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24일 새벽설교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 10:28-29).
지난번에 말씀드린바와 같이 이제 여기에서는 배교자들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배교자들을. 배교자라고 하는 것은 원래 안 믿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믿었는데 그러나 진심으로 거듭나지는 못했는데, 그러나 진심으로 거듭나지 못해도 진리를 아는 빛을 받았다, 근데 이것은 아주 상당한 신앙에 대한, 상당한 이해를 갖게 되었다라고 하는 뜻이예요. 그래서 여기서 진리의 비췸을 받았다 그럴때 도대체 진리를 아는 지식의 비췸을 받았다 누가 그렇게 해 주었냐? 그건 성령님이예요. 그러면 여러분 생각에 아니 그러면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진리를 아는 지식의 빛을 상당히 받은 사람이 구원을 못 받을 수가 있는가? 그럴 수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 거듭나고 구원받는 일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인간을 향해서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지는데, 하나는 구속적 사역이라고 해서 성령이 역사하시는데 인간에게 오셔서 인간을 거듭나게 하시는 경우가 있고, 때로는 성령님이 오셔서 거듭나게까지는 안하시는데 그를 통해서 일하시는 경우가 있다 얘기예요.
무슨 얘기냐면 이런것이예요. 잘 들어보세요. 성령님이 오셔서 역사하시는데 그가 비록 성경의 많은 진리는 다 알지를 못했어도 성령님이 오셔서 역사하시는데 막 죄에 대해서 생각나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의 비췸을 받으면서 자기가 정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자기가 하나님 앞에 깊이 뉘우치고, 자기의 죄를 깊이 깨닫고, 그리고 죄를 자각하고, 그리고 자기가 죄인인 것을 고백하고 내가 왜 이런 죄 가운데 이렇게 살았을까하고 회개를 하고나니까 자신 힘으로는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요. 그랬더니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예수님을 믿는 마음을 주시는 거예요. 그러고 나니까 이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밖에는 나를 이 죄에서 건질 사람이 없구나. 그러니까 예수님에 대한 전적인 의지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이제는 예수님의 뜻만 따라서 살아야되겠다라는 결심이 생겨나게 되었어요. 그리고 깊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새 생명을 자신의 영혼 속에 하나님이 심으시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구속적인 사역입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다하고 하는 말씀이예요.
그런데 또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뭐냐하면,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이 이제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이 12제자를 사도로 부르시고, 그들에게 성령의 큰 권능을 주시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거기에서 가룟 유다가 유다만 제외되었다고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그 말로를 보면 결국은 자기가 범죄하고, 하나님 안에 용서가 있다는 사실도 믿지 못한채 그렇게 비관하면서 목매어 자살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바로 그런거예요. 그런 경우에는 성령님께서 그에게 역사하셔서 권능도 주시고, 또 성령도 체험하게 하셨는데 그가 정말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 변화받는 일은 없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 변화가 부분적으로야 일어났을지 모르지만 본질적인 그런 변화는 없었다하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걸 보면,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전자를 가르켜서 성령님의 은혜라고 말하고 후자를 가르켜서 성령님의 은사라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은혜는 그 사람 자신을 위한 거지만, 은사는 일을 위한 것이다하는 것이죠. 그래서 어쨌든 이런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이 신앙이 무엇이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성령님으로 말미암아서 지식의 빛을 받는데 예전에 알지 못했던 것이 어두움이라면 그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깨닫게 된 비취임 받은 그 진리의 빛이 정말 빛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렇게 아주 자신의 힘으로는 스스로 더듬어 알 수 없는 새로운 지식을 상당 부분 갖게 되는 성령님의 역사가 거듭나지 못한 죄인을 향하여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사람들 중에 자기의 죄를 진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없다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 사도가 이야기 하는 것은 모세의 율법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어긴 사람이 두세증인의 증언을 가지고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 그렇죠? 이게 무슨 뜻이냐면 율법을 어겼는데, 그렇게 어긴 것을 두세사람이 분명하게 목격하고 보았어요. 그래서 두세사람이 저 사람이 율법을 어겼고, 우리는 그것을 보았으며,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에 만약에 그것이 이 사람을 율법대로 처단한 후에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가 그 벌을 당해도 좋다 이렇게 하는 증언이 있었단 말이예요. 이 증언을 통해서 심판이 이루어지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때, 거짓 증언 하지 말라는 계명을 9번째로 주신거죠. 이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본대로 말하고 들은 대로 정확하게 살아가는 이 정직은, 이것은 벌써 하나님이 율법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실 때, 그때부터 하나님 자신 안에 있는 속성 때문에 그렇게 우리에게 하도록 분부된 것입니다. 만약에 거짓 증거를 하면, 그러면 그 사람의 거짓 증언때문에 이루어진 재판의 결과를, 오판의 결과를 그 사람이 담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거짓 증언 때문에 그렇게 됐으므로 그 사람이 돌로 쳐서 죽임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보면은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위증죄라고 하잖아요. 거짓말로 증언하는데 벌이 너무 약해요. 굉장히 심각하게 내려야 해요. 그래서 거짓을 행할 수 없게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치거든요. 여기에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 두세증인이 그가 율법을 어겼을때는 두세증인이 증언을 서면 불쌍히 여김을 못하고 죽임을 받았는데 율법이 크냐? 어린양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크냐? 그건 두말할 필요가 없는거죠.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일 뿐이고, 아들은 하나님의 독생자 외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죽으신 거니까 그 크기는 비교할 수가 없고 그 율법을 결국 완성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거든요.
그렇게 해서 예수님께서 오셨는데, 그렇게 예수님이 오시고 역사하셨는데 그것을 보면서 이 예수님이 그렇게 이 모든 죄를 담당하고 죽으셨는데 그래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는데 모르는 사람은 아직 몰라서 그랬다고 하지만 몰라도 그들이 심판 받을 길이 열려져 있는데, 하물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은혜의 세계에 대해서 거듭나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빛을 받았는데 그 빛을 받은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그런 많은 빛을 받고도 믿지 않기로 작정하고, 그리고 그 신앙으로부터 돌아서는 배교를 행할 그때에 그들은 다시 사함을 받지 못하고, 그리고 준엄한 심판 가운데 떨어질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얻을 수 있는 이 기회를 얻은 것 자체가 하나님께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예요. 그래서 이번에도 그 하나님의 용서로 나아가는 길을 다루면서 제가 그런 말씀을 드린 기억이 나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어느 한 순간의 깊음 가운데 떨어지도록 우리를 죄 때문에 떨어져 만들게 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뭐냐면 하나님이 사랑을 많이 알기 시작할 때 지은 범죄는 하나님이 절대로 똑같이 다루지 않으시고 심각하게 다루신다. 그래서 영혼의 깊음 가운데로 떨어지게 하신다 그런 이야기 한적이 있죠. 이거하고 좀 다르기는 하지만 그런거라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받고, 성령님의 역사에 많이 참여하게 되면 될수록 거기에는 많은 책임감이 따르게 됩니다. 절대로 성령, 하나님께서 그냥 당연하게 다루시거나 그러지 않고 그것을 아주 중요하게 취급하시면서 그러면서 다루시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도록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하는 겁니다.
근데 이제 여기에서 우리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것이 무엇이냐면 이런 그 하나님의 적극적인 심판의 역사도 물론 있지만은 또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은 실제로 우리가 경험적으로 보더라도 여러분들이 복음을 전해보면 알겠지만, 전혀 예수님을 안믿는 사람들 중에도 물론 완악한 사람들이 있지만, 그러나 복음을 전해보면 전혀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이 완악해 보여도 그 복음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고, 성령이 역사하시게 될때 무릎을 꿇고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지만, 그러나 기독교에 대해서 상당히 알고 신앙에 대해서 이것저것 경험하고 신앙에서 미끄러진 사람들이 더 완악하고 강퍅한 것을 보게 되는 것이죠. 이런것도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로마서 1장에 나오는 바와 같이 “마음에 강퍅한 대로 내버려 두시는” 그런 일들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렇게 믿게 된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인가, 그리고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믿고 주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된 구원받은 이 기회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것은 더 큰 책임이 있기 때문에 주님이 은혜를 주신만큼 더 잘 믿고 더 잘 의지하며 살아야한다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예요.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제도 주님께서 사경회 마지막날 허락해 주시고, 많은 성도들이 주의 말씀 가운데 사로 잡히고,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참회하며, 생명되신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은혜 주시니 고맙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기도합니다. 저희들과 함께해 주셔서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하나님과의 화목과 화해로 나아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회개의 은혜를 더해 주시고 생명되신 그 주님의 용서와 은혜를 믿으며 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주님을 알고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지를 저희들이 깨닫고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주님 주신 믿음 안에 굳건히 살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