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성자는 처음에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실 때도 다른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었거니와 또 나오신 후에 성자에 그 존재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그 영광에 있어서 구별되는 것입니다. 지금 일장에서 계속해서 그 성자에 우월성 탁월성 그 성자가 인간은 물론이거니와 이 세상에 지어진 피조물들과는 물론이거니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천사들과 비교가 안 되시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장에서 계속 논의하는 이유는 이 히브리서가 결국 무엇을 위해서 쓰여 졌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쓰여 진 것이 뭐냐 하면 이 전체가 히브리서 전체가 신약의 레위기로 불립니다. 그래서 구약 속에 나타난 그 제사에 제도를 하나씩 추적해 가면서 바로 그 제사 제도가 메시아 이신 성자 즉 성자로써 메시아가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분이 구약에 주인공이 되신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 쓰여 진 책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구약에 제사와 구약에 모든 율법과 구약에 많은 수많은 역사 속에서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 되었고 그래서 우리 눈앞에 있게 된 이 예수 그리스도 그분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분이 살고 태어나고 살고 죽으신 그것이 우리들이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안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미 영원 전에 성자는 계셨으며 다만 사람에 몸을 입고 자기들에 시대에 태어나셔서 자기들에 시대에 복음을 전하시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그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들의 시대에 태어나서 고난을 받고 죽으셨지만 그 예수 그리스도에 태어나심과 사심과 죽으심은 자기들에 세대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과 그 모든 역사에 하나님이 구원을 얻는 방편으로 주신 사람이다 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히브리서를 히브리서가 참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히브리서를 잘 추적해서 공부해 나가면 은 그러면은 성경에 충만하신 예수님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예수님이 단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어떤 삶에 모본이나 남기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라 그 인간에 모든 죄를 구속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이 아주 장엄하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아들이 다시 오실 때 다시 오실 때 그 천사들이 그에게 경배할 것을 오늘 읽은 성경 구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도 한 하나님에 나라에 계실 때에 천사들에 경배를 받으셨고 그리고 또 하나님에 백성들에 경배를 그 영원한 천국에서 받으셨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날에 천사들이 경배하게 될 경배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죠. 그럼 왜 이렇게 맏아들이 다시 오실 때에 받으실 그 경배와 영광이 이렇게 놀랍도록 큰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심판에 교리와 관계가 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부름 보냄을 받아서 이 세상에 처음 오실 때에는 아주 초라한 인간에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죠. 그랬는데도 천사들이 예수님의 수종을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도 그 천사들은 예수님을 수종 들기 위해서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도할 때도 천사가 예수님을 도왔고 육신에 힘이 연약하여서 자신에 힘을 다 쏟아 붓고 기도하여 기력이 진할 때에도 천사가 와서 예수님을 붙들고 도왔습니다. 이런 것들이 이미 성자에 탁월성을 입증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마지막 때 심판과 함께 오실 때에 나타날 그 탁월함 그래서 천사에 경배를 받는 광경에 비하면 그건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그러면 그렇게 내려오실 때에 다시 오실 때에 왜 그렇게 천사들이 그분을 향해서 아주 놀랍도록 그렇게 장엄하게 경배를 드리냐? 그거죠. 그것은 천사들조차도 그분에게 심판을 받아야 할 위치에 있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교리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사람에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시기 전에 하늘에 계셨을 때에는 이렇게 독특한 심판 주로서의 영광을 가지고 계신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러니깐 심판 주가 되어서 이 세상에 사람과 교회와 나아가서 영적인 세계까지도 모두 심판하실 수 있는 하나님에 전권을 위임받은 장엄한 주가 되시는 것은 예수님이 사람에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죽지까지 복종하고 아버지 앞에 자기를 드려 구속에 길을 열어 놓으신 그 희생 사역에 대한 하나님에 보상 이였다는 거죠. 그니깐 이 사실 자체는 우리에게 놀라운 그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아들이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순종과 복종으로 자기를 버리신 철저한 희생에 삶을 사셨을 때에는 그는 멸시를 받은 자 같고 사람들에게 실어버린 자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연한 줄기와 같아서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드리는 철저한 희생에 섬김 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에게 이 천사들조차도 심판 할 수 있는 온 땅에 모든 권세를 그 아들에게 홀로 주셨습니다. 이미 부활하신 몸으로써 제자들을 찾아 오실 때에 이 권세를 한 몸에 지니고 계셨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죠. 그러니깐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런 크고 놀라운 권세를 가지고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거니와 마지막 때에는 천사들과 모든 피조물이 만군에 주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꾾고 복종하듯이 그 아들에게 철저히 복종하고 거스르는 것이나 대항하는 어떤 것들도 일체 제압당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 천사들 조차도 그 분을 한없는 기쁨 가운데 경배하며 두려워 떨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만큼은 아니고 또 천사들 만큼은 아니지만 그러나 성도들도 마지막 때가 되면은 어느정도 심판에 주체자 로서 참가하여 악한 령들을 심판하는 자리에 그리고 이 세상을 심판하는 자리에 우리들이 서게 된다 라고 하는 사실인 것 입니다. 그러니깐 우리들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참 된 성도가 되기 위해서 지불해야만 하는 많은 희생과 고생은 그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볼 때 그 예수를 마굿간에서 태어나고 골도다 언덕에서 죽은 예수만을 생각하면 안되듯이 성도에 일생을 생각할 때에도 그져 이 세상에 태어나고 죽는거 혹은 거듭나고 죽는 거 그 정도만을 보고 그러면 안됩니다. 우리가 이미 오래전에 주님이 이 세상을 창조 하실 때에 주님에 계획 속에 있었고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들을 이처럼 이땅에 태어나게 하셔서 죄에 사람으로 창조 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창조하셔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기 전에도 우리에 모든 인생이 주님에 경륜함에 있었고 우리가 어느 순간에 인생을 모두 마치고 죽은 후에도 우리들이 영원한 하나님에 나라에 들어가서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되리라 하는 신념을 우리가 갖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제가 아주 존경하고 우리 교회에 오셔서 몇 번 아주 노고를 이끌고 정말 은혜로운 설교를 해주신던 우리 김희옥 목사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집회 장소에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일부러 서울까지 나와서 교육자들과 함께 문상을 갔습니다. 그 헌화를 하러 꽃을 들고 갔더니 그 앞에 그 나들나들한 성경 그리고 당신이 연구한 것을 깨알같이 적어놓은 성경이 있습니다. 그분은 항상 우리에게 뭘 가르치셨냐 하면 신학을 읽든지 뭘 읽든지 성경에 도움이 될 만한거 있으면 무조선 성경에 적어노라. 왜냐하면 교인들에게 설교할 때에 책을 들고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들고 설교하고 인간에 머리에는 암기하는 능력이 한계가 있으니깐 적어놓으라. 그 가르침대로 그렇게 깨알같이 적어놨어요. 왜? 왜 그 할아버지가 그렇게 노고를 이끌고도 성경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글을 쓰셨습니다. 세계 최초로 소선지서 출석을 상세하게 열몇권으로 구성해서 내 놓으셨습니다. 그렇게 깨알같이 적힌 글자를 보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내가 참 슬피 우니깐 아들이 오히려 나를 위로해 거꾸로. 아들이 울면은 내가 위로를 해야 되는데 아들이 나를 위로하면서 목사님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우리 아버님 좋은 나라로 가셨습니다. 하여튼 얼마나 많이 맑고 깨끗한 분이신지 마지막 유언을 남기실 때 부조금 받지 말아라 그러고 돌아 가셨데요. 그래서 결국은 부조금 갖고 가서 못하고 그냥 왔어요. 왜그렇게 깨알같이 글씨를 써 놨겠어요. 무엇 때문에. 삶을 위한겁니다. 삶. 어떻게 이 세상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믿고 그리고 어떻게 살고 그리고 어떻게 그 분을 섬겨야 겠는가 그걸 위한 것이에요. 그러니깐 이 세상에서 어떻게 주님을 믿고 사느냐 이 문제는 세상에서의 문제가 아니에요. 세상에서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건 영원한 세상에 문제에요. 우리들이 주님을 잘 믿고 예수님처럼 공경하며 하나님을 섬기다가 주님에 나라에 가면은 천사들조차도 경배하는 그 하나님에 나라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천사들과 함께 이 세상 교회들을 심판하는데 참여하고 그렇게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나그네처럼 구박받고 괄시받고 그리고 고난 받고 눈물을 많이 흘리게 만들었던 이 악한 세상을 영광 가운데 성도들이 심판한다 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가슴이 벅차는 일이에요.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리에서 모든 천사들에게 경배를 받으실 것이며 그 경배를 통해서 그 분이 온 땅위에 뛰어난 하나님 자식이심을 충만하게 표현해 보여줄 것이고 우리는 그 영광 가운데에 기뻐하게 될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자에 탁월성인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