을 스스로 공급하였다. 왜냐하면 내 의를 위함이 아니요 주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는 에베소 교회에서 환란과 시련을 당하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그는 미래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실 빛나는 기업을 바라보며 고난 속에 즐거워하며 이 복음을 증거 하다가 오늘 예루살렘을 향해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기 위해 정들었던 사랑하는 에베소 교인들과 작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누가 있었습니까?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인생이 변화 되었습니다. 동족이 그를 버렸고 사랑하는 모든 친척과 골육지친들이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욕하고 그를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예수 한 분 있었기 때문에 시련의 골짜기를 넘고 순교의 위협이 기다리고 있는 고통스러운 세월을 지나며 복음의 사도로서의 길을 부끄러움 없이 걸을 수 있었습니다. 고통과 시련으로 얼룩진 그의 인생에 있어서 이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과의 만남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거기 계시고 사랑이 거기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울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이 세상에 주정뱅이와 불한당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씀 앞에 녹아지는 변화의 역사를 바라보며 바울은 그곳에서 그렇게 3년 동안 눈물과 피와 땀을 짜내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고 섬겼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주일을 기다렸을 것이고 도시에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 그때에 구원 받게 될 영혼들을 기억하며 마음 떨렸을 것입니다. 자신이 손때 묻혀서 신앙을 견고하게 세워주었던 수많은 에베소 교회 교인들의 얼굴이 다시 돌아올지 모를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이 복음 증거 순교의 길 앞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자신이 복음을 주고 세례를 주어서 구원하여 교회를 다스리는 장로가 된 사람들이 밀레도에 와서 고개를 숙이고 이제 환란과 결박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말할 때에 이들은 틀림없이 흐느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모두 울며 흐느낄 때에 바울이 어떤 마음 이었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말씀을 증거 하여 영혼 속에 놀라운 변화를 주었을 때 그들은 그 은혜의 말씀을 의지하여 사도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목자 잃은 양같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큰 영혼의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위지하며 든든히 설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일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말씀이 은혜롭게 증거 되고 성도들이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은혜체험의 역사들이 교회에 언제나 가득 찰 때 교회는 세상의 풍랑과 파도가 흔들 수 없는 위대한 하나님의 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성을 통하여 세상은 정복되고야 말 것 입니다. 여러분도 이일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여러분의 목자가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고 그것으로 교회가 언제나 새로워 질 수 있도록 그리고 이 온 세상의 교회들이 이렇게 변화 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