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lms 3
목 차
성산에서 응답하시는 하나님(시 3:1-4) 23
천만인이 두를 지라도(시 3:5-8) 30
성산에서 응답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시 3:1-4)
본문배경
이 시는 다윗의 시입니다. 표제에 보면 압살롬을 피할 때 지은 시입니다. 아들이 반란을 일으킨 겁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장자였고 아주 똑똑한 아들이었습니다. 다윗이 말년에 나라를 잘 장악하고 다스리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압살롬은 한 3년 전부터 철저하게 모반을 준비합니다. 성 앞에서 재판을 받으러 가는 백성들에 편을 들고 위로하면서 마음을 빼앗기 시작합니다. 차근차근히 군사력을 기르고 무기를 준비하면서 아버지를 공경하고 나라를 경영하는 것을 돕던 사람들과 군인들을 지도자들을 빼내기 시작합니다. 다윗은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꿈에도 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반란이 일어나고 군사들이 쳐들어 온 것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기에 다윗은 황망하게 피난하게 됩니다. 바로 그때 지은 시입니다.
대적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이 위급한 상황을 세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사방의 적들이 전부다 자기를 미워하고 대적하는 사람들로 온통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것은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면 모릅니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돈이 없다든지 몸이 아프다든지 순전히 물리적인 어려움들은 그래도 극복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오는 정신적인 어려움은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친구 사람들을 통해서 고난이 올 경우에는 고통이 가중됩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압살롬은 적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몸으로 낳은 피붙이였습니다. 동서고금에 부모를 향해 칼을 들고 일어선 예가 없지는 않지만, 다윗은 자기에게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평판을 깎아내리는 소문
두 번째는 사람들이 퍼뜨린 소문이 “하나님이 다윗을 버리셨다. 그가 사울의 집안을 가로챘기 때문에 결국은 다윗이 하나님을 버리셨다. 저는 이제 하나님께 더 이상 도움을 얻지 못하는 자다.” 이렇게 평판을 깎아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이 버리신 사람이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의 도움을 얻지 못한다.” 이러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다윗의 시대는 끝나고 압살롬의 시대가 열린다.”고 선전하는 고도의 홍보 전략을 짠 겁니다. 그리고 다윗이 너무나 비참한 모습이 되어서 적들에게 쫓겨서 도망갑니다. 그렇게 가련하게 도망을 가는 모습은 정말로 하나님이 버리신 사람의 말로(末路)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가고 너무나 황급한 나머지 버선발로 도망을 가야할 정도로 인생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위기 때 여호와를 찬송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다윗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방패시오, 또 영광이시며,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하나님을 향해 진실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오류에 빠지고 때로는 세상의 사랑에 눈일 멀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흔들릴지라도, 그때마다 즉시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형식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아도 진짜로 어려운 일이 생기고 하나님을 의지해야할 일이 생겼을 때, 오히려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고 마음이 굳어집니다. 꽃피는 봄이 오고 무성한 여름이 와서 온 천하에 녹음이 들 때, 어느 것이 상록수인지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잎이 떨어지는 가을이 오고 가지만 앙상한 겨울이 오면 어떤 나무가 사철 푸른 나무인지 구별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방패
이 와중에도 시인이 하나님을 향하여 네 가지 고백을 기도올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나의 방패시오” 방패는 비 오듯 쏟아지는 적군의 화살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막아줍니다.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의 공격으로부터 방패를 가지고 자기를 보호하면 그러면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방패의 역할은 상대방이 칼을 휘둘러도 방패로 칼을 막아줍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이 스스로 당신을 방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란다. 내가 너를 지켜준단다.”라고 하셨던 말씀은 보호의 의미합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반역을 받아 눈물을 흘리고 벗은 발로 황망하게 도망을 갈 때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은 다윗을 버렸다. 저는 하나님께 더 이상 도움을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다윗은 마음속에는 다음과 같은 고백이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방패이십니다. 나를 보호하는 자이십니다. 내가 지금은 아들에게 쫓겨 이렇게 황망하게 도망을 가고, 사람들은 내 뒤에서 저놈은 하나님의 도움을 얻지 못한다고 비난을 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방패이십니다. 이제껏 내가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에 하나님이 그러셨고 앞으로도 그러실 것이며 지금도 또한 하나님이 나의 방패이십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다가도 정신이 팔려 놀 때는 엄마의 소리에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치거나 넘어지든지 어려움이 생기면 신속하게 엄마의 품으로 달려옵니다. 그와 똑같은 원리입니다. 시인에게 고난이 닥친 것도 사실은 직접적으로 보면 그가 하나님 앞에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죄를 지은 것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그렇지만 더 넓게 보면 징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시인을 말년에 시인을 쇄신시키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놀랍게 쇄신시켜서 노년에 흐려지기 쉬운 그의 영안을 열어서 하나님의 위대한 영광과 하늘의 놀라운 계시와 은총을 보게끔 만들어 주신 겁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은 나의 방패라고 노래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영광
두 번째로 “나의 영광이시요”라고 고백했습니다. 영광은 알아주는 겁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친구들과 함께 아는 사람들과 함께 수백 명이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았습니다. 다들 방석 없이 맨바닥에 앉아 밥을 먹는데, 주인이 좋은 방석을 자기 옆에 두면서 “아무개 씨 여기 와서 내 옆에 같이 앉읍시다.”라고 말해주어서 그와 나란히 앉았다면 그것이 영광입니다. 영광은 알아주는 겁니다. “하나님은 나의 영광이십니다. 내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고, 하나님이 나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에 의해서 알아주신바 되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 때문에 나를 알아주게 됩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나를 사람들 앞에서 주님 때문에 알려지게 해주시는 겁니다. 그것이 영광입니다.
다윗의 생애가 이제까지 그러했습니다. 그는 이새의 집에 보잘 것 없는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알아주니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주님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전쟁터에 가는 곳마다 승리를 안겨주셨습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등극하기까지 하나님이 끊임없이 영광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고난으로 가득 찬 인생의 고통스러운 시기에 과거를 회상하는 겁니다. “내 인생 사는 날 동안에 주님이 나의 영광이셨습니다. 주님이 저를 기억하셨고 주님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기억했습니다.”라는 고백을 잠잠히 드렸습니다. 반역이 일어나서 적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들렸을 때 다윗의 마음에는 자기를 치기위해 달려오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머리를 드시는 자
세 번째로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왕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들은 무언가 잘못해서 징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죄인은 머리를 들라”는 이야기는 왕이 그를 대면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긍휼과 사랑을 베풀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머리를 숙이시는 법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고개를 돌리시는 적은 있습니다. 그래서 “주여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춰주시옵소서” 이것이 시인들의 노래의 제목이었습니다.
왕이 우리에게 얼굴빛을 비춰주면 거기에서 왕의 백성들은 사랑과 용기와 힘과 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똑같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마른하늘에서 비가 내린 것이 아니라 이미 자기가 행한 악이 있습니다. 그것에 대하 하나님이 징계하시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혹독한 시련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련 앞에서 자기가 완전히 정당하다면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러십니까?”하면서 어쩌면 조금 어리석었던 욥처럼 감히 하나님 앞에 대꾸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윗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동시에 자기의 죄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도망을 가면서도 하나님의 큰 존전에서 면목이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때 왕이신 하나님이 “죄인은 고개를 들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마음속으로 상상했습니다. 더욱이 다윗은 왕이었으니 그 상황에서 얼마나 잘 알겠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수치를 당해서 부끄러움과 그리고 모욕으로 가득차서 더 이상 소망이 없을 것 같은 그때 고개를 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물질만 주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명예도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실 때가 있는가 하면 우리를 부끄럽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실제로 오류에 빠지고 안 빠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주님이 우리를 높이시기도 하고 낮추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의 머리를 드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우리로 하여금 경험하게 만들어주십니다. 시련 가운데서 완악한 마음을 녹이십니다. 고난 가운데서 병든 마음을 치료하십니다. 위기 가운데서 잠들었던 신앙을 소생시키시고 깨어나게 하십니다. 다윗이 바로 이것을 경험을 했습니다.
성산에서 응답하심
마지막으로 다윗이 기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산 시온, 명백하게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키는 예표입니다. 자기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계신 그곳에서 간절히 부르짖을 때 주님이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 어디든지 주님이 안 계신 곳이 없지만 특별히 하나님이 택하신 산 시온에서 부르짖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셨던 것처럼, 주님의 약속이 깃들여져있는 교회에서 부르짖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입니다. 시인이 하나님 앞에 예전에 고난의 골짜기를 넘는 경험을 수없이 했습니다. 그래서 도망을 가면서도 내가 성산에서 “여호와께 부르짖겠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고난이 오고 자신의 인생에 말할 수 없는 치욕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의 방패시며 내 영광이시며, 내 머리를 드시는 자입니다. 주님만이 나를 부끄러움의 늪에서 건져내어 영광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결론과 적용
신자의 유일한 소망, 믿는 자의 유일한 희망, 하나님의 자녀의 절대 유일무이한 마지막 희망이 하나님 자신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난이 올 때도, 부끄러움을 당할 때도, 영광을 받을 때도, 멸시와 천대를 당할 때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삶에 모든 상황과 기회를 통해서 방패이시고 영광이시며 머리를 드시는 자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시련을 통해서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확인하시고 당신이 정하신 성산에서 주님께 부르짖을 마음을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서 다윗이 놀라운 영혼의 쇄신을 경험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우러르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천만인이 두를 지라도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시 3:5-8)
하나님의 붙들어주심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가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는데 이 와중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찬송을 드리고 있습니다. 상반부에서는 “하나님이 나의 방패요, 영광이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라”고 고백하며, 하반부에서는 이 고백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하나님이 나를 붙드신다는 것입니다. 실제는 이렇게 잠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나라에 더군다나 변란을 일으킨 괴수가 자기의 아들이니 시인의 마음은 갈가리 찢어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변란 속에서도 시인은 자고 깰 수가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를 붙드셨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고 시인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큰 환란이 일어나서 나라가 찢어질 뿐 아니라 시인의 마음이 갈가리 찢어져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되었지만, 그 속에서 시인이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심으로 말미암아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다가보면 환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환란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우리의 인생 마음의 불이 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파도가 거세도 바다 위에 떠있는 배가 찬란한 불빛을 잃지 않는다면 항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6장에서 우리의 마음의 등불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시인은 큰 환란과 고난을 당해서 말할 수 없이 괴로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붙들어주심으로 어느 정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유익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다면 환란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나, 그렇게 살지 못했다면 깊이 참회하는 가운데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자기를 붙드심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회상함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원수의 뺨을 치셨다고 나옵니다. ‘뺨’이라는 단어는 히브리말로 ‘레히’(yjil])인데, 이것은 사실 ‘턱’을 뜻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얼굴은 존귀의 상징이고 특별히 턱은 수염과 함께 사람의 기품을 상징합니다. 그것을 원수들의 턱을 하나님께서 치셨다는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신 앞에서 모든 존귀한 것들을 부수고 수치스럽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시인의 편이라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시인은 지금은 환란을 만나서 원수들에게 쫓겨 황급히 도망가는 상황이지만 이전의 자신의 인생을 생각했습니다. 그때 수많은 원수들이 에워싸도 시인은 거기에서 원수들은 부끄럽게 하시고 자기를 존귀하게하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23편에서도 그는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라고 말할 정도로 간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고난이 겹치는 날에는 하나님과 가졌던 달콤한 시간들, 주님이 어떻게 나를 붙들고 내 인생을 인도해 오셨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에 큰 유익을 줍니다. 지금은 내가 미끄러져서 주님으로부터 멀어졌고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지만 예전에 소시 적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 살 때, 정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놀라운 은혜가 내 마음에 넘치고 나의 심령에 가득 차서 하나님이 나를 어루만지시던 때! 그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깊이 감사하며 그래서 주님께 깊이 즐거워하며 주님께 깊이 영광을 돌리며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곤고한 날에는 지금의 곤고한 상황만 보지 말고 과거를 회상하십시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
우리 서로 받은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하나님의 복을 달라고 탄원함
세 번째는 하나님의 복을 달라고 탄원하고 있습니다. 복은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복 그 자체가 소중한 것이 아니라 복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자기를 인정해 주시는 것을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복 자체보다도 더 큰 복입니다.
여러분들이 시집살이를 당하는데 어느 날 과묵하시던 시아버지가 불러서 “애야, 네가 우리 집 안에 시집 온지가 얼마나 되었냐?”, “한, 십년이 되었습니다.”, “그래, 네 동서들이 넷이나 된다마는 정말 네가 고생을 제일 많이 했구나. 나는 네, 네가 마음 쓰는 것을 보면서 노년에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등을 두드리고 몰래 칭찬을 해주며 선물을 손에 쥐어줍니다. 그 선물이 땅문서나 집문서가 아니어도, 작은 화장품 하나라고 할지라도 얼마나 감격적입니까? 물건 자체가 귀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자기를 인정해준 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인정받았다고 하는 사실이 물건보다도 더 큰 복입니다.
그래서 시인이 여러 곳에서 “주는 내게 복을 주옵소서.”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언제 그렇습니까? 원수들에게 에워싸여 있을 때, 나를 미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너는 이제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고 말할 때, 모든 희망이 끊어져서 절망할 때, 내 양심이 나를 송사하면서 “너는 이제 하나님이 버리셨다.”고 말할 때, 이처럼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는 내게 복을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이 정말 순전해져서 하나님을 간절히 앙망하게 되면 사실은 주님이 “내가 너에게 무얼 줄까?”라고 물으실 때 우리는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랑이 세상에 있지 않으니 필요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단지 필요한 것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내게 가까이 해주시는 것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나를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어디선가 들리는 주님의 음성 ♬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그러므로 작은 복이라도 하나님이 복과 함께하시면 큰 것이고, 아무리 큰 성공이라도 거기에 하나님이 없으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만복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인이 무엇이 필요했겠습니까? 한 나라의 왕으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물론 지금 반란이 일어나서 도망가는 신세이지만, 시인은 복을 달라고 구합니다. 원수들을 무찔러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게 복을 주십시오.” 원수들이 일어나서 백성들을 선동할 때 구실이 무엇이었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이 버리셨다, 하나님의 세우신 사울을 해치고 사울의 가문을 무너뜨렸으니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다윗이 사울을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일 틈을 노리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기름 부어주셔서 세우신 자에게 감히 손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게다가 망한 다음에 집 가문의 가솔들을 대하는 다윗의 인정을 보십시오. 그런데 비방이 있었으니, 근거도 없는 비방과 모욕 속에서 시인이 취한 태도가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주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이시며 나의 방패시로다. 여호와는 내게 복을 주십시오.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지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신다면 저들의 입이 닫힐 것입니다.” 그렇게 한 말씀만 해주시면 됩니다. “나는 네 편이라” 시인이 이것을 바라보고 사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 복을 구했고, “만복의 근원 하나님, 내게 복을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렇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없이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시편3편 강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