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더하는 지식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빌 1:9)
녹취자: 이성신
기독교 신앙의 비밀은 사랑의 비밀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한 사람이 마음을 비우거나 욕망을 포기하거나 모든 것을 침잠하는 가운데 아주 훌륭한 영혼의 기능이 발휘할 수 있다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할 때 그의 영혼과 심지어는 육체까지도 기뻐하고 가장 인간으로서 최상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구절에 나오는 너희 사랑을 지식과 총명으로 풍성하게 하사 흠이 없게 하시고 마지막에 의의 열매가 가득 맺게 하는 것이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 교인들을 향해 가지고 있는 기도의 제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통합적입니다. 그러니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 그 나무로 하여금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뿌리가 튼튼해서 양분과 진액을 빨아들여 생산해 내는 기능, 이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을 때에 나무가 튼튼한 나무가 되고 거기서 열매와 결실을 맺게 된다 라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무다운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없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위장할 때 사람들이 잠시는 속을 수 있고 또 기다려 줄 수 있지만 그러나 결국은 없는 것은 없는 것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없는 건 없는 게 드러나게 되어있고 있는 것은 있는 것이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흔히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들 마음속에 사랑은 지식이 사랑을 방해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뜨거운 가슴을 가질 것이냐 아니면 차가운 머리를 가질 것이냐 하는 것은 둘 중에 하나가 선택 사항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오늘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교인을 향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의 생애에 있어서 마게도냐 교회와 함께 칭찬하고 싶은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희들은 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구나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그 사랑도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이 더 풍성한 사랑을 가지기를 원한다. 그런 풍성한 사랑을 갖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너희들이 지식과 그리고 총명에서 자라가야 한다. 지식과 총명이 더해짐으로써 너희들은 지금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는 것은 우리들이 한 순간의 연애감정처럼 확 타올랐다 꺼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을에 농촌에서 일을 하고 지푸라기 같은 것들을 거두어서 불태우는 광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혹은 지붕 개량을 하기 위해서 가을에 옛날 지붕을 다 뜯어버리고 불태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썩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름 끼얹을 필요도 없고 불 한번 당기면 한 번에 확 타는데 그 불길이 굉장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전기로 사람을 태우기 전에는 장작으로 했고 장작으로 안 되면 벼 잎, 짚단을 몇 트럭을 사다가 태우면 그 불길에 모두 다 타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그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어마어마하지만 5분 10분정도 타고나면 금방 꺼져버립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열정이 식는 것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열렬히 기도하고 그리고 열렬히 하나님 앞에 봉사하고 이럼으로써 우리의 신앙이 유지되지만 하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계속해서 주어질 때 그 때에 우리의 신앙의 불길도 활활 타오르며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이 지식은 인간의 이성으로써 하나님에 관한 지식들을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학은 학문이 아니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데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신학이 학문이 아닌 이유는 다른 모든 학문과 같이 그렇게 인간보다 더 작은 그리고 종교 없이 이성의 탐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 세상 학문하고 신학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학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신앙을 통해 깨닫게 되는 진리의 지식들을 정리하고 체계를 세우는데 있어서는 이 세상의 학문과 꼭 같은 방법들을 사용을 하지 않으면 학문이 체계화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그러니까 신학이 또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독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불을 계속 우리의 마음속에 타오르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씩 하나씩 주님이 누구시고 우리 인간이 왜 창조되었고 만물은 무슨 목적으로 존재하는지를 하나씩 하나씩 배워서 깨달아 알아가는 가운데 우리의 사랑도 함께 타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뜨겁게 오래도록 타오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는 삶, 생활이 매일매일 지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총명인데 이 총명은 믿음을 통해서 알게 되는 초월적인 지식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매일 기도 많이 하고 예배에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이 이 세상의 많은 이치들은 몰라도 그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라고 하는 확신과 신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속에 더욱 더 뜨겁게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초월적인 은혜를, 은사를 경험하고 나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더 뜨거워지는 것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을 잘한 이후에서는 하나님을 매일매일 사랑하되 지식과 그리고 총명을 더함으로써 하나님 사랑이 여러분 마음속에서 계속 타오르도록 그렇게 믿음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한 사람이 아무리 주님을 깊이 만났어도 이후에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지 않으면 그 사랑이 유지가 되지 않기 때문에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를 아는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가도록 우리에게 촉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장작과 같아서 타오르는 불에 계속해서 지식과 총명을 넣어줄 때에 그 때에 그 사랑의 불길이 계속 타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누구신지를 매일매일 아는 그런 지식에서 자라가는 사람들이 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다가 어려운 것을 만나면 거기서 겸손해지고 쉬운 것을 만나면 거기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면서 하나님을 의존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을 함께 배우며 하나님을 공부해 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