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여기에 보니깐 이제 참된 믿음을 갖지 않은 부자들에 의해서 억압을 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야고보 선생에 권면이 나옵니다. 근데 그 권면에 내용이 뭐냐면은 원망하지 마라 그리하면 심판을 면할 수 있다. 그러면서 선지지들이 오래 참은 것을 생각하면서 본을 받아서 너희들도 참아라. 그게 사실 어떻게 보면 동의가 안되죠. 그죠? 저들이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지를 않고 그래서 자신들에게 부도적한 행동들을 하고 긍률이 없고 그래서 억압을 받는 그럼 상황인데 야고보 선생은 참으라. 참으라. 그래야지만 심판을 면할 수 있다. 그게 왜 그것을 이렇게 이야기 했을까 하는 거죠. 우선 우리가 염두해 둬야 할 것은 야고보 선생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주 강력한 어조로 이런 교회에 풍조를 규탄하고 그리고 아주 두려움 없이 교회 안에 있는 사실상 참 된 믿음을 가지 아니한 이 악한 부자들을 향해서 아주 강력하게 탄핵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려움을 당하는 가난한 교인들에게는 참으라고 권면 했습니다.그리고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크게 세 가지 정도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첫째는 뭐냐 하면 이 사람들이 교회에 한 지체잖아요. 뭐 참 된 믿음을 아직 안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어쨌든 교회 안에 한 지체잖아요. 그런 일단은 지체로 보고 그렇게 살아가는데 아무리 올바른 일이라고 하지만은 이 사람들이 만약에 교회 안에서 부자인 교인들을 대적하는 마음을 품게 되면은 당장 어디에 손상이 가냐 하면은 그리스도인 몸인 교회에 손상이 가는 거에요. 이거는 불의와의 타협이라든지 덮어준다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몸이 손상을 가는. 그러니깐 이제 야고보 선생이 그렇게 하지 마라 그런거죠.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날도 교회 안에 무엇인가 바르지 않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자신에 몸에서 발생하고 있는 질병처럼 먼저 깨달은 사람이 그거를 아파하면서 그러면서 그런 애정을 가지고 아파하면서 하나님 앞에 도움을 구하면서 그렇게 치료를 해 나아가야지 반기를 들어서는 안되다 이거죠. 비유를 하자면 이거에요. 여러분 몸 중에 어느 부분이 아파요. 예를 들면은 관절이 쑤신다 관절이 아프다. 그렇다고 해서 칼을 들고 와서 관절을 찔러버리고 이 놈에 관절 짤라 버러야지 그러진 않잖아요. 심지어는 관절에 매우 좋은 약이 있는데도 의사가 관절에는 매우 좋지만 이 약을 먹으면 심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먹어요 안 먹어요? 안 먹잖아요. 그게 뭐냐 하면 몸 자체가 이게 만약에 로봇에 부속이라고 하면 자동차 부속이라고 하면 확 빼버리고 새거 끼우면 되지 몸이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니깐 우리들도 몸을 그렇게 다루잖아요. 그러죠? 그렇게 다루잖아요. 교회에도 그런 거예요. 굉장히 조심성 있게 다뤄야 하는 거예요. 이거는 무슨 잘못을 덮어 둔다던지 두둔한다 던지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일단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를 향해서 칼을 빼들면 그것은 곧 자신의 몸을 찌르는 것과 꼭 같은 것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아주 굉장히 적절한 비유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애기하고 있는 것도 그런 거거든요. 그러니깐 어디 몸이 아프다. 그렇다고 해서 칼을 들고 와서 그것을 바로 쑤셔버리고 잘라버리려고 그렇게 하지 않잖아요. 심지어는 거기에는 매우 좋은 방법인데도 다른데 미칠 영향 때문에 안한다. 예를 들어 당뇨 걸린 사람들 지금 당장 수술해야 살 수 있어요. 근데 의사가 집도를 안해줘요. 왜냐하면 그 부분만 생각하면 당장 도려내고 잘라내면 되는데 당뇨기 때문에 합병증이 와요. 그러니깐 다른 부분을 생각하면서 당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잖아요. 이런 것이 몸에 대한 접근이에요. 근데 만약 이 가난한 사람들이 독한 마음을 품고 교회 안에 부자들에게 반기를 든다면 그러면은 당장 손해를 입는 것은 뭐냐 면은 교회인 몸인 교회가 손상을 입는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가난한 사람들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죠. 뭐냐 하면 어떤 불의와 악한 것을 볼 때에 이 분노하는 마음이 필요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은혜의 물 아래 잠기지 않으면 은 그 분노는 그 사람에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어요. 그런 놀라운 힘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어떤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그런 어떤 분노 이런 것들은 은혜에 의해서 조절되어야지만 좋은 결과를 산출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가난한 사람들에 영혼을 기억하면서 이렇게 고민하는거. 마지막 세 번째는 뭐냐 하면 앞에서도 농부에 이야기를 들으면서 깊이 참으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뭐냐 하면 하나님에 섭리를 신뢰하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그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이 자신에 인생을 모두 지켜보실 것이며 개입하셔서 자신에 인생에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다 라고 하는 그런 신앙. 그런 신앙을 바라보면서 그러면서 이 야고보 선생이 이렇게 권면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깐 결국 여기에서 이제 참으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에 섭리를 바라보라고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죠. 자신은 그들을 전면적으로 비난하고 탄핵하면서 이제 교인들에게는 이렇게 권면하는 거죠. 그러면서 선지자들이 오래 참았던 것을 기억하라. 선지자들이 오직 하나님에 말씀 하나를 가지고 박해를 받으면서도 결국은 하나님에 뜻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면서 살았던 것처럼 너희들이 그런 마음으로 살아라. 그러면 반드시 그 날에 너희들에게 상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너희들이 그런 어려움 속에서 너희들에 마음이 강팍해지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이제 말씀해 주신 거예요.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거든요. 우리에게 어려움이 오고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것 같고 그럴 때 신앙을 가지고 그것을 잘 인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자신에 어려운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그리고 자신에 문제를 하나님 앞에 도움을 구하면서 문제도 해결되고 자신에 영혼도 사는 그런 복된 은혜를 하나님이 주시도록 간절히 간구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그런 신앙생활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