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회 새벽기도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1:1-3)
녹취자: 강민서
시편이 150개나 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시편이 쓰인 후대에 와서 이 시편을 정리 했습니다. 그래서 1권에서부터 5권까지 정리하면서 1권에는 창세기에 노래와 관계된 것들을 모았고 2권에서는 출애굽 3권에서는 레위기 4권에서는 민수기 5권에서는 신명기와 관계된 하나님의 시편의 노래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이제 어떤 150편의 시편가운데 어떤 시편 하나는 시편 전체의 첫머리에 놓아야 됐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무엇을 첫 번째 자리에 놓을까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고심했을까 하는 것을 우리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시를 제일 앞에 놓아야지만 시편 전체에 대한 내용을 시편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고자 하는 신앙의 참된 도가 무엇인가를 가장 잘 나타내고 드러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사람들은 진지하게 많은 궁리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뽑혀서 올라온 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아침에 이 시간에 함께 읽어 올린 시편 1편입니다.
여러분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이 복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누리는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시각이 우리 인간의 시각과 얼마나 다른가 하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 있는 사람은 제물을 많이 소유하고 부귀하며 복 있는 사람은 지위가 높고 복 있는 사람은 인덕이 많은 사람이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두 가지 기준 사이에 끼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이 생각할 때 축복된 것과 하나님이 생각하실 때 축복된 것과는 같지가 않습니다. 인간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기가 일쑤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참된 축복이 하나님이 원하는 축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르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차원의 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긴장 속에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우리는 하나하나 하나님의 말씀을 한 가지 두 가지 지켜 나가는 것도 매우 귀하고 그리고 그것도 힘든 일이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 더 중요한 것은 근본적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 자기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 그 자체를 하나님의 것으로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가치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세상에서 축복받고 복 받을 때에 이 세상에서 인정받고 세상을 편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 인정해 주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복되다고 말씀 하실 때에 진정으로 복된 사람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자기의 처지를 부러워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가 복된 자리가 아니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복된 사람이 아니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평가를 얻고 있든지 그것은 진정한 축복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복 있는 사람은 무엇, 무엇, 무엇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속성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일 들을 계속 저지르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인간의 타락한 성품과 죄 된 성품이 깃들여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일절에서 금방 눈치 챌 수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교회 열심히 다니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가난한 자에게 막 퍼주는 사람들은 복이 있나니’ 이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해서는 안 될 것들을 말씀 하시면서 그런 사람은 복된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며 내 마음대로 불순종하며 살려고 하는 내 자신의 잘못되고 방탕한 자아를 결박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열리고 우리의 귀한 것을 드리거나 우리의 몸과 마음을 드려서 하나님 앞에 섬기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려고 하는 나의 방탕한 자아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보다는 내 마음대로 살아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내고집대로 살고 싶어 하는 내 속에 있는 자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결박하고 신앙으로 억압해서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 드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야 할 것들을 안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신앙이 커다란 문제에 부딪히기 보다는 오히려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적극적으로 행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손상을 입고 우리의 영적으로 좋은 하나님께로 물려받은 축복들을 날마다 잃어버려 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복 있는 사람은 먼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 이 말은 원래 의미로 말하자면 악인과 상의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뭔가 인생의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서 악인과 상담하고 거기로부터 지혜를 구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살든지 나는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별하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게서 지혜를 구하며 살겠다고 하는 이런 신앙적인 결단이 필요함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이 한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매 순간 순간마다 무언가를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결정적인 순간들을 수시로 당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가 어떻게 결정하고 어떻게 결단하는 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모양이 사뭇 바뀌게 되어 집니다. 그때 여러분은 어디에서 지혜를 얻고 있습니까? 어디에서 지혜를 구하며 어디서 내려오는 판단과 지시를 따라서 여러분들의 인생을 결단하고 있는지 성경은 오늘 묻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세상에 돌아가는 많은 세상의 지식 세상 사람들 악인가운데 통용되는 지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면서 번창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하고 그 세상에서 지혜를 얻고 그 지혜를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대신에 세상을 택하는 이러한 결단을 매일 매일 내리지는 않고 있는지 성경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에 이런 식으로 매 순간 순간마다 부딪히는 문제를 결정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으로부터 먼 사람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진정한 축복 주님이 인정해 주시지 않는 복은 복이 아닙니다. 그리고 주님이 인정 해 주시는 그 복이야말로 진정한 참된 복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악인의 꾀를 좇고 이 세상에 살아가는 악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꼭 같이 닮아서 하나님의 손에 의한 형통이 아니라 악인의 꾀에 의한 형통을 도모하고 있다면 우리는 복된 길로 부터 멀어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재미있는 묘사를 보여주는데 그런 악한 삶이 점점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다른 길로 걸어가다가 가끔 세상으로 가서 악한 사람들의 지혜를 구하며 그 지혜를 듣고 자기의 길을 결정하지만 이것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서 점점 그 사람은 이제 악인에게서 지혜를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걸어가는 길 그 자체가 죄인들이 걸어가는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여기서 죄인은 ‘호테’라고 하는 히브리말인데 이 죄인은 바르게살기를 원하나 어쩔 수없이 육신의 연약함으로 죄를 짓는 사람이 이미 아닙니다. 이 죄인은 죄를 짓는 것을 업으로 삼아서 죄 자체가 인격의 특징이 되어 버리고 죄 자체가 삶의 경향이 되어버린 굳어져버린 죄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 죄인의 길에 어느덧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인생을 살아갈 때 하나님에게서 지혜를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하며 살지 아니하고 세상 살아가며 세상에서 형통한 사람들에게 지혜를 얻고 거기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정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이제는 걸어가는 그 인생길 자체가 죄가 인격의 특징이 되어버리고 죄를 지으며 사는 것이 삶에 굳어져버린 그런 사람들이 다니는 그 길에서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나라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좋은 씨앗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가 뿌려놓은 잡초도 함께 자란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길에 들어서서 살아가게 되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제는 죄와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을 맺고 그 죄를 짓는 것이 삶의 특징이 되어버려서 생각하는 모든 것이 죄에 물들고 계획하는 모든 것이 사악하고 살아가는 삶 그 자체가 수많은 죄악들을 산출해 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악은 다시 우리의 인생을 얽어매어서 하나님께 더 이상 나아가고 싶어도 나아갈 수 없는 올무들을 우리에게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가 죽는 경험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악인의 꾀를 잠시 빌려도 즉시 그것이 잘못 됐음을 알고 뉘우치는 사람들은 적어도 죄인의 길로 걸어갈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깨닫는 것이 없으면 우리는 짐승과 같이 죄에 이끌려 죄의 길로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되면 그 다음에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다고 하는 말은 오만한 자들이 사는 동네 사이에 집을 짓고 거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오만한 자는 그저 겸손하게 살다가 가끔씩 교만해 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교만해진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매일 매일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아니하면 우리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악마의 나라가 우리의 마음속에 자라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어둠속으로 들어가게 되어서 급기야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삶의 자리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성경은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매일 매일 와서 “오. 하나님 오늘도 나의 삶이 이러 이런 사소한 죄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습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한번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하고 용서함을 받는 것은 하찮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의 샘에서 자신의 죄를 씻고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주저앉아서 집을 짓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몸을 가꾸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신경을 쓰고 마음을 기울이는지 옷차림새가 단정하지 못하거나 얼굴이 단정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얼마나 흉을 보거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될까봐 언제나 신경 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습니까? 우리의 속사람을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단장하고 주님의 진리로 우리의 속사람을 깨끗케 하고 임마누엘의 샘에서 구속의 보혈로 우리의 속사람의 죄를 날마다 씻어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언제나 있고 신령한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우리의 마음속에 언제든지 비추고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언제나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신앙생활을 위해서 얼마나 마음을 기울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높은 영적인 생활과 그리고 그런 높은 영적인 생활을 통해서 날마다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들은 이렇게 남들이 한가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자신의 내면적인 삶에 마음을 기울이고 끝없이 그 앞에서 정결함을 입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높은 수준의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죄가 많고, 유혹이 많고 슬픔이 많고 염려와 근심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남다른 특별한 불꽃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신앙생활에 자기의 영적인 삶에 공을 들이는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에 공을 들여야 됩니다. 영적인 삶에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것들을 하지 않는 동시에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화) 서울 한복판을 한강이 가로질러 가는 것처럼 런던 한복판을 템즈 강이 가로질러 지나갑니다. 런던 시내에 커다란 가뭄이 들었습니다. 런던뿐만 아니라 영국 전역에 큰 가뭄이 큰 가뭄이 들었습니다. 가로수들이 다 타죽고 있었습니다. 소방차가 가서 물을 붓고 난리를 치는데 오직 한 그루의 큰 나무만큼은 계속 잎이 청정한 것입니다. 식물학자들이 매우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아무리 나무가 크다지만 다른 모든 나무들이 다 말라서 죽어 가는데 나무는 어떻게 이렇게 잎이 청청할까 그리고 조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천년가까이 자란 이 나무가 그 뿌리가 수백 미터 떨어진 템즈 강 밑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설마 그 뿌리가 거기까지 갔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강바닥에 깊이 뿌리를 박고 그 물을 빨아들이고 있었으니 모든 나무가 가물어서 죽어갈 때 강바닥에 뿌리를 박고 있던 이 나무는 잎이 청청하고 새들이 날아와 쉬어가는 그런 잎이 푸른 나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렇게 생명의 모든 근원을 생명 자체이신 하나님의 축복의 밑바닥에 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그 말씀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그 말씀을 지키며 살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위기라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간다는 이유 때문에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이 상을 주실 것이고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고난이 온다면 하나님이 상급으로 갚아 주실 것이고 그것과는 상관이 없이 뭔가 이 세상에 파도가 친다면 하나님께서 곧 그 파도를 잔잔케 해 주실 것이라고 하는 확신이 그의 마음을 붙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파도가 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파도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에 밀려왔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그 율법을 묵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염려할 것이 없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사랑하고 그 율법을 사랑하는 그 사람들을 하나님도 사랑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고 여호와가 그 능력으로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신다면 누가 그들을 해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잠시 고난이 닥치는 것 같아도 세월이 흘러가보면 그것이 고난이 아니라 축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있는데 포목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말씀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볼 적 마다 하나님이 말씀 하시는 게 뭐냐면 너 전도 좀 해라 전도 좀 해라 그리고 전도를 하려니 바쁜 포목점 일을 하려니 언제 전도할 시간이 있습니까? 그래 가지고 이사람 저 사람 붙들고 “예수 믿으시오” 그러니까 사람이 와가지고 “아줌마 보험하나만 들어줘요 그러면 예수 믿을 게요” 어떻게 된 게 그냥 예수 믿으라고 권하는 사람마다 손목 잡고 보면 전부다 보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가지고 할 수 없이 그냥 덥석 덥석 보험을 끊어 주었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는데 어느 날 집에서 자는데 난리가 났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포목점에 불이 났습니다. 홀랑 다 타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속도 모른 남편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 이제 다 망했다고. 이 집사님은 이상하게 포목점에 불이 타는데 찬송이 나오는 겁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내가 불꽃처럼 안타니까 포목점이 타네.’ 그런데 이상하게 찬송이 나옵니다. ‘범사에 감사해요 주님 오늘밤 우리가 저 포목점에서 숙직이라도 섰더라면 다 탔을 텐데 주님 아무도 안 다쳤으니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보험 든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불이 났더니 조금 있더니 보험 들어준 사람들이 다 와가지고 돈을 주고 가는데 한 보험회사 한 회사에서 불탄 것만큼 돈을 가져왔는데 다섯 회사였답니다. 할렐루야 참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히십니까? 아닙니다. 손해나는 것 같아도 누가 하나님이 그렇게 축복해 주실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한번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 회사에서 한 번 불탄 것만큼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것 잘못하면 고의 방화사건이라고 안하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을 주님은 사랑하십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사랑을 못 받고 돈에게도 사랑을 못 받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 어떡하면 내가 말씀대로 살겠사옵나이까?” 기도하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사랑 받습니다. 형통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뭐 어려움이 닥치고 환난이 닥치면 목사님 말씀은 부르짖으라고 그런데 말발이 서야지 부르짖지 믿으라고 그러는데 믿을게 있어야지 믿지 왜 여태까지 하나님을 안 믿다가 요때 믿으려고 그러니까 믿어집니까? 안 믿어집니다. “하나님.” 그러고 나오는데도 양심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아쉬우니까 또 찾아 가는구나.’ 그러니까 평소에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늘 주님 이 세상에 참된 만족이 세상에 없고 하나님께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주님 우리를 어떻게 하면 주님의 마음에 들게 한번 살아 드릴 수 있겠습니까 맨날 하나님이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우리 인생들은 토라지기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지 말입니다. 삐칩니다. 하나님한테 삐칩니다. 자기만 손해입니다. 한번 기도를 바꾸어 보십시오. 하나님 제가 어떻게 바뀌었으면 한번 내 평생소원 주님 속 한번 시원하게 해 드리는 겁니다. “주님 어떻게 할까요?” 그러면 주님이 뭐라 그러시는지 아십니까? “성경에 다 있다. 말씀대로 살아라. 그러면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은 저절로 열매를 맺습니다. 뿌리가 깊은 강바닥에 박고 큰 나무는 하루에 빨아들이는 물이 열 두드러기가 됩니다. 그 물을 빨아들이면서 그 나무가 끊임없는 생명의 기운이 약동하는데 열매를 안 맺고 배기겠습니까? 아름다운 열매를 안 맺고 배기겠습니까? 열매를 맺자 결심한다고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뿌리를 박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보며 즐거워하고 여러분들은 여러분을 보고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즐거워하고 그렇게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