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2일 새벽예배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7-18).
하나님이 인간을 다스리시는데 다스리시는 방법이 두 가지라고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죠. 첫째는 하나님이 율법으로 사람들을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둘째는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주셔서 은혜로 그 사람들을 다스리시는 것이죠. 믿는 사람들은 믿는 그 순간에 거듭나게 하시는 그 순간에 우리 안에 생명과 성령의 법이라고 일컬어지는 은혜의 법을 우리 안에 주셔서 그 법을 가지고 우리의 인생을 다스리시는 것이죠.
잘 이해가 안가면 여러분들에게 이런 설명을 드려볼께요. 여러분 성경에 보며는 우리의 악하고 잘못된 삶에 대해서 아주 심각한 경고의 말씀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성경을 볼 때에 어떠어떠한 불법과 어떠어떠한 죄를 짓고 어떠어떻게 살아가면 그 결국이 어떠하리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아주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이야기들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그걸 보면서도 쉽게 우리의 삶을 돌이키지 않고 움츠려 드는 경우는 있어요. 그런데 돌이키지는 않아요.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위협하셔도 율법으로 경고받는 미래에 대한 심판에의 두려움보다는 현재 사로잡힌 죄의 욕망이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들이 죄 아래 살게 되며는 아주 굉장히 담대한 마음들이 생겨나요.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마음이 생겨나는데 죄 속에 깃들여 있는 담대함과 무모함 그리고 맹렬함의 결과예요. 쉽게 얘기하면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지만 그리고 또 설령 다스려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 속에 있는 성향 자체를 새롭게 해서 다스리는 그런 힘이 없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것은 지금은 비록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어느 정도 사로잡혀 있지만 그래서 순종하지만, 또 어느 시간이 되면 또 반드시 다시 솟아나온단 말이죠. 그런 것이 바로 율법으로 다스리는 모습이예요.
그런데 은혜의 힘이 어떠냐면 말이죠.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어느 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우리의 마음이 녹아 그리고 변화되어 새로워져요. 그러고 나면 이 속에서 새로운 경향성들이 생겨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아주 쉽게 이제껏까지 율법의 위협에 의해서도 내려놓을 수 없었던 죄들을 내려놓게 되는거죠. 그래서 은혜를 받고 나면 새 경향이 생겨나요. 그리고 또 묻혔던 좋은 경향성들이 살아나고 솟아났던 악한 경향성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고, 언제나 하나님께서 그런 방식으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거죠. 그게 바로 은혜의 법을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새겨놓는 그것이 새 마음 새 생각이예요. 그것이 바로 은혜로 하나님이 우리를 통치해 나가시는 방법이예요.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니까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고 해서 "죄와 저희 불법" 이게 뭐냐면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 앞에 짓는 죄거든요. 그걸 기억하지 않겠다 그렇게 말씀하시죠. 이걸 보면서 그렇다면 우리 믿는 자들의 불법과 죄는 없는가 그건 있다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거든요. 믿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짓게 되는 이 불법과 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기억도 아니하신다 생각도 아니하신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이거는 무얼 가르키는 것인가, 하나님이 만약에 기억도 아니하신다 생각지도 아니하신다 이렇게 하시면 그러면 그건 무얼 가르키는 것인가, 실제로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살아가면서 짓는 그런 불법과 죄, 율법으로 우리를 다스리지 않겠다 이렇게 말씀하셨지 율법이 사라진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기준은 남아 있는 것예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그러면은 믿는 사람들이 죄를 짓고 불법을 행하고 이렇게 될때 그때 정말 하나님이 그걸 기억도 아니하신가 그건 아니예요. 하나님이 모두 알고 계세요. 지켜보고 계세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바른 삶을 살지 않고 불법하고 죄를 짓게 되면 그럼 인생이 참 고달픈거예요. 하나님께서 살아가는 동안에 그를 징계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옛날에 그 율법아래 살던 사람들이 받았던 징계와는 달라요. 왜냐하면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옛날에 율법을 지키면서 살던 때에는 그 율법을 어기게 되면 영원한 형벌에 처했지만은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듭난 사람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그렇게 다스리지 아니하시고 은혜의 법으로 다스리시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서 불법과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은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책망하시고 훈련하시고 징계하시는 그런 의미에서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하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원한 형벌에 처하기 위한 우리를 영원한 형벌에 처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의 불법과 죄를 기억하시지는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죠. 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단번에 우리의 죄를 위해서 속죄 제물로 돌아가셨고, 그래서 우리의 죄를 구속해 주셨기 때문에 그러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그렇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구원하셨을 때에는 이렇게 다시 우리들이 불법과 죄를 저지르는 것을 인해서 우리를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하지 않으실 목적으로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의 결과인 형벌을 담당하고 죽으신 것이죠. 그런데 이제 놀라운 것이 뭐냐면은 이러한 사실이 신자를 방종하게 하면 어떻게 하는 염려가 교회 역사상 늘 있어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영원한 속죄를 부인하고 또 영원한 그리스도인들의 영원한 속죄를 부정하고, 또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구원을 위한 예정까지도 부인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던 것이예요.
그러면 정말로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가 그런 효과를 가져오는가 그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영원히 우리의 죄의 결과인 형벌을 예수님이 담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는 심판에 이르는 형벌은 받지 않을 것이다 하는 이 기대가 우리를 방종한 삶으로 이끌지는 않는다는 이야기 입니다. 두가지 이유때문입니다. 우선 첫째는 뭐냐면 우리를 영원히 멸망에 처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불법과 죄를 기억하시지는 않으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성화 과정에서 짓게 되는 우리의 죄와 불법을 기억하시고 그것들을 우리의 인생 가운데 반드시 다루신다 라는 것이죠.
그럼 이런 반론이 제기될 수 있잖아요. 아니 영원히 단번에 용서해 주신다면서, 또 살아가면서 짓는 죄는 기억하시고 그것은 우리를 징계하시고 책망하시고 해서 우리를 다루신다면 그러면 영원한 속죄가 뭔가? 여기에 대해선 이렇게 답할 수 있어요. 우선 첫째로 영원한 속죄 우리의 죄와 불법에 대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영원한 속죄는 우리의 마지막 심판에 관계된 것이지 우리가 무엇을 행하며 살든지 간에 하나님이 내버려 두신다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예요.
또, 두번째는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되면은 하나님이 그것을 다루신다고 했는데 거기에는 보복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잘못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은 취소하지 않지만, 그 죄를 시시때때로 엄중하게 다루심으로서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오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죄를 다루시는 과정을 통해서 인간들이 자기의 죄를 책망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해 주셨지만, 여전히 엄위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느끼게 하고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엄위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지만 그렇게 징계의 과정을 통해서 나타나는 엄위와 공의를 통해서 하나님의 그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믿고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발견하는 하나님의 징계와 훈련이 결국은 자기 안에 있는 자기를 다스리시는 방법인 은혜를 강화시키는 면에서 사용된다라고 하는 것을 볼때 이러한 비난은 부당하다고 하는 것이죠.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영원히 용서하셨다고 하는 것과 우리를 또 이렇게 단련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징계하신다고 하는 이런 것 사이에 어떠한 모순도 없는 이유가 뭐냐면 믿고 구원얻은 모든 사람들은 우리가 지은 현실적인 죄를 하나님이 징계로 다루시는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마지막에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회복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대한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맨 처음은 그럴 수 있어 우리가 나쁜 일을 행하고 주께 불순종하면 어느 순간에 그 하나님 앞에 어느 순간에 나쁘고 불순종한 일들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우리에게 보여주셔서 두려운 마음이 들 수도 있고 "내가 진짜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는 것이 아닐까? 혹은 하나님이 내가 너무나 많이 죄를 졌기 때문에 이제 버리시는 것이 아닌가. 그런 무서운 생각이 들 수 있어요. 근데 그것으로 끝나면은 결코 거듭난 사람이 아니고 그것으로 끝나면 그 사람이 일평생동안 그 하나님의 율법의 엄위함과 두려움 속에서 인생을 살거 같지만 금방 또 잊어버리고 그리고 다시 살아가게 되요. 마치 사람이 중병에 걸렸을 때 처음 당신은 이러한 질병에 걸렸소. 한달 아니 한 석달 안에 죽겠소. 이렇게 얘기하면 엄청난 충격이지만 그 다음날 와서 똑 같은 말하고 그 다음날 똑 같은 얘기하면 나중에 짜증이 나는거죠. 다 알고 있는데 맨날 아침 저녁으로 와서 무슨 좋은 얘기라고 아침저녁으로 죽는다는 얘기를 계속하면 잊어버리고 오히려 그런 두려움을 다른 죄와 다른 불법을 행하는 관심사를 돌림으로써 잊어버리게 되죠. 오늘날 미친 듯이 불에 뛰어 드는 부나비처럼 이렇게 쾌락과 이런 것에 날아드는 현대인들의 많은 것들이 두려움과 공허함 때문에 이것이 하나의 질병적 현상 즉 하나의 병이예요. 그런 질병적 현상 때문에 그런거죠. 그러니까 절대로는 그렇지 않다는 거죠. 처음에는 그런 두려움과 공포가 있을 수 있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그 두려움과 공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거죠. 그래서 두려움과 공포, 견디기 힘든 가책 이런 것들 통해서 우리를 징계하시고 괴롭게 하시는 것 같지만 그것이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그 안식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누리는 하나님과의 평화에서 오는 그 안식 그것을 버리고 죄의 즐거움과 불순종을 찾아서 가는 것이 얼마나 미친짓인가 하는 것을 율법을 통해 깨닫게 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그걸 깨닫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영원히 단번에 용서하셨다는 것과 그래서 불법과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과 그 죄를 신자의 성화의 삶속에서 다루어 가신다고 하는 것이 전혀 모순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사셨기 때문에 이젠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 다시 한번 속죄의 완전성과 영원성에 대해서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편으로 자기의 이런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수 천가지의 율법을 지키고 단 하나를 범해도 율법을 범한 것이 되는 그래서 율법이라는 단어 그 자체가 히브리어에서나 히랍어에서나 모두 단수야. 이렇게 쪼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야. 그러니까 천가지가 있으면 999가지를 지키고 한 가지를 어기면 결국은 그것은 단수로서 취급되기 때문에 그 하나를 다 어긴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다수결로 되가지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라는 거죠. 그렇게 죄인으로 발견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 속죄의 제사로 우리를 단번에 영원히 용서해 주시는 것이예요. 그렇게 단번에 영원히 용서해 주심으로써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서 우리에게 가져오는 속죄의 효과가 영원하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신자가 잠시 죄의 즐거움을 취해서 마지막에는 그 영혼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하나님께 돌아오고 그리고 항상 성경을 통해서 볼 때에 우리들이 경고 받아야 할 것은 우리가 결국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다. 성경에는 우리가 배교자가 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누구도 진실한 신자는 결코 배교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 모든 배교의 유혹을 끝까지 지키면서 주님의 품에 안길 때까지는 누구도 자신이 참 신자라고 장담할 수 없는거죠. 그런 긴장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살아 마음을 지킬 때나 하나님 앞에 꿋꿋하게 살때나 섬길 때나 무엇을 할 때나 항상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하죠. 그래서 주님을 더 많이 의지하고 주님이 이루신 그 속죄가 영원하다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예요.
기도하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아버지 앞에 나와 간구하고 이처럼 기도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신실하신 주님 오늘 이 시간에도 오셔서 저희와 함께 해주시고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위해 이루신 그 구속의 공로와 용서의 사랑을 기억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