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 1:27-28)
녹취자: 허혜숙
제가 교인들을 위해 기도할 때 마음에 기쁜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는 교인들이 있는가 하면 기도할 때마다 늘 근심하게 하는 교인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도바울도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이 빌립보 교회는 하나님 안에서 사도의 마음에 기쁨을 주던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는 많은 대적자들에게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사도는 감옥 속에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빌립보 교회에 줍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생활하다’라는 이 단어는 매우 어려운 단어인데 ‘정치하다’ 혹은 ‘시민 생활을 하다’ 이런 뜻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면, 한 도시가 있으면 그 도시에는 다스리는 사람이 있고 나라의 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살 때, 합당하게 살아가야 되는 규율과 질서가 있습니다. 거기에 어울리게 살아야만 당시 자랑스러운 로마의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런 뜻인데 사도는 이 말을 통해서 로마인들이 어디에 가든지 로마인답게 살려고 하는 것처럼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다 그러니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라.’ 이렇게 알려줬습니다. 그러니까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정치되고 또 정치하는 그 사회 속에 어울리게 살아라.’입니다. 로마의 영토 안에 있는 모든 도시가 로마의 법의 지배아래 있고 로마의 문화와 로마의 법의식을 드러내고 로마를 자랑스러워하면서 로마인으로 살아가서 로마라고 하는 사회를 만들듯이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니 그렇게 살아라,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데에 그 중심이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구체적으로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두 가지로 이야기 하는데 첫째는 ‘너희들이 같은 마음을 품어 한 뜻을 갖는 사람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가 제일 먼저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해서 한 뜻을 품으라는 것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한 뜻을 품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로마의 사회가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 되어있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실 것입니다. 아주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민족들을 하나로 통합하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로마의 정신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 유대인 할 것 없이 또 이방인이 한 종족은 아니고 수많은 족속들이 있는데 그들이 예수를 믿습니다. 그러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지만 모인 그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서 한 질서를 드러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이 한 마음, 한 뜻을 이야기합니다. 섬기는 위치와 자리는 각각 다르고 또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부르심도 각각 다르지만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모두 그 부르심을 수렴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해서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은 생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가 한 마음이 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한 마음이 되게 하셔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교회되게 하십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기 전에도 왜 예수님이 가시고 바로 성령님을 보내시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게 하시고 성령을 보내시고 사도들이 옥에 갇히고 야고보가 죽임을 당할 때도 역시 또 같이 모여 기도하게 하시고 한 마음이 되게 하시고 이렇게 2000년의 교회의 역사를 이어오게 하십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해 한 마음과 한 뜻을 품으며 서로의 사역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대적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과’ 그럽니다. 당시에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했으니까 노골적인 그런 박해에 직면하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대적’이라고 하는 것이 조직적으로 기독교를 말살하기 위해 덤벼드는 그런 대적들만이 대적이 아닙니다. 넓게 보면 우리가 뭔가 한 뜻을 품고 한 길로 나아가고자 하면 반드시 난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런 난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은 하나님의 교회가 한 뜻을 품고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에 언제든지 이런 난관이 있게 마련인데 이런 난관과 어려움들을 극복해 나아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 뭐냐 하면 생명입니다. 힘입니다. 보십시오. 교인들이 다 죽어갑니다. 신앙생활이 신통치가 않습니다. 옛날에 은혜를 조금 받았다고 하는데 미끄러지고 처음 믿었다고 하는데 혼란스럽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좋은 구역장이나 혹은 교구 교역자를 만나면 살아납니다. 그것이 뭡니까? 생명입니다. 그 충만한 생명이 그런 난관과 시련을 이기게 합니다. 그러니까 그 속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힘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떨어진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모든 이야기가 부정적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도 무엇인가를 신중하게 하라는 사인이니까 그럭저럭 도움이 되겠지만 그러나 그것 가지고 그리스도의 교회가 충분하겠습니까? 우리들이 교회의 조직을 잘 정비하고 지혜를 다른 교회에서 배우고 끊임없이 좋은 방안을 만들어서 적용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방법이고 지혜일뿐이지 그 자체가 생명은 아닙니다. 생명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만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받을 때 그 때에 여러분들에게 맡겨진 사람들과 함께 주님의 일을 해 나가는데 어려움들을 함께 극복하면서 앞으로 전진 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힘이 은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두 가지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전체적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천국백성으로 섬기며 살아가자, 하나가 한 뜻을 품으라, 두 번째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가운데 생겨나는 어려움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맞서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