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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시는 선한 하나님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시 86:5).
이 시도 다윗의 시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시인이 매우 곤궁해진 가운데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주님께 은혜를 구하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시인이 오늘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을 때에 이 시인의 마음속에 있었던 확신이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 첫째는 하나님은 선하시다라고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시고,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신 말씀 가운데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선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해 주심에 있어서 당신이 선하시다라고 하는 사실을 가장 풍부하게 많이 계시해 주셨고, 다윗도 또한 그런 맥락에서 하나님이 선하신다라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이 선하시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무조건 인간에게 인간이 좋은대로 모든 것을 해주신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사실 그런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도 사실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의사가 있고 환자가 있는데 환자가 그 의사의 치료하는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항상 행복할 수만은 없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그는 아마 의사를 찾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가 항상 자기에게 좋은 것만 해주고 좋은 것만 베풀어주는 그런 사람일 수 없지요. 왜냐하면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빗나간 삶을 살려고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그 아이들을 올바로 가르키려고하는 부모의 교육 방침에 어긋나게 되면, 부모는 선한 길로 인도하는데도 아이들에게는 고통이 되잖아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은 무조건 우리 좋은 대로 우리의 영혼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부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치 우리가 버릇없는 자녀들을 가르치고 교육하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그것을 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만약에 집을 짓든지 무얼 하든지 뭘 하나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목적 없이 만들어 놓은게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당을 짓고 나서 사람들이 와서 우선 이건 왜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왜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오면서 저걸 왜 저렇게 만들었을까? 저걸 왜 저렇게 만들었을까? 저건 이렇게 만든게 더 좋을텐데 그렇게 생각을 해도 사실 자기가 생각한건 우리도 다 한번 생각해 본거고, 그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한거거든요. 그래서 어설프게 와서 누가 뭐라고 그러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 가운데 아마 우리가 생각을 안해본 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머리에 쥐가 나도록 생각하고 그리고 도달한 결론입니다. 그렇게 우리 인간도 뭘 만들어 놓으면 다 그것을 각각 쓰고자 하는 어디다 써야겠다라고 하는 의도와 생각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원하는 바고 뜻하는 바입니다.
여러분 밖에 나가면 천막이 이렇게 쳐지잖아요. 그죠? 그래서 자동으로 천막이 쳐집니다. 저는 그것을 설치할 때, 이게 통로가 길기 때문에 바람이 많이 불거다 그러니까 거기에다가 감지 장치를 달아서 그래서 바람이 많이 펄럭거리면, 밑에서 치고 올라가는 공기의 바람이 똑바로 부는 바람의 세배가 넘습니다. 그래서 밑에서 치는 올라가는 바람이 통로에서 불게 되면, 저 알루미늄이 휠수 있으니까 그러면 망가지니까 거기에다가 센서를 달아서 바람이 어느정도 치면 그게 자동으로 접히도록 그렇게 해라 그런 장치가 있습니다. 처음 들으시겠지만 , 그런 장치가 있습니다. 그렇게 과히 비싸지 않고 프랑스제인데 그걸 달면 바람이 일정량 이상으로 펄럭거려서 이게 휠 것 같은 위협이 생기면 자기가 감지를 해서 감깁니다. 그런데 하여튼 무슨 이유를 여러 가지를 대면서 제가 하자는 대로 안했습니다. 이번에 여름에 바람이 막 엄청나게 몰아칠 때, 저걸 펴 놓고 어디 가기만 하면 근심이 되는 것입니다. 거게 휘면 저것도 다 새로 고쳐야 되는데, 그게 그러는 거죠. 뭔가 이게 생각하는데로 집을 설계하고 이런 사람들이 생각하는데로 아래서 따라서 해줘서 그렇게 하면 염려가 안되는데, 그래서 결국은 그것을 다시 설치를 좀 하는 방향으로 다시 한번 좀 시공을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제가 이거 설치한 분을 불러서 제가 부탁을 했습니다. 아마 조만간에 다시 설치가 되리라고 봅니다. 그러면 염려가 없는거죠. 길게 쳐놓고 갔는데 아침에 바람이 안불었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길게 쳐놓고 갔는데, 어디를 외출했는데 점심때 바람이 막 불어 누가 그걸 챙기지 않으면 부러지는 소리 나기 전에는 안되거든요. 그래서 2층 도서관에 있는 것이 이렇게 휘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다시 바로 잡았는데 그러는 거예요.
의도를 가지고 어떻게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있는데, 거기에 완전히 미치지 못하는 것은 선한 것이 아니예요. 선한 것이 선한 상태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이 선하신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은 뭔가 자꾸 나를 다른 방향으로, 나만 미워하고 나는 안가려고 하는데 나를 꼭 그곳으로 데려가려고 하시고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죠.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이렇게 선하고 행복하게 하시는 분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가 있는 거예요. 어린아이 곤하게 자는 놈을 일어나라고 일으켜 세워서 세수하고 빨리 공부하라고 할때 그 아이가 그 엄마를 어떻게 선한 엄마라고 느껴질 수가 있겠어요. 공부는 했는데 성적은 그지같이 그리고 용돈도 낭비하고, 책가방에다가 이상한 사진이나 가지고 다니고 그래서 아빠가 빠다 방망이로, 몽둥이로 엉덩이가 피가 나도록 때리는데 어떻게 그 아이가 우리 아빠가 내 행복을 위해 기여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서 여기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은 선하시다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죄 가운데 있어도, 환란 가운데 있어도 자신의 의지, 자신의 인생의 계획, 자신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완고한 고집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선하심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계획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 결국은 좋은 날이오냐면 그게 아니거든요. 하자는데로 안하면 나중에 반드시 나중에 문제가 된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그때도 얘기가 나와서 얘기인데, 나는 그 센서를 꼭 달아야 된다고 그렇게 우기는데 무슨 이유에서든지 하여튼 그것이 안 달렸어요. 그때 하도 신경쓸게 많아서 머리가 고갈되가지고 그래서 결국 내가 뒤로 물러 나고 말았는데, 바람이 막 불때 그랬어요. 그걸 물러나지 말고 끝까지 내 주장을 관찰하는건데 저렇게 바람에 불어서 펄럭이니 불안해서 어떻게 보겠느냐?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의 선하심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고집을 가지고 완고한 대로 자기 욕심을 따라 살면 하나님이 자꾸 자신에게 선하신 분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가시나무와 같이 느껴지고, 하나님은 맨날 나만 미워해, 기도도 안들어 주시고 말이지, 그리고 하나님은 맨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나만 잘못했다고 그래, 그런 심통스런 마음이 든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게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 마음대로 인생을 살고 나서 행복한 적이 있었으면 한번 말해보세요. 자기 마음대로 산 길은 처음에는 대로와 같고, 처음에는 친구도 많고, 처음에는 잘가는 것 같고, 처음에는 순풍에 돛단 것 같지만, 그러나 자기 뜻대로 살고 나서 시간이 흘러가고 보면 그것은 즐겁고 행복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정도로 쓰디쓰고 고통스런 열매로 우리에게 가져다주잖아요. 그러나 주님의 뜻대로 돌아서면 그 길은 어떤 때는 가시에 찌르는 길 같고, 그 길은 힘들게 느껴지고, 그 길은 친구도 없는 길같이 느껴지고, 그 길은 너무 외로운 길처럼 느껴지고, 근데 잠시 지나고 나면 가시 밭길이 지나고 나면 환한 대로가 열리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놀라운 축복, 죄를 따라 갔을 경우에 맛볼 수 없고, 유혹에 굴복했을 때 경험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이 정말 자기와 함께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거예요.
이 시인이 커다란 환란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자기의 완고함을 꺾고나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주는 선하시며“,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고, 자기의 완고한 고집을 꺾고 나면, 하나님의 그 자비하심, 그 하나님의 선하심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지 다 모르지만,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가고자 하시는 길로 내가 순종하며 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좋은 길로 이끄실 것이고, 그 좋은 길로 이끄는 그곳에서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따라 살 것이고, 그렇게 살게되면 내가 창조의 목적에 가장 기여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최고의 행복을 맛보는 그런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환란 가운데서 깨달은 시인의 믿음이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얘기를 할 때마다 말이죠. 언제나 잊혀지지 않고 떠오르는 그 생각이 있어요. 옛날에 시골에 가면 저 어렸을 때 살던 그 동네에도 보면 징검다리가 있었습니다. 징검다리가. 개울은 깊지 않은데 개울이 꽤 넓어요. 그런데 다리를 놓을 수 있는 힘이 별로 없으니까 동네 사람들이 커다란 바위를 갖다가 개울을 가로질러 놓죠. 그러니까 비가 많이 오면 당연히 두절되고 못건너는거고, 비가 조금 덜 올때는 이제 그 돌다리를 건너서 애들이 가서 형들하고 연도 날리고 그리고 놀았어요. 그런데 인제 제일 애매한 때가 언제냐면 겨울에 눈이 살짝 왔을 때, 그때에 이 징검다리를 내가 보기에는 한 30개정도는 건넜어야 하는데, 그때에 하나하나 건널 때에는 딴 생각 아무것도 없고, 이 징검다리를 건너면 우리가 가려고 하는 저 건너편 개울 동네에 논에, 얼음 언 논에 도달할 수 있을 거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이 하나씩 하나씩 징검다리를 건넙니다. 그 때 아이들은 멀리 볼까요? 가깝게 볼까요? 멀리보면 넘어져요. 그러니까 돌멩이 하나 하나 내가 여기서 발을 떼 놓으면 어디를 밟을까를 생각하면서 하나하나 건너다보면 그 건너편에 우리가 가려고 하는 넓은 논의 물이 있어서 얼음이 잘 얼어서 스케이트 타고, 썰매를 지칠 수 있는 그곳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어둡고 우리 길이 어디인지 안 보이고, 그래도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완고한 고집, 자기의 욕망과 죄의 욕심을 따라 살려고하는 이 불신앙적인 고집을 버려야 해요. 그래서
(찬양) 주님의 뜻대로 나 평생 살리라
그렇게 하고 보면 그 하나님의 목적이 자신에게 행복하게 느껴지면 자신을 그렇게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고, 그리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시인이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죄, 우리의 욕심때문에 잠시 눈이 가려져서 우리 앞길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살려고 하다보면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이 가슴 시리도록 선하신 분이시고, 우리를 향해서 인도하시는 주님의 그 인도하심이 결코 쉴 수가 없으신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하면, 시인이 발견한 두 번째는 뭐냐하면, 하나님은 사유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오늘 뭐라고 표현했냐면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이 사유한다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말로 사유라는 말은 ”씰리아“ 하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면제해 주고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신에게 무언가 갚을 것이 있는데 그것을 탕감해 주는 것 그런 것을 가르키는 것이죠. 우리의 죄는 마치 부채와 같아요. 그래서 우리에게 죄가 있으면 반드시 그 죄는 갚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하게 되면 우리 자신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내가 죄가 있다는 사실과 내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부채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 안의 양심도 증거하고, 우리 안의 율법도 증거하고, 또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그 너의 죄는 부채와 같다, 그것이 있다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십니다.
그래서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예요? 정말 할 수만 있으면 빚을 짓지 말아야 해요. 그런데 이렇게 교회를 짓느라고 나도 빚을 졌지만 할 수만 있으면 빚지지 말아야 합니다. 옛날에 우리 부모님들이 사업하다가 어려움을 당해서 빚을 졌는데 문소리만 나면 깜짝깜짝 식구들이 놀래는 거야. 빚쟁이들이 와서 돈내라고 해서 그래서 그 어린 마음에 내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딴건 몰라도 절대 빚지지 말아야 되겠다. 그런데 빚을 진 사람은 항상 채권자에게 굽신거려야 하고, 빚을 진 사람은 항상 저자세야 빚 준 사람이 나타나면 고양이 앞의 쥐와 같이 그렇게 꼼짝도 못하고 엎드려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됐다입니다. 그게 바로 빚을 진 사람의 슬픈 모습이예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 죄는 빚과 같아요. 근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진 빚은 지금은 돈이 없어도 돈을 많이 벌어서 갚으면 되고 돈이 없어도 열심히 일해서 조금씩 일해서 갚아 나가면 언젠가는 자유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죄의 빚은 빚은 냈지만은 갚을 수 없어요. 우리 젊은이들 카드 빚 때문에 고생한다고 그러더라구요. 카드는 19살이 넘었으니까 은행에서 만들어 주고, 만들어 주니까 이것도 사먹고 저것도 사보고 긁고 썼는데 갚을 능력이 없어요. 누가 자기를 그걸 해주냐예요. 그래서 신문을 보면 “ 연체 대납해 줍니다 “어떻게 대납해주는지는 난 모르지만, 하여튼 새카맣게 연체 대납해준다고 이야기가 나오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면 그렇게 대납 해주는 회사가 그렇게 많이 늘어나겠어요. 그러니까 빚은 졌는데 능력이 없어요. 그럴 경우엔 어떻하죠? 부모가 갚아주든지 누가 갚아주든지 간에 해결을 해 주어야지만 그 사람이 자유해 질 수 있잖아요? 이 시인이 자신도 죄를 짓고 어려움을 당하면서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경우도 있고 해서 부채와 같은 죄를 지었을 때마다 자신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다가 부채를 지고 빚을 졌는데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것을 해결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그것을 해결해주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빚진 것처럼 죄지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 앞에 깊이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사유하시는데, 시인이 보기에는 그렇게 용서해 주시고, 빚을 갚아주시는 것이 인색한 것이 아니라 정말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자기의 진 죄의 빚을 갚아주시는 즉, 사유해 주시는 것을 이 시인이 많이 경험했다는 말이죠.
그렇게 기쁨으로 당신의 자녀들의 죄를 사유해 주시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요? 우리가 그렇게 죄를 짖고 빚진자처럼 고통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유해 주시는 이유는 다시 또 죄를 짓고 죄의 종이 되어서 불순종하는 삶을 살으라고 죄를 사유해 주시는 것은 아니겠죠? 오히려 그렇게 용서를 받으면서 죄의 즐거움에 비해서 그 결과가 얼마나 쓰고 고통스러운지를 깨닫고, 그 속에서 마치 불에 튀듯이 괴로워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면서 그가 눈물로 용서를 빌때에 사죄의 은혜를 허락해 주심으로써 죄가 얼마나 커다란 고통과 괴로움을 가져다 주는지를 알고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며 사는 것이 잠시는 행복해 보이지만, 나중에 얼마나 커다란 고통을 가져다 주는가 하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쫓아 사는 사람이 되게하실려고 하나님이 사유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불순종 가운데 돌아가기 위해서 사죄해 주시는 것이 아니죠.
어렸을 때 밖에 가서 비오는날 좋다고 친구들하고 뛰어놀다가 온통 흙탕물을 해서 들어오면 엄마한테 실컷 야단맞죠. 그때는 빨래하기가 또 좀 힘들었어요? 실컷 야단 맞고, 그러고는 이제 그 화장실에서 뜨거운 물에다가 씻기고, 그리고 나서 따뜻한 내복을 입혀주죠. 내복 바람으로 이제 야단은 좀 맞았지만 아랫목에 앉아서 이불 속에 들어가서 앉아있으면 가을 같은 때. 그럼 아주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죠. 그렇게 부모가 깨끗하게 해주었는데 그 내복입고 또 뛰어나가서 드럽게 하고 와봐 그럼 그때는 직살나게 맞는 거예요. 그러면 안되요. 그래서 용서, 사죄 은혜를 경험하고 나면 책임이 그만큼 커지는 거예요. 아 이제 용서받았구나 .다시 한번 이 옷 입고 나가서 또 한번 죄 져봐? 하면 그러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빨리 안 건져주세요. 그때는 혼나요.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면 이 우리는 그렇게 말해요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보지 않겠네.
마지막으로 그 인자하심이 후하시다는 사실을 시인이 깊이 믿게 된거예요. 그런데 사실 이 사유는 소극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진 죄의 빚을 면제해 주는 것이라고 하면, 이 인자하심은 그것을 기초로 해서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이 애정을 보여주시는 것을 가리키는 거예요. 근데 사실 우리 어렸을 때 보면 그렇게 비오는날 가을에 가서 온통 개꼴, 항상 개꼴을 해같고 온다고 할머니 항상 말씀하셨는데 해 개도 성품이 여러 가지입니다. 우리도 개를 여럿 키우는데, 어떤 놈의 개는 말이죠. 비만 오면 밖으로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털이 긴 스피치가 진짜 개판을 치고 다니다가 온통 그냥 흙탕물 투성이를 해가지고 오고, 그러고 부엌으로 들어오려고 하면 우리 할머니가 작대기로 두들겨 팬다고. 밖으로 나가라고. 근데 우리가 기르던 또 하나의 개가 있는데 고건 말이지 정말 비가 오면 말이죠 개가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데, 비가 오면 요건 마른 땅만 밟고 다녀요. 그 개는 참 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해서 개꼴을 하고 들어온 것을 갔다가 실컷 야단맞고 그러고 나서 깨끗이 씻겨서 그렇게 내놔. 그래도 마음이 불안해, 왜냐하면 계속 바깥에서 엄마가 투덜대는 거예요. 바보같은 녀석 말이지 비오는 날 나가가지고 개꼴을 하고. 도대체 이 빨래를 갖다가 누구보고 하래는 거야. 지겨워서 죽겠어 내가 한 둘도 아니고 애들은 다섯씩이나 되고 계속 그러면서 조금있다가 동생이름을 대고, 그 녀석은 도대체 학교갔다가 어디간거야 어디서 뭘하고 자빠졌는거야, 다 엄마가 혼자하는 이야기인데 괜히 자기가 개꼴을 하고 들어와서 저러다가 갑자기 문을 열고, 넌 도대체 왜 그러냐고 그럴까봐 그냥 주눅이 들어서 이러고 있는 거예요.
근데 시인이 경험한 것은 그런 정도가 아니라 사유를 경험한 거예요. 만약에 그렇게 막 해서 그럴 때 어쩔줄 모르고 그러고 있을 때 엄마가 들어와서 야 아까는 미안하다. 너 어떻게 그렇게 개꼴을 하고 다니냐 . 앞으로 그러지 마라. 그러고 나서 꼭 안아주고 만약에 장독대에 감춰놨던 엿이라도 갖다가 주면 그 얼마나 기가 살고 기분이 좋겠어요? 그죠? 여기서 인자하심은 엿주는 거예요. 그게.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면죄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 오셔서 그 다음에 내가 아직도 너를 사랑한다, 니가 어떻게 이 죄의 비가 내리는 이 흙탕물에서 니가 더러워졌다고 해서 내가 너를 버릴 수 있겠느냐? 잠시 내가 너의 죄를 고치고 선한 길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야단을 쳤지만, 그러나 넌 여전히 내 아들이 아니냐 그러면서 하나님이 끌어안고 막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왔을 때 제일 느끼는 것이 뭐냐면, 첫 번째 느끼는 것이 무엇이냐면 회개하면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무거운 죄의 짐에서 벗겨주시는것이 첫 번째느낌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 앞에 깊이 회복되어 갈수록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나를 얼마나 사랑해 주셨는가를 경험하고 꼭 끌어안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때 비로소 내가 왜 그 긴 세월동안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하나님 앞에 원망하고, 하나님께 대들고, 그렇게 강퍅하게 주님 멀리하는 삶을 살았을까? 그러면서 옛날의 내가 그렇게 미워지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이 사랑, 주님께 받은 이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가 이제는 이 사랑을 많이 받았으니까 나도 주님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내가 주님의 뜻대로 살아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지, 내가 아프더라도 이제는 우리 아버지의 마음을 더 이상 아프게 해 드리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이 속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된다면 하나님이 이 세상의 살아있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영광을 많이 받으시겠어요.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 주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같이 기도합시다.
이 시간에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해서 아팠지만, 주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들이 어두움 속에 있는 것을 보시면서 얼마나 아프셨습니까? 우리의 죄악, 우리의 불순종, 우리의 방종함, 이 모든 것들을 용서해 주시고, 다시 우리를 새롭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한 마음으로 같이 간절히 기도하시다가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기도합시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주님께서 사랑해주시고, 오늘 이 아침의 시간에도 새벽에 우리를 불러 아버지 앞에 기도하게 해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저희에게 하나님 은총을 내려 주시옵소서. 우리같이 쓸모없고 아무것도 아닌 인간들을 향해서 주님이 보여주신 그 사랑과 은혜가 너무나 큽니다. 하나님 아버지 역사해 주시고 지켜주시옵소서.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알고 주님의 그 뜻대로 살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정말로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해서 빚지고,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우리가 진 죄의 빚을 갚을 수 없을 그때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빚을 탕감해 주시고, 그래서 우리에게 주님의 선하심을 보여주셨는데,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그 선하심을 우리들이 온전히 믿지 못하고 살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도 사랑하는 주의 자녀들에게 인격적으로 찾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저희들 한사람 한 사람 아버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로 가득 채워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정말로 저희들을 아버지의 크신 사랑으로 다스려 주시고, 그래서 저희들이 이제껏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그 진리와 은혜의 말씀을 따라서 주 앞에 살 수 있는 종들이 되도록 하나님 아버지께서 축복해 주시고 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도 간구하고 빕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은혜로 저희들을 채워주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로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도 간구하고 기도합니다. 저희들을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은혜를 내려주셔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저희들 한사람, 한사람 오셔서 아버지 하나님 사유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시고, 그 자비를 힘입을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이제까지는 우리의 마음, 우리의 고집, 우리의 뜻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 주님앞에 살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도 저희들에게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그 넓은 은혜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알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도 간구하고 빕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주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그래서 저희들이 사유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힘입어서 다시 한번 주께서 기뻐하시는 그 선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고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 시간에도 주님의 성령께서 저희 각 사람 기도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오셔서 마음을 열어 주시고 아버지의 사랑과 그 용서를 소망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죄의 길에서 힘을 잃어버리고 낙심한 이들에게 오늘 이 시간에도 찾아가셔서 주님의 성령께서 저희들의 마음에 뜨겁게 역사해 주시고 아버지의 그 용서하심에 참회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자비하심의 은혜와 입맞춤들을 저희들에게 허락해 주시고, 그래서 주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의지하고 주 앞에 살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고,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간곡히 빌고 원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