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9일 새벽예배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약 4:17-5:3).
그러면서 인제 야고보 선생이 선을 행하여야 알 줄 알고도 그거를 행하는 않는 것은 악이다. 라고 말하면서 이제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그것이 참 믿음이 아닌 사람들의 이 부도덕한 삶을 고발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4장 마지막 절은 5장에 대한 하나에 도입부라고 말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때 제일 먼저 등장하는 사람들이 부자였습니다. 근데 이 사람들이 누구 였느냐 하면 벌써 이때에 벌써 이런 문제들이 대두된 거거든요. 교회에 오면 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녀라고 하는 그 존재로서 귀히 여김을 받아야 하거든요. 물론 교회 안에는 중심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리고 많이 수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교회에 충분히 들어오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불신함으로 인해서 미적거리며 교회의 문턱에서 여러사람의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죠. 근데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열심히 봉사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좀 더 존중을 받고 어떤 사람들은 덜 하고 그런 일들이 없을 수는 없을 꺼에요. 근데 여기에서는 그런 어떤 순수한 신앙에 동기가 아니라 돈이 많은 부자라는 이유 때문에 교회에서 특별 대접을 받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이 오면 아 이쪽으로 와라 여기 좋은 자리 앉으십시오. 가난한 사람은 거기 서있어라 그렇게 물질을 소유하고 있다 라고 하는 그 자체를 가지고 사람들이 차별대우를 받는 그러면서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확실한 신앙을 가진고 변화지도 않은체 교회에서 이런 식으로 대접을 받고 그러는 가운데 정직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복음에 직면하고 자기가 진실로 죄인이라는 것과 그리고 정말 그리스도 이외에는 자기에게 아무 희망이 없다라고 하는 그런 진실한 신앙을 갖게 될 기회를 잃어버리는 거죠. 그리고 이 사람이 당시에 유행하던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라는 교리를 잘 못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변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는 구원받았다. 그래서 자기는 신자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내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람들에 대해서 야고보 선생이 부자인 것이 마치 하나님 앞에 책방 받을 일인 것처럼 고발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너희에 제물들은 녹이 슬었다. 그러면서 야 너희들이 심판을 받는다. 그러니깐 부자이기 때문에 심판을 받고 부자이기 때문에 제물이 녹슨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영혼이 근본적으로 변화 되지 않은 것이에요. 그것이 이제 그들에 부도덕한 삶을 통해서 나타나는 거죠. 그래서 이제 내일보면 아시겠지만 뒤편에 가면 근로자들에 임금을 착취해서 부자가 되고 그리고 탐욕으로 진 물질을 쌓으면서 살아가는 그런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교회에서는 부자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대접을 받는다던지 또 반대로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돌봄을 받는다던지 그런것이 아니라 이러 것들은 모두 눈에 보이는 것들이고 그리고 이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사람들을 공정하게 보면서 그 사람 한사람 한사람이 소유에 다과에 관계없이 하나님에 형상을 가진 사람들이 때문에 소중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지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그런거죠. 소유만에 문제는 아니에요. 예를 들자면은 교회에서 우리는 청년이 많다. 청년들은 귀하다. 사실은 청년들만이 귀한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입니다. 정년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자기가 참된 신앙을 가지고 주님 앞에 굴복하면서 살아갈 때에 주님을 사랑하면서 살아갈 때에 그게 소중하고 귀한거지 인격적으로 승복되지 않은 젊음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갑속에 들어있는 칼과 같은 것이에요. 그래서 이제 깊이 성경이 가르쳐주는 안목을 가지고 인간을 볼 수 있어야 해요. 성경에서 보면 젊고 늙은 것이나 혹은 소유에 많고 적음이나 얼굴에 아름답고 추함 이런 것들은 모두 지나가는 안개와 같고 이슬과 같은 것이거든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에 영혼 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서 그가 정말 하나님 앞에 어떻게 인격적으로 승복된 삶을 살아가는 가 그런 것이 훨씬 중요한 것이거든요. 그런 각도에서 사람을 보고 그 사람들에 변화를 위해서 사랑을 베풀수 있는 그런 교회에 모습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죠. 성경에 의하면은 특별히 예수님에 가르침에 의하면은 부자들이 하나님에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것만큼 힘들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 하면은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런 것이 없을 수는 없지만 부자 일수록 탐욕이 많은 법이다.
그런 탐욕은 결국 부도덕 삶을 낳고 그런 탐욕은 결국은 하나님에 나라에 대한 갈망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정직하게 돌아보면서 자신에 영혼에 문제로 인해서 먼저 아파하고 고뇌하고 하나님에 손길을 통해서 자신에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그런 하나님에 나라에 이르는 진정한 영혼에 갈망을 갖게 하지 못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거죠. 뭐가? 말하자면 탐욕이요. 탐욕이. 그걸 근데 그 사람으로 진정으로 거듭나고 그리고 현재적으로 구원에 이르는 참 믿음을 소유하고 있으면 그 탐욕과 어려움들을 이겨낸다는 거에요. 탐욕과 어려움들을 이겨내는거에요. 그래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물질에 대한 탐심보다는 오히려 자기 안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더 크게 역사하고 그리고 주님에 사랑에 대한 욕망이 더 크게 역사하는 그래서 욕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욕망을 물질에 대한 욕망이나 세상에서 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주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으로 극복하는 거에요.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 새로 태어나는 거죠.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자기 깨어짐과 자기 혁신에 과정이 있다는 거에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물질에 욕심이 없습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습니까? 믿음이 있어도 때로는 불법적인 방법으로도 구해지고 싶은 욕망이 신자들 안에 있는 거에요. 그러니깐 신자들도 탈세하고 거짓하고 말지 그게 살아가는 거에요. 그런 것들이 수시로 주님을 만나고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것보다는 우리 주님과의 관계가 훨씬 소중하고 그것이 영원한 것이며 그것이 내 인생에 궁극적인 목표라고 하는 사실을 복음을 통해서 깨달으면서 수시로 깨트려져서 잠시 사랑했던 세상들을 놓고 다시 피묻은 십자가를 드는 그런 반복적인 자기 혁신들이 있다 이거죠. 누구에게? 진정으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에게. 여기서 말하는 야고보 선생이 말하는 부자들을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에요. 탐욕으로 굳어져 있고 그리고 정직하지 않고 그리고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만족을 위해서 사는 그런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이. 그들이 단지 교회에 출석하고 자기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이름을 부른다는 이유 때문에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이런 것들은 야고보 선생에 입장에서 볼 때에는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이고 그리고 오히려 그 휼륭한 이심친리에 교리를 가지고 말하자면 하나님을 기만하는 그런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정말 우리들이 자신이 진정 믿음 안에 있는가 하는 것을 끊임없이 시험해야 합니다. 자신이 정말 믿음이 있는 가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자신이 신앙 안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그러면서 매 순간 주님 앞에서 자기를 세워가는 그런 진실한 신앙 생활을 해야한는 것입니다. 그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